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도윤이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북경에서 이메일이 도착했다. 말러의 악보에 담긴 능력을 전해 받은 아이, 염우진의 엄마인 김미현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편지의 내용은 제법 길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우진이에게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은데 ‘서윤 문화 재단’이 그걸 지원해줄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다. 도윤은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염우진은 재단의 다섯 번째 장학생이 되었다.
우진이 엄마가 재단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한 계기는 북경 중앙음악원의 천레이라는 대학 교수였다. 아이가 갑자기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그녀는 고민 끝에 지인을 통해 천레이 교수를 소개받았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천 교수는 우진이에게 몇 개의 곡을 연주시킨 뒤 그 재능에 감탄했다. 그는 즉석에서 자신이 우진이를 가르쳐보고 싶다는 뜻을 표시했다.
천레이 교수는 젊었을 때 몇 개의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뛰어난 연주자였다. 하지만 천재라고 하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조금 부족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연주자로서의 꿈을 접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전념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눈에 우진이가 띈 것이다.
“이 아이는 제 가슴을 뛰게 합니다.”
그의 한 마디가 김미현으로 하여금 우진이에게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가르쳐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다. 그녀는 망설임 끝에 이메일을 보냈고, 도윤의 결정이 내려지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우진이는 매 주 세 번씩 천 교수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그가 과도한 레슨비를 요구하지 않은 덕분에 재단에서 실질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돈은 많지 않았다. 그 대신 도윤은 우진이에게 그랜드 피아노를 한 대 선물하기로 했다.
이로써 서윤 문화 재단은 설립 첫해부터 다섯 명의 장학생과 함께 출발하게 되었다. 분야도 다양했다. 첫 번째 장학생인 오윤수를 비롯해서 장은서, 오주현은 모두 화가였지만 아직 어린이인 현진우와 염우진은 각각 스포츠와 음악 분야의 장학생이었다. 도윤은 재단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점에 관해 앞으로 재단이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밝혔다.
“아이들이 우리 재단의 장학생이 된 것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간혹 예외가 생기기는 할 거예요. 그러나 서윤 문화 재단은 기본적으로 미술 분야의 재능 있는 신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입니다. 그 점을 명심하세요.”
이미 선정된 장학생들은 모두 그가 자의적으로 선발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재단이 정식으로 출범했으니 앞으로는 정해진 규칙과 절차에 따라 후원할 사람들을 선발해야 했다. 비록 재단 자체가 전적으로 도윤이 출연한 돈에 의해 세워졌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계속 변덕스러운 산타클로스 노릇을 할 수는 없었다.
3월 초, 겨우내 움츠렸던 봄기운이 조금씩 기지개를 켤 무렵, 서윤 문화 재단 홈페이지에 두 가지 공지가 올라왔다. 하나는 제 1회 ‘고학 미술 대회’의 개최를 알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현소 미술상’에 관한 예고 성격의 공지였다.
도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재단의 핵심적인 후원 사업은 ‘현소 미술상’이었다. 상의 명칭에 ‘현소’를 사용한 것은 재단 이사장인 자신의 출발점이 현소 화랑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세준과 서연희는 그 얘기를 듣고 은근히 기뻐했다.
프랑스의 ‘리카르 상’을 흉내 내서 만든 ‘현소 미술상’은 매년 한 명의 화가, 혹은 조각가를 선정해서 상금을 수여하는 한편, 그의 작품 세 점을 구입해 국립 현대 미술관에 영구 기증할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그곳의 학예 과장으로 부임한 장예주 박사를 통해 국립 현대 미술관과 협의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현소 미술상’의 본질은 역시 수상 작가에 대한 평생 후원이었다. 이 상을 수상한 작가는 죽을 때까지 재단으로부터 매년 일정 액수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 실력 있는 작가가 생계를 위해 전업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또한 해당 작가가 전시회를 열기를 원할 경우, 재단으로부터 우선적 지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번 공지에서는 ‘현소 미술상’의 구체적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 아직 국립 현대 미술관 측과 협의가 진행 중이었고, 수상자에 대한 금전적 지원의 액수와 방식도 내부적으로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에 대한 평생 후원제도라는 큰 틀만 밝히고 구체적인 내용은 가을쯤 다시 공지하기로 했다.
