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당신 링커였어?
하마터면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하지만 이브라힘은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자제력을 발휘해서 혀끝에 걸렸던 단어를 꿀꺽 삼킬 수 있었다.
“붉은 빛이 흘러나오는 유물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저도 모르게 말투가 딱딱해졌다. 메시앙은 이브라힘이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걸 찾는 거였습니까? 드물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몇 번 본 적이 있다고요?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흐음, 종류는 다양했습니다. 오래 된 그림이나 골동품, 혹은 투박한 가구나 책 같은 것들이었지요. 처음 본 게 열네 살 때였는데 그 뒤로 지금까지 대여섯 번 정도 됩니다.”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까? 멀쩡한 물건들에서 붉은 빛이 나는 게 말입니다.”
“약간 이상했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물건도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고? 그게 말이 돼? 이브라힘은 메시앙을 똑바로 쳐다봤다.
“어릴 때부터 담이 굉장히 컸었나 보군요? 저라면 기절할 것처럼 놀랐을 것 같은데요.”
“그보다 훨씬 어렸을 때 이미 세상에는 전등이나 횃불이 아닌데도 스스로 빛을 내는 물건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은은하고 성스러운 후광이 물건 위에 머무른 듯한 느낌? 그 빛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이상하기도 했고요.”
“아우라를 말하는군요. 그걸 처음 본 게 훨씬 어렸을 때라고요?”
“네. 열 살 생일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정말 신기했죠. 겁도 났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해도 저 말고는 아무도 그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당시에는 한동안 내가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이브라힘은 묵묵히 메시앙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붉은 빛이 나는 유물을 처음 봤을 때는 이미 물건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를 볼 수 있는 게 나만이 가진 신비한 능력이라는 걸 받아들인 상태였지요. 붉은 색의 아우라가 있다는 게 다소 신기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더 이상 두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궁금하기는 했죠. 왜 어떤 아우라는 색이 붉을까 하는 게 말이지요.”
메시앙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닌 것 같았다. 이브라힘의 거세게 뛰려는 가슴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서재 한 가운데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군요. 괜찮으시면 잠시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커피라도 한 잔 함께 마시면서 말입니다.”
“저는 에스프레소가 좋겠습니다. 미국식 묽은 커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브라힘이 책상 위에 있던 전화기를 들어 에스프레소 두 잔을 시켰다. 잠시 후, 비서가 들어와 소파 테이블 위에 커피를 놓고 나가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붉은 빛이 나는 유물이 뭘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제가 읽은 자료가 맞는다면 아마 특별한 능력을 담고 있는 물건일 겁니다. 맞습니까?”
이브라힘이 눈을 찌푸렸다.
“방금 자료에서 읽었다고 했습니까? 본인이 그 빛의 정체를 직접 확인한 게 아니고요?”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을 봤다고 하니까 제가 링커라고 생각하셨나 보군요.”
이브라힘이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메시앙의 눈을 지그시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링커를 아십니까?”
살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메시앙은 태연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렸을 때부터 몹시 궁금했거든요. 제가 가진 능력의 정체가 도대체 무언지. 그래서 대학에 들어간 뒤부터 본격적으로 옛날 문서나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꽤 힘든 작업이기는 했지만 소득이 있었습니다. 중세 이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이름으로 불려온 특별한 존재가 있었더군요. 링커, 커넥터, 키웅가, 카팔라, 무칼라나, 오허스 등등 말입니다.”
이브라힘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침묵이 조금 더 길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대놓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링커입니까?”
“누구요? 저 말입니까? 하하하, 아쉽지만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사물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를 보는 것뿐이지요. 책에 나오는 링커들처럼 물건에 깃든 능력을 사람이나 사물에 옮겨주는 건 불가능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오직 링커만이 능력이 잠재된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을 볼 수 있다고 하던데요?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바로 저니까요. 어떤 책이나 문서를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링커가 붉은 빛을 볼 수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붉은 빛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링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요. 지금 나일라 미술관에서 근무 중인 이탈리아인 감정가는 붉은 아우라를 보지 못하는가 보죠? 이름이 리치오 폴리니라고 했던가요?”
만약 지금 이브라힘의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면 곧바로 메시앙에게 겨눴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살의를 눌렀다.
“리치오 폴라니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트루쓰 앤 밸류를 보고 폴리니와 이도윤 박사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걸 느낀 사람이 왕세제나 저만은 아닐 겁니다.”
