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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93화 (193/300)

193화

벵갈루루에 도착한 지 일주일 째 되던 날 저녁, 노영태와 오광표는 머리를 맞대고 마주 앉았다. 내일부터 데바 인스투르먼트에 대한 투자 여부를 놓고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두 사람은 데바 인스투르먼트 측에서 제공한 서류들을 꼼꼼히 검토했고, 연구실과 사무실도 여러 차례 둘러보았다. 많은 직원들을 면담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에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결론을 내리고 협상에서 제시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할 때였다.

“자료를 살펴보니까 어떻던가요? 데바 인스트루먼트가 정말로 획기적인 새 TPU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까?”

노영태의 질문에 오광표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왜 그러세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까? 그런 게 있으면 정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

그가 거듭 재촉하자 오광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데바에서 개발 중인 TPU는 CPU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 관련 연산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게 핵심적인 장점입니다. 구체적인 이론이나 회로 설계 방식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시제품에 대한 테스트 결과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뜻이지요.”

“어느 정도라고요? 완벽하지는 않다는 말입니까?”

“테스트 결과만 보면 현재의 성능으로도 기존의 TPU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뿐이라면 굳이 데바 인스트루먼트에 투자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만한 성과를 낸 회사는 다른데도 있으니까요.”

“그럼 어느 정도의 연산 속도가 나와야 투자 가치가 있는 겁니까?”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그동안 다른 TPU 제조사들을 괴롭혀왔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됐다면 시제품의 속도가 현재의 테스트 결과보다 최소한 10배 이상 빠르게 나왔어야 합니다.”

“그럼 데바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노영태의 목소리에 우려의 기색이 섞였다. 그러나 오광표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건 아닐 겁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면 아예 시제품 테스트 결과를 조작했을 테니까요. 아마 칩의 정밀도를 7나노까지 낮추고 코어의 컨트롤러를 개선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데바의 주장 역시 그렇고요. 하지만 그거야 말 그대로 결과가 나와 봐야 정확한 걸 알 수 있는 일이죠.”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컨트롤로 개선은 차차 한다고 쳐도 제조 공정을 더 미세하게 구현하는 건 지금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시제품이라고 해도 그렇게 미세한 공정으로 칩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몇 군데 되지 않으니까요. 반도체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도 7나노 공정의 반도체 제작이 가능한 곳은 오성전자와 미래전자밖에 없습니다.”

“그럼 오성이나 미래에 시제품 제작을 의뢰해야 되는 겁니까?”

노영태의 말에 오광표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곤란합니다. 기술 유출의 우려가 있으니까요. 두 회사 모두 반도체 설계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쪽에 회로 설계도를 넘기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결국 나중에는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그건 시제품 테스트가 거의 완료되고 특허 출원이 끝난 다음에나 가능할 겁니다.”

“그럼 현재 수준으로는 이 테스트 결과가 긍정적이라는 뜻입니까?”

노영태의 질문에 오광표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데바 측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면 지금까지 제작된 시제품이라고 할지라도 테스트 결과보다는 2배 이상의 속도가 나왔어야 합니다. 속도가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남아 있다는 뜻이죠. 게다가…….”

오광표는 거기서 다시 한 번 테스트 자료를 들여다보더니 한 항목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를 보십시오. 가장 이상한 게 이 부분입니다. 칩의 온도가 너무 낮아요.”

노영태는 그의 말에 따라 테스트 자료를 들여다보았다. 오광표가 짚은 곳은 데바가 제작한 시제품 TPU가 작동할 때의 온도를 측정한 데이터였다. 모두 상온 환경에서 50도를 넘지 않고 있었는데, 문외한인 그로서는 도대체 그게 왜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왜 이상한 겁니까? 온도가 너무 높은 건가요? 아니면 너무 낮은 겁니까? 제가 볼 때 처음에는 조금씩 높아지다가 50도 정도에서 별로 변화지 않는 것 같은데요?”

“너무 낮은 겁니다. 사실 연구실을 방문해서 처음 시제품 시연을 보았을 때 제가 가장 놀랐던 건 TPU에 쿨러, 그러니까 냉각장치가 달려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 테스트를 해야 하니까 편의를 위해 일부러 쿨러를 달지 않은 건가하고 생각했는데, 이 결과를 보니 아예 쿨러를 달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나쁜 겁니까?”

“아주 좋은 겁니다. CPU와 GPU, 메모리 등 거의 모든 반도체에서 항상 가장 골치 아픈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발열 문제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벌써 데바 측 연구원들에게 여러 차례 질문을 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뾰족한 답변을 주지 않더군요.”

“그들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데바가 오성과 투자할 때도 시제품 테스트 결과 데이터를 본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이렇게까지 발열이 낮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 회로 설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새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데바 측이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 한 투자를 결정하는 건 이릅니다.”

