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이층에 있는 최 회장의 서재는 난방이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도윤은 방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을씨년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창이 북향이라서 그런지 해가 잘 들지 않기도 했지만, 생명의 촛불이 꺼져가는 주인의 분위기가 은연 중 서재에도 배어든 것 같았다.
“왜 창을 북쪽으로 내셨어요? 이왕이면 남쪽으로 하시지.”
도윤이 서재를 둘러보며 말하자 최 회장이 피식 웃었다.
“서재는 원래 북향이야. 독서와 사색은 정적인 작업이잖아. 음양이라는 게 다 제 역할이 있는 건데 잘 모르는 것들이 무조건 남향이면 다 좋은 줄 알지. 너 같으면 햇볕 짱짱한 대청마루에서 책이 읽히겠냐?”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햇빛이 강하면 그림이 쉽게 상하기도 하죠.”
말을 하면서도 도윤은 계속해서 최회장의 서재에 시선을 두었다. 웬만한 집 안방보다도 큰 서재의 한 쪽 면은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꽂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반대편 벽에는 도자기를 비롯한 골동품들이 들어찬 장식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늘어서 있었고, 탁 트인 창을 등지고 놓인 책상에서는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동서양의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만 두리번거리고 얼른 와서 어깨나 좀 주물러.”
이미 방 한가운데 놓인 소파에 앉아 있던 최 회장이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도윤은 얼른 그의 뒤로 다가가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형식적으로는 누가 봐도 안마였지만 최 회장의 양 어깨를 주무르는 그의 손을 통해 끊임없이 치료 능력이 스며들고 있었다.
“어, 시원하다. 몇 년만 일찍 네 안마를 받기 시작했어도 십 년은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회장님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하고 그러세요. 앞으로 십 년이 아니라 이십 년도 더 사실 수 있을 텐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내 몸을 잘 아는 네가 그런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의사들도 이미 포기한 병이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야.”
그게 맞기는 하지만······. 뭐라 할 말이 없어진 도윤은 묵묵히 어깨만 주물렀다. 그러기를 십 분 정도 했을까, 최 회장이 그의 손을 툭툭 두드리더니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그가 소파를 돌아 앞자리에 얌전히 앉자 최회장이 불쑥 말을 던졌다.
“사흘 전에 우리 첫째가 서라 그 아이를 따로 보자고 한 모양이다.”
“미래 건설 최병준 사장님이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가지고 있는 청파 갤러리 주식을 가족들한테 나눠서 물려주도록 설득해달라고 부탁한 모양이야. 그게 아니면 회사들끼리 주식 교환을 통해 서로의 순환 관계를 청산하자고 했다더군. 서라 그 녀석이 혼자 고민을 하다가 어제 아침에 나를 찾아왔더라. 큰아버지 뜻이 그러니 할아버지도 알고 계시라고 하더군.”
최 회장이 갑자기 상속 문제를 꺼내자 도윤은 속으로 움찔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최 회장이 오늘은 회사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식구들에게 엄명을 내렸다는 말을 최서라로부터 전해들었다. 그런데 왜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본인 입으로 하는 거지?
“그래서 결심을 하셨습니까?”
물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사위가 될 사람이라고 해도 아직은 남이다. 재계에서 평생을 닳고 닳은 최 회장이 그런 자신에게 선뜻 그룹의 행방을 가름할 복안을 선뜻 털어놓지는 않을 거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최회장은 도윤의 예상을 단번에 깼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너, 서라하고 결혼하면 청파 갤러리 일도 맡아서 할 수 있겠냐?”
“제가 말입니까?”
당황하는 바람에 조금 멍청한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최회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 어릴 때부터 화랑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충분히 보고 배웠을 것 아니냐?”
“그렇기는 한데, 청파와 현소는 규모 면에서 너무 차이가 큽니다. 화랑을 운영하는 방식도 다르고요. 저희는 신인 화가들을 발굴하거나 고서화를 감정하는 게 주된 사업이에요. 매년 기획 전시도 하지만 청파처럼 입장료로 수익을 거두려는 목적의 전시회하고는 다릅니다.”
