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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15화 (215/300)

215화

도윤은 병원 근처에서 음료수를 한 박스 사서 병실을 찾았다. 다시 찾은 병실에는 아이의 엄마 외에도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우진이 아빠 염한성이라고 합니다. 우진이 엄마한테 낮에 제 아이를 많이 도와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아직 중국어가 서툴러서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는데 덕분에 위험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염한성은 도윤의 손을 잡고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너무 지나칠 정도로 그러는 바람에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한참이나 감사를 표시하던 그가 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건넸다. 무심코 명함을 살피던 도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염한성 과장님? 미래 전자에서 근무하시네요?”

“네. 재작년에 미래 전자 북경 지점으로 발령 받았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공부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이쪽으로 발령을 내더라고요. 지금은 괜찮지만 처음에는 어설프게 배운 중국어 때문에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민망해 하는 그에게 도윤도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현소 화랑 실장으로 되어 있는 한국 명함이었다. 지갑 속에 오늘 아침에 아리스 옥션으로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새 명함이 들어 있었지만, 한국 사람한테 굳이 그것을 꺼내서 디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명함을 확인한 염한성의 눈이 커졌다.

“어, 현소 화랑의 이도윤 실장님이라면 청파 갤러리의 최서라 실장님하고…….”

아참, 그게 또 그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도윤은 그만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네. 맞습니다. 제가 최서라 실장의 약혼자인 이도윤입니다.”

석 달 뒤에 결혼하는 것으로 이미 날짜까지 다 잡혀 있었기 때문에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순간 염한성은 물론이고 옆에 서 있던 그의 아내마저 얼굴이 경직되었다.

“어머. 그러고 보니 낮에는 제가 미처 이름도 여쭤보지 못했네요. 우진이 엄마 김미현이에요. 설마 북경에서 우리 아이를 도와주신 분이 이 박사님일 줄은 몰랐어요.”

미래 전자의 사장은 최서라의 부친인 최병호였다. 상대가 미래 그룹 오너 일가의 딸과 결혼할 사람인데다 염한성의 입장에서는 까마득한 직속상관의 사위인 셈이니 그들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윤이 최서라의 약혼자라는 사실은 아직 매스컴을 타지 않았다. 몇몇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기는 했지만, 미래 그룹 차원에서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언론이라고 해도 대형 광고주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던 덕분에 아직까지 두 사람의 약혼 사실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 그룹 내에서는 이미 두 사람이 곧 결혼할 사이라는 얘기가 파다하게 돌았다. 최서라의 상대인 도윤도 보통의 감정가들과는 달리 제법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기 때문에 염한성과 그의 부인 역시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도와주신 분이 이도윤 박사님일 줄 알았으면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이렇게 다시 찾아올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네요.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염한성이 다시 한 번 연신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히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도윤에게는 그런 그의 태도가 오히려 어색하고 난감하기만 했다.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도왔을 겁니다. 그게 하필 저라는 걸 몰랐다고 해서 미안한 일이 될 리가 있겠습니까? 너무 이러시면 오히려 제가 곤란합니다. 그나저나 우진이는 어떻습니까? 낮에는 많이 아파하는 것 같았는데.”

도윤이 얼른 염한성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키며 아이의 상태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김미현이 한결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다.

“심장에 잠시 문제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담당 의사 말로는 일시적인 거라서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어요. 검사 결과도 모두 정상으로 나왔고, 이틀 정도만 입원해서 치료하면 금방 일어날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원래 어른보다 회복이 빠르잖아요.”

“다행이네요. 근데 우진이는 아직 자고 있는가 보죠?”

“네. 몸은 괜찮은 것 같은데 낮에 너무 놀라서 그런지 지쳤나 봐요. 조금 전에 저녁을 먹고 나서는 곧바로 잠이 들었어요. 자고 일어나면 아마 훨씬 나아질 거예요.”

도윤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실상 아이에게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건 아까 응급실에서 이미 확인한 사항이었다.

그가 의사가 아닌 이상 환자의 병명이나 병의 원인까지 정확히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병이 다 나았는지의 여부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몸에 병이 남아 있을 경우에는 아픈 부위에서 치료 능력이 소실되기 마련인데, 낮에 아이의 몸속에 흘려 넣은 치료 능력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불편하지 않으시면 제가 우진이를 잠깐 살펴봐도 될까요?”

그가 침대 옆의 보호자 의자에 앉으며 묻자 염한성 부부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애가 일어나 있었으면 고맙다고 인사를 시켰을 텐데 자느라 그러지를 못하네요.”

“인사는요, 무슨. 아이들이야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지요. 내일 다시 한 번 들를 테니까 인사는 그때 하면 됩니다.”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까지는 없으세요. 몹시 바쁘실 텐데…….”

