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대영박물관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은 도윤과 최서라가 나이트와 워더를 맡긴 지 닷새 만이었다. 도윤은 이번 일의 처리를 최서라에게 일임했고, 던컨 스콧에게도 그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정작 전화를 건 사람은 스콧이 아니었다.
“대영 박물관의 학예실장인 레베카 리엄이라고 합니다. 최서라 박사님이시죠?”
리엄 실장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조리 있고 간단하게 지난 닷새 동안 진행되었던 일을 설명했다.
“일단 두 분이 맡겨주신 나이트와 워더는 진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몇 가지 결정된 사항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경청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에든버러에 있는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과 협의를 끝냈습니다. 내부적으로 복잡한 의견이 오가기는 했지만 일단 두 박물관의 루이스 체스맨 기물들을 모두 모아서 새롭게 두 세트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자리에 최 박사님과 이 박사님도 직접 참여해서 세트를 조합하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 조건을 수락하시면 저희가 가진 나이트와 워더를 대영박물관에 파는 걸 긍정적으로 고려하기로 했어요.”
“다소 특이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양쪽 학예실 모두 그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사실 에든버러에서 체스맨 세트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내일 오전에 양쪽 박물관의 학예 연구원들이 모여서 세트 조합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일 오전 10시까지 저희 박물관으로 오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어디로 가면 되죠?”
“박물관 입구에 도착해서 데스크에 얘기를 하면 저희 연구원 가운데 한 명이 마중을 나갈 겁니다. 아참, 그리고 나이트와 워더의 대략적인 희망 가격을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그 얘기는 내일 직접 만나 뵌 다음에 얘기했으면 하는데요. 이왕이면 박물관 쪽에서 먼저 생각해 둔 가격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쪽의 제안을 먼저 듣고 가격이 적절하다 싶으면 곧바로 넘겨드릴 수 있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매입 가격에서는 대해 저희가 따로 논의를 해 보죠.”
리엄 과의 통화를 끝낸 최서라가 도윤을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려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손뼉을 마주치며 하이 파이브를 했다.
박물관 쪽에서 아주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나이트와 워더를 넘기기로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내일 있을 체스맨 세트의 조합이었다. 현재로서는 원래의 체스맨 세트를 모두 모았을 때 과연 어떤 능력이 나타날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 * *
다음날 오전, 두 사람은 마중 나온 연구원을 따라 학예실 전용의 넓은 연구실에 들어섰다. 그 자리에는 이미 대영박물관과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 소속 연구원들 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연구실 중앙의 커다란 테이블 위에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루이스 체스맨 기물들을 올려놓고 한창 뭔가를 논의하는 중이었다.
“어제 저와 통화하셨죠? 대영박물관 학예실장 레베카 리엄이에요.”
“스코틀랜드 국립 박물관의 학예실장 스티븐 맥그리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양쪽 학예실장들이 제일 먼저 두 사람을 반겨주었다. 리엄 실장은 약간 작은 키에 전형적인 학자의 느낌을 주는 여자였는데, 그에 반해 맥그리거 실장은 190cm가 넘어 보일 정도의 큰 키에 건장한 체구를 지녔다. 만약 학예실장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전직 운동선수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정도였다.
도윤과 최서라를 바라보는 연구원들의 얼굴에서 한눈에 봐도 떨떠름함이 묻어나왔다. 외부인이 자신들의 작업에 끼어드는 것을 썩 반기지 않는 게 분명했다. 리엄 실장 역시 덤덤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맞이했지만 다행히 맥그리거 실장은 도윤에게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는 도윤과 악수를 나누자마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리엄 실장에게서 얘기 들었습니다. 체스맨 세트 조립에 직접 참여하기를 원하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번거로움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두 분이 서로 다른 루이스 체스맨 세트들을 어떻게 구분할지 궁금합니다. 이 박사는 유럽 회화와 중국 도자기에 대해 두루 해박하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국의 공예품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힌 겁니까? 그 열정이 부럽습니다.”
“저보다는 함께 온 최 박사가 평소 유럽 공예품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런던에 있을 때 따로 금속 공예를 배우기도 했고요. 제 경우에는 그저 옆에서 기웃거리는 정도죠.”
그러자 맥그리거의 시선이 최서라에게 돌아갔다.
“이런 미인께서 금속 공예를 배우셨다니 만드신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 안 갑니다. 소더비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셨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금속공예를 배우셨나요?”
최서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소더비에서는 예술 경영학을 공부했어요. 금속 공예는 원래 취미로 시작했는데, 지도교수님 추천으로 듀란 상점의 아이작 듀란 사장님으로부터 잠깐 기술을 배울 기회가 있었을 뿐이에요. 배움이 짧아서 남에게 자랑할 수준은 아니에요.”
