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지난 설날 때, 도윤은 최인탁 회장으로부터 청파 갤러리와 최서라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온 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인도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최 회장의 저택을 방문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미래 전자와 미래 건설, 그리고 청파 갤러리는 서로 가지고 있는 주식들을 맞교환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기회에 아예 상호 출자 관계를 청산하고 각자 독립적인 회사로 거듭나는 거지요.”
도윤의 얘기를 들은 최 회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던 방법들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었지. 그런데 자네는 오히려 그쪽으로 가자고? 장남인 병준이는 고사하고 자네 장인 될 사람도 들은 척하지 않을 걸세.”
“두 분이 청파를 상장시키려는 건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그게 더 이익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그분들이 포기해야 될 이익을 보상해 드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겠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도윤은 그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이야기를 들은 최 회장은 크게 놀랐다. 도윤이 제시한 방법들 가운데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그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네가 장담한 대로 내 아들 녀석들이 청파와 주식을 맞교환하는데 동의한다면 나도 자네에게 큰 선물을 하지.”
“선물이라뇨?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제 아내 될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닙니까?”
“필요 없지 않아. 그 말대로 하려면 자네도 큰 손해를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한쪽만 이익을 보는 거래는 항상 말썽이 일어나기 마련이야. 비록 자네가 원하는 선물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손해를 벌충할 정도는 될 걸세.”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회장님께서는 제 의견에 동의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최 회장의 승낙까지 받은 상태에서 오늘 미래 전자를 찾아왔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최병호는 도윤의 말을 듣자마자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파를 계속 비상장 회사로 남아있게 해달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최병호의 목소리가 표정만큼이나 딱딱해졌다. 도윤은 헛기침을 해서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솔직히 장인이 될 사람과 거래를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회장님께서 가지고 있는 청파 갤러리의 주식을 세 분 남매와 서라에게 똑같이 나누어서 물려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말은 최병준 사장님이 꺼냈지만 어르신께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청파를 상장시키고 싶어 하시는 것 아닙니까?”
최병호는 도윤을 빤히 쳐다본 채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들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얘기였고,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기도 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서라에게 전해들은 모양이군. 사실이네. 청파처럼 자산 규모가 큰 알짜 회사를 지금처럼 마냥 비상장으로 내버려두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야. 자네도 요즘 이런저런 회사에 투자를 하고 있으니까 알 걸세. 경영이라는 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최병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 어쩔 수 없는 불쾌감이 묻어나왔다. 도윤은 곧 장인이 될 양반의 따가운 눈길을 느끼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청파는 처음부터 이익을 내기 위해서 만든 회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회사의 이익을 위해 쓰라고 만든 곳은 더더욱 아니고요. 청파는 본질적으로 미술관입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미술관이라고 해서 꼭 이익에 무관심해야 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관은 이익보다는 예술의 보존과 전시를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지요. 특히 청파처럼 돌아가신 분의 뜻을 받들기 위해 설립된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솔직히 자식들이 눈앞의 이익 때문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지를 저버린다는 게 저로서는 보기 좋지 않습니다. 주제넘은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도윤의 말이 최병호의 아픈 상처를 찌른 게 분명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사과의 뜻을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최병호는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네 말이 틀린 건 아니야. 나도 어머니께 죄송한 게 사실이기는 하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기는 어렵네.”
한참만에 나온 최병호의 말에 도윤이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만약 오로지 미래 전자의 이익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라면, 제가 다른 방법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청파는 지금처럼 독립적인 미술관으로 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다른 방법이라니? 혹시 데바 인스트루먼트를 말하는 건가? 우리가 그 회사의 TPU를 생산하는 것만으로도 그만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 청파는 생각보다 큰 곳이네.”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은 훨씬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낸 자료를 검토하셨을 테니 그 TPU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아실 것 아닙니까? 그 칩은 올해 안에 반도체 시장을 장악할 겁니다. 내년에는 점유율이 더 커질 거고요.”
최병호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데바 인스트루먼트가 제공한 자료를 검토한 미래 전자 임원들은 향후 TPU 시장은 데바의 독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걸 미래 전자가 독점 생산하는 정도로는 청파 갤러리 주식의 가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그 TPU가 기존의 CPU 시장마저 장악한다면? 나아가서 모바일 시장까지 석권할 경우에는? 도윤의 말은 진실 그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병호의 생각은 미래 전자와 청파 갤러리를 넘어 최대 라이벌 기업인 오성 전자에까지 미쳤다.