“나도 알아. 너보고 청파 갤러리를 직접 운영하라는 게 아니야. 단지 서라하고 결혼하면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거다.”
“그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돕기야 하겠지만······.”
“됐다. 그 정도만 해 주면 돼. 그 이상 하려고 들면 오히려 내가 저승에서 호통을 질 거니까. 누가 뭐래도 청파는 수아에게서 서라한테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거기서 잠시 말을 끊은 최 회장이 숨이 차는지 소파 테이블 위에 있던 인터폰을 들었다. 잠시 후 집안일을 돕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차를 주전자 채로 가지고 올라와 테이블 위에 놓고 내려갔다. 찻물로 입을 가신 최 회장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청파가 가지고 있는 미래 건설 주식이 전체의 15%다. 미래 전자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또 각각 10% 정도 되지. 현재는 이 최인탁이가 청파의 오너나 마찬가지니까 두 회사 모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분이 25%는 된다는 뜻이야. 그 정도면 건설이든 전자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CEO를 갈아치울 수도 있어.”
도윤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찻잔을 비운 최 회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돌아가신 선친께서 피땀 흘려 일군 회사가 미래 건설이었다. 미래 전자는 내 작품이고. 청파 갤러리는 죽은 아내가 원한 회사였어. 그래서 장남에게는 미래 건설을 주고, 가장 규모가 큰 전자는 사업 수완이 뛰어난 둘째에게 맡기기로 한 거야. 청파 갤러리 대표에 수아를 임명한 것은 오직 그 아이만이 갤러리 소장품들을 예술작품으로 봤기 때문이야.”
“다른 분들은 그걸 예술 작품으로 보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첫째하고 둘째는 모두 여차하면 팔아치울 수 있는 재산으로 간주했어. 사업가로서는 탓할 수 없는 관점이지만 청파가 제 어미의 꿈과 소망이 담긴 곳이라는 걸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불효자식들인 셈이지. 그런데 난 죽어서도 빌어먹을 남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청파는 물론이고 거기 있는 미술품들을 절대로 팔지 않을 거네.”
“최수아 관장님하고 서라 씨는 청파를 팔지 않고 잘 유지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청파를 서라에게 넘기려는 것도 그걸 믿기 때문이야. 수아는 자식이 없으니까 그 아이가 가진 주식도 언젠가는 결국 서라에게 넘어갈 거야. 이미 나하고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어.”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문제는 서라가 둘째인 병호의 딸이라는 거야. 그리고 병호는 내가 죽은 뒤에 청파 갤러리를 상장 회사로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도윤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굳었다. 장남인 최병준이 아니라 최병호 사장이 청파 갤러리를 상장 회사로 만들고 싶어 한다고? 그건 정말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제야 최병준 사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최서라에게 그런 말을 한 건지 이해됐다.
처음부터 미래 그룹 계열사들 간의 주식을 상호 교환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지분 비율만 같지 주식의 가치가 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미래 전자만 해도 주식 시세가 건설보다 훨씬 비싸다. 당연히 최병호 사장이 건설과 전자의 주식을 맞바꾸자는 거래에 응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상장만 되지 않았다 뿐이지 청파 갤러리의 주식이 지닌 가치는 전자보다도 높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그걸 서로 바꾼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협상을 통해 교환 비율을 정하고 남은 주식은 시장에 내다 판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얘기다. 일단 청파 갤러리의 주식은 시장 거래가 불가능하다. 비상장 주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만 몇 퍼센트라도 전자나 건설의 주식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 주식 값이 폭락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근본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라는 뜻이다.
‘최병준 사장이 그런 간단한 계산도 못하고서 주식 맞교환을 제안했을 리가 없어. 그럼 그건 처음부터 성사되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던져본 얘기에 불과하다는 뜻이야.’
