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32. 전시회>
11월 중순에 되었을 때, 오윤수와 장은서는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한 작품들을 모두 완성했다. 도윤은 가드너 미술관과 두 사람의 작품 백여 점을 전시하기로 약속했다. 그 안에서 각자 어느 정도의 작품을 출품할지는 오윤수와 장은서가 협의해야 할 문제였다. 전시회를 보름 정도 앞 둔 상태에서 오윤수는 60점, 장은서는 40점의 작품을 내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완성한 작품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았다. 그들의 작업실에는 백 점이나 되는 작품을 모두 걸어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부는 소파에 올려두었고, 심지어 바닥에 내려진 채로 벽에 비스듬히 기대놓은 것들도 많았다.
“정말 이걸 사람들 앞에 내놓아도 될까요? 저는 생각만 해도 너무 떨려요.”
장은서가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오윤수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떨리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자신감을 가져. 세계 최고의 감정가가 우리를 인정했잖아. 아마 눈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우리 작품을 알아볼 거야.”
“하지만 이 박사님은 감정가지 평론가가 아니잖아요. 전시 장소가 가드너 미술관이면 꽤 유명한 미술 평론가들도 올 텐데 그 사람들이 나중에 형편없다고 욕을 하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그럼 우리도 그 사람들 눈이 동태 눈깔이라고 욕하면 되지.”
“뭐예요, 그게?”
장은서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들이 평론가를 욕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막상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긴장이 조금 풀리기는 했다. 오윤수가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고흐는 죽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잖아. 이번 전시회에서 설사 혹평만 듣는다고 해도 기죽을 것 없어. 적어도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은 우리를 인정해줬으니까. 당장은 욕을 먹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사람들이 알아줄 거야. 혹시 알아?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두 명의 천재가 한때 뉴욕에서 생활했다는 얘기들을 하게 될지.”
오윤수의 말은 사실 많은 무명 화가들이 걸핏하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천재적인 화가가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비로소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되는 경우는 생각만큼 흔한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천재들은 생전에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고흐와 같은 경우는 오히려 미술사 전체에서 볼 때 드문 일이었다.
르세상스 시대 때까지만 하더라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들은 생전에 교회와 귀족들의 인정을 받았다. 당시의 화가들이 남긴 명작들은 대부분 주문 제작 방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생전에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작품을 남길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20세기 초에 들어와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당시에는 귀족이나 사제들이 아니라 전문 미술상들이 직접 나서서 가능성이 있는 작품들을 발굴했다. 그들이 전시회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것이다. 덕분에 창의적이고 재주 있는 화가들은 한창 활동을 하는 시기에 이미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피카소와 달리, 워홀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고흐 같은 경우는 오히려 미술 사조가 급격하게 변하는 와중에서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 같은 것이었다. 미술상들의 활동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미술 사조를 개척해 나가는 젊은 화가들은 배를 곯는 경우가 많았다. 기존의 사조에 젖어 있는 구매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기회가 처음부터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파리의 오르셰 미술관에 가면 조각상들이 여기저기 서 있는 일 층의 중앙 전시실을 사이에 두고 과거 살롱 전에서 입상한 작품과 낙선한 작품들이 양쪽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관객들이 자신의 눈으로 당시의 평가 결과를 직접 보고 판단해보라는 뜻이다.
두 사람이 기대와 걱정이 섞인 눈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작업실 문을 열고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같은 건물에서 또 다른 작업실을 갖고 있는 제라드라는 흑인 조각가였다. 그는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작품들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다 뭐야? 두 사람 모두 이제 화가를 때려치우기로 했어?”
작업실 여기저기에 그림들이 마치 당장이라도 내다버릴 것처럼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본 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해서 오윤수와 장은서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윤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평생 하기로 한 일을 왜 벌써 때려치워? 그게 아니라 다음 달에 우리 둘이 합동으로 전시회를 열기로 했어. 오늘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와서 그림을 가져가기로 했거든. 그래서 한 자리에 모아둔 거야.”
“두 사람이 합동 전시회를 연다고? 그런 놀라운 소식을 왜 이제야 얘기하는 거야?”
“아, 미안해. 전시회 전까지 끝내야 할 작품들이 몇 점 있어서 그동안 정신이 없었거든.”
“아무튼 그럼 좋은 소식이네? 어디서 전시회를 하는데.”
“보스턴에 있는 가드너 미술관 알지? 거기서 전시회를 열거야.”
제라드의 입이 떡 벌어졌다.
“가드너 미술관이라고? 정말 보스턴에 있는 그 가드너 미술관을 말하는 거야? 이름만 비슷한 다른 곳이 아니라?”
“거기가 맞아. 우리 후원자께서 가드너 미술관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아놨어. 다음 달 10일에 시작하니까 혹시 시간되면 보러 올래? 보스톤은 너무 멀어서 힘들까?”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가야지. 다른 곳도 아니고 가드너 미술관이라면 완전히 정식으로 데뷔를 하는 거잖아. 그럼 전시회 장소가 보스턴이 아니라 LA라고 해도 가야지. 잠깐만,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제라드의 모습이 문에서 사라졌다. 아마 건물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가려는 게 분명했다. 제라드는 그림 그리는 것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하는 친구였지만 성격이 쾌활하고 친구가 많았다. 그런데 잠시 사라졌던 그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아참, 그런데 팸플릿은 없어? 친구들에게 그걸 보여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팸플릿은 다음 주에 나올 거야. 사진은 다 찍어놨는데 아직 인쇄 작업이 덜 끝났거든. 팸플릿이 나오면 건물 내에 쫙 돌릴게.”
