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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87화 (187/300)

187화

일련의 소동이 모두 정리되자 가드너 관장이 재빨리 파티의 호스트 신분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비스를 맡은 직원들을 시켜 손님들에게 샴페인을 한 잔씩 돌리게 했다. 모든 사람들이 술잔을 손에 쥐자 그가 자신의 손에 든 샴페인 잔을 높이 지켜들었다.

“어떠셨습니까? 말씀드렸던 대로 즐거운 여흥이 되셨는지요? 방금 보신 것처럼 미술품 감정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긴장과 감동이 넘쳐흐르는 법입니다. 여러분도 그 스릴 넘치는 현장을 잠시 감상하는 귀한 기회를 만끽하셨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두 분의 감정가를 위해 건배합시다. 건배!”

관장은 자신의 술잔을 단숨에 비운 뒤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손님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이제 소소한 여흥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파티를 즐길 시간입니다. 아직 밤이 늦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마음껏 술과 음식을 즐겨주십시오.”

사람들은 조금 전에 미술관 측의 수석 감정사가 외부인인 도윤에게 박살나는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다. 확실히 스릴이 넘치기는 했지만 가드너 관장의 입장에서는 민망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자칫 어색하게 흐를 수도 있는 파티의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관장의 심정을 이해했고, 모두 웃으면서 흔쾌히 잔을 비웠다.

에밀이라는 그 감정사는 오늘부로 해고될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가드너 미술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질 테니 관장으로서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울러 그건 어쭙잖은 솜씨로 괜한 판을 벌인 자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기도 했다.

“도윤 씨를 이용해서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다가 오히려 도윤 씨의 이름값만 올려준 꼴이 됐네요. 하지만 불쌍하다고 말하기에는 태도가 너무 무례했어요. 쌤통이에요.”

최서라가 도윤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도윤은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에밀이 비참하게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파티는 다시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윤은 그때부터 밀려드는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두 사람을 찾아와 도윤의 실력과 최서라의 미모를 칭찬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나중에 꼭 한 번 따로 시간을 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개인 소장품을 감정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 사람이 건넨 명함이 문득 도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나스 에다 싱. 구글 딥 드림 개발 책임자 겸 부사장’

그는 명함을 건넨 뒤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남자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아나스 에다 싱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평소 구글 딥 드림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그곳에서 몇 년 전에 고흐의 화풍으로 광화문 풍경을 그렸던 일은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최근에는 어떤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도윤이 뜻밖에도 강한 관심을 보이자 싱이라는 남자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물론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저희는 과거 유명했던 모든 화가들의 화풍을 현대에 다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넥스트 렘브란트’가 렘브란트를 재현하는데 국한되어 있다면 저희는 그보다 훨씬 넓고 높은 곳을 바라고 보고 있는 셈이죠. 아, ‘넥스트 렘브란트’가 뭔지는 혹시 아십니까?”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리가 있나? 그건 딥 드림보다 일 년 앞서 미술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유명한 프로젝트였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렘브란트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인공지능에 장착된 카메라를 이용해서 기존의 렘브란트 그림들을 엄밀하게 분석한 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스타일의 특징을 찾아냈다. 그런 뒤에 같은 스타일이 적용된 새로운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다.

그 프로젝트에는 네덜란드의 수많은 렘브란트 연구자들과 화가,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참가했고 마이크로 소프트 등의 대기업도 나서서 후원했다. 그 결과 넥스트 렘브란트는 실제로 2016년도에 3D 프린터를 이용해 새로운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그려냈다. 당시 인공 지능이 그려낸 초상화는 생각보다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그보다 1년 뒤인 2017년, 이번에는 구글의 딥 드림이 고흐의 화풍을 본뜬 새로운 그림들을 그려내어 또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딥 드림은 당시 모두 29 점의 작품을 완성해서 경매를 통해 판매까지 했다. 낙찰 가격은 29점을 모두 합해 9만7000달러(약 1억1000만원)에 불과했지만, 당시 그 사건이 미술계에 던진 충격은 만만치 않았다.

“저희 딥 드림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기존의 화가들을 흉내 내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인공 지능을 이용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내려고 노력하는 중이지요. 만약 그 작업이 성공을 거두면 창작이라는 게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싱의 목소리에는 열기가 넘쳐흘렀다. 그럼 화가들은 모두 굶어죽겠군. 도윤은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반론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냥 쓰게 웃기만 했다. 그가 싱을 붙잡은 이유는 단순히 딥 드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이름이 다소 특이하네요. 혹시 인도 출신이신가요?”