그럼 남은 것은 최 회장이 가진 40%의 주식을 최병준과 최병호, 그리고 최수아와 최서라가 모두 10%씩 나눠받는 것이다. 그럴 경우 최수아와 최서라가 지닌 주식의 지분은 현재의 30퍼센트에서 50퍼센트까지 올라갈 수 있다. 문제는 최병준과 최병호가 청파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다른 계열사들을 설득할 경우 동일 비율의 의사결정권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거기서 최병호 사장이 딸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서라가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무리 서라가 청파 갤러리를 아낀다고 해도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요구인데? 더구나 그럴 경우 최병준 사장이 옆에서 자꾸 바람을 넣을 게 분명해.’
청파 갤러리가 상장될 경우 전자가 가지고 있는 지분을 팔거나 담보로 맡겨 은행 대출을 받는 게 가능하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동원 가능한 자금의 액수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이득일 수밖에 없었다. 최병준은 동생의 그런 생각을 미리 읽고 최서라를 불러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기업가가 자기 회사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게 나쁜 건 아냐. 다만 자식들의 그런 욕심이 내 소망과 충돌한다는 게 문제지.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제안할 게 있어.”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알아보니까 자네도 가지고 있는 재산이 제법 되더군. 비에코의 대주주일 뿐 아니라 얼마 전에는 인도에 있는 데바 인스트루먼트라는 회사에도 큰돈을 투자한 걸로 알고 있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그 자금력을 이용해서 서라하고 청파를 좀 지켜줄 수 있겠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입니까?”
최인탁 회장은 도윤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 말대로 따르면 미래 그룹의 구조에 큰 변화가 초래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얘기를 모두 듣고 난 도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씀하신 내용은 심사숙고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대답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서라 씨와 청파 갤러리는 반드시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건 약속드리죠.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킬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언제까지 답을 해줄 수 있겠나?”
“며칠 내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와야 합니다. 대답은 그 뒤에 드리겠습니다.”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게. 요즘은 하루하루 죽은 마누라 볼 날이 가까워지는 것 같아.”
“알겠습니다. 결혼식 전까지는 저도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도윤은 최 회장을 모시고 다시 거실로 내려갔다. 두 사람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독대를 한 탓인지 그를 향해 쏟아지는 다른 일가친척들의 눈빛이 매서웠다. 도윤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보나마나 오늘부터 나도 저 사람들의 경계 대상이 되겠군.
* * *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모처럼 석훈과 함께 가기로 했다. 녀석은 이제 현소 화랑이 아니라 새로 설립한 ‘서윤 문화 재단’의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맡은 업무도 보안 팀이 아니라 앞으로 선정될 재단 장학생들을 지원하는 지원과 소속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잠시 예전의 개인 경호원으로 복귀시키기로 했다.
사실 재단 장학생이라고 해봤자 현재는 미국의 오윤수와 장은서, 오주현과 작년에 서울로 이사 온 야구 영재 현진우를 포함해 네 명뿐이었다. 말러의 능력을 전해 받은 염우진이 다섯 번째 장학생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아직은 우진의 부모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석훈이 맡은 보직이 아직은 한가한 편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도윤은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에티오피아에서 죽은 이후로 한동안 출장 갈 때 굳이 석훈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더 이상 신변에 큰 위협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브라힘 왕세제의 평소 성향을 생각할 때, 이번에는 혹시 모를 위험이나 위협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석훈을 다시금 개인 경호원으로 호출했다.
“설마 이번에도 총알이 막 날아다닌다거나 하지는 않겠죠?”
비행기 자리에 앉자마자 석훈이 은근히 물었다. 녀석도 지난 설에 조민아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조만간 양가 부모님이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 날짜를 정할 것이라고 했는데, 아마 올해를 넘기지 않고 가을쯤에는 식을 올릴 눈치였다. 그래서 그런지 석훈도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제법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 그리고 솔직히 너는 총알을 맞아도 조금 다치는 정도에 불과하잖아? 다치더라도 내가 치료해줄 수 있고. 근데도 새삼 걱정이 돼?”
