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최서라가 루이스 체스맨 세트로부터 받은 능력은 상대방의 다음 한 수를 알아채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능력을 얻은 뒤에도 그녀는 함부로 남의 속셈을 짐작하려 들지 않았다. 아직은 능력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해서 한 번씩 사용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정신을 집중해야 할 뿐 아니라, 정신적 피로감이 워낙 심해서 연달아 여러 번 쓰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큰아버지인 최병준과 만났을 때, 그 능력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집에 돌아온 뒤에는 축 늘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큰아버지의 제안 뒤에 감춰진 속셈을 알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아빠는 청파 갤러리가 상장 회사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세요?”
다음날, 그녀는 일부러 아버지인 최병호를 찾아가 은근슬쩍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새삼 능력을 쓸 필요도 없이 솔직했지만, 동시에 실망스러웠다.
“너도 알겠지만 청파가 가지고 있는 자산의 규모는 건설보다 커. 그 정도 규모의 회사를 계속 비상장으로 놓아두는 건 낭비라고 생각한다. 시장이든 기업이든 고인 연못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이어야 해. 그런데 지금의 청파는 자산을 보관하는 거대한 창고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청파는 미술관이잖아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
“청파도 엄연히 회사다. 당연히 이윤을 추구해야지. 그게 지금 네 고모인 수아가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 정도 규모의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돼.”
“적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꼭 다른 회사처럼 이윤만을 추구할 필요가 있나요? 그건 오히려 미술관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청파가 보유하고 있는 건물과 미술품들이 다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니? 내 할아버지가 계열사 주식을 팔아서 마련한 자금을 거기다 쏟아 부은 거야. 그 뒤로도 작품 구입비를 비롯한 미술관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건설과 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로부터 흘러들어간 돈이 적지 않아. 이제는 다른 회사들도 청파 덕을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제야 최서라는 아버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미래 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청파 갤러리 주식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할 생각이세요?”
“꼭 팔 필요는 없지. 하지만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청파가 상장 회사가 되는 게 낫다. 청파가 작은 미술관이면 나도 굳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미술관치고는 규모가 너무 크지 않냐? 회사는 영리 집단이지 자선 단체가 아니야.”
그 시점에서 최서라는 ‘한 수 내다보기’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최병호가 궁극적으로 청파를 정리해서 해체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하나뿐인 자식인 최서라가 청파 갤러리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미래 전자를 이어받아 경영해줄 것을 더 원하고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청파는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인 최병호를 사랑했고, 최병호 역시 최서라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는 부녀지간이라고 해도 미래에 대한 전망이 같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본 최병호가 은근히 다른 말을 꺼냈다.
“정히 화랑과 관계된 일을 하고 싶으면 현소도 있지 않냐? 언젠가는 이 박사가 그곳을 이어받을 테니 굳이 너까지 따로 화랑을 운영할 필요가 있겠니? 너는 아빠 뒤를 이어서 미래 전자 일을 보면서 틈틈이 남편 일을 도우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왜? 현소는 작아서 그래? 꼭 화랑이 커야지만 일하는 재미가 있는 건 아니잖니?”
최서라는 아버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속셈을 드러내자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녀는 고민 끝에 할아버지인 최인탁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갔다. 그녀의 말을 들은 최인탁은 한참동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더니 불쑥 물었다.
“너는 어떠냐? 청파를 계속 유지하고 싶으니, 아니면 네 아버지 뜻을 따랐으면 좋겠니?”
“저는 당연히 청파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아빠하고 사이가 나빠질까 봐 걱정이에요. 큰아버지하고도 갈등이 생길 게 뻔하고요.”
“회사든 나라든 집단을 이끈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해법이라는 건 원래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어떤 결정을 내리든 누군가는 투덜대며 불만을 통하기 마련이지. 그럴 때마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다. 그게 언제나 정답일 수는 없지만 최소한 후회는 덜 남거든.”
“제 생각대로 하라는 말씀인가요?”
“왜? 자신이 없냐?”
“자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도 결정을 하기 전에 최대한 다른 사람 의견을 들어보는 게 낫지 않나요? 제 생각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거야 시간이 충분할 때나 할 수 있는 소리지. 살다 보면 그럴 여유가 없을 때가 많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제 이익에 따라 조언을 하기 마련이야. 세상에 겉으로는 똑똑한 척 하면서 사실은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고 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인상을 쓰던 최 회장이 문득 말을 멈추더니 넌지시 물었다.
“이 서방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해보지 그러냐? 그 녀석이 제법 똑똑하잖니? 누구보다 너를 위한 조언을 할 사람이기도 하고.”
이 서방이라는 말에 최서라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한테 벌써부터 우리 집안일을 묻기는 좀 그래요. 그리고 청파는 할머니가 남기신 유산이나 다름없어요. 저는 제 힘으로 그곳을 지켜내고 있어요.”
