176화
회장실로 돌아온 도윤은 미리 준비했던 서류를 꺼내 유기찬에게 내밀었다. 그의 호텔이 보유하고 있는 박은비 화백의 그림 세 점을 6월 1일부터 7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청파 갤러리에 무료로 대여해준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였다. 박은비 화백의 특별전 기간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기간을 넉넉하게 잡은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그 그림들을 청파 갤러리가 자유롭게 전시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시 기간 동안 그림이 훼손될 경우를 대비한 보험료는 청파갤러리가 모두 부담할 거예요. 유 회장님의 적극적인 협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중하지만 단호한 도윤의 설명이었다. 서류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 유기찬의 얼굴색이 안 좋게 변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서류에 사인했다. 도윤이 재빨리 서류를 챙겨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이제 감정 결과를 발표할 시간이었다.
“말씀드렸듯이 이 그림은 박수근 화백의 진작이 분명합니다. 현재의 시세를 감안할 때 지금 당장 경매에 내놓으면 15억까지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경매를 거치지 않고 거래할 경우에는 12억 정도가 적절한 가격이라는 게 제 견해입니다.”
그의 입에서 뜻하지 않게 높은 가격이 흘러나오자 무심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천상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그런 모습이 오히려 도윤에게는 놀라웠다.
‘유 회장도 유회장이지만 저 사람도 정상은 아니군. 저렇게 고가의 명작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시세 한 번 확인하지 않았단 말이야? 박수근의 그림이면 인터넷만 뒤져 봐도 시세를 대충 알 수 있었을 텐데.’
도윤은 천상섭이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그림에 대한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과연 언제일지 궁금해졌다. 이 정도 그림이 3억이라면 최소한 15년 전 시세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두 분이 이 자리에서 거래를 마무리 하는데 동의하신다면 저도 곧바로 감정서를 써드리겠습니다.”
“경매에 올리면 15억까지 받을 수 있다면서 왜 지금 거래하면 12억이 적절한 금액이라는 거죠? 아, 돈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럽니다.”
천상섭은 반쯤 얼이 빠진 상태에서도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물려받은 미술품을 한 번도 제대로 거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공식적인 경매를 통해 작품을 거래하면 일단 경매회사가 10~15퍼센트 정도의 수수료를 뗍니다. 거기에다 작품을 판 사람은 세금까지 내야하죠. 15억짜리면 세금만 해도 상당한 액수가 될 겁니다. 따라서 지금 12억에 팔면 오히려 경매보다 이득인 셈이죠.”
설명을 들은 천상섭은 곧바로 그림의 판매에 동의했다. 유기찬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이 모두 동의하자 즉석에서 매매 서류가 작성되었다. 도윤 역시 미리 준비한 용지에 필요한 사항을 기입하고 사인까지 해서 감정서를 작성해주었다. 서류가 완성되자 유기찬은 소문난 부자답게 곧바로 천상섭의 계좌로 12억을 이체시켰다.
약간은 아쉬운 듯한 표정의 유기찬과는 달리 휴대폰으로 자신의 계좌를 확인한 천상섭의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그것을 본 도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거래가 끝났고, 이제 남은 도자기 두 점에 대해서도 감정을 마무리해야지요? 천상섭 씨는 도자기 가격을 각각 얼마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생각지도 않았던 큰돈을 손에 쥐게 된 천상섭이 얼굴을 붉히며 슬쩍 말을 흐렸다.
“원래는 도자기 두 점을 합해서 2억을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유 회장님이 그림을 너무 좋은 가격에 사 주셨으니 1억에 넘길 의향도 있습니다.”
유기찬은 가격을 절반으로 깎아주겠다는 천상섭의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예상보다 9억이나 더 지출한 상태이니 이제 와서 고작 1억을 이득 보는 게 딱히 기쁘게 느껴지지 않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본 게임은 이제부터였다.
테이블 위에는 두 개의 도자기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의 도자기와 하나의 항아리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했다.
