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36. 신혼여행>
5월 둘째 주, 이도윤과 최서라의 결혼식이 미래 그룹 계열의 특급 호텔 연회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어릴 적 도윤의 스승이자 조명근 검사의 아버지이기도 한 조태석 교수의 주례로 진행된 결혼식장에는 엄청난 수의 하객들이 참석했다. 연회장의 크기가 상당히 컸음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의 손님들이 식장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축하 인사만 하고 돌아가야 했을 정도였다.
신부인 최서라 측 하객들은 대부분 재계 인사들이었고, 정계와 언론계 인물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반면에 신랑인 도윤의 하객들은 화가와 서예가, 대학 교수들 같은 미술계와 학계 인물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취재를 나온 기자들도 결혼식장 곳곳에 포진한 채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도윤이 감정가로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지닌 준 연예인 급 유명인이었고, 신부인 최서라 또한 재벌 가문의 일원이었으니 기사 가치가 큰 결혼식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폭탄이라도 터지면 세계적인 뉴스감이 되겠군.”
조민아와 나란히 선 채 매의 눈으로 식장 안을 살피던 안석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만큼 식장에는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득시글거렸다.
그는 이미 경호 임무에서 손을 떼고 서윤 문화 재단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귀에 리시버를 낀 채 다시금 도윤의 개인 경호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의 옆에는 조민아가 청파 갤러리 보안 팀의 일원으로 하객들을 살피고 있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쟁쟁한 사람들이 많이 참석한 모양이죠?”
“하객 명단 체크 안 했어? 미술계 인사들은 둘째 치고라도 저기 오광표 이사님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인도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니슈 골루이 사장이잖아. 다음 달에 대만에서 열릴 컴퓨덱스에서 발표할 신제품 때문에 벌써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 회사 사장 이름도 모르는데.”
“그래도 데바 인스트루먼트는 꼭 기억해 둬라. 우리하고도 무관한 회사가 아니니까.”
그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조민아에게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았다. 단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도윤에게서 성과금 명목으로 받았다는 사실만 밝혔는데,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이 박사님은 역시 통이 크다며 무척 고마워했다. 그 집이 결국 조만간 자신들의 신혼살림 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훈은 아파트 말고도 현재 통장에만 이십 억 가까운 현찰이 있었고, 그동안 계속 오른 비에코 주식 역시 시세로 따지면 엄청난 액수에 달했다. 지분은 비록 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부자들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 된 것이다.
도윤과 최서라는 이번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인연을 맺거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청첩장과 함께 적지 않은 비행기 표를 보냈다. 최서라의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던 아이작 듀란과 고든 뱅크스는 물론이고 뉴욕 소더비의 까미유를 비롯한 트루쓰 앤 밸류 심사위원들, 가드너 미술관의 조나단 가드너 관장과 상해의 쉬주하오 등이 그 청첩장을 받았다.
비에코의 고정혁 사장과 권두철 이사는 당연히 참석했고, 한창 학기 중인 오주현을 제외한 서윤 문화 재단의 장학생들도 모두 식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고흐의 해바라기와 관련해 인연을 맺었던 고베의 권춘강과 아오키 고스케는 물론이고 아리스 옥션의 왕이푸 회장을 대신해서 왕화가 직접 찾아와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예상치 못했던 불청객도 있었다. 드라이바인 그룹의 크리스틴 리히터가 악수를 청했을 때는 도윤도 하마터면 자신의 결혼식이라는 것을 잊고 얼굴을 굳힐 뻔 했다.
“결혼을 축하드릴 겸 아빠 대신 사과하려고 일부러 왔어요. 앞으로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빠는 이 박사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죄송해요.”
크리스틴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도윤은 도저히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을 일부러 궁지에 몰아넣어 납치를 시도한 일이었다.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는가?
이브라힘 왕세제도 사람을 보냈다. 도윤은 나일라 갤러리에서 근무하는 리치오 폴리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브라힘이 따로 전하라는 말이라도 있는 거야?”
도윤이 가볍게 포옹하면서 속삭이자 폴리니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잊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면 여전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대. 솔직히 나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압둘이 너를 만나면 그렇게 전해달라고 했어. 그 말을 할 때 눈빛이 진짜 섬뜩하던데?”
폴리니는 올해 까지만 일하다가 계획보다 일찍 나일라 갤러리를 떠날 생각이라고 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분위기가 어떻게 이상한지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 * *
결혼식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신랑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말과 함께 턱시도를 쫙 빼입은 도윤이 먼저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원래부터 잘생긴 얼굴에 신체 비율마저 탁월한 그였다. 거기에 완벽하게 케어를 받은 상태에서 턱시도까지 걸치자 신부 쪽 하객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사진을 찍던 기자들마저 탄성을 토했다.
