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11화 (211/300)

211화

날짜가 벌써 12월 하순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보스턴이 한창 오윤수와 장은서의 전시회와 관련된 기사로 떠들썩할 무렵, 한국에서 오주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박사님! 저 주현이에요. 미국에서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사실은 며칠 전부터 계속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마지막 합격 통지서가 어제야 도착했어요. 제가 지원한 대학들에 전부 합격했대요. 이게 전부 박사님 덕분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전부 다 합격했다고? 이야, 축하한다. 그래서 어느 대학으로 갈 건데?”

“지금 아빠하고 어디로 갈지 의논하고 있어요. 저는 윤수 선배랑 은서 선배가 있는 뉴욕으로 가고 싶은데 아빠는 시카고 예술대학을 권하고 있어요.”

“둘 다 괜찮아. 다 좋은 대학이니까 어디를 가든 공부할 만 할 거야. 아빠하고 잘 의논해서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라. 결정되면 나한테도 알려주고.”

“네. 크리스마스 전에 한국으로 돌아오신다고 하셨죠? 돌아오시면 아빠하고 찾아가서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릴게요.”

“그래. 들어가면 보자.”

오주현이 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그녀의 아버지인 오광표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오광표의 목소리 역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 아이하고 더 의논해야 하겠지만 일단은 시카고 예술대학으로 진학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학 생활에 금세 익숙해지려면 주변에 가까운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제 경험이긴 합니다만.”

게다가 시카고 예술 대학이 제시한 장학금 조건이 다른 곳보다 좋았다. 오광표의 형편이 장학금 조건을 일일이 따져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자기 자식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해준 곳에 더 호감이 가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졸업식을 마치면 곧바로 미국으로 보낼 겁니다. 입학은 내년 9월이지만 그 전에 미리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게 하려고요. 주현이가 미국으로 가면 저도 곧바로 인도로 부임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반드시 갚겠습니다.”

오광표 역시 도윤이 한국으로 돌아오면 딸과 함께 인사를 드리러 오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한편으로는 교토 국제 학생 미술 대회부터 시작해서 박은비 화백의 특별전까지, 아이 하나를 미술 공부시키기 위해 너무 거창한 일들을 벌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결과가 좋게 나오니 가슴이 뿌듯했다.

* * *

마틴이 새로운 칼럼을 쓴 이틀 후, ‘아트 뉴스’ 신간이 발매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수록된 도윤의 칼럼이 오윤수와 장은서의 전시회를 두고 한창 불이 붙은 논란에 본격적으로 기름을 들이부었다. 제목은 ‘이 시대에 새로운 화풍이란 무엇인가? - 비평가와 기자의 차이’였다.

“…새로운 것이 늘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예술에 있어서 새로움이란 낯설음을 극복할 시간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새 것은 불편함의 다른 말이거나 예술이라는 이룸으로 치장된 혐오스러움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인상주의라고 부르는 사조의 명칭이 처음에는 모네의 ‘해돋이, 인상’에 대한 비평가의 조롱에서 유래된 말이라거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우산으로 찌르려는 성난 관객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전시된 사건은 유명하다.

…나는 기자들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들인데 반해 기자들은 본질적으로 경험이 많은 일반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의 차이는 특히 새로운 사조나 화풍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비평가들이 대체로 낯설음을 빨리 극복하는데 반해, 기자들은 완고하게 익숙함을 지키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보수주의는 분명히 가치 있는 사고방식이지만, 예술에 있어서 그것은 종종 몰이해와 편견으로 세워진 장벽이 되고 만다. ……”

도윤의 칼럼이 잡지에 게재되기 전에, 그것을 제일 먼저 읽었던 까미유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했었다.

“왜 그런 식으로 글을 썼어요? 이 칼럼을 읽으면 기자들이 발끈할 게 뻔한데.”

하지만 정작 글을 쓴 장본인은 태연했다.

“발끈하라고 쓴 겁니다. 그래야 시끄럽게 떠들 거 아닙니까?”