도자기는 노란색 바탕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40cm 정도 높이의 화병이었다. 화병의 옆구리 한쪽에는 하얀 색을 칠하고 그 위에 글귀를 써넣고, 마지막에는 붉은색의 직인까지 찍었다. 그에 반해 항아리는 그저 평범하게 생긴 붉은 색의 토기였다. 키는 화병보다 조금 높은 50cm 가량이었는데, 항아리답게 폭이 상당히 넓었다.
“원래 2억을 받겠다고 한 것도 역시 선친의 의견을 따른 것인가요?”
도윤이 도자기와 항아리가 나란히 놓여 있는 테이블로 가면서 물었다. 그러자 천상섭이 계면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씩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도자기를 가리켰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쪽의 노란 화병의 경우에는 저도 1억이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쪽의 붉은 항아리는 아무래도 그 가격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자 약간 맥이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유기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렇소. 내가 비록 감정가는 아니지만 그동안 봐온 도자기가 제법 많거든. 저 노란색 화병은 색깔도 곱고 중간에 글자도 쓰여 있으니 적어도 몇 천만 원은 나갈 거 같아요. 하지만 이쪽의 붉은 항아리는 척 봐도 너무 투박하지 않소? 겉에 이상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는 게 조금 특이하지만 그래도 몇 천만 원씩 주고 살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천상섭이 살짝 발끈했다.
“하지만 선친께서는 생전에 저 붉은 항아리를 더 아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아리가 더 비쌀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닙니까?”
천상섭이 도윤을 쳐다보며 물었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솔직히 천상섭의 돌아가신 선친이라는 양반이 도대체 어떤 분일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의 말처럼 둘 가운데 더 비싼 것은 사실 유기찬이 투박하다고 평한 붉은 항아리였다. 문제는 보통 사람들이 그걸 알아보는 건 지극히 힘들다는 점이었다.
‘아쉽네. 살아 계시다면 누군지 만나서 얘기라도 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도대체 그 양반은 어떻게 저 물건들을 알아보고 수집한 거지?’
하지만 지금은 감정 결과를 설명하는 게 먼저였다. 그는 일단 노란 화병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노란색과 그 위에 그려진 문양들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일단 이 도자기는 황실에서 쓰던 물건입니다. 중국에서 노란색, 혹은 금색은 어느 왕조에서나 황실을 상징했습니다. 따라서 일반 귀족이나 서민들은 함부로 노란색으로 물건을 칠할 수 없었죠. 더 재미있는 것은 그 위에 새겨진 문양입니다. 이건 청나라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문양이에요.”
“그럼 그 도자기가 청나라 황제를 위헤 만들어진 거라는 말입니까?”
유기찬이 의외의 사실에 부쩍 호기심을 보였다. 도윤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면 건륭제가 쓰던 거지요. 여기 글씨 옆에 새겨진 직인이 보이죠? 이건 청나라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6대 황제 건륭제의 고유한 표시입니다. 그리고 여기도 보세요.”
도윤은 손으로 항아리를 들어 밑바닥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도 같은 직인이 찍혀 있었다.
“건륭제는 살아생전에 뛰어난 그림과 글씨, 도자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화재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대의 가장 유명한 수집가이기도 했죠. 그는 자신의 소장품에 이처럼 직인을 찍는 걸 좋아했습니다.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표시하기 위해서죠.”
사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참으로 고약한 취향이었다. 그로 인해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건륭제의 직인이 찍힌 물건을 무조건 청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직인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건륭제의 소유라거나, 심지어 그가 한 번 감상한 적이 있는 물건임을 나타낼 뿐이었다.
더 곤란한 문제는 건륭제의 안목 자체가 탁월한 편이 아니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무조건 구입해서 직인을 찍어대고는 했는데, 그 가운데는 나중에 위작으로 밝혀진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황제의 안목을 신뢰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도자기의 문양이나 색깔, 옆과 바닥에 찍힌 붉은 색의 직인으로 볼 때 이 물건은 확실히 건륭제가 황실에서 쓰던 물건임이 분명합니다. 도자기의 재질이나 광택, 문양의 정교함으로 미루어볼 때 진품이라는 것도 확실하고요. 하지만 이 도자기가 오로지 건륭제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좀 더 확실한 증거는 따로 있습니다.”