“오케이. 꼭 줘야 한다? 나한테는 특별히 사인을 해서 줘야 하는 거 알지? 두 사람 모두.”
“알았어. 그 대신 팸플릿만 받고 전시회에 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지진이 나서 뉴욕과 워싱턴 사이에 바닷물이 들어차지 않는 이상 반드시 갈게.”
제라드의 얼굴이 다시 사라졌다.
그날 저녁이 되기도 전에 온 건물에 두 사람의 전시회 소식이 알려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다가다 눈인사만 하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 한 번씩 두 사람의 작업실에 들러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오윤수와 장은서는 그들의 눈에 짙게 어린 부러움과 질투의 기색을 느끼고 자신들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아마추어 가수들이 정식으로 앨범을 내기를 원하는 것처럼, 모든 무명화가들의 꿈은 제대로 된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자기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윤수와 장은서는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큰 미술관에서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건 이 건물에 있는 모든 이들의 꿈에서도 바라는 일이었다.
그날 안으로 무명 화가들이 주로 모이는 SNS나 사이트들을 중심으로 오윤수와 장은서의 데뷔전 소식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일부는 놀라움을, 일부는 부러움을 표시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악담을 퍼부으며 한국에서 온 두 무명 화가를 언급했다.
―오윤수와 장은서가 누구야? 누군데 데뷔전을 가드너 미술관에서 연다는 거지?
―장은서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오윤수라면 그림을 본 적이 있어. 롱아일랜드에 있는 작업실에서 친구들하고 여는 작은 전시회였는데 그림이 아주 독특하더라고.
―중국인이 그린 그림이니까 당연히 독특하겠지. 우리하고는 뿌리부터가 다르잖아.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진짜 좋은 그림이냐는 거야. 독특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야.
―두 사람은 중국인이 아니야. 한국에서 왔다고.
―아주 든든한 돈줄을 문 모양이네? 가드너 미술관도 한심하게 됐군. 아시아인들에게 돈을 받고 전시장을 내주다니. 이게 다 더러운 중국 놈들 때문이야.
―이봐 그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야. 난 두 사람하고 같은 건물에서 작업하는데, 그 친구들 그림 괜찮아. 욕을 하고 싶거든 그림을 직접 본 다음에 하시지?
오윤수와 장은서는 물론이고 도윤도 두 사람의 전시회에 대한 소식이 무명 화가들 사이에서 그토록 화제가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라드가 두 사람의 작업실을 방문한 지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미국 각지의 화가들 커뮤니티에서 오윤수와 장은서는 이미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 예술의 심장부를 직격한 아시아의 대표적인 화가가 된 것이다
* * *
최서라에게 프러포즈를 한 도윤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그가 비행기를 타기 이틀 전, 갑자기 영국에 있던 장예주 박사가 전화를 걸었다.
“이 박사? 나 서울 왔어. 시간 있으면 잠깐 볼래?”
“서울이라고요? 언제 오셨어요? 그럼 혹시…….”
“맞아. 전에 내가 어쩌면 한국으로 아주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구상춘 관장님이 국립 현대미술관 학예실 과장으로 날 불렀다고 말이야. 그동안 계속 고민했는데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럼 이제 현대 미술관에서 근무하시는 거예요?”
“근무는 12월부터 할 거야. 하지만 그 전에 집도 구해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서 미리 사표내고 왔지.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저녁 한 끼 같이 먹자.”
도윤은 최서라에게 연락해서 둘이 함께 그녀를 만나러 갔다. 세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영국에서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가 나왔을 때쯤, 최서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구상춘 관장님이 굳이 장 박사님을 불러들인 데에 혹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에요? 사실 학예실 과장이 굳이 외국에 계신 분까지 불러들어야 할 정도로 사람 구하기 힘든 자리는 아니잖아요.”
장예주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서라가 눈치가 빠르네. 맞아. 이게 모두 우리 잘난 이도윤 박사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도 할 수 있어.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하잖아? 근데 이 박사는 날갯짓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폭풍을 몰고 와버렸으니 여파가 만만치 않은 거지.”
도윤은 눈을 껌벅껌벅했다. 내가 폭품을 몰고 왔다고? 그게 도대체 뭔 소리야?
“제가 뭘 어쨌는데요? 저는 한국에서 얌전하게 제 일만 열심히 했는데요?”
장예주가 피식 웃으면서 눈을 흘겼다.
“자기 일만 열심히 하기는? 얼마 전에 박은비 화가의 특별전을 열고 전작 도록도 발간했잖아? 그거 모두 이 박사가 주도한 거라면서? 오지랖을 아주 거하게 떨었던데 뭘.”