‘고학 미술 대회’ 역시 올해 초에 재단을 설립할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왔던 핵심 사업이었다. 도윤은 이번이 첫 대회라는 점을 감안해서 각종 일간지와 미술 관련 잡지에 광고를 싣기까지 했다.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광고는 ‘고학 미술 대회’를 단숨에 장안의 화제로 만들었다. 지원 방법과 기간이 워낙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대회는 만 30세 이하의 지원자들로부터 작품을 제출받아 심사한 뒤 그 가운데에서 회화, 조소, 디자인의 세 분야에 걸쳐 각각 한 명씩의 수상자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매년 봄에 열릴 이 대회의 수상자들은 향후 5년간에 걸쳐 한 달에 200만 원씩 지속적으로 창작 지원금을 받게 된다. 총액으로 치면 무려 1억 2천만 원이나 되는 거액이었다.
미술 대회에 관한 내용이 알려지자 재단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문의가 폭주했다. 직원들 역시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때문에 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보다 못한 도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장소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도윤은 먼저 대회의 기본적인 취지와 성격, 그리고 운영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했다. 그런 다음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지체 없이 손이 올라왔다.
“미술 대회 이름을 ‘고학’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 양반아, 그건 나눠 준 자료에 다 있는 내용이잖아. 도윤은 하마타면 쓴웃음을 지을 뻔 했다.
“고학(孤鶴)은 제 고조부인 고학 이인하 어르신의 호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호에 큰 공을 세우신 분이니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 분의 뜻을 기려 재능 있는 미술가들을 후원한다는 뜻에서 대회 명칭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대회 요강을 보면 매년 세 명의 수상자를 선정해서 5년 동안 한 사람 당 1억 2천만, 합계 3억 6천만 원의 돈을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향후 5년 동안 지원 대상자가 계속 증가할 텐데 서윤 문화 재단에 그만한 여력이 있습니까?”
괜히 판만 크게 벌였다가 용두사미 꼴로 흐지부지 되는 게 아니냐는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다. 사실 재단에서 공지를 올린 다음에 가장 많이 들은 질문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서윤 문화 재단은 현재 수천억이 넘는 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 수입만 해도 별 어려움 없이 수상자들을 지원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은 많이 남지요. 재단의 핵심 사업은 오히려 가을 쯤 공개할 ‘현소 미술상’이 될 텐데, 그걸 위해서 앞으로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적극적으로 받을 예정입니다.”
“매달 지원금을 200만으로 책정한 이유는 뭡니까?”
“그 정도면 젊은 신인 작가가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경우 그에 맞춰서 지원 금액도 상향 조정할 계획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오직 창작 활동에만 전념하도록 돕는 겁니다.”
“젊은 작가들에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오히려 창작에 대한 열의가 무뎌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지나친 지원은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누구야? 도윤은 하마터면 질문을 한 기자를 노려볼 뻔 했다. 그는 헛기침을 해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예술은 문화의 꽃입니다. 척박한 토양에서는 뿌리를 내리기 힘들죠. 작가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요구하면 상업적 예술 외에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순수 예술이 상업 예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라는 건 분명합니다. 예술은 저절로 자라는 야생화가 아닙니다. 가꾸고 싶다면 누군가 물을 주고 온기를 마련해 줘야지요.”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질문이 나왔고, 개중에는 은근히 탈세나 재산 은닉과 관련된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떠보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윤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그런 질문들에 하나하나 성실히 답변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누군가 혹시 정계에 입문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기자 회견이 끝난 뒤 ‘예술은 야생화가 아니다’라고 했던 그의 말은 적잖게 화제가 되었다. 각 언론이 게재한 기사들은 대체로 ‘고학 미술 대회’에 대해 호의적이었고, 덕분에 대회를 위한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작품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윤이 바라던 대로 대회에 대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간 것이다.
