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80화 (180/300)

180화

박은비 화백의 특별전 자체는 대중적으로 큰 화제가 되지 않았다. 각종 언론에서 빠짐없이 언급되기는 했지만 전체 뉴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미술계 내부로 한정할 경우 그녀의 전작 도록 발행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한 화가의 전작 도록은 그 사람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참고 자료일 뿐만 아니라 혹시 있을지 모를 진위 판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의 기억도 사진만큼 정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령 90년대에 어느 중견 화가에 대한 기획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당시 해당 화가는 생존해 있었는데, 전시회를 주관한 화랑에서 그에게 그림 한 점을 보냈다. 새로 발굴된 작품에 대한 진위 판정을 화가 본인에게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화가는 작품을 보자마자 위작으로 판정했다.

문제는 이 화가가 쓸 데 없는 객기를 부리면서 발생했다. 그는 단순히 판정을 내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캔버스 뒷면에 유성 펜으로 위작이라고 커다랗게 써서 작품을 돌려보낸 것이다. 깜짝 놀란 화랑은 자체적으로 작품에 대한 철저한 진위 감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 이십 년 전 화가가 해당 작품을 모 전시회에 출품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전시회를 열었던 화랑에서는 출품된 작품에 대한 도록을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배포했다. 그런데 그 도록에 화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했던 작품의 사진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한 결과는 가혹했다.

해당 화가는 꼼짝없이 그 작품이 자신의 것임을 인정해야 했고, 자신의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 먼 부모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작품 훼손에 따른 막대한 배상금까지 물어야 했다.

얼핏 생각하면 화가 본인이 자기 작품도 못 알아보겠냐 싶지만 인간의 기억은 그렇게 터무니없이 불완전한 경우가 많다. 그 사건은 도록의 존재가 작품의 진위 판정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박은비 화백은 한 차례 커다란 위작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따라서 그녀의 모든 작품을 실은 전작 도록의 발행은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녀의 전작 도록 발행이 갖는 의미는 또 있었다.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해서 발행한 최초의 전작 도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박수근과 이중섭을 비롯한 몇몇 유명 작가들에 대해 전작 도록이 발간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문체부에서 주도해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기간도 상당히 오래 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록 작품 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민간 화랑이 중심이 되어 불과 몇 달이라는 단기간에 그 작업을 완료한 것이다.

그 때문에 내용이 부실해지지 않겠냐는 염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발간된 도록은 생각보다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덕에 도록 발간을 주관한 청파와 아리움, 그리고 현소 화랑은 앞으로 박은비 화백의 그림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그 어느 화랑보다도 더 큰 권위를 갖게 되었다. 최수아 관장도 언급했듯이 한편으로는 이번 일을 통해 미술계 내에서 도윤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기도 했다.

* * *

전시회 첫날, 청파 갤러리 별실에서 이번 특별전을 기획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주요 관계자들 몇 명이 따로 모였다. 조촐한 다과회에 불과했지만 참석자의 면면 자체는 현재의 대한민국 미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거물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선 청파의 최수아와 아리움의 이세희가 모습을 보였고, 도윤의 어머니 서연희도 현소를 대표해 참석했다. 당연히 도윤과 최서라도 자리를 함께 했고, 이세희 관장의 남편이자 이번 전시회를 물밑에서 도운 손창현 오성 전기 전무도 일부러 시간을 냈다.

생각보다 벅찼던 특별 전시회와 도록 발간 작업이 무사히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자못 부드러웠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에 손창현 전무가 도윤과 최서라를 향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언제 날짜를 잡을 겁니까? 올해도 벌써 6월인데 혹시 해를 넘길 생각은 아니죠? 둘 다 딱 좋은 나이인데 자꾸 미루지 말고 진도 나가지요? 하하.”

자칫하면 오지랖이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지만 좌중의 반응은 그와 달랐다. 최수아와 서연희는 이미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에 말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아리움의 이세희 관장이었다.