실제로 몹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바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윤에게는 오늘 말고도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다시 병문안을 와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가 받을 능력의 성격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는 옆구리에 큼지막한 서류 봉투를 하나 끼고 있었다. 말러의 악보가 들어있는 봉투였다. 도윤은 상태를 살피는 척하면서 오른손으로 아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왼손은 서류 봉투 속에 집어넣어 악보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정신을 집중하자 서류 봉투 안에서 붉은 빛이 확 일어나더니 그의 몸을 타고 흐르다가 이내 아이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도윤의 눈에는 그 빛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손을 통해 느껴지는 아이의 맥박이 잠시 빨라지는 듯하더니 붉은 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도윤은 아이의 숨소리나 안색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어쩌다 보니까 아리스 옥션에서 이사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쪽에도 투자를 한 게 조금 있어서요. 내일부터 이틀 동안 경매가 있을 예정인데 그게 끝날 때마다 한 번씩 들르겠습니다. 제가 이사로 있는 회사의 전시장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그런지 신경이 쓰이네요.”

도윤의 말에 염한성이 손을 홰홰 내저었다.

“아이고,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사 말로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아이가 일어나면 저희가 먼저 애를 데리고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날씨가 무척 춥습니다. 퇴원을 하더라도 당분간은 아이에게 무리한 외출을 시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럼 내일 또 찾아뵙겠습니다.”

염한성과 김미현은 도윤이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에 몹시 감격했다. 비록 한 다리 건넜다고는 해도 그는 장차 미래 그룹 오너 일가의 사위가 될 사람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일부러라도 인연을 만들어야 할 텐데, 아들의 일로 인해 우연찮게 안면을 트게 되었다. 그들로서는 오히려 아들이 갑자기 쓰러진 게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맘습니다.”

염한성은 병원 앞까지 그를 따라 나와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며 감사를 표시했다.

* * *

다음날 진행 된 첫날 경매에서 실내를 메운 사람들의 절반가량은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서양인들이었지만 중간 중간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지에서 온 게 분명한 동양인들도 눈에 띄었다. 경매 진행 상황이나 지켜보자는 생각에 경매장을 찾았던 도윤은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과 재회했다.

“이 박사님 안녕하세요? 우리 정말 오랜만에 뵙는 거죠?”

크리스틴 리히터. 독일 드라이바인 그룹의 총수인 토마스 리히터의 딸이자 케퍼 자동차 회사의 전무이기도 한 여자였다. 도윤은 설마 그녀가 이 경매에 참석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은근히 놀랐다. 사실 그로서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비밀 경매 때문에 그녀와의 재회가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그러고 보니 정말 오랜만이네요. 리히터 회장님도 잘 지내시죠?”

도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크리스틴이 선뜻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저희 아빠야 늘 잘 지내죠. 그렇잖아도 아빠가 가끔씩 이 박사님 얘기를 하시고는 했어요. 언제 다시 한 번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시던데요?”

“출장 감정이라면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즘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거든요.”

그가 미리 차단막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틴은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이 박사님 같은 유명한 감정가에게 의뢰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지요. 요즘 가장 유명하신 감정가시잖아요. 미국에서 신인 화가들의 전시회를 후원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저는 일정이 겹쳐서 못가 봤는데 들리는 평이 아주 좋더라고요.”

“오윤수와 장은서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화가들입니다. 아마 몇 년 안에 다시 개인전을 열 거예요. 그때는 꼭 초대장을 보낼 테니 참석해주십시오.”

“물론이죠. 그 약속 잊으면 안 돼요? 초대해주지 않으시면 저 화 낼 거예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이 여자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반가운 척을 하지? 예전에 만났던 그녀는 이렇게까지 그를 친근하게 대하지 않았다. 분명히 속셈이 있는 것 같은데…….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경매가 시작되었다. 이번 경매는 아리스 옥션에서 굉장히 애를 쓴 덕분에 고가의 명작들이 대거 경매 물품으로 등장했다. 크리스틴은 오전 경매에서 몇 개의 작품에 응찰했는데 눈치를 봐서는 따로 노리고 있는 작품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몇 번 팻말을 들어 올렸다가도 곧바로 포기하던 그녀가 리히텐슈타인의 ‘거리에 선 여자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작품이 나오자 집요하게 팻말을 들어 올리며 쫓아갔다.

“1억 1500만 위안 한 번, 1억 1500만 두 번, 1억 1500만 세 번. 네. 낙찰됐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께서 화끈하게 지갑을 여셨네요. 축하합니다.”

결국 그녀는 1억 1500만 위안이라는 거액에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낙찰 받았다. 1500만 유로, 원화로는 무려 190억에 달하는 거액을 한 작품에 몰아넣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처음부터 그 정도 액수를 각오했다는 뜻이다.