“일부러 소란을 일으키려고 썼다고요? 하지만 그러면 앞으로 기자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힐 텐데요? 기자들에 대한 이 박사의 생각은 솔직히 저도 어느 정도 동감이에요. 하지만 그 사람들을 대놓고 적으로 돌리는 건 결코 현명한 행동이 아니에요.”

“압니다. 그래서 나중에 안목이 있는 기자들을 칭찬하는 칼럼을 두어 개 더 쓰려고요. 어차피 세상에는 존경할 만한 기자들도 적지 않으니까요.”

“그럴 거면 이번 칼럼에서도 톤을 조금 낮추는 게 어때요?”

“지금은 속삭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서 외쳐야 합니다. 선동가와 희생양이 필요한 때라는 뜻이죠. 그래야 마틴에게 동조하는 기자들이 저를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글을 쓸 것 아닙니까. 당장은 조용한 타협보다는 그런 식의 소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박사가 돌을 맞는 희생양이 되겠다는 거예요?”

“저 튼튼하고 맷집도 좋습니다. 돌 좀 맞는다고 해서 죽지 않아요. 무플보다는 악플이 더 낫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돌을 맞아서 오윤수와 장은서가 화제의 중심에 설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맞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물론 도윤도 막무가내로 내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 그의 칼럼에는 나중에 ‘오해였습니다’라고 주장할 만한 중의적인 표현이 곳곳에 박혀 있었고, 해석을 조금만 달리 하면 얼마든지 납득이 갈 수 있도록 문구를 세심하게 조절했다. 글을 그렇게 쓰기 위해 나름대로 밤을 새며 문장을 다듬고 또 다듬은 결과였다.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전달자지 크리에이터가 아니야. 남의 견해를 인용해서 자기 글로 포장하는 사람들이지. 그 사람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 누구에게 전화를 걸겠어?’

당연히 이름 있는 비평가나 대학교수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도윤의 칼럼은 차마 입으로 내뱉지 못하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 측면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도윤의 칼럼을 은근히 변호해 줄 것이다.

‘나중에 정 비난이 거세지면 고개 몇 번 숙이면서 미안하다고 하지 뭐. 그 정도는 얼마든지 숙여줄 의사가 있어. 하지만 지금은 일단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는 게 더 나아.’

그의 예상대로 도윤의 칼럼은 보스턴의 문화부 기자들로 하여금 노트북 앞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도윤을 비판하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은근히 그의 글에 공감을 표시하기 위해 열심히 자판을 두드렸다. 덕분에 날이면 날마다 오윤수와 장은서의 전시회에 관한 기사와 칼럼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걸 읽은 미술 애호가들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드너 미술관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으셨겠지만, 이 박사는 진짜 천재입니다.”

도윤의 칼럼이 게재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가드너 관장이 전화를 걸어 감사와 감탄을 동시에 표시했다. 갑자기 관객이 늘면서 전시된 작품들이 빠르게 팔려나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절반 이상이 새로운 주인을 만난 것이다. 매매가 끝난 작품들은 일단 ‘Sold’라는 표시를 붙여두고 전시가 끝나는 대로 모두 구매자들의 손에 넘기기로 했다.

마틴은 첫 칼럼 이후로도 두 번 더 전시회에 관한 글을 썼다. 그는 신랄하게 뉴먼과 도윤의 견해를 비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시회에 관한 긍정적인 기사와 칼럼의 비율이 마틴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들을 훨씬 앞서나갔다. 그가 날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치를 떨고 있던 어느 날, 두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보스턴 글로브의 잭 마틴 기자시죠? 보스턴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저희와 함께 잠깐 서에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그의 눈앞에 체포 영장을 들이밀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마틴은 영문도 모르고 눈만 몇 번 깜빡이다가 자기 집에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 * *

“제가 뭘 했다고요?”