도윤이 그 말과 함께 화병 옆에 쓰인 수십 자의 글자를 가리켰다.
“이건 건륭제의 공덕을 찬양하고 그의 무병장수를 기리는 글귀들입니다. 초벌구이한 도자기에 글씨를 쓰고 유약을 발라 구웠으니 애초부터 그를 위해 만든 게 틀림없죠. 결론적으로 이건 건륭제가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만들어진 명품입니다.”
그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유기찬이 은근히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역시 이 박사요. 설명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근데 그럼 이게 1억보다는 조금 더 나가지 않겠소? 설명한 대로라면 굉장히 귀한 물건인 것 같은데.”
도윤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에 건륭제가 그림과 글씨, 도자기를 몹시 좋아했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한 작품도 많이 만들게 했습니다. 너무 많이 만들게 했죠. 이 도자기는 역사적인 가치도 있고 예술성도 뛰어난 좋은 작품이 확실하지만 아쉽게도 생각보다 흔합니다. 남아있는 게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시세가 1억 이상 올라가기 힘든 겁니다.”
그 말에 유기찬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도윤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도자기가 더 비싼 것일 경우 당연히 그가 지불해야 하는 돈도 늘어난다. 그는 여전히 도윤이 함부로 값을 깎는 방식의 감정을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륭제의 화병에 대한 설명을 끝낸 그가 이번에는 붉은 항아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제부터가 본 게임이었다.
“이 항아리는 홍도관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외국의 박물관에서 비슷한 물건을 본 적이 몇 번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는 건 처음이네요. 홍도관은 은나라 때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대략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에 만들어진 항아리라는 뜻이지요.”
은나라? 유기찬은 물론이고 천상섭 역시 미처 몰랐던 사실인지 도윤의 말에 눈만 껌뻑거렸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유기찬이 갑자기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방금 은나라라고 했소? 그럼 혹시 이거 싸구려 항아리 아닙니까? 그 왜 가야시대 토기들은 아주 헐값에 거래되지 않습니까? 부산 지역에서는 가야시대 토기가 하도 많이 나돌기 때문에 별로 쳐주지를 않는데…….”
도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에 물었다. 도자기를 많이 봤다고 하더니 그래도 확실히 아는 게 있기는 하네. 실제로 가야시대 토기는 아주 저렴했다.
오래된 물건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싼 건 아니다.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가 함께 평가되어야 하고 그 가운데서도 희귀한 것이어야만 값이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야 토기는 모양이 조악한데가 결정적으로 너무 많이 출토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가야인들이 사람을 묻을 때 무덤 안에 토기를 잔뜩 넣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나라는 기본적으로 기원전 10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다. 당연히 토기 제작 기술이 발달했을 리가 없었다. 예술적으로는 별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거기다 만약 출토까지 많이 된다면 가야 토기처럼 헐값에 거래될 게 뻔했다.
하지만 도윤은 유기찬의 말에 고개를 젓더니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요즘 중국 경제가 발달하면서 자국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요. 그래서 해외에서 간혹 중국 문화재가 경매에 오를 경우 대개는 중국인들의 손에 의해 낙찰됩니다. 만약 이걸 중국에서 경매에 붙인다면 낙찰가가 우리 돈으로 최소 천억 이상 올라갈 겁니다.”
그 순간 최서라를 포함해서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헉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도윤의 입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금액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어, 얼마라고요? 천 억 이상이면 달러로 1억 달러라는 뜻 아닙니까? 중국 돈으로는 6억 위안 이상이고. 아니 이 보잘 것 없는 토기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비싸다는 겁니까?”