“귀공자가 따로 없군. 오늘 신부가 그렇게 미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왔는데 신랑도 무슨 연예인 같잖아? TV에서 출연했을 때는 화면발이 좋은 줄 알았는데 실물이 훨씬 나은 걸?”
하지만 그런 그들도 잠시 후 신부가 등장했을 때에는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흔한 표현대로 결혼식장에 여신이 출현했다.
아버지인 최병호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입장하는 최서라는 과도하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도윤이 프러포즈하면서 선물한 목걸이와 반지, 귀걸이 세트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듀란과 뱅크스는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서라의 기쁨’으로 이름 붙인 최서라의 목걸이는 눈썰미 좋은 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하객들 가운데 일부가 그녀의 목걸이를 보며 바쁘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저기 가슴에 걸린 목걸이 말이야, 저거 진짜 블루 다이아몬드일까?”
“당연히 진짜겠지. 명색이 미래 그룹 자식의 결혼식인데 설마 가짜를 목에 걸었겠어?”
“저건 척 봐도 이십 캐럿은 될 것 같은데? 아무리 재벌이라도 그렇지 저 정도 크기의 블루다이아몬드를 결혼 예물로 쓰는 게 가능할까?”
“결혼 예물이면 최 사장이 아니라 현소 화랑 측에서 선물했다는 뜻이잖아? 거기가 무슨 루브르도 아닌데 설마 그렇게 비싼 걸 줬겠어? 기껏해야 몇 억 원 정도겠지.”
“몇 억? 진짜 모르는 소리 하네. 저런 건 기본이 백 억 이상이야. 게다가 설사 돈이 있다고 해도 물건이 없어서 구하기도 힘들다고. 이십 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가 돈 들고 백화점 가면 살 수 있는 건 줄 알아?”
“뭐? 저게 그렇게 비싸? 그럼 결혼식에 쓰려고 어디서 협찬 받았나 보지.”
“웃기고 있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는 저런 걸 협찬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사실은 도윤이 선물한 목걸이였지만 하객들 가운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도윤이 유명한 감정가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석훈과 조민아조차도 신랑 신부의 모습을 보고는 넋을 잃었다. 특히 석훈은 마치 도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이야. 도윤이 형, 자기 결혼식이라고 돈 엄청 들였나 보네. 군대 있을 때부터 봐 왔지만 저렇게 쫙 빼입은 모습은 처음이야. 저 턱시도는 도대체 얼마짜리일까?”
그러자 옆에 있던 조민아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이 박사님 옷값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신부가 입은 드레스 가격에 비하면 푼돈에 지나지 않을 걸요? 나도 저렇게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드레스는 잡지에서도 본 적이 없어요.”
“저 얇은 옷이 그렇게 비싸단 말이야? 색깔도 그냥 흰색 하나뿐인데?”
“디자인의 차원 자체가 다르잖아요. 게다가 신부도 천사처럼 아름답고.”
조민아는 경호 중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는지 몽롱한 눈빛을 한 채 최서라를 바라봤다. 그런 그녀를 흘낏 살핀 석훈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민아도 결혼할 때 저런 드레스 입고 싶어? 어디서 맞췄는지 물어봐서 우리 결혼식 때 비슷한 걸로 하나 사줄까?”
조민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저게 얼마나 비싼 건지 얘기하는 거 못 들었어요? 선배가 저걸 무슨 돈으로 사요?”
조민아의 생각과는 달리 석훈에게는 그 드레스를 충분히 살 만한 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번 결혼식에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잖아? 그런데 왜 양가 모두 축의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거지? 여기 온 하객들을 봐. 부자들이 엄청 많을 것 같지 않아? 축의금을 받으면 최소한 아파트 한 채 살 돈은 충분히 나올 것 같은데 말이야.”
“그랬다가 나중에 뇌물이니 뭐니 하면서 두고두고 구설수가 될 수도 있어요. 양쪽 모두 돈이 없는 분들도 아니니까 결혼식은 그냥 자기 돈으로 치르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죠.”
“그럼 우리도 나중에 결혼할 때 축의금을 받지 않을까?”
“미쳤어요? 선배가 무슨 재벌 집 아들인 줄 알아요?”
재벌 집 아들은 아니더라도 재벌 집 아들 친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석훈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드디어 결혼식이 모두 끝났다.
친구들과 함께 찍는 단체사진 차례가 되자 두 사람 역시 잠시 경호 업무에서 벗어나 신랑 신부 옆에 나란히 섰다. 그날 신부의 부케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조민아였다. 그녀와 석훈이 이번 가을에 결혼할 예정이라는 걸 알고 있던 최서라가 미리부터 그녀에게 부케를 받으라고 얘기를 해 놓았던 것이다.