“TV 쇼를 보고 그 두 사람에게 당신 같은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다는 겁니까?”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천재들이 존재하지만 어떤 분야는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감정사로서의 재능은 웬만큼 세월의 두께가 쌓이기 전에는 개화하지 못하는 법이죠. 그런데 두 사람 모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안목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갖추려면 저처럼 특별한 눈을 타고 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폴리니는 몰라도 이도윤 박사는 경우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그의 감정 능력은 상당 부분 동서양의 온갖 분야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트루쓰 앤 밸류를 직접 봤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메시앙이 피식 웃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제가 삼십대 초반에 감정가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 영국의 해들리는 이미 오십이 넘었습니다. 당시에 우연히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해들리가 제게 묻더군요. 혹시 귀신들린 눈, 그러니까 신안(神眼)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요.”
“그 사람이 당신을 링커로 의심했다는 뜻입니까? 그도 링커에 대해 압니까?”
“아닙니다. 그는 링커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 같은 감정가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존재하지요. 어떤 이들은 신안을 타고나기 때문에 특별한 공부나 훈련을 쌓지 않아도 진품과 위작을 귀신처럼 가려낼 수 있다고요. 그는 말 그대로 제가 신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의심했습니다.”
“당신이 신안을 소유한 게 맞으니, 해들러는 정당한 의심을 한 셈이었군요.”
“그렇습니다. 물론 그 당시 저는 펄쩍 뛰며 부정했지만요.”
이번에는 이브라힘이 커피를 마셨다. 평소에 에스프레소를 좋아했는데, 오늘 따라 입맛이 너무 썼다. 커피 잔을 내려놓은 그가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메시앙 씨가 보기에는 이도윤 박사가 링커일 것 같습니까?”
궁금했다. 귀신들린 눈깔을 가지고 있다는 이 작자는 이도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메시앙은 그의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 말고도 신안을 가진 사람을 네 명 발견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아쉽게도 감정가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요. 제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붉은 아우라를 보지 못하니 링커도 아니고요. 나머지 세 명은 모두 현직 감정가로 활동 중입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왕세제 밑에서 일하고 있는 리치오 폴리니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죠.”
“다른 두 명은 누구입니까? 그들 가운데 링커가 있습니까?”
“둘 다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스페인의 알베르토 고메스와 이도윤 박사 말입니다.”
“고메스 씨가 신안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붉은 아우라는 보지 못합니다. 그 점은 폴리니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가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왕세제께서 굳이 다른 감정가를 부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도윤 박사는요?”
“그는 아마 링커일 겁니다.”
이브라힘은 메시앙을 노려보며 표정을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엷은 미소를 머금은 메시앙은 그의 눈빛을 똑바로 받아내면서도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이 박사가 링커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브라힘의 목소리에 다시 살기가 맺혔지만 메시앙의 입가에 맺힌 웃음기는 여전했다.
“솔직히 감정 첫날 브레토스의 회고록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왕세제께서 말씀하신 특별한 유물이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챘습니다.”
“근데 왜 그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았습니까?”
“저도 묻고 싶군요. 왕세제게서는 왜 처음부터 자신이 찾는 물건이 붉은 빛이 흘러나오는 물건, 혹은 특별한 능력이 담긴 유물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이브라힘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걸 어떻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밝힐 수 있다는 말인가? 링커가 아닌 이상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할 게 뻔할 뿐더러 자칫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만 받을 텐데.
그는 링커라면 당연히 그 빛을 볼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이 특별한 유물을 언급했을 때 표정이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숨은 링커가 보상을 얻기 위해 스스로 사실을 밝히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 도청과 몰카를 통해서라도 그를 찾아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메시앙이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할 말을 선뜻 꺼내기 어려우셨겠지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로서는 왕세제께서 찾는 특별한 유물이 정말로 붉은 아우라를 내뿜는 것을 가리키는 게 맞는지, 어디까지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지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웠으니까요. 게다가…….”
“혹시 당신 말고도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아우라를 볼 수 있는 감정가가 또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건 아마 근거 있는 걱정이었겠지요?”