노영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가 지금까지 살펴본 데바 측의 회계 장부에서는 특별히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자금난이 심각하기는 했지만 그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고, 적어도 횡령이나 배임의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결국 관건은 새로 1억 5천만 달러 정도의 자금이 투입되었을 때 이들이 성공적으로 TPU 개발을 완료해서 제품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 판단을 오광표가 해줘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 보였다.

* * *

다음날 오전 아홉시부터 시작된 투자 협상은 오전 내내 난황을 겪었다. 오광표는 어제 얘기했던 대로 TPU 테스트 결과에서 칩의 온도가 너무 낮게 나온 것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데바 인스트루먼트 측에서는 계속해서 모호한 답변만을 반복하며 얼버무리려고 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웠을 때, 결국 참지 못한 노영태 변호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리가 회로 설계도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협상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통상적이지 않은 테스트 결과에 대해서만큼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셔야 될 거 아닙니까? 이 상태로 협상을 진행하는 건 무리입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죠. 오후에는 칩의 발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의를 멈춘 노영태와 오광표는 일부러 데바 인스트루먼트 건물을 나가 밖에서 식사했다. 오광표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데바가 오후에는 발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할까요?”

그는 비록 오성 전자의 임원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연구소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과거 오성과 데바 인스트루먼트 사이에 인수에 관한 논의가 오갔을 때에도 그는 오로지 자료 검토만 했을 뿐 협상에 직접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가 혹시 협상이 깨지지 않을까 싶어 걱정하는 것을 본 노영태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대로 된 답변이 없으면 더 이상의 협상도 없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시간을 날린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자칫 큰 손해로 이어질 수도 있는 투자를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지요. 지금까지 보여준 저들의 태도에는 신뢰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가 아니죠. 그래서 오후에는 우리 측 조건을 몇 개 추가할 생각입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오후의 협상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행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회의실에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사장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협상 테이블에 한 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다.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사장 니슈 골루이입니다. 오전 회의에서 저희 임원들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제가 직접 말씀을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참석했습니다.”

나쁘지 않군. 오광표는 회의가 재개되자마자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오전 내내 양 측을 괴롭힌 문제는 간단합니다. 데바에서 제작한 시제품의 발열이 왜 그렇게 작은 겁니까? 만약 그 문제에 대해 정확히 대답해주지 않으면 저희는 데바 측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에 골루이 사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미 결심을 하고 왔는지 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오광표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희도 왜 그렇게 칩의 발열이 작은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높은 온도가 나와야 정상입니다.”

오광표는 순간적으로 이 사람이 지금 농담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른다고요? 짐작이 가는 부분도 없습니까?”

“짐작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종의 펠티어 효과가 발생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펠티어 효과라고요? 하지만 그건 TPU나 CPU처럼 연산 처리 장치에서 발생할 수 있는 효과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것 외에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오광표는 잠시 골루이 사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TPU에서 펠티어 효과가 발생했다고? 그게 말이 돼? 하지만 아무리 봐도 사장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펠티어 효과는 다른 말로 열전냉각 효과라고도 한다. n형과 p형처럼 서로 다른 전자 밀집도를 지닌 반도체에 직류 전기를 흘리면 열이 한쪽으로 강제 이동하는데, 이 때문에 한쪽은 차가워지고, 다른 쪽은 뜨거워진다. 이 현상을 이용해서 냉매가 없이 전자 소자들로만 이루어진 소형 냉장고나 냉수용 정수기 등을 만들기도 한다.

펠티어 효과를 이용한 냉각 장치는 온도를 상당히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기가 많이 들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동시에 갖는다. 한때 인텔에서도 컴퓨터 CPU에 이 효과를 이용한 냉각장치를 쓴 적이 있지만 온도가 너무 많이 내려가 컴퓨터 내부에 이슬이 맺히는 결로 현상이 생기는 바람에 포기한 적이 있다.

“잠깐만요. 펠티어 효과라면 차가워지는 부분이 있는 만큼 뜨거워지는 부분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럼 어차피 그 부분을 식혀주기 위한 냉각장치는 필요할 텐데요?”

오광표의 반론에 골루이 사장이 다시 한 번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저희도 짐작만 할 뿐 단정을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저희가 만든 TPU 시제품의 경우에는 온도가 상온 이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50도 이상으로도 올라가지도 않죠. 말하자면 굉장히 미약한 펠티어 효과가 발생하는 셈인데 그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저희도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오광표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다시 정색을 하고 물었다.

“대신 결로 현상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네. 칩의 온도가 상온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으니까요.”