“어머, 두 사람이 서로 사귀는 사이였어요? 나는 까맣게 몰랐네?”

그러자 손창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을 보면 알지. 최서라 씨가 이 박사를 보는 시선이 예전에 당신이 날 보던 눈빛하고 아주 비슷했거든.”

“어머, 호호. 그럼 정말인가 보네. 당신도 미리 알았으면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어요? 하마터면 엉뚱한 사람을 소개시켜주려고 헛고생만 할 뻔 했잖아요.”

“당신이 이 박사한테 신붓감을 소개시켜주려 했다고? 그러지 마. 잘못하면 미래 그룹하고 오성 그룹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런 좋은 일이 진행되고 있었으면 미리미리 알려줬어야죠. 두 사람 모두 누가 봐도 선남선녀인데 저렇게 티를 안 내고 지내면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는다고요.”

“당신이 보기에도 그렇지?”

“당연하죠. 이 박사를 보세요. 저렇게 젊고 잘생긴데다 머리 똑똑하지, 성격 좋지, 일까지 잘하는 젊은이를 찾기가 쉬운 줄 알아요? 더구나 집안 배경이나 시댁 어른 될 분들도 인품이 훌륭하잖아요. 저만한 신랑감이 어디 있겠어요.”

두 사람의 만담에 가까운 대화는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헛기침을 하게 만들었다. 당사자인 도윤과 최서라는 물론이고, 최수아와 서연희 역시 서로 다른 이유로 인해 민망해 했다.

‘저 양반들도 은근히 닭살 커플이네. 죽이 아주 잘 맞아.’

도윤은 이세희와 손창현이 이미 자신과 최서라의 관계를 놓고 여러 차례 얘기를 나누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로서는 나쁠 게 없는 얘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 떠들어대자 적잖게 민망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은 또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전시회 개막 행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서연희가 도윤에게 은근히 물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두 사람 다 진짜로 결혼 얘기를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니? 너도 그렇고 서라 그 아가씨도 적당한 나이가 됐잖아? 우리 때 같으면 벌써 노총각 노처녀 소리를 들었을 거다.”

도윤은 하마터면 운전을 하다 말고 브레이크를 밟을 뻔 했다. 아 나 참. 오늘 따라 엄마까지 왜 이러셔? 그는 올해 서른 한 살이고 최서라는 스물아홉이었다. 요즘 기준으로는 늦었다고 할 나이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혼하기에 이르다고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글쎄요. 아무리 그래도 올해는 힘들 것 같아요. 아직 미루어 놓은 일이 많아서요.”

당장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들러야 할 곳이 많았다. 당장 다음 주에는 북경에서 아리스 옥션의 경매가 열린다. 경매의 핵심 물건이 홍도관이었고, 도윤은 해당 물품의 판매를 위임받은 대리인이었다.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행사라는 뜻이다.

그 일이 끝나면 6월 말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오윤수와 정은서를 만날 예정이었다. 그들의 작품을 돌아보고 데뷔전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또 가드너 미술관의 파티에도 참석해야 한다. 이미 최서라도 함께 참석한다는 사실을 미술관 측에 통보해서 비행기 표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미국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곧바로 영국으로 날아가기로 했다. 이왕 최서라와 동행하기로 했으니 대영 박물관과 에딘버러 국립 박물관에 있는 루이스 체스맨 세트를 확인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거기서 현재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체스맨 조각에서 희미하게 내비치는 붉은 빛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9월 말에는 에티오피아에 가야 한다. 그 때가 아니면 그리스도가 못 박혔던 참 십자가인 마스켈의 실재 여부를 확인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감옥에 갇혀 있는 그리넘을 면회해야 한다. 녀석의 입을 열어 비밀 집회가 열리는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래저래 바쁜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징키스칸의 무덤은 또 언제 확인하냐?’