“에이, 무슨 제가 주도를 해요? 믈론 말은 제가 꺼냈지만 실제 일은 청파하고 아리움에서 거의 다 맡아서 했어요. 저는 그냥 말만 꺼내고 옆에서 일을 좀 도왔을 뿐이에요.”
“박은비 화백 유족은 물론이고 청파하고 아리움까지 설득한 사람이 이 박사라는 거 다 알아. 미술계 바닥이 거기서 거긴데 이미 소문 다 퍼졌다고. 아무튼 우리 관장님이 그 특별전과 전작 도록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으셨나 봐.”
“충격이요? 무슨 충격이요?”
“원래 우리나라 화가들의 전작도록을 만드는 일은 그동안 정부에서 주도했잖아? 하지만 돈은 엄청나게 들이면서도 작업 자체는 지지부진한 게 사실이었지. 그런데 아무리 작품 수가 많지 않다고 해도 박은비 화백 정도 되는 대가의 전작 도록을 민간 갤러리에서 불과 몇 달 만에 완성했잖아. 국립 현대미술관 관장으로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셨대.”
“그래서요? 그런 일을 민간에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민간에서 해도 되지. 하지만 그럴 경우 정부는 그동안 도대체 뭘 했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건 당연해. 그래서 관장님이 국립 미술관에서도 전작 도록을 만드는 작업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셨어. 조선시대나 그 이전 화가들의 한국화는 국립박물관에 맡기더라도 근대 이후의 대가들에 대해서는 국립 현대미술관이 전작 도록을 내기로 한 거지.”
“그래서 박사님에게 그 일을 도와달라고 부른 거예요?”
“대가들 작품 가운데는 외국에 나가 있는 것들이 많잖아. 외국의 소장자들에게 연락하거나 직접 찾아가서 작품을 감정할 사람이 필요해. 그래서 나한테 그 일을 맡기고 싶어하시는 거야. 아마 모르긴 해도 조만간 관장님이 이 박사한테도 연락을 하실 걸?”
“저한테요? 저한테는 왜요?”
“전작 도록을 내려면 당연히 현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도 전부 감정을 다시 해야 하잖아. 그 일에 이 박사 손을 좀 빌리고 싶어 하셔.”
도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왜 일이 거기까지 가는 거야?
“정말 그 일을 하겠다고요? 진심으로 그러시는 거 같으세요?”
장예주가 웃음기가 전혀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 그동안 위작 의혹이 제기된 게 한둘이 아니잖아. 이번 기회에 전작 도록을 만들면서 박물관에 있는 위작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싶어 하시는 거 같아. 사실 언젠가는 누군가 해야 되는 일이기도 하고.”
도윤은 갑자기 엄청 부담스러워졌다. 구상춘 관장이 추진하는 일은 모름지기 미술관 관장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는 그 일이 복잡다단하게 흘러온 한국의 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한 번 바뀔 때마다 기존의 집권 세력들 집에서 적지 않은 미술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검찰에 압수되거나 기증의 형식으로 국립 현대 미술관으로 흘러들어왔는데, 그 가운데 위작이 적지 않게 섞여 있다는 게 문제였다.
값비싸지만 현찰이 아닌 고가의 귀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술품이다. 금이나 보석 같은 것은 그 자체로 돈이나 마찬가지로 간주되지만 미술품은 그것들과는 위치가 조금 달랐다. 언제든지 돈으로 바꿀 수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예술 작품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뒷거래에 미술품이 자주 뇌물로 쓰였다. 문제는 그것을 받은 일부 권력자들의 안목이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개중에는 이중섭과 정선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예술에 대해서는 완벽한 장님이나 마찬가지인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비싼 미술품을 건넨 이들 가운데에는 일부러 위작을 만들어 바치고 진품은 자신이 빼돌린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아예 처음부터 위작을 뇌물로 바친 이들도 존재했다. 이른바 위작의 생산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뇌물을 받은 사람들이 실권을 할 경우 그 작품들이 위작으로 판명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걸 위작으로 선언하면 과거 해당 작품을 선물한 사람과 중간에서 중개한 미술품 중개상들까지 줄줄이 엮여들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까 적지 않은 위작들이 진작으로 둔갑해서 미술관 한 가운데에 버젓이 전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잘못하면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겠네요. 특히 힘센 사람들 손가락질을요."
“손가락질만 받으면 다행이지. 아예 미술계에서 매장될 수도 있어.”
“그런데도 하시려고요?”
“그나마 이 박사가 한성 옥션을 아예 문을 닫게 만들었잖아. 적지 않은 위작이 거길 통해 권력자들의 손에 넘어갔었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가장 큰 압력이 해소된 거나 마찬가지야.”
도유은 속으로 장예주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골치 아픈 일을 뻔히 예상하면서까지 좋은 직장을 버리고 한국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장 박사가 미술계를 완전히 떠날 각오를 하고 귀국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되면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검소하게 살면 되지 뭐. 설마 내가 백 살까지 살겠어? 그리고 내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두 사람이 용돈이라도 벌 수 있는 자리를 하나 만들어줘.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미리 부탁할게.”
장예주가 그 말을 하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도윤과 최서라도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