기가 막힌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마틴의 심장은 빠르게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한쪽 벽면이 커다란 거울로 채워진 취조실. 평생 기자 노릇을 했지만 문화 관련 소식만 취재했던 그는 처음 들어와 보는 곳이었다. 긴장한 탓에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그를 보며 수사관이 무뚝뚝한 어투로 방금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적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기사에 악평이 실릴 거라고 화가를 협박하셨잖습니까? 그거 협박죄입니다. 저쪽에서 먼저 찾아와서 좋은 기사를 부탁하면서 돈을 준 적도 있죠? 그걸 받고 원하는 대로 기사를 써준 것도 다 죄가 됩니다. 모르셨어요?”

“즈, 증거 있습니까? 도대체 무슨 근거로 저를 그렇게 모함하는 겁니까?”

“모함은 무슨 모함이에요? 증거가 있냐고요? 당연히 있죠. 그럼 아무런 증거도 없이 판사가 체포 영장을 발부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사관이 서류철을 펼치더니 그가 볼 수 있게 돌려놓았다. 수사관이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가 화가나 화랑에 보낸 메일과 문자를 인쇄한 것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돈을 송금한 사실이 기록된 통장 내역들이 밑줄까지 쳐진 상태로 제시되자 마틴은 저도 모르게 눈을 꾹 감았다. 그런 그에게 수사관이 이죽대며 물었다.

“신인 화가들을 잡아먹는 변태로 소문이 났더군요.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조사해 보니까 유명한 화가나 큰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는 아예 손을 내밀지 않았더군요. 거의 다 신인이나 작은 화랑만 골라서 협박을 하셨더라고요. 지금까지 그래왔으면 계속 그렇게 할 것이지 왜 새삼스럽게 가드너 미술관을 건드렸어요?”

마틴이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가드너 미술관 측에서 저를 고소한 겁니까?”

“저희가 자체적으로 정보를 입수해서 시작한 인지 수사입니다. 물론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고소장을 제출한 화가나 화랑들이 생기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흑인이나 아시아 계열의 화가들에게는 아예 협박도 하지 않았더라고요? 무조건 악평만 했어요. 보스턴 글로브는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러면 회사 방침에도 위배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라니요? 나는 건전하고 상식적인 미국 시민이자 유력 일간지의 기자입니다. 그런 나를 지금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세우는 겁니까? 변호사를 불러주세요. 변호사 없이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수사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변호사를 부르셔야죠. 그럼요. 하지만 이 점은 미리 알아두세요. 본인 잎으로 건전하고 상식적인 미국 시민이라고 하셨죠? 그럼 앞으로는 남에게 불건전하고 몰상식한 얘기를 할 때는 반드시 몰래 만나서 속삭이세요. 전화통에 대고 소리를 지르지 말고. 당신이 상대에게 더러운 깜둥이라고 욕하는 말이 다 녹음되었다고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수사관이 녹음기를 틀었다. 그러자 마틴이 흥분해서 상대에게 욕을 하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흘러나왔다.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이었는데, 말을 듣다 보니 언제 누구에게 했던 소리인지 대충 기억이 났다. 마틴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제 변호사를 불러주십시오.”

그가 다시 한 번 변호사를 찾자 수사관이 그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전화해서 원하는 변호사를 부르세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보스턴 글로브 소속 변호사는 안 될 거예요. 이건 마틴 씨가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벌인 사적인 범죄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변호사 선택도 잘 하셔야 할 거예요. 괜찮은 변호사들은 인종차별과 관련된 소송을 맡기 싫어하거든요.”

수사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마틴의 귀를 아프게 때렸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됐지?

* * *

오윤수와 장은서의 전시회가 폐회를 이틀 남겨두었을 때, 느닷없이 보스턴 글로브의 잭 마틴 기자가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딴에는 보스턴 언론계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던 기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기자들이 경찰서로 몰려들었다. 그들 앞에서 경찰서장이 직접 나서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렇게 해서 마틴 기자는 현재 협박과 부당한 금품 수수 등의 혐의로 조사 중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그동안 마틴 기자의 악의적인 편파 보도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다수의 고소인들에 의해 고소가 접수된 상황이기도 합니다. 우리 경찰은….”