그녀는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의 금속 공예 기술에 쏠리자 몹시 민망해 했다. 그러나 그녀가 무심코 내뱉은 아이작 듀란이라는 이름은 맥그리거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리엄 실장의 눈마저 크게 뜨게 했다. 최서라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던 그녀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최 박사께서 아이작 듀란에게서 직접 공예 기술을 배웠다는 말인가요?”
“네. 그 분이 직접 가르쳐주시기는 했어요. 하지만 고작 일 년 정도밖에 배우지 못해서 제대로 기술을 익히지는 못했어요. 살짝 맛만 본 정도에 불과해요.”
“호오. 그 고집쟁이 영감님이 최 박사를 제자로 받아들였단 말이지요?”
“아니. 제자라고 하기는 곤란해요. 말씀드렸듯이 취미로 익힌 정도라서…….”
“아이작 듀란이 아무에게나 함부로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건 이 바닥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에요. 그 양반이 무려 일 년이나 최 박사를 자기 공방에 드나들게 했다는 건 그만큼 재능을 인정했다는 뜻이지요. 말씀을 듣고 나니까 정말 체스맨 세트를 어떻게 조립하실지 저도 궁금해지는군요. 이리로 오시겠어요?”
리엄 실장은 직접 최서라의 손을 잡고 체스맨 기물들이 놓여있는 테이블로 인도했다. 그녀 역시 비록 나이트와 워더를 매입하기 위해 두 사람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내심 외부인이 박물관의 일에 끼어드는 걸 썩 내켜하지는 않았다. 그랬던 그녀의 태도가 아이작 듀란이라는 한 마디에 확연히 바뀌었다.
리엄 실장은 최서라를 테이블 옆의 의자에 앉힌 뒤 처음으로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듀란 씨는 영국에 몇 명 남지 않은 진정한 장인이에요. 그 분이 인정할 정도의 재능이라면 체스맨의 기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내는 안목을 기대해 볼 만 해요. 마음 편히 가지고 한 번 시도를 해 보세요.”
최서라는 갑자기 친절해진 리엄 실장의 태도에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 마음을 가라앉히게 한 뒤 옆 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러자 맥그리거 실장도 도윤의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저도 그렇지만 리엄 실장은 평소에 듀란 씨를 무척 존경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나니 저도 새삼 최 박사의 안목이 궁금해지는군요. 부디 솜씨를 보여주십시오.”
도윤은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연히 잘 해야지. 저렇게 기물들에서 붉은 빛이 환하게 쏟아져 나오는데 잘 못할 수가 있겠어? 게다가 지금 기물들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허공을 가로질러 하나같이 최서라의 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루이스 체스맨 세트에 담긴 능력의 주인이라는 뜻이었다.
* * *
본래 처음 나이트와 워더를 발견했을 때부터 도윤은 최서라가 혹시 루이스 체스맨의 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두 개의 기물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어렴풋이 그녀에게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빛 자체가 워낙 희미해서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녀에게도 지금까지 그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른 두개의 체스 말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각각의 기물들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서로 어우러지며 각자 떨어져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선명한 붉은 빛을 형성했다. 그 빛이 곧장 최서라에게 이어지고 있었으니 이제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파베르제의 달걀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녀는 공예품과 인연이 많은 것 같았다.
도윤은 최서라의 어깨를 톡톡 친 뒤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그를 쳐다봤다. 정말이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도윤은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인 뒤 다시금 그녀의 귀에 대고 다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잠시 후 그녀가 입술을 꼭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때 리엄 실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 연구원들도 어제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든 루이스 체스맨을 봤습니다. 그래서 아직 각 체스 세트들에서 나타나는 양식의 특징이나 차이를 규정짓지 못했습니다. 우리 연구원들이 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최 박사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리엄 실장은 최서라에게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하나의 세트를 조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최서라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시한 뒤 테이블 위에 놓인 기물들을 세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체스의 말들은 흑과 백 양쪽을 합해 32개로 이루어진다. 도윤과 최서라가 나이트와 워더 한 개씩을 더하면서 루이스 체스맨은 두 개의 완전한 세트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기물의 짝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그렇게 맞춘 짝들이 본래의 세트였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물론 도윤에게는 한 세트에 한해서 그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혹시나 했는데 능력을 담은 기물 세트 전체가 빠짐없이 모였어. 정말 운이 좋군.’
그는 발견된 모든 루이스 체스맨을 모아도 능력을 담은 기물 가운데 일부가 여전히 빠져 있을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테이블에 기물들을 모아놓자 붉은 빛을 내는 서른 두개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기물들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기 때문에, 도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당장이라도 한 세트의 체스맨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나서지 않고 최서라가 자기 나름대로 기물들을 분류하기를 기다렸다. 그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일종의 경험이고 공부였기 때문이다. 최서라는 완전히 몰입된 상태에서 자신의 앞에 놓인 기물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본래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깎아서 만든 공예품의 경우, 아무리 같은 사람이 만들었더라도 작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기물들은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제작 연도가 조금씩 달랐다. 그 때문에 미세하기는 하지만 각 세트마다 조금씩 공통된 차이가 존재했다.
