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33. 말러의 악보>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현소 화랑은 이틀 동안 휴무였기 때문에 도윤은 부모님 집에 들러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뒤 곧장 노영태 변호사 사무실로 갔다. 전시회가 무사히 끝났음을 알릴 겸 재단 설립 문제가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는 석훈도 함께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나저나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일을 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가 사무실로 들어서며 먼저 사과하자 노영태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크리스마스가 휴일이지 이브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잖아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할 예정이었습니다. 이 박사님도…….”
“네. 저도 저녁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가급적 간단하게 일을 끝내죠.”
도윤 역시 저녁에는 최서라와 약속이 있었다.
서로 마주앉자마자 노영태가 도윤에게 태블릿을 하나 건넸다. 거기에는 커다란 빌딩 사진들과 함께 각 건물의 제원과 가격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도윤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내용을 살피는 동안 노 변호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종각과 명동, 그리고 논현동과 삼성동 쪽에 괜찮은 건물들이 나왔습니다. 자세한 위치와 제원은 태블릿에 나와 있는 내용을 참조하십시오. 그리고 이 박사님이 입주하실 자택은…….”
“제 집은 나중에 얘기하죠. 일단 재단 이름으로 매입할 건물들부터 검토해요.”
도윤이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노영태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노영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일에 없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서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용을 모두 살핀 도윤이 보고 들은 것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러니까 위치상으로는 종각에 있는 건물이 제일 가깝고, 가성비는 논현동 쪽이 가장 좋다는 얘기네요. 삼성동 건물은 공실률이 작아서 수익이 좋은 대신 비싼 편이고, 가격만 따지면 명동이 제일 저렴하네요. 명동은 여전히 서울의 중심인데 왜 이렇게 가격이 싼 거죠?”
도윤이 싸다고 한 건물의 가격도 700억에 달했다. 다른 세 곳의 건물들은 모두 천 억 이상이었고, 종각의 빌딩은 무려 3천억이 넘었다. 노영태가 얼른 말을 부연했다.
“명동은 층수가 낮고 건물 연면적이 제일 작을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무려 1970년대 초에 지어진 것이니까요.”
“그럼 헐고 다시 짓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인데, 대지 면적 자체가 크지 않아서 재건축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겠네요. 논현동도 대상에서 빼죠. 가성비는 좋은 편이지만 공실률이 너무 많아요.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쪽이 경기를 많이 타는데다 업무용 사무실 임대 실적이 저조한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전망이 가장 높다는 점에서 그냥 포기하기에는 조금 아깝습니다.”
“건물 값이 오를 전망이 좋은 건 삼성동 쪽도 비슷하지 않나요?”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사동과 너무 멀다는 게 단점입니다.”
현소 화랑과 청파 갤러리는 모두 경복궁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사동과 안국동 일대에는 국립 현대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갤러리들이 모여서 이른바 화랑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재단을 설립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현소 화랑을 떠날 생각이 없는 도윤의 입장에서는 되도록 인사동과 가까운 곳에 재단 건물을 두는 게 유리했다.
한 시간 정도의 치열한 논의 끝에 도윤은 결국 종각에 위치한 건물을 선택했다.
“이걸로 하죠. 거리가 가깝고 공실률도 괜찮은 편이잖아요. 건물 자체도 지은 지 5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아직 새것이나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 대신 건물 가격이 가장 비쌉니다. 31층짜리인데다 연면적 역시 가장 넓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이 3천억이 넘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괜찮아요. 그래도 장기적으로 볼 때 이걸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노영태는 그 건물을 샀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선택할 것을 권했다. 그러자 도윤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물을 노 변호사님이 추천 목록에 넣었을 리가 없잖아요? 저는 종각에 있는 건물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쪽 건물주와 협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도윤이 설립할 재단의 이름은 ‘서윤 문화 재단’으로 정했다. 도윤과 서라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떼서 만든 것이었다. 이미 지난 가을부터 노영태 변호사가 적극적으로 움직인 끝에 재단 설립과 등록까지 마친 상태였다.
도윤이 엄청난 액수를 지불하면서까지 건물을 구입하려는 것은 ‘서윤 문화 재단’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번에 구입하는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 수익으로 재단을 운용할 생각이었다.
3천억이 넘는 구매 대금을 마련하려면 먼저 그가 가지고 있는 투자회사들 명목의 주식을 대거 처분해야 했다. 그 돈을 재단 설립 자본으로 귀속시키면, 다시 ‘서윤 문화 재단’의 이름으로 종각에 있는 건물을 구입하는 방식이었다. 어차피 만들기로 한 재단이었으므로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놓은 돈을 양지로 끌어올릴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연말연시에 노 변호사님이 또 고생을 하셔야 되겠네요.”