그의 물음에 삼십대 후반의 피부가 가무잡잡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오기는 했지만 제 고향은 인도가 맞습니다. 인도 출신 중에는 저처럼 IT 계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흔합니다.”

“그렇군요. 사실 저는 평소 인도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곳이야 말로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곳이 아닙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한 번도 인도를 여행해 본 적이 없어요. 언젠가는 꼭 갈 생각인데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명소가 있습니까? 인도에 갔으면 이것만은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그런 곳 말입니다.”

도윤은 일부러 그와의 대화를 인도 중심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싱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모국을 소개하려 애썼고,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인도의 여러 명소와 전통을 거쳐 역사와 산업 분야로까지 넘어갔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 싶었을 때, 도윤이 스쳐지나가 듯이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런데 혹시 ‘데바 인스투르먼트’라는 회사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인도에서 무슨 인공지능과 관련된 반도체를 개발하는 회사라고 하던데 제가 컴퓨터에 대해서는 워낙 문외한이어서요. 싱 부사장님은 인도 출신인데다 인공지능 관련 회사에 다니시니까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에 신나게 인도에 대해 떠들던 싱이 잠시 멈칫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도윤의 눈치를 살피더니 약간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

“TPU를 개발하는 곳을 말씀하시는가 보군요. 나름대로 장래성이 있는 회사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박사께서는 그 이름을 어디서 들으셨나요?”

“아, 제가 아는 지인이 한국의 오성 전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듣자하니까 얼마 전에 그 회사에서 데바 인스트루먼트를 인수하려다가 포기했다더군요. 그 양반이 그 얘기를 하면서 몹시 아까워하던 생각이 나서 여쭤본 겁니다. 혹시 제가 곤란한 질문을 드린 건가요?”

도윤이 일부러 미안한 표정을 짓자 싱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천만에요. 거기도 공개된 상장 회사인데 이름 정도를 언급하는 것 가지고 무슨 곤란한 점이 있겠습니까? 다만 제가 듣기로는 당시 오성 전자의 인수 의지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정말로 인수할 생각이었다면 조금 더 세게 베팅을 했어야 됐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TPU라는 게 인공지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반도체라고 하던데 혹시 구글에서는 관심이 없나요? 구글도 인공 지능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싱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글쎄요. 투자와 관련해서 진행되는 일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보다는 언제 한 번 시간이 나시면 저희 딥 드림 본사에 들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싱은 억지로 화제를 돌리고 싶어 했다. 도윤 역시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고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 없지요.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저 같은 감정가를 회사로 초대하시는지……?”

“그야 당연히 감정을 부탁드리려는 거지요. 현재까지 저희가 개발한 프로그램의 수준으로 일반인들을 속이는 건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딥 드림이 그린 그림들이 이 박사 같은 전문 감정가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합니다. 기존 화가들을 완벽히 모방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그거라면 저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이번 연말 즈음에 다시 미국에 올 겁니다. 그때도 괜찮으시다면 연락을 주십시오. 기꺼이 들르겠습니다.”

구두 약속이기는 하지만 도윤의 허락을 받았다는 생각에 싱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 약속을 끝으로 싱은 자리를 떠났고, 계속해서 다른 손님들이 그를 찾았다.

도윤이 손이 부르트도록 악수를 하고 상대의 이름을 외우기를 반복한 끝에 간신히 숨을 돌리려는 찰나, 가드너 관장이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눈치를 보니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가 모두 끝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 게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이 박사. 아까 일은 정말 뭐라고 사과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윤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일은 이미 무사히 끝났고. 이제 와서 가드너 관장에게 에밀의 일을 따져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괜찮습니다. 작품을 감정하는 거야 늘 하는 일이니 특별히 번거로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관장님도 위작을 구입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된 일 아닙니까?”

가드너 관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이 진작으로 감정했던 피터르 데 호흐의 작품만 하더라도 비싼 것은 수백만 달러를 호가한다. 만약 그의 말만 믿고 네 점의 작품을 모두 구입했더라면 도윤에게 주었던 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헛되이 낭비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이 박사에게는 늘 신세만 지는 군요. 어떡하든 은혜를 갚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은혜라니요. 별 말씀을. 비행기 표까지 주면서 여기까지 초대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덕분에 평소에 만나기 힘든 분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습니다.”

도윤의 얘기에 가드너 관장은 더욱 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시카고 대학의 브렌트 교수에게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이 박사께서 뉴욕에서 젊은 화가 두 명을 후원하고 있다면서요? 그들을 위해 조만간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장소를 구하셨습니까?”