TV를 통해 뉴스를 보던 오윤수가 시원하다는 듯이 말을 뱉었다.

“경찰에 붙잡힌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너무할지 몰라도 솔직히 고소하네요.”

그러더니 옆에서 함께 TV를 보던 도윤에게로 문득 고개를 돌렸다.

“박사님은 혹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예상하셨던 거예요?”

도윤이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예상하다니? 뭘?”

“전에 박사님만 믿고 있으면 알아서 다 해결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하신 이후로 뉴욕 타임스의 뉴먼 씨가 칼럼을 쓰고 마틴은 경찰에 체포된 게 너무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른 신문에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마틴이 곧 구속 기소될 거라고 하던데, 너무 일이 척척 진행되니까 오히려 사실 같지가 않아서 그래요.”

“내가 한 건 아트 뉴스에 칼럼을 쓴 것밖에 없어. 뉴욕 타임스 칼럼은 뉴먼 씨가 썼고, 마틴을 잡아넣은 건 경찰이잖아. 내가 아니라. 착한 사람이 대우받고 나쁜 놈이 벌 받는 게 정의로운 사회야. 미국 사회가 우리 생각보다 조금 더 정의로운가 보지 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 그림의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혹평을 당한 화가들을 찾아가 그들이 협박을 받거나 돈을 갈취 당했다는 증거를 확인한 것은 도윤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시카고 경찰청의 앤드류 패럴에게 전달했고, 패럴은 그것을 다시 보스턴 경찰서에 근무하는 동창에게 알렸다. 물론 그 이후에 전개된 일은 보스턴 경찰이 알아서 한 것이다.

마틴은 많은 돈을 들여 비싼 변호사를 고용한 덕분에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석금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그러나 기소를 피하지는 못했고, 보스턴 글로브는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를 해고했다. 그와 함께 일했던 기자들이 마틴의 부정행위를 증언했기 때문이다.

“잭 마틴은 다시는 보스턴에서 기자 생활을 할 수 없을 겁니다. 워낙 소문이 나쁘게 났거든요. 저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언론사 사주나 간부들에게 두루 전화를 했어요. 그 친구는 설사 집행유예로 풀려나더라도 당장 생계 걱정부터 해야 할 겁니다.”

가드너 관장의 말이었다. 그 역시 잭 마틴으로 인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12월 22일, 드디어 전시회가 모두 끝났다. 오윤서와 장은서가 출품한 작품은 모두 백 점이었는데, 그 가운데 무려 여든 한 점이 팔려나갔다. 도윤은 남은 열아홉 점을 전량 매입해서 한국으로 보냈다. 선심이 아니라 투자였다.

순수하게 전시장을 찾아온 손님들에 의해 팔린 그림의 대부분은 전시회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난 이후에 거래가 성사되었다. 이번 전시회를 둘러싸고 벌어진 시끌벅적한 논쟁이 오히려 작품 판매를 부추기는 효과를 낳은 셈이었다.

“마틴이 한 짓은 나쁘지만 덕분에 갑자기 부자가 됐어요.”

장은서의 말에 도윤이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른 요인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이 너희 그림을 산 것은 말 그대로 그림이 좋았기 때문이야. 근본적으로 그림 자체의 수준이 낮았더라면 지구촌 전체가 떠들썩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고 해도 한 점도 팔리지 않았을 걸? 그러니까 앞으로도 다른 문제는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전념하도록 해.”

“다른 문제는 모두 박사님이 해결해줄 테니까 말이죠?”

“그렇지. 바로 그거야.”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씩 웃었다.

다음날, 도윤은 결산을 비롯한 나머지 문제를 장은서의 아버지인 장찬수에게 부탁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비록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크리스마스 이브를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그리 오래 해외에 머문 게 아닌데도 이상하게 한국을 떠난 지가 굉장히 오래된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