최서라는 한참 동안 기물들을 하나하나 들어서 살펴보더니 이윽고 전체를 세 부류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고 있던 리암 실장이 넌지시 부탁했다.
“뭔가 기준점을 잡으신 것 같은데, 그렇게 말없이 작업만 하지 말고 저희에게도 설명을 해주실래요? 그럼 나중에 우리 연구원들이 작업할 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최서라가 고개를 들더니 약간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리암 실장은 물론이고 맥그리거마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자 결국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아시다시피 루이스 체스맨 세트는 모두 바다코끼리의 상아를 깎아서 만든 거예요. 하지만 제작 연도가 달라서 그런지 각각의 세트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상아로 제작됐어요. 그 때문에 전체 기물들 가운데 색깔이 미묘하게 다른 무리들이 존재해요.”
“하지만 바다코끼리 한 마리의 상아로는 한 세트의 기물을 모두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세트라도 색깔이 모두 같지는 않을 텐데요? 그럴 경우 조각의 색깔만으로는 서른두 개 한 세트를 모두 추려낼 수 없지 않나요?”
한 연구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사실 그 연구원의 이의는 그나마 점잖은 것이었다. 최서라의 말처럼 세트마다 상아의 색깔이 다르다고는 해도 그 차이가 워낙 미세했다. 눈썰미가 여간 뛰어나지 않고서는 직업 화가라고 하더라도 자신 있게 같은 상아 색깔의 차이를 짚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최서라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그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맞아요. 그래서 각 기물에 사용된 조각 방법과 전체적인 모양에서 드러나는 일관성도 따져야 해요. 제 생각에 이 체스맨 세트는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거예요. 아니면 같은 공방에서 제작되었거나. 각 세트를 관통하는 기법의 일관성이 엿보이거든요. 다만 숙련도에 있어서는 각 세트마다 조금씩 수준 차이가 있어요.”
그녀는 자신이 세 부류로 나눈 체스 기물들 가운데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여기 맨 왼쪽에 것들을 만든 솜씨가 가장 조악해요. 조각칼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상아가 너무 깊이 깎인 부분이 여러 군데서 보이거든요. 게다가 여기를 보세요. 금이 살짝 가 있죠? 이쪽에는 일부가 아예 떨어져갔어요. 이 부분 역시 처음 만들 때부터 금이 가 있었을 가능성이 커요. 조각가가 숙련공이 아니었다는 뜻이죠.”
최서라는 이어서 가운데와 오른쪽으로 구분한 기물들에서 나타나는 조각의 기법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도윤이 보기에도 가장 나중에 언급된 것의 절단면이 가장 섬세하고 매끈했다. 한 사람의 실력이 조각을 거듭하면서 발전했거나, 최소한 같은 공방에서 숙련도가 서로 다른 세 명의 장인들이 각각의 체스맨 세트들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게 기물들을 셋으로 구분한 기준이에요.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설명을 모두 마친 최서라가 연구실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봤다. 연구원들은 선뜻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리엄 실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설명은 잘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설명이었어요. 그럼 지금까지 말씀하신 바에 따라서 한 번 세트 하나를 구성해 보실래요?”
고개를 끄덕인 최서라가 즉석에서 하나의 세트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도윤은 대체로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다만 가끔씩 짧게 한 마디씩 뱉으면서 그녀가 능력을 지닌 기물들을 모두 하나로 모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건가? 내 생각에는 비숍은 저기 있는 게 더 비슷한 거 같은데?”
최서라는 이미 들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도윤이 얘기를 할 때마다 계속 세트 구성을 바꿨다. 마침내 그녀가 환한 붉은 빛을 뿜어내는 서른 두개의 기물 한 세트를 모두 모았다.
“끝났나요? 그게 최 박사가 선택한 한 세트인가요? 확실히 일관성이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맥그리거 실장님이 보기에는 어때요?”
리엄 실장이 지금까지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던 맥그리거의 의견을 물었다.
“글쎄요? 내 생각에는…….”
맥그리거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도윤이 손가락으로 슬쩍 최서라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머리를 짚더니 비틀거렸다. 도윤이 아까 미리 귓속말을 해서 얘기한 대로 연극을 한 것이다. 그녀가 비틀거리자 도윤은 일부러 남들이 보란듯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어지러워? 너무 무리한 거 아냐?”
도윤은 그녀를 부축하는 척 하면서 재빨리 한 손을 테이블 위에 얹었다. 그가 정신을 집중시키자 기물에서 쏟아져 나오던 붉은 빛이 곧바로 최서라와 연결되었다. 그 빛들은 잠시 동안 눈에 띄게 강렬해지더니 한꺼번에 그녀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최서라는 진짜로 정신을 잃고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