도윤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아직 못 구했습니다. 원래는 이번 연말에 데뷔 전을 열 생각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무명 화가들이다 보니 전시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거 잘 됐군요. 혹시 우리 가드너 미술관에서 그 전시회를 열면 어떻겠습니까? 마침 연말에 대관 일정이 두 주 정도 비어있는데 저희 미술관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당장 예약을 잡아두겠습니다.”

도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보스턴의 대표적인 미술관에서 신인 화가들의 데뷔전을 연다고? 그렇게만 된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정말입니까? 하지만 가드너 미술관은 신인들의 데뷔전을 열기에는 너무 거창한 장소입니다.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그러자 가드너 관장이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저희 미술관에서도 이따금 신진 화가들을 위한 전시회를 열기도 합니다. 미술관이야 본래 화가들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박사님이 추천하는 화가들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가드너 관장의 호의 덕분에 꽉 막혔던 일이 갑자기 시원스럽게 풀렸다. 관장은 즉석에서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서 대관 일정을 확인한 뒤 오윤수와 장은서를 위한 전시회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은 그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행히 대관 일정이 아직 비어 있다고 하는군요. 현재 대관을 신청한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모조리 거절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오늘은 이미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아무 때나 미술관에 들르시죠. 제가 미리 얘기를 해 둘 테니 저희 직원과 직접 대관과 관련된 구체적인 일정과 조건을 협의하시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오윤수와 장은서 두 사람이 크게 기뻐할 겁니다.”

“잘 됐군요. 이 박사께서 그렇게까지 기뻐하시니 제 마음 역시 흐뭇합니다.”

정말 잘 된 일이었다. 이로써 이번 미국행에서 생각했던 일들의 거의 대부분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도윤은 새삼 오늘 파티에 참석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파티가 끝난 뒤, 호텔로 돌아온 도윤은 곧바로 서울에 있는 노영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서울은 점심시간이었는지 노 변호사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에 말씀드린 인도의 데바 인스트루먼트 투자 건 말이에요. 그 회사에 대해 좀 알아보셨어요? 정말 투자하기에 괜찮은 곳 같던가요?”

도윤의 물음에 노영태는 핵심적인 사항만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고했다. 결론적으로 회사 자체가 개발 중인 기술은 거의 완성되었지만 심각한 자금 부족이 문제라는 얘기였다.

“현 경영진은 외부에서 돈을 끌어들이는 대신 그것을 주식으로 전환시켜주는 출자 전환의 형식의 투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접촉한 회사들이 모두 인수를 전제로 한 협상을 원하고 있어서 일이 진척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직은 버티고 있는 모양인데 길어야 두 달이 한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 버티면 회사가 부도날 겁니다.”

“오광표 전무가 얘기했던 것과 비슷하네요. 데바에서 원하는 투자액이 모두 얼마인데요?”

“1억 5천만 달러입니다. 그걸 저들이 원하는 대로 모두 주식으로 전환시키면 현재 이미 발행된 주식과 합쳤을 때 약 45퍼센트의 지분을 획득하게 됩니다.”

“상당한 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영권은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이군요.”

“네. 자신들이 확보한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돈이죠.”

도윤은 조금 전 싱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노영태는 구글이 실제로 데바 인스트루먼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도윤은 노영태에게 인도로 날아가서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경영진을 만나볼 것을 지시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회사 분위기도 살펴보세요. 그런 다음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들면 그들이 원하는 조건대로 투자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세요. 길게 잡아도 한 달 이내에는 의사 결정을 하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고 일을 진행시키겠습니다.”

노영태와의 통화를 마친 도윤은 다시 오윤수와 장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말에 가드너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입니까? 정말 가드너 미술관에서 저희들에게 전시장을 빌려준대요? 혹시 이름만 비슷한 다른 곳을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가드너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화가라면 누구나 이름을 알 수 있는 전통 있는 대형 미술관이었다. 오윤수는 도윤이 설마 그런 일을 가지고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쉽게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일 미술관에 들러서 전시회 일정을 확정할 거야. 자세한 건 뉴욕으로 돌아가서 얘기하겠지만 일단 연말에 두 주 가량 너희 둘을 위한 전시회를 열 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그렇게들 알고 각오 단단히 하고 있어.”

열심히 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림이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번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내년에는 반드시 오윤수와 장은서, 그리고 오주현을 위한 재단을 설립할 생각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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