“물론 네 힘으로 그곳을 지켜야지. 하지만 남의 도움을 받은 걸 너무 꺼리지는 마라. 중요한 건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하는 게 아니야. 네가 그걸 주도할 수 있느냐는 거지.”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최서라는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청파는 구멍가게가 아니다. 설사 그녀가 나중에 그곳을 책임지게 되더라도 어차피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는 건 무리일 뿐 아니라 올바른 방법도 아니다. 그녀의 표정을 흘낏 살핀 최 회장이 말을 덧붙였다.
“청파든 미래전자든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아야 돼. 이 서방은 분명히 좋은 조력자가 될 거다. 네가 직접 묻기 힘들면 내가 한 번 불러서 얘기해 보마.”
최 회장은 손녀에게 앞으로 그녀가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최서라는 그 가운데 두어 가지를 선택해서 내용을 일부 수정했고, 할아버지와의 논의를 통해 실행 가능한 방법을 모색했다.
설날 오전, 최 회장은 인사를 드리러 찾아온 도윤을 끌고 자기 서재에 올라가 그의 의사를 물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도윤은 선뜻 자기 생각을 펼치는 대신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최 회장은 물론이고 최서라 역시 아직은 그가 어떤 아이디어를 들고 나올지 알지 못했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온 다음에 보자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 * *
이브라힘 왕세제가 감정을 부탁한 물건들은 대부분 이슬람과 유럽의 유물이거나 미술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건너온 것들도 사분의 일 가량 섞여 있었는데, 그 유물들에 대한 감정은 일본의 나카지마 유토와 도윤이 맡기로 했다. 다른 감정가들 가운데 아시아 유물에 대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전부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 같군요.”
도윤은 고대 중국의 것이 분명한 여러 가지 장신구와 도자기 등을 살피면서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나카지마도 고개를 끄덕여 그 의견에 동의를 표시했다.
“전부 도굴해서 파낸 게 분명합니다. 중국 사람들다운 짓거리지요.”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 말이기는 했지만 말 속에 중국인들에 대한 멸시와 편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중국 사람들다운 짓거리가 도굴이면 일본인다운 짓거리는 그럼 뭔데?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거?
사실 중국 황제나 귀족들의 무덤에 대한 도굴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래가 오래 되었고, 그로 인한 피해 역시 막심했다. 도윤이 발굴 작업에 직접 참가했던 건릉은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였고, 건릉을 제외하면 당송대의 황제 무덤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도굴되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명대와 청대의 황제 무덤들도 사정이 비슷했는데, 일부 황제와 황후들의 시체는 도굴꾼들에 의해 거의 해체되다시피 하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이천년이 넘어서도 피부의 탄력이 유지될 정도로 잘 보존된 시체가 발굴된 것으로 유명한 마왕퇴조차 바로 옆에 안치된 다른 무덤들은 이미 도굴꾼들이 굴을 뚫어 내부를 털어간 흔적이 역력했던 것이다.
“이게 설마 마왕퇴에서 출토된 건 아니겠지요?”
도윤이 여러 부장품들과 함께 진열된 비단 두루마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색이 바라기는 했지만 아직도 글자를 읽는 게 가능할 정도로 선명한 글씨가 가득 적힌 족자였다. 나카지마가 두루마리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상태가 너무 좋군요. 그럼 기껏해야 몇 백 년 전의 물건일 겁니다. 마왕퇴에서도 비단에 쓰인 도덕경과 주역이 발굴되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예외적인 경우죠.”
보통 종이는 천 년, 비단은 백 년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종이에 쓰거나 그린 서화는 오래가는 반면에 동물성 단백질인 비단은 쉽게 상한다는 뜻이다. 이천년 전의 무덤인 마왕퇴에서 비단에 쓴 백서(帛書)가 나온 것은 시체가 보존된 것과 비슷한 이유가 낳은 희귀한 결과일 뿐이지 일반적으로 비단은 기껏해야 수백 년을 버티지 못한다.
그때 두 사람의 뒤에서 문득 압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두루마리는 당나라 때 귀족의 무덤에서 나온 겁니다. 마왕퇴 백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 년은 족히 넘은 물건이지요. 혹시 내용을 해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뒤를 돌아보자 압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서 있었다.
“이게 정말 당나라 때 물건이라는 말입니까? 하지만 비단으로 만든 것은…….”
나카지마가 반론을 제시하려는데 압둘이 그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당시 그 무덤을 파헤쳤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관이 텅 비어 있었다더군요. 대신 몇 가지 부장품들과 함께 그 족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걸 저희에게 넘긴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불로장생이나 신선술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하던데 혹시 관심이 있습니까?”
도윤은 그제야 다시 한 번 족자의 가장 오른쪽에 쓰인 ‘본명용호결(本命龍虎訣)’이라는 글자에 주목했다. 하지만 제목일 것이 분명한 그 글자들을 보는 순간 재빨리 두루마리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당나라 때는 단약을 제조해 먹음으로써 불로장생을 꾀하는 외단술이 성행했는데, 이때 용호는 각각 수은과 납을 상징했다.
‘설사 저 글속에 선약을 만드는 단약 제조법이 적혔다고 해도 그걸 그대로 따라했다가는 큰일 나지. 잘해 봤자 중금속 중독에 걸릴 테니까.’