* * *
미술 대회 때문에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 도윤은 시내에서 최서라를 만났다. 벌써 3월이었고, 결혼식 날짜가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온 시기였다. 예식장은 진즉에 미래 그룹의 자회사 격인 특급 호텔 연회장으로 정해졌고, 신혼여행 계획도 다 완성된 상태였다. 두 사람이 함께 살 평창동의 새 집은 한창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근데 ‘고학 미술 대회’ 말이에요. 정말 수상자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게 가능하겠어요? 지금은 매년 세 명씩이지만 앞으로는 수상자 수를 더 늘릴 거라면서요? 게다가 ‘현소 미술상’ 수상자들까지 후원하려면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정말 괜찮겠어요?”
도윤을 만난 최서라는 전날 기자 회견 내용을 거론하면서 은근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사실 현재의 재단 재정 상태로도 ‘고학 미술 대회’ 수상자들을 지원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도윤으로부터 앞으로의 계획을 대충 전해들은 상태였고, 그게 만만찮은 재원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염려스러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도윤은 그저 씩 웃기만 했다.
“재단 소유의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만 해도 향후 10년 이상은 수상자들을 지원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거야. 그리고 지금 자세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일이 잘 풀리기만 하면 재단 자산을 지금보다 더 늘리는 것도 가능할 거야.”
“일이 잘 풀리면이라고요? 어떤 일이요?”
“말했듯이 그건 나중에 얘기해 줄게. 지금은 아직 변수가 너무 많아서 섣불리 얘기하기가 좀 그래. 그리고 내가 재단에 전 재산을 집어넣은 게 아니라는 걸 서라도 잘 알잖아?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도윤은 상황을 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바 인스트루먼트 주식 가운데 일부를 서윤 문화 재단에 양도할 생각이었다. 그럴 경우 데바에서 나오는 이익 배당금 만으로도 재단의 후원 규모를 크게 늘리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데바 인스트루먼트가 크게 성장해야 했다.
최서라를 만난 다음날, 도윤은 오광표와 함께 미래 전자 본사를 방문했다. 미리 약속된 방문이었고, 인도에서 데바 인스트루먼트 임원들이 오기로 한 이틀 전이었다.
두 사람은 먼저 최병호 사장의 방을 찾아갔다. 비록 사적인 이유가 아니라 공적인 협상을 위한 방문이었지만, 최병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예비 사위를 반겨주었다.
“자네, 결혼식을 코앞에 둔 예비 신랑이 너무 바쁜 거 아니야? 아무리 젊었을 때는 바쁜 게 좋다지만 신부가 될 사람 아버지 입장에서는 은근히 걱정이 되네. 설마 신혼 여행지에서 호텔 예약을 깜빡했다고 허둥대는 건 아니겠지?”
“이미 예약을 다 끝냈습니다. 그리고 설사 제가 변변치 못해서 그런 걸 실수한다고 해도 서라가 있지 않습니까? 저보다 더 똑똑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우리 딸이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기는 했지만 솔직히 자네보다 똑똑하다고 하기는 어렵지. 신혼집 인테리어는 거의 다 끝나간다고?”
“네. 늦어도 이 달 말까지는 가구를 들일 수 있을 겁니다.”
예비 사위와 예비 장인의 만남이기는 했지만 오광표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사적인 얘기를 길게 하기는 어려웠다. 최병호는 두 사람을 회의실로 데리고 갔고, 그곳에서는 오늘 협상에 참여할 미래 전자 측 임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내주신 자료들을 꼼꼼하게 검토했습니다. 오늘 묻고 싶은 점이 많지만 먼저 이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군요. 죄송하지만 이 자료들에 나와 있는 수치가 모두 정확한 겁니까?”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미래 전자의 연구 개발 이사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질문을 던졌다.