오성 전자는 반도체와 휴대폰 부문에 있어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1, 2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이었다. 미래 전자도 열심히 노력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세계는커녕 국내에서도 오성 전자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도윤의 말대로만 된다면 데바의 TPU는 오성의 벽을 넘어서게 해주는 사다리가 될 수도 있었다.
“이번에 개발한 TPU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올 데바의 새로운 칩들도 모두 우리 회사가 독점적으로 생산하도록 보장해줄 수 있겠나? 그럼 자네의 제안을 신중히 검토해 보지.”
한참만에 나온 최병호의 말에 도윤이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현재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최대 주주는 저입니다. 지분이 50%를 넘지 못해서 당분간 경영권을 쥘 수는 없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데바와 미래 전자가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겠다는 말 정도로는 안 돼. 날 더러 아무런 보장이나 신뢰도 없이 그렇게 큰 이익을 포기하라는 말인가? 자네 의외로 사고방식이 낙천적이군.”
“회장님이 청파 주식을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줄 거라는 기대보다는 훨씬 신뢰할 만할 겁니다. 그 분은 청파를 쪼개서 물려줄 생각이 없으십니다.”
도윤의 말에 최병호가 움찔했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도윤을 쳐다봤다.
“자네가 이 문제를 놓고 아버님과 얘기를 나눴다는 건가?”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의 절반은 회장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말이 결정타였는지 최병호는 또 다시 지루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도윤을 초조하게 만든 긴 기다림 끝에 나온 그의 말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나는 그렇다 쳐도 형님을 설득하기는 힘들 거야. 어떤 의미에서는 나보다 더 청파의 주식을 원하는 사람이 바로 그 양반이니까.”
“미래 건설의 최병준 사장님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저한테 설득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제가 미래 건설의 주식을 조금 가지고 있습니다. 대략 5% 정도 될 겁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최병호는 도윤의 말에 정말 깜짝 놀랐다. 미래 건설은 작은 회사가 아니었다. 그런 회사의 지분 5%면 시가로 천억이 넘는 엄청난 액수였다. 도윤이 적지 않은 부자라는 건 서윤 문화 재단이 설립되는 과정을 통해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설마 미래 건설의 주식까지 소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의 표정을 살핀 도윤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비에코와 관련해서 미래 건설의 주가가 오를 것 같아서 조금 사 둔 게 있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팔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아직까지 보유 중입니다. 만약 최병준 사장님이 미래 건설과 청파의 주식을 맞교환하는데 동의해 주시면 제가 보유한 미래 건설 주식을 그 분에게 추가로 양도하겠다는 제안을 할 생각입니다.”
그게 바로 도윤이 최 회장을 설득한 핵심적인 열쇠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얘기를 들은 최 회장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방안이라는데 동의했고, 그 점은 최병호도 마찬가지였다. 도윤이 천억이 넘는 가치의 주식을 최병준에게 그냥 양도하겠다는 말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설득력이 있는 제안이기도 했다.
현재 청파는 미래 건설의 주식 10%를 가지고 있었고, 미래 건설 역시 같은 비율의 청파 주식을 소유한 상태였다. 얼핏 보기에는 서로의 지분 비율이 똑같기 때문에 쉽게 맞교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였다. 비록 비상장 회사이기는 하지만 청파의 주식이 가진 가치가 미래 건설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도윤이 가지고 있는 미래 건설 주식이 추가되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무엇보다 청파와 미래 건설이 서로 주식을 맞교환할 경우, 건설이 인수받은 주식은 주주들에게 각자의 지분 비율대로 재분배된다. 최병준 사장이 개인적으로 얻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에 도윤이 넘겨주는 주식은 온전히 그의 것이 될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측면을 따져본 최병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네. 자네가 이 자리에서 한 약속을 모두 지킨다면 나도 이번 기회에 전자와 건설이 가지고 있는 서로의 지분을 맞교환하지. 전자 주식이 건설 주식보다는 비싸니까 형님에게는 내가 조금 보상을 해주겠네. 하지만 그건 자네와 나 둘이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조만간 형님까지 셋이서 얼굴을 맞대고 얘기해 보세.”
“감사합니다. 누구보다 서라가 아주 기뻐할 거예요. 진짜 감사드립니다.”
최병호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보면 그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차라리 이번 기회에 미래 건설과 미래 전자, 그리고 청파 갤러리가 각자 독립적인 회사로 거듭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될 경우 청파가 협조해준다는 전제 하에 건설을 제외한 다른 계열사에 대한 장악력이 오히려 더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 *
오광표와 미래 전자 임원들은 첫 회의가 있었던 날로부터 이틀 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인도 임원들도 참석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자리에서 협상이 완결되거나 계약이 체결되지는 않았지만 인도 임원들이 미래 전자가 제시한 조건에 비교적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미래 전자와의 두 번째 회의가 있은 다음날, 오광표를 위시로 한 데바 인스트루먼트 임원들은 오성 전자 측과 미팅을 가졌다. 도윤은 이미 미래 전자와 계약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인도 임원들의 눈을 생각해서라도 다른 회사와의 협상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었다.