양가 합의를 통해 폐백은 생략했다. 그 대신 신혼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양가 어른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드렸는데, 최인탁 회장은 도윤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축하한다. 그리고 고맙구나. 네 녀석 덕분에 내 말년에 미련이 없어졌다.”
원래는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혼식장에서 죽음을 운운하는 게 상서롭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그렇게 말을 돌렸다. 최서라와 도윤 모두 외동딸과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양쪽 부모들 역시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신랑 신부를 껴안고 등을 두드렸다.
신혼 차량의 운전대는 석훈이 잡았다. 조민아 역시 조수석에 동승했는데 옷을 갈아입은 도윤과 최서라가 막 차에 올라타려는 찰나, 기자 한 명이 그들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이도윤 박사님. 최고의 신부를 얻은 소감이 어떻습니까?”
일종의 축하인사였다. 그런데 도윤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최서라가 먼저 대답했다.
“제가 최고의 신부가 된 건 최고의 신랑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석훈이 차를 출발시켰다. 두 사람이 첫날밤을 보낼 곳은 호텔이 아니라 평창동의 새 집이었다.
“그냥 출발하면 사실상 결혼 첫날밤을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렇다고 시내의 호텔에서 자는 것도 싫어요. 어차피 우리 둘을 위해 만든 집이니까 첫날밤은 새집에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하겠습니까? 도윤은 진즉에 새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지금까지 안방에는 침대를 비롯한 가구만 들여놓은 채 비워두고 있었다. 그동안 잠은 손님방에 임시로 들여놓은 침대에서 잤던 것이다. 두 사람은 새 집에서 하루를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한국을 떠나기로 했다. 덕분에 새로 단장한 집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혼집이 될 수 있었다.
* * *
두 사람의 신혼여행 첫 목적지는 그리스였다. 원래는 그곳에서 고대 그리스의 유적지를 몇 군데 돌아본 뒤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와 독일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신혼여행치고는 장장 한달 여에 걸친 장기 여행으로 계획되었던 일정이었는데, 최서라가 갑자기 바이칼 호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일정이 대폭 변경되었다. 그래서 그리스에서 이탈리아에 들렀다가 프랑스만 잠시 구경한 다음에 곧바로 바이칼 호 근처의 최대 도시인 이르쿠츠크로 이동하기로 했다.
새 집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낸 두 사람은 아침 일찍 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탔다. 두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을 무렵, 크리스틴은 전화기를 붙잡고 아버지인 토마스 리히터와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신혼여행이잖아요. 아무리 이 박사가 탐이 난다고 해도 이번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계셨으면 좋겠어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주세요.”
“네가 이젠 아빠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구나? 벌써 나를 밀어내고 회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라도 든 거냐?”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아빠는 아직 건강하니까 너무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박사는 합리적인 사람이에요. 그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차라리 적당한 보상을 내걸고 협조를 부탁하세요.”
“너는 아직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려면 더 배워야 하겠구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해.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끊는다.”
다짜고짜 툭 끊긴 전화기를 쳐다보며 크리스틴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토마스 리히터는 비록 욕심이 많기는 하지만 동시에 냉철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드라이바인 그룹을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거대 기업으로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래도 그 냉철함을 잃은 것 같았다.
“아빠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이브라힘이나 다니엘 로스차일드처럼 불로장생을 꿈꾸는 건 아닐 테고. 도대체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거지?”
비슷한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 역시 이브라힘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박사를 그의 부인과 함께 처리하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 큽니다. 최서라의 아버지인 최병호가 사장으로 있는 미래 전자는 국제적인 기업입니다. 그녀를 납치하거나 죽일 경우 한국 정부에서 가만있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이 문제로 인해 외교적인 파장까지 야기되면 전하의 왕위 계승에도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큽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서 압둘을 노려보는 이브라힘의 눈빛에는 여전히 살기가 배어 있었다.
“내가 왜 그렇게 권력을 손에 쥐고 싶어 하는지 알아? 내가 원하는 대로 힘을 휘두르고 싶기 때문이야. 그런데 고작 아시아 끝에 있는 작은 나라의 감정가 한 명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뭐 하러 애를 쓰며 이 자리까지 왔겠어? 잔소리 말고 지시대로 시행해.”
“한국은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이브라힘의 주먹을 쥔 채 자신의 책상을 쾅 하고 내려쳤다.
“압둘 바시뜨 알 하쉬르! 너는 내 부하이기 이전에 친구가 아니었나? 친구는 상대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야. 자네가 아직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토를 달지 말고 네 뜻을 따라주게.”
“……. 알겠습니다.”
압둘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서재를 나왔다. 입에서 저절로 깊은 한숨을 새어나왔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게 친구라고? 그건 친구가 아니라 부하이거나 노예겠지. 압둘은 그와 왕세제 사이의 두터웠던 관계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