“모두 정확합니다. 조금의 과장이나 왜곡도 없는 테스트 결과 그대로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대답은 오광표가 전담하기로 했다. 그가 한 점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답하자 질문을 던졌던 상대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클럭 속도는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최고 사양의 CPU보다 빠른데다 발열은 냉각 장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낮다고요? 게다가 소비 전력조차 적다니. 그게 모두 사실이라면 이건 인공지능 용 칩으로만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제품입니다. 말 그대로 반도체 시장에 혁명을 일으킬 물건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데바에서는 현재 개발한 TPU를 노트북이나 태블릿, 그리고 휴대폰용 CPU로도 사용가능할 수 있도록 설계를 조정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아마 올해가 가기 전에 좋은 소식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서버와 컴퓨터는 물론이고 모바일 시장까지 장악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어차피 그것들이 모두 다른 칩을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개발하는 것은 TPU뿐이지요. 그걸로 컴퓨터나 휴대폰을 만드는 건 미래 전자나 오성 전자 같은 곳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지금은 대량 생산을 위한 칩 제조를 맡기기 위해 방문했지만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따라 미래 전자가 막대한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넌지시 드러낸 말이었다. 자료를 검토했던 임원들도 이미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태도가 한결 심각해졌다.
회의는 매우 빠르게, 그러면서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오광표는 본래 오랜 시간 동안 미래 전자의 경쟁 상대라고 할 수 있는 오성 전자에서 연구 이사로 재직했던 사람이다. 그는 국내의 업계 상황에 대해 빠삭했고, 덕분에 서로 간에 쓸 데 없는 밀고 당기기를 지루하게 전개할 필요 없이 협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회의 첫날이었기 때문에 논의는 주로 큰 틀에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진행되었다. 미래 전자 측 임원들은 계속해서 TPU의 구체적인 성능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오광표는 새 칩의 제조 단가와 납품가를 어느 정도 선에서 맞춰줄 수 있는지, 그리고 본격적으로 TPU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 공정 재조정은 언제까지 끝낼 수 있는지 등등을 주로 물었다.
양쪽은 점심 식사마저 미래 전자에서 제공한 도시락을 이용해 회의실에서 해결했다. 그들은 몇 시간에 걸쳐 치열한 협상을 진행한 끝에 마침내 기본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 정도에서 끝내고 이틀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미래 전자 쪽에서 먼저 회의를 끝낼 것을 제안하자 오광표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음 번 회의 때는 저희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인도 현지 임원들이 함께 참석할 겁니다. 그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오성 전자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할 거예요. 그러면 나머지 부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한 마디로 너희가 인도 임원들만 잘 설득하면 TPU 생산을 미래 전자가 맡을 수 있도록 자신이 힘을 써주겠다는 뜻이었다. 미래 전자 임원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오광표는 도윤이 처음부터 오성이 아닌 미래를 염두에 두고 이번 일을 떠맡고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비록 오성에 오래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이번 협상에서 미래 쪽에 더 힘을 실어주기로 작정한 것이다.
오광표가 미래 전자 임원들과 열심히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최병호와 도윤은 미리 회의실을 떠나 사장실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어차피 구체적인 논의는 담당 이사들끼리 진행할 일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굳이 회의실에 버티고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이 사장실 소파에 마주앉자 최병호가 비서에게 차를 가져오게 했다. 찻잔을 내려놓은 비서가 사무실을 나가자, 최병호가 도윤을 똑바로 쳐다보며 불쑥 물었다.
“오늘 나한테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했지? 눈치를 보니 결혼식 문제에 관한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새로 개발했다는 TPU에 관해 따로 부탁하거나 요구할 거라도 있는 건가?”
도윤은 대답을 하기 전에 자기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목부터 축였다. 이미 인도에서 이번 일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을 때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훨씬 번부터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자 공연히 목이 따끔거렸다. 잠시 심호흡을 한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청파 갤러리가 앞으로도 계속 비상장 회사로 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시면 이번 일은 물론이고 향후 데바 인스트루먼트가 개발할 모든 칩들을 미래 전자가 맡아서 생산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아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을 거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최병호의 표정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