유기찬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붉은색의 항아리가 아닌가? 그런데 천억이라고? 그 정도 돈이라면 그가 호텔의 지분을 모조리 팔아치운다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그러자 도윤이 항아리 옆에 빙 돌아가며 새겨진 글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아보실지 모르겠지만 항아리 옆에 새겨진 이 글자들은 모두 갑골문자입니다. 19세기말 까지만 해도 아무도 해석할 수 없는 문자였지요. 20세기 초에 들면서 조금씩 연구가 되기 시작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해석 가능한 문자가 많아졌습니다. 원하시면 내용을 좀 읽어드릴까요?”
도윤의 말에 최서라가 감탄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윤 씨, 아니 이 박사님은 갑골문자도 해독할 수 있으세요?”
그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도윤을 이 박사라고 불렀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에서 공부할 때 배워뒀습니다. 유물을 복원하려면 갑골문도 익히는 게 좋거든요.”
도윤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최서라에게 존대말을 썼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주변 사람들을 쓱 둘러보더니 홍도관, 즉 붉은 항아리의 한쪽 면을 읽기 시작했다.
“불길하게도 대낮에 금성이 나타났습니다. 신(辛)의 군대를 출병시킬까요? 주후서백의 군대와 그의 우군들이 주(州) 서읍으로부터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없을까요? 조왕 문정과 부왕 제을께서 돕고 지켜주실까요? 엄정한 기강이 무너지고 방임되는 일이 있을까요? 과연 서백후로부터 그러한 일이 있었다.”
고대의 갑골문들은 대개 점을 쳐서 물은 내용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앞에는 주로 질문이 죽 나오다가 마지막에 가서 실제 발생했던 일들을 적는 게 일반적이다. 결국 항아리에 새겨진 명문은 서백후로부터 은나라가 침범을 당했다는 사실을 담고 있었다.
도윤은 즉석에서 갑골문을 해석해서 읽다가 사람들이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것을 보고 입맛을 다시며 멈췄다. 만약 중국 고대사 전공자들이 명문의 내용을 들었다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그만큼 방금 그가 읽은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실내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그가 갑골문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 나오는 신(辛)이란 제신(帝辛), 즉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가리킵니다. 서백후는 그를 멸망시킨 주 무왕이고요. 이 도자기에 새겨진 명문은 은의 주왕이 쳐들어오는 서백후를 물리치기 위해 군대를 모으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역사책으로만 배웠던 고대의 사건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발생했던 일임을 명백하게 입증해주는 귀한 역사적 자료지요. 그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제야 유기찬이 의미 있는 반응을 보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다면 어느 정도의 가치를 말하는 겁니까?”
“글쎄요. 쉽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있을 당시에 그 제자들의 손으로 직접 쓴 고대 문서가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그 정도로 귀중한 물건입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유물은 워낙 귀합니다. 거기다 이렇게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이게 그렇게 귀한 물건이란 말이오? 그럼 당장 사도록 하지. 이보시오. 천 선생. 아까 합해서 1억을 달라고 했지요? 내가 처음 원하던 대로 2억을 드리지. 당장 계약합시다.”
유기찬은 천 선생이라고 부르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자 천상섭이 흠칫 물러나는가 싶더니 홍도관을 자기 몸으로 가렸다. 아무리 아버지가 전해준 말 이외에는 물건의 가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고 해도 천억 원은 너무나 큰 거금이었다. 유기찬의 눈빛이 흉흉해지려는 찰나, 도윤이 고개를 저으며 나섰다.
“유 회장님. 이 물건은 아무래도 회장님이 욕심을 부리기에는 너무 과한 물건입니다. 그냥 포기하시죠? 아쉽겠지만 회장님과는 인연이 없습니다.”
도윤까지 나서며 말리자 그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는 한참 동안 홍도관과 천상섭, 그리고 도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결국 길게 한숨을 토했다.
“그 말이 맞군. 이 박사의 말대로 이건 내가 욕심낼 물건이 아닌 듯하오.”
다행히 유기찬이 마지막에 이성을 회복했다. 그건 솔직히 누구보다 그 자신을 위해 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안 그랬으면 도윤도 더 이상 가만있지 않았을 테니까.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