“원하던 그림을 손에 넣어서 기분 좋네요. 같이 점심이나 먹으로 가실래요? 제가 살게요.”

굳이 거절할 만한 이유도 없었던 터라 도윤은 결국 그녀와 점심을 함께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크리스틴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이달 25일에 혹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시지 않나요?”

도윤은 스테이크를 썰다가 나이프와 포크를 멈췄다. 눈치를 보니 처음부터 그걸 물으려고 자신에 접근했던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원하던 작품을 손에 넣어서 점심을 사겠다던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하여튼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아가씨네. 도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우디의 이브라힘 왕세제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고요. 영국의 프레디 해들리와 프랑스의 모리스 메시앙을 비롯해서 감정계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대가들이 대거 초청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 정도 인물들을 한 자리에 모을 정도로 큰 일을 꾸미고있다면 당연히 이 박사도 초대를 받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결과적으로 추측이 맞기는 했지만 저는 그 분들과 나란히 거론될 정도로 대단한 감정가가 아닙니다. 최근에 몇 가지 사건 때문에 잠시 신문 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아직 그런 대가들에게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요”

그의 말은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물론 도윤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작품을 보기만 하면 진위를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보다 뛰어난 감정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감정가의 감정 결과는 그것이 고객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빛이 난다. 그런 신뢰는 오랜 경력을 통해 쌓이기 마련인데, 아직 젊은 그에게는 그만한 경력이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혹시 그거 아세요? 미술계에서는 한 세기에 한두 명 정도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품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낼 줄 아는 천재적인 감정가가 등장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오래 전부터 미술품들을 수집해온 가문들은 대개 다 아는 사실이죠. 제가 보기에는 이 박사님이 바로 21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천재인 것 같아요.”

“과찬입니다. 그 분들과 함께 이브라힘의 왕세제의 초대를 받은 건 영광이지만…….”

도윤이 다시 한 번 자신을 낮추려고 하자 크리스틴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적어도 미술 애호가라면 얼마 전에 나온 아드리안 뉴먼의 책을 읽었을 거예요. ‘해바라기의 초상’ 말이에요. 그 책에 이 박사께서 교토의 허름한 골동품 점에 걸려 있던 고흐의 해바라기를 한 눈에 알아봤다는 얘기가 자세하게 나와 있더라고요. 그런 안목은 단지 운이 좋거나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도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유난히 매스컴을 많이 탔다. 트루쓰 앤 밸류에서의 활약은 그렇다 치더라도 부산의 고깃집 주인이 가지고 있던 홍도관을 발굴해낸 것을 비롯해서 루이스 체스맨과 고흐의 해바라기에 이르기까지. 덕분에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그의 활약이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언론에 소개되었다.

‘그나마 에스코바르의 동굴에 관한 이야기가 비밀에 붙여진 게 다행이군.’

만약 그 사실까지 공개되었더라면 지금쯤 도윤은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아마 그가 에스코바르의 동굴을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이 있는 그대로 밝혀질 경우 도윤은 지금처럼 비교적 점잖은 관심이 아니라 뜨겁고 폭력적인 섭외의 대상이 될 게 분명했다.

“개인적인 부탁이기는 하지만 리야드에 다녀오신 뒤에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저한테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이브라힘 왕세제가 그 많은 감정가들을 모아놓고 도대체 뭘 하려는지 몹시 궁금하거든요. 꼭 좀 부탁드려요”

크리스틴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이 아가씨가 어디서 순진한 척을? 도윤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리히터 씨도 행사의 목적을 모를 정도라면 이브라힘 왕세제께서 이번 일의 보안에 엄청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게 공개를 꺼리시는 일을 초대를 받은 제가 함부로 흘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독일의 세나 디트리히 씨도 초대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정 궁금하면 나중에 그 분한테 물어보시죠.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닙니까?”

“벌써 물어봤어요. 하지만 그 분도 입을 열 생각이 없으신 것 같더라고요. 감정가라는 사람들마다 왜 그렇게 입이 무거운지 모르겠어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누가 입이 가벼운 감정가에게 물건을 맡기겠습니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작품을 얻었는지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점은 리히터 씨도 별로 다르지 않을 텐데요?”

결국 크리스틴은 입을 삐죽이면서도 더 이상 그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도윤은 그녀가 결국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브라힘 왕세제가 감정가들을 불러 모아서 한 일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내려고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싸우려면 너희들끼리 싸워라. 애먼 감정가들을 끌어들이지 말고.’

크리스틴이 하도 이브라힘 왕세제의 초대에 관심을 보이니까, 도윤도 은근히 리야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졌다. 이건 꼭 참석해야 하겠는데……?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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