비영리재단을 설립하는 것은 대표적인 영리재단인 주식회사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 그 와중에 여러 투자 회사 명목으로 분산시켜 놓았던 투자금을 세탁하고 처리하는 일까지 함께 진행시켜야 하니 노영태로서는 일복이 터진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나쁜 일도 아니고 좋은 일을 하자는 거 아닙니까? 변호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런 일 때문에 바쁜 게 속편합니다. 보람도 있고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아참. 그리고 제 집은 평창동으로 해 주세요. 인사동하고도 가깝고, 무엇보다 서라가 그 집을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안주인의 선택이군요. 알았습니다. 그럼 그곳도 계약을 진행시키겠습니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인기가 덜 하지만 그래도 평창동은 여전히 고급 주택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도윤은 최서라에게 프러포즈를 하자마자 노영태에게 결혼해서 살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노 변호사가 고른 후보들을 일차 검토한 사람이 최서라였는데, 그녀는 아파트보다는 단독 주택을 선호했다.
* * *
그날 저녁, 도윤과 최서라는 함께 뮤지컬을 감상하고 저녁 식사를 했다. 도윤은 그 자리에서 낮에 노영태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그럼 평창동 집으로 결정한 거예요?”
“응. 그 집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요. 두 번이나 가서 직접 확인했는데 여러 모로 제 마음에 꼭 드는 집이에요. 계약이 끝나면 곧바로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해야 하겠네요.”
“천천히 해. 아직 결혼식까지 5개월이나 남았잖아.”
“5개월이면 많이 남은 게 아니에요. 집 구조를 조금 변경시켜도 되죠?”
“조금이 아니라 몽땅 허물고 새로 지어도 상관없어. 서라 마음대로 꾸며 봐.”
“고마워요. 그렇잖아도 별채에 제 작업실을 하나 만들고 싶었거든요.”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 최서라는 금속 공예에서 거의 손을 놓은 상태였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적당한 작업실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녀가 평창동 집을 마음에 들어 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본채 외에도 별채가 따로 딸려 있기 때문이었다.
새로 얻을 집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되어 있는 본채와 단층 구조의 별채로 구성된 곳이었다. 도윤 역시 그 집의 지하에 제법 넓은 수장고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앞으로 살면서 개인적으로 구한 미술품들은 그곳에 보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오윤수 화백하고 장은서 화백의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면서요?”
“성공적이었지. 무엇보다 웬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전시회 자체가 큰 이슈가 되었으니까. 덕분에 일반 관객은 물론이고 생각보다 많은 미술계 인사들이 전시장을 방문했어. 전시했던 그림들도 대부분 팔려나갔고.”
전시된 백 점 가운데 81점이 팔렸으니까 신인 화가들의 데뷔 전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였다. 팔리지 않은 19점은 도윤이 모두 사들였으니 두 화가의 입장에서는 전량 판매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도윤이 사들인 19점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전시도 하기 전에 미리 구입한 것도 네 점이나 포함되어 되었다.
도윤이 그림을 구입하는 데 쓴 돈은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새로 산 집에 만들 수장고에 앞으로 자신이 후원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계속 사서 모을 작정이었다. 그곳을 도윤 자신의 개인 역사박물관과 비슷한 곳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림이 모두 팔렸다는 얘기를 들은 최서라가 전시회 수익에 관심을 보였다.
“그럼 수입이 적지 않았겠네요? 두 사람 모두 이번 전시회로 얼마나 번 거예요?”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아. 일단 내가 사들인 그림은 열아홉 점을 합해서 1억을 줬어. 한 점당 평균 500만 원정도로 계산했거든. 나머지 그림들은 모두 합해서 3억 정도를 받았는데, 거기서 가드너 미술관 대여료를 비롯한 여러 가지 경비를 빼고 세금까지 제해야 돼. 그러고 나면 각자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1억 5천이 조금 넘을 거야.”
“그 정도면 신인 화가의 데뷔전 치고는 굉장히 많이 번 거 아니에요? 게다가 이번 전시회에 대한 평이 아주 좋았다면서요? 우리나라 신문에도 두 사람의 전시회가 언급될 정도였거든요. 그럼 다음 전시회 때는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그 때쯤이면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신인 취급을 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 다음에는 이번 전시회보다 그림 값을 몇 배 더 올려도 될 거야.”
“그럼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후원을 받을 필요가 없지 않나요?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차라리 그 돈으로 다른 화가들을 돕는 게 낫지 않나요?”
최서라의 말에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세울 ‘서윤 문화 재단’의 기본적인 목표가 예술가들에 대한 평생지원이야. 예술가들로 하여금 다른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자는 거지. 물론 수입이 좋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지원 액수를 조절하겠지만 최소한 죽을 때까지 어느 정도 이상의 수입은 보장해주자는 게 내 생각이야.”
도윤이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것은 프랑스에서 실시하고 있는 메세나 제도였다. 여러 단체나 개인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음악, 미술, 공연 등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이 제도는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예술가들에게 평생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물가를 반영해서 매년 액수를 조정해야 하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 재단에서 후원하는 예술가들에게 삼천에서 육천만 원 정도의 연간 수입을 보장해주고 싶어. 독신은 삼천을 하한선으로 정하고,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육천만 원까지 지원 폭을 늘리는 거지.”