아무리 황금 술병에 남은 잔류 기억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해당 지역 자체가 너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몽골에서 바이칼 호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샅샅이 뒤지고 다녀야 할 가능성이 컸다. 그건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두 달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 형편이다 보니 당장 결혼 얘기를 입에서 꺼낼 처지가 아니었다. 결혼하자마자 매일같이 신부를 독수공방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서연희의 생각은 달랐다.

“네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미술계하고는 무관한 일이냐?”

“아뇨. 대부분 이쪽 일이죠.”

“그럼 뭐가 문제냐? 서라 그 아가씨도 어차피 미술계에서 일하는 사람이잖아? 해야 할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하고 둘이 함께 다니면서 해도 되지 않아? 출장도 같이 다니면 문제가 없을 테고. 나도 네 아빠하고 처음 결혼했을 때 그렇게 했다.”

어? 그것도 괜찮겠는데? 고등학교 때 집을 떠나서 늘 대부분의 일을 직접 처리하다 보니까 어느새 혼자 일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도윤은 자신의 머리를 쳤다.

* * *

박은비 화백의 특별전이 무사히 열리자, 오광표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예전에 주겠다던 정보와 관련된 이야기일 거라고 직감한 도윤은 정중하게 약속을 뒤로 미루자고 부탁했다. 당장 지금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고 중국으로 넘어가는 게 급했기 때문이다. 결국 오광표와는 중국에 다녀온 뒤에 만나기로 했다.

전시회와 관련된 일이 대충 마무리 되자 도윤은 곧바로 최서라와 함께 북경으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그를 포함해 인원이 네 명으로 늘었다. 최서라는 어차피 함께 홍도관을 발견한 사람이니 동행하는 게 당연했고, 안석훈과 조민아는 각각 두 사람의 경호원 자격으로 따라왔다. 문제는 석훈이 도무지 도윤의 경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형도 앞으로는 가급적 형수님하고 함께 다니세요. 어차피 결혼할 사이인데다 하는 일도 같은 계통이잖아요. 이왕이면 지금부터 계속 다녀도 나쁠 것 없고. 안 그래요?”

도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원칙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녀석의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내가 일 때문에 여행 다니지 네 연애 사업 도와주려고 그런 줄 알아? 그런 말 하기 전에 네 옆에 좀 붙어 있지 그러냐? 조민아 씨 옆에서만 알짱거리지 말고. 하는 짓을 봐서는 네 월급을 현소가 아니라 청파에서 줘야 할 것 같다.”

이미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석훈은 도윤이 아니라 최서라,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민아의 곁에 찰싹 붙어 있었다. 조민아는 좀 덜했지만 석훈이 녀석은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고 연신 깨 방아를 찧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려니 싶기는 했지만, 가끔씩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는 괘씸하기도 했다.

네 사람은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미리 예약한 호텔로 직행했다. 석훈은 조민아와 한 방을 쓸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볼이 잔뜩 부었지만 그래도 경호원의 본분을 아주 망각한 것은 아닌지 대놓고 투덜거리지는 않았다. 아, 이 자식을 믿어도 정말 되는 걸까?

아리스 옥션의 경매는 그들이 도착한 이틀 후에 열렸다. 경매에 오를 작품을 미리 보여주는 프리뷰 전시는 입장 인원을 통제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실제 경매에 참여할 사람조차 일부는 신분을 확인해서 걸러내야 할 정도로 응찰 신청자가 많았다. 인터넷과 전화를 이용해 경매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의 수만 해도 엄청났다.

“시작가가 10억 위안인데도 이렇게까지 응찰 희망자가 많을 줄은 몰랐어요. 확실히 중국에 부자가 많기는 많은가 봐요.”

경매장에 앉아서 경매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던 최서라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윤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중국 언론에서 워낙 요란하게 떠들었기 때문일 거야. 서안과 상해, 북경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박물관에서도 응찰에 참여한다고 들었어. 심지어 대만의 국립 박물관에서도 응찰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있어. 중국 당국에서 커트한 모양이야.”