오성 전자와의 회의에는 도윤이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오광표가 데바 인스트루먼트 측의 입장을 대변했는데, 회의는 처음부터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오성 측에서 데바 인스트루먼트가 제시한 자료를 의심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나중까지 이어진 전체 협상의 방향을 결정짓고 말았다.
사실 데바 인스트루먼트가 새로 개발한 TPU의 테스트 수치는 쉽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뛰어났다. 그 때문에 미래 전자 임원들도 첫 만남의 자리에서 데바가 제공한 자료의 신빙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했다. 다만 그때는 인도 임원들이 참석하지 않았고, 미리 그럴 거라 예측한 도윤과 오광표도 그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오성 전자와의 만남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인도 임원들은 상대가 자신들의 자료를 의심한다는 사실에 매우 불쾌해했고, 오광표 역시 양쪽을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았다. 이미 도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오성 전자는 오광표가 오랫동안 근무했던 전 직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오성의 반대쪽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적지 않게 난감했고, 협상에도 그다지 열성적으로 임하기가 어려웠다. 그 바람에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쪽의 불편한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는 데도 실패했다.
인도 임원들은 한국에 열흘 동안 머무르면서 두 전자 회사와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떠나기 전날, 미래 전자와 데바 인스트루먼트는 상세한 조항을 담은 계약서에 서명하는데 성공했다. 도윤이 바라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미래 전자는 자신들이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새로운 TPU인 ‘싸이레인’을 독점 생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리고 그와 때를 맞추어서 데바 인스트루먼트 역시 세계 여러 나라의 기자들을 모아놓은 가운데 ‘싸이레인’의 성능을 직접 보여주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놀라운 결과를 목도한 기자들에 의해 ‘싸이레인’은 순식간에 전 세계적 회제의 중심이 되었다.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새로운 TPU에 대한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IT 업계를 강타할 무렵, 도윤은 최병호와 최병준 형제와 자리를 함께 헸다. 그 자리에서 도윤은 망설이는 최병준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회장님께서는 청파 주식을 한 곳으로 모으지는 못할망정 그걸 쪼개실 생각이 전혀 없으십니다. 평생을 기업의 수장으로 살아오신 분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할 경우 청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회장님은 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청파가 은행 대출의 담보용으로 이리저리 찢겨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최병준은 욕심과 미련이 많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고민 끝에 도윤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회사가 얻을 수 있는 미래의 잠재적인 이익을 포기함으로써 당장 얻을 수 있는 자기 개인의 이익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곧바로 최회장에게 전달되었다.
4월 초, 미래 건설과 미래 전자는 각자 임시 이사회를 열어서 세 회사의 주식을 맞교환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청파 갤러리는 실질적인 이사가 최회장과 최수아 관장, 그리고 최서라밖에 없었기 때문에 따로 논의를 하거나 회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 주식 맞교환을 통해 세 회사가 가지고 있던 각자의 지분은 모두 사라졌고, 미래 전자와 미래 건설, 그리고 청파 갤러리는 완전히 독립적인 회사가 되었다. 도윤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미래 건설 주식을 모두 최병준에게 양도했다. 그리고 그 즈음 최 회장이 그를 따로 집으로 불렀다.
“어제 변호사를 불러서 유언장 내용을 바꿨다. 내가 죽으면 현재 가지고 있는 청파 갤러리의 주식 40% 가운데 절반을 서라에게 유산으로 남길 거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네가 받아서 가지고 있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얘기였기에 도윤은 거의 소스라칠 정도로 놀랐다.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청파는 서라가 물려받아야지요. 저는 마누라의 물건을 빼앗은 남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최 회장이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라가 똘똘하기는 해도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많아.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보니까 네 녀석이 옆에 있으면 그 아이에게 많이 의지가 될 것 같더구나. 자네는 확실히 머리가 잘 돌아가고 예상 외로 협상력도 있어. 어차피 청파든 현소 화랑이든 너희 자식들이 물려받을 거 아니냐? 혹시 서라가 결정하기 어려워하는 일이 생기거든 네가 잘 챙겨줘라.”
도윤은 최회장의 말이 자신에게 남기는 유언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쳐다보는 최 회장은 마치 큰 짐을 덜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