“에이, 그건 권총 얘기죠. 소총에 맞으면 저도 위험하다고요. 더구나 로켓포 같은 데 직격이라도 당하면 그냥 끝장이라고요. 내가 무슨 아이언맨이나 헐크는 아니잖아요.”
“걱정 마라. 우리만 부른 게 아니라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감정가들을 다 오라고 한 모양이니까. 사우디아라비아가 무슨 테러 국가는 아니잖아?”
“하지만 이브라힘 왕세제만 놓고 보면 솔직히 테러범이나 다름없죠. 다니엘 로스차일드를 영국 한 복판에서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잖아요? 로켓포도 동원했고요.”
“너무 긴장을 풀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어. 이브라힘 왕세제가 유명한 감정가들을 불러서 행사를 연다는 사실이 이미 여기저기 다 알려졌잖아? 그 사람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왕세제도 입장이 난감해질 수밖에 없어. 차기 국왕 자리를 물려받으려면 이브라힘도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까 대놓고 막가지는 않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석훈을 데리고 가는 것이기도 했다.
비행기가 리야드의 킹 칼리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은 압둘의 부하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도윤과 석훈은 그들이 준비한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날씨가 쾌적한데요? 엄청 더울 줄 알았는데.”
휴대폰 앱으로 확인한 현지 기온은 30도가 채 되지 않았다. 석훈이 뜻밖이라는 듯이 얘기하자 도윤이 피식 웃었다.
“아직 2월이잖아. 여기 더위는 4월부터야. 5월만 돼도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어가니까 그때가 되면 외국인들은 에어컨이 없이는 밤에 잠자기도 힘들 거다.”
두 사람이 탄 차가 도착한 곳은 호텔이 아니라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커다란 저택이었다. 이브라힘 왕세제는 이번에 초대한 감정가들을 모두 호텔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머물게 했다. 이미 이메일을 통해 통보받은 사실이었지만 다소 이례적인 환대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히려 도윤으로 하여금 석훈을 대동하게 만들었다.
“앗쌀라무 알라이쿰(평화가 당신에게 있기를). 다시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이브라힘의 비서실장인 압둘이 직접 나서서 두 사람을 맞아주었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일 때문인지 그는 진심으로 환영하는 표정으로 도윤에게 악수를 청했다.
“와 알라이쿠뭇쌀람(당신에게도 평화가). 저도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도윤도 환한 웃음으로 그의 환대에 감사를 표시했다.
압둘은 직접 앞장서서 도윤과 석훈을 그들의 방으로 안내했다. 환기와 채광이 잘 되는 넓고 깨끗한 방이었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방 안의 TV에서 외국 방송을 보는 게 가능했고 인터넷도 잘 터졌다.
“집주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브라힘 왕세제께서는 댁에 계신가요?”
도윤의 물음에 압둘이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인사는 나중에 다른 분들과 함께 드리시죠. 초대된 손님들 가운데 아직 두 분이 도착하지 않았거든요. 손님들이 다 모이면 저녁에 환영 만찬이 있을 테니 왕세제 저하는 그때 함께 뵙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만찬 시간이 되면 직원들이 모시러 올 겁니다.”
돌아서려는 압둘을 도윤이 다시 불러 세웠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행사 내용을 알려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저희를 불렀는지 궁금합니다.”
그러자 압둘이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도착하신 분들도 하나같이 그걸 물어보시더군요. 행사 내용은 만찬 석상에서 왕세제께서 직접 밝히실 겁니다. 죄송하지만 그 전까지는 함구하라는 엄명이 있어서 지금은 말씀드리기 곤란하네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궁금증을 풀 수 있을 테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거야 원, 무슨 깜짝쇼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결국 도윤과 석훈은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브라힘 왕세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도윤이 사진이나 방송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다른 감정가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감정가의 한 사람으로서 도윤에게는 무척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