“맞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이도윤 박사를 의심했지요. 그래서 며칠 동안 그를 관찰한 다음에 어찌할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앙은 그 대목에서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가 커피 잔을 내려놓은 다음에 한 얘기가 이브라힘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감정을 시작한 둘째 날, 연회장에 들어갔더니 프레토스의 양피지에서 흘러나오던 붉은 아우라가 사라졌더군요. 그 전날 제가 연회장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분명히 붉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밤사이에 양피지가 평범한 유물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브라힘은 저도 모르게 소파의 팔걸이를 꽉 움켜잡았다.
“확실합니까?”
메시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는 더 이상 웃음기가 걸려 있지 않았다.
“확실합니다. 능력을 담은 물건에서 붉은 아우라가 사라졌다는 건 누군가 거기 담긴 능력을 다른 사람이나 사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링커가 있다는 뜻이지요. 물론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나 고메스는 링커가 아닙니다.”
이브라힘의 서재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 * *
리치오 폴리니가 나일라 아트 갤러리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만으로 2년이 넘었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나일라 아트 갤러리는 좋은 직장이었다. 보수는 이탈리아에서 근무할 때에 비해 세 배 이상 많았고, 업무량도 부담이 전혀 없었다. 술을 마시거나 유흥을 즐기기가 어렵다는 게 단점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돈은 잘 모였다.
“여기서 5년 정도 버틸 생각이야. 그러면 나중에 이탈리아로 돌아가더라도 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거든. 귀국하면 공부를 더 해서 학위를 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도윤에게 전화가 왔을 때도 그렇게 말했다. 그가 왕세제의 초대를 받고 이브라힘의 개인 소장품들을 감정한다는 얘기는 들었을 때는 은근히 부러웠다. 하지만 도윤과 함께 초대된 다른 감정가들의 면면을 전해 듣고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감정이 끝났으면 구경이나 다니지 왜 하필 이리로 온다는 거야? 아무리 직업이 감정가라고는 하지만 그림 보는 게 지겹지도 않아?”
도윤이 사흘 동안 주어진 자유 관광 시간에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나일라 아트 갤러리를 구경하러 오겠다고 했을 때는 기가 막히기도 했다. 미술품이 미친 인간 같으니. 하긴 그 정도로 그림이 좋으니 저 나이에 벌써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물로 성장한 거겠지. 처음 도윤이 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가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도윤 일행이 온다고 말한 시간을 한 시간 가량 남겨두었을 때였다. 갑자기 갤러리에 배치된 경비 인원이 두 배 이상 늘었다. 게다가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곳 경비원들이 평소에도 권총을 휴대하고 다니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소총까지 들고 있는 경우는 처음 봤다.
게다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엿들은 경비 대장의 무전 교신 내용이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네. 갤러리에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도로까지 인원을 배치했습니다. 이 박사와 그의 일행을 놓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 태세를 갖추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폴리니는 이곳에서 2년 넘게 근무하면서 틈틈이 아랍어를 배웠다. 다른 직원들 가운데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주 능숙한 편은 아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는 이르렀다.
‘이 박사를 감시한다고?’
왜? 그는 왕세제의 초대를 받아서 온 귀한 손님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의 경비원들이 도윤을 감시할 이유가 전혀 없어보였다. 더구나 갑작스럽게 인원까지 증가하면서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건 더더욱 이상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도윤이 석훈과 함께 나일라 아트 갤러리에 도착했다. 폴리니는 가장 먼저 입구로 나가 그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아주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격하게 도윤을 포옹하며 마치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떠들었다.
“이 박사!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다니 얼마나 반가운 줄 모르겠네. 왕세제 저택에서 뭔가를 감정했다면서? 일은 잘 끝난 거야?”
도윤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폴리니가 이탈리아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함께 대회에 참가했던 인연 때문에 도윤이 이탈리아어를 잘 한다는 사실을 폴리니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물론이고 그 뒤로 간간히 통화할 때도 두 사람은 줄곧 영어로만 대화했다. 그런데 폴리니가 이번에는 갑자기 이탈리아어를 쓰자 의아했던 것이다.
그의 얼굴 표정이 변한 것을 본 폴리니가 여전히 활짝 웃음을 머금은 채로 얘기했다.
“너 왕세제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네가 여기 온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로 갑자기 미술관 경비 인원이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늘었더라고. 여기 경비 대장이 너를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던데 저택에서 무슨 사고라도 친 거야?”
“사고는 무슨? 나도 무슨 일인지 짐작이 안 가네?”
도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욕을 내뱉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건 또 갑자기 무슨 일이야?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