실제로 당나라 때는 도사들이 조제해준 단약을 먹은 황제들이 중금속 중독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경우가 많았다. 심할 때는 약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황제가 급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약을 지어준 도사들이 떼죽음을 당하고는 했다.
“이브라힘 왕세제께서도 그 족자의 내용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으십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아직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내용을 영어나 아랍어로 해석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왕세제께서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압둘이 은근히 강한 부탁의 뜻을 드러냈지만 도윤은 고개를 저어 사양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도교 쪽으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요. 아쉽지만 능력 밖이군요.”
섣불리 내용을 번역해줬다가 왕세제가 그대로 따라하면 나만 곤욕을 치를 텐데? 도윤이 물러서는 기미를 보이자 나카지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나섰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내용이 그리 길지 않으니 이삼일이면 충분히 번역이 가능할 겁니다. 마침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하하하.”
자못 호탕하게 웃는 나카지마를 향해 압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고마운 말씀이군요. 해석을 잘 해주시면 왕세제께서 따로 보답할 겁니다. 족자의 내용은 테이블에 비치된 노트북에 사진 파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읽기 편하시도록 해상도를 조절해 놓았으니까 아마 그걸 이용하시면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완벽하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잘 번역해 놓겠습니다.”
나카지마는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게 분명했다. 도윤은 어딘지 학자답지 않은 그의 모습에 쓴웃음을 머금으면서도 방금 압둘이 한 말에 주목했다. 두루마리의 사진이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다고?
그는 압둘이 잠시 방을 나간 틈을 타서 얼른 테이블에 비치된 노트북을 켰다. 거기서 ‘본명용호결’뿐만이 아니라 스피리돈 브레토스라는 그리스 수도사가 작성한 양피지의 사진도 저장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잘 됐네. 그렇잖아도 양피지를 유리 상자에서 꺼내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감정가들이나 압둘의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계속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 * *
압둘이 연회장을 떠난 뒤로 도윤은 노트북에 저장된 브레토스의 회고록 내용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데 회고록을 읽는 그의 얼굴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굳어졌다.
‘이거, 과거의 링커가 남긴 기록이잖아? 브레토스라는 수도사가 링커였단 말이야?’
브레토스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겪었던 일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이것은 신의 축복인가 아니면 악마의 저주인가? 나는 두렵다. 혹시라도 누군가 내가 가진 신비한 능력을 알아챌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평생 단 한 번도 이 비밀을 남에게 얘기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죽을 때가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이 글을 적는다. ……”
그는 어떤 물건들은 스스로 빛을 내기도 하며, 그 가운데 일부는 붉은 빛을 내뿜기도 한다고 적었다. 그 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은 브레토스가 수도원에서 기도를 하던 도중에 갑자기 생겼는데, 그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심정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붉은 빛을 내뿜는 물건들에는 기묘한 능력이 담겨 있다. 나는 그것을 꺼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줄 수 있는데, 그러면 그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물의 흐름을 바꾸거나 벽을 꿰뚫고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대부분은 결국 악마에 홀렸다는 죄목으로 처형됐다. 내가 가진 힘은 정말 악마의 저주란 말인가?”
처음에는 신기한 마음에 유물의 주인이 발견될 때마다 그들에게 능력을 옮겨주었다. 그러나 브레토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었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죽었다는데서 오는 죄책감, 수도사인 그가 신이 허락하지 않은 이상한 능력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계속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기술한 내용을 보니까 자신이 가진 능력의 정체를 확실히 알지는 못했던 모양이군. 명색이 수도사니 그걸 누구에게 물어보기도 어려웠을 테고. 어떤 의미에서는 불쌍한 사람이네.’
속으로 혀를 차며 회고록을 읽던 도윤의 눈이 어느 한 곳에서 멈췄다.
“…하나님은 나에게 두 가지 능력을 주었다. 하나는 붉은 빛이 나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게 옮겨주는 것이다.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둔 나는 이 양피지에 내가 발견한 능력을 옮겨놓는다. 만약 나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자가 또 있다면 그에게 부탁하노니 제발 내가 악마에게 홀리지 않았음을 밝혀서 지금 이 순간까지 나를 괴롭히는…….”
뭐? 양피지를 읽던 그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 했다.
‘유물의 주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물에도 능력을 옮겨줄 수 있다고? 그리고 능력이 잠재된 유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물론 도윤도 능력이 담긴 유물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런 물건에서는 브레토스가 봤던 것처럼 붉은 빛이 흘러나오니까. 하지만 브레토스는 분명히 그런 물건이 ‘어디 있는지’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단순히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을 볼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게다가 사람이 아닌 사물에도 능력을 옮길 수 있는 링커가 존재하리라고는 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혹시 브레토스가 자신의 그런 능력을 양피지에 남긴 건 아닐까?
‘이 양피지에 담긴 능력은 무조건 내가 전해 받아야 하겠는데?’
그가 어떻게 하면 티 안 나게 능력을 전해 받을 수 있을지를 궁리하고 있을 때 잠시 사라졌던 압둘이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그의 뒤로 이브라힘 왕세제의 모습이 보였다. 어제 환영 만찬 이후로 보이지 않던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