경매는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아리스 옥션 측에서도 홍도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에 걸맞은 뛰어난 작품들을 경매에 올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좋은 것은 비싸고, 비싼 것은 한꺼번에 많이 팔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번 경매에는 워낙 중국 내에서 내로라하는 큰손들이 대거 참여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옥션 측에서도 최대한 물량을 끌어 모은 것이다.

“다음은 로트 번호 23번. 홍도관입니다. 이미 나눠드린 도록과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고 계시겠지만 3천 년 전 은주 전쟁의 핵심적인 사건이 기록된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시작가는 10억 위안이고, 호가는 한 번에 천만 위안씩 올라갑니다.”

호가가 천만 위안이라는 것은 한 번 팻말을 들어 올릴 때마다 15억씩 액수가 올라간다는 뜻이다. 가히 역대급 경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매사의 경매 개시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여기저기서 미친 듯이 팻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화 응찰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연신 울려대는 전화기를 들어 올리느라 팔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20억 위안 나왔습니다. 지금부터는 호가가 한 번에 5천만 위안으로 올라갑니다.”

치열한 경매가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던 도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 정말 광기구나.

지금까지 경매를 통해 팔린 예술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한 것은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 즉 구세주라는 작품이다. 2017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무려 4억5030만 달러, 한화로는 약 50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에 낙찰되었다.

본래 ‘살바토르 문디’는 다빈치가 아닌 그의 제자가 그린 그림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1958년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단돈 60달러에 팔렸고, 2005년까지만 해도 고작 1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하지만 2011년, 이 그림이 새로운 감정 기법에 힘입어 진품으로 확인되면서 순식간에 가치가 뛰어올랐다.

2013년, 러시아의 부호이자 AS 모나코의 구단주이기도 한 드미트리 리볼로플레프는 ‘살바토르 문디’를 1억2750만달러, 한화로 1400억 원이 넘는 돈에 구입했다. 몇 년 뒤인 2017년, 그는 이 그림을 다시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다. 거기서 1억 달러가 조금 넘는 가격에 낙찰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역대 최고가를 갱신한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까지 가기는 힘들 거야. 30억 위안을 넘지는 못할 거 같아.’

도윤의 예상대로였다. 20억 위안이 넘어가면서 경매사의 호가에 응답하는 팻말의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더니 홍도관은 최종적으로 27억 5천만 위안에 낙찰되었다. 한화로 4600억 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였다. 비록 세계 최고는 아니더라도 중국 경매 역사의 최고가를 경신한 새로운 기록이었다. 경매사가 낙찰되었음을 알리는 방망이를 두드리는 순간, 경매장을 찾은 수많은 기자들이 일제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 박사 축하하네. 그리고 고맙다는 말도 해야 하겠군.”

경매가 끝난 뒤에 왕이푸 회장이 직접 그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서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동시에 전했다. 그의 감사는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 담긴 것이었다.

이번 일로 인해 아리스 옥션이 얻은 금전적 이득은 상당했다. 보통 경매 회사는 저가의 물품에 대해 20퍼센트 가량의 수수료를 뗀다. 하지만 낙찰가가 올라갈수록 수수료 비율이 낮아지는데, 왕이푸 회장은 홍도관에 대해 10퍼센트의 수수료를 매기기로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도관 하나로 5억 위안이 넘는 수수료를 받게 된 것이다.

도윤 자신은 5퍼센트의 중개료를 받기로 했으므로 대략 1억 4천만 위안, 한화로 23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챙겼다. 돈의 액수가 워낙 크다 보니 어지간한 그로서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아리스 옥션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금전적 이득보다 옥션 자체의 위상이 크게 올라간 게 더 컸다. 경매 회사의 위상은 얼마나 비싸고 좋은 작품을 많이 거래하느냐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 경매 역사의 새 장을 쓰게 된 덕분에 신생 경매 회사가 단숨에 중국에서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경매가 끝나고 수수료와 세금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자 도윤은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왕 회장은 이왕 온 김에 조금 더 있으라고 붙잡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했기 때문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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