“만약 귀사의 칩을 얘기하신 대로 7나노 공정으로 제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럼 온도가 상온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설계적인 측면에서 더 보완해야 할 점이 있기 때문에 당장은 7나노 공정의 시제품을 만들지 않을 생각입니다. 빨라도 올해 말이나 제작이 가능하겠지요. 그보다는 지금 수준의 시제품을 몇 번 더 만들어서 테스트하면 낮은 발열의 원인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명확한 게 없다는 뜻이군요.”

“아쉽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말을 하면서 골루이 사장은 눈을 꽉 감았다. 그 역시 자신의 대답이 오늘의 협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그때부터 오광표는 입을 다물고 노영태가 본격적으로 협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데바 인스트루먼트가 정확히 원하는 투자 금액의 세부적인 항목을 따지면서 액수를 조절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날은 양쪽 모두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온 뒤, 오광표는 컴퓨터를 통해 여러 자료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밤새 무언가를 고민했다. 다음날 아침, 그가 노영태의 방문을 두드렸다. 밤새 잠을 자지 못했는지 눈이 벌게진 그는 아직 잠이 덜 깬 노영태에게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이 박사가 현재 동원 가능한 자금이 얼마나 됩니까?”

노영태는 그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다. 그는 일단 오광표를 방으로 들어오게 한 뒤 세수부터 했다. 어느 정도 정신을 가다듬은 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글쎄요. 데바가 원하는 1억 5천만 달러는 일주일 정도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돈을 모두 허공에 날리면 이 박사가 어떤 타격을 입게 됩니까?”

노영태는 잠시 오광표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건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이군요. 보통 사람이라면 원화로 1억 5천만을 날리는 것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겠죠. 하지만 이 박사라면 그 돈이 없어진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까? 물론 몹시 아깝기는 하겠지만요.”

도윤은 에스코바르의 동굴에서 1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를 얻었다. 그걸 여러 개의 투자 회사를 통해 다양한 회사의 주식으로 분산시켜 놓은 상태였다. 대부분 그가 아니라 투자 회사의 이름으로 소유한 것들이었지만 비에코 주식만큼은 본인 명의였다. 오광표는 노영태의 태연한 대답에 적지 않게 놀랐다.

“이 박사가 그렇게까지 돈이 많습니까? 도대체 그 젊은 사람이 얼마나 부자인 겁니까?”

“그 질문은 고객의 비밀이라서 제가 대답을 드릴 수 없을 것 같군요. 하지만 적어도 그 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서 데바에 투자하지는 않을 겁니다.”

노영태의 대답을 들은 오광표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생각했다. 한참 동안 시간을 끌던 그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 이 투자 건은 성사시키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럴 경우 투자금 대신 받은 주식이 휴지 조각으로 변할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시겠습니까?”

“위험성은 있지만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는 뜻이군요. 성공할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리스크를 떠안을 가치가 있을 만큼 이익이 클 수도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판단에 따르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이익의 규모가 훨씬 키질 가능성이 큽니다.”

노영태는 잠시 망설였다. 오광표는 밤을 새면서 고민한 끝에 자신의 견해를 내놓았다. 이제는 그와 도윤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그는 시간을 확인한 다음 영국에 있는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은 도윤의 대답은 간단했다.

“투자하세요.”

“쉽게 결정할 게 아닙니다. 돈을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알아요. 하지만 노 변호사님은 재정적으로 투자할 만한 회사라고 판단하셨고, 오 전무님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같은 생각이라는 거잖아요. 저는 애초부터 그 회사에 돈을 넣을 생각으로 두 분을 보낸 겁니다. 세 사람의 생각이 모두 일치한다면 역시 투자하는 게 맞겠죠. 그래서 실패한다면 그건 우리 셋 모두가 판단력이 나쁘거나 운이 없는 겁니다.”

결국 그날 오후에 재개된 회의는 첫날보다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광표와 노영태느 새로운 조건을 몇 개 추가했고, 그 때문에 이번에는 데바 측에서 난색을 표시했다.

“우리가 선택한 사람이 각각 회계 분야와 기술 개발 분야의 이사로 데바 인스트루먼트에서 근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두 사람에게는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야 하고요. 만약 그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번 투자 건은 포기하겠습니다.”

노영태는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회의는 며칠 동안 계속 이어지면서 어렵게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 휴가를 다 쓴 오광표는 중간에 귀국해야 했다. 그 뒤로는 노영태 혼자의 고군분투였다.

며칠간의 지루한 협상 끝에 데바는 결국 그가 내건 조건을 모두 수용했다. 일단 협상이 끝나자 빠르게 계약이 진행되었다. 노영태는 여전히 영국에 있는 도윤의 법적 대리인으로서 모든 서류에 사인했고, 그 결과 도윤은 데바 인스트루먼트 지분의 45%를 가진 대주주가 되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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