도윤의 말을 들은 최서라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후원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사실에 은근히 놀랐다. 국가도 아닌 한 개인이 과연 그 만한 후원을 하는 게 가능할까?“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예술가들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고마운 재단이 되겠네요. 후원 대상자들은 어떻게 선정하려고요?”
“기본적인 방법은 두 가지야. 일단 매년 한 번씩 신인 화가들만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을 열 생각이야. 그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개인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평생 매년 일정 액수를 후원하는 거야.”
“그럼 그 화가들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버는 돈 외에도 재단에서 지급하는 후원금이라는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도 좋기는 한데…….”
최서라가 고개를 살짝 기웃하는 것을 본 도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주는 건 아니야. 만약 그 사람이 우리가 정한 기준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 경제적인 지원은 하지 않을 거야. 대신 전시회를 알선해 준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돕는 거지. 그러다가 그 해의 수익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나머지 차액을 주는 방식이야.”
“말 그대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얘기네요. 그럼 공모전 말고 다른 방식으로 후원 대상자를 선정할 생각도 있는 거예요?”
“물론 있지. 하지만 그 부분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어. 나중에 재단이 정식으로 발족되면 그때 다른 사람들과 의논을 해 보려고. 우리 재단 직원들이 전국의 각종 전시회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찾을 수도 있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여러 미대 교수들이나 화가를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추천을 받을 수도 있어.”
“추천을 받으면 부정이나 청탁이 개입될 우려가 있지 않나요?”
“사실 그게 고민이기는 해. 하지만 그런 문제는 어차피 누구에게 맡기는 완전히 없애기 힘들 거야.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고민해서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어.”
사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그 모든 후원을 무리 없이 진행시키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도윤의 말대로 한 사람에게 일 년에 평균 5천만 원 정도를 지원 한다고 할 때 열 명이면 5억, 백 명이면 50억을 매년 지출해야 한다. 게다가 평생 후원이라는 제도의 성격 상 시간이 갈수록 지원 대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령 매년 다섯 명의 새로운 후원 대상자를 선정한다고 할 때, 재단을 50년 동안 운영할 경우 매년 지원해야 하는 대상자가 250명까지 늘어난다. 그럼 한 해에 지출해야 하는 후원금이 250억이 된다. 거기에 재단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월급을 비롯한 여러 가지 경비까지 고려해야 할 경우 못해도 매년 300억에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 수익만으로 충당이 될까요?”
최서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재단이 출범하면 적극적으로 기부금을 받을 생각이야. 처음 10년가량은 후원 대상자가 많이 않을 테니까 내가 낸 돈하고 건물 임대료로 해결이 될 거야. 그래도 결국 외부에서 기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지속적인 운영이 어려워. 그럼 문을 닫는 수밖에 없지.”
문제는 비영리 재단일 경우에는 마음대로 문을 닫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도윤은 재단 이름으로 거액의 투자 자금을 마련해서 함께 운영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취지는 좋지만 막상 재단을 설립하려고 하자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 *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해가 되었다. 도윤은 새해가 되자마자 재단 명목의 건물을 구입하는 한편, 결혼해서 살 집의 인테리어 공사를 감독하느라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오가며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그렇게 한창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베이징의 왕이푸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춘절 기념 경매라고요?”
“그래. 내가 알기로는 한국도 음력설을 쇤다고 들었네. 우리 중국에서도 춘절은 가장 큰 전통 명절이야. 그래서 이번 춘절 직전에 큰 경매를 열기로 했어.”
“큰 경매를 열려면 그만한 물건이 확보되어야 하잖아요. 힘을 많이 쓰셨나 보네요?”
“자네가 지난번에 홍도관을 위탁해 준 덕분에 아리스 옥션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잖아?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라고, 그 열기가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띄우기로 했어. 실제로 내가 힘을 좀 많이 쓰기는 했네.”
왕이푸 회장의 말에 의하면 이번 경매에 올라갈 주요 물품들은 중국 골동품이 아니라 주로 서양 미술품이라고 했다. 도윤은 왕이푸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현재 경매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목록을 받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몇 가지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다시 왕이푸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저보고 이번 경매에 올릴 물건들을 최종적으로 감정해달라는 거죠?”
“단순히 감정을 해달라고 부르는 게 아니야. 자네는 나 다음으로 아리스 온라인의 대주주가 아닌가? 그러니 회사의 큰 경매에는 당연히 참석해서 얼굴을 내밀어야지.”
왕이푸 회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사실 작년 한 해 동안의 경매 실적에 대한 수익 정산 결과, 도윤은 적지 않은 돈을 이익 배당금으로 받았다. 그는 현재 여러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익 배당금을 지불한 곳이 바로 아리스 온라인이었다.
주식의 가치로만 따지면 현재로서는 비에코의 주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그곳은 아직까지 주주들에게 제대로 된 이익 배당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회사를 늘려나가느라 수익금의 대부분을 배당하지 않고 재투자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저도 참석하기로 할게요.”
그가 아리스 온라인의 신춘 경매에 참석하겠다는 대답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역시 행사에 대한 초대 전화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