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41화 (241/300)

241화

“초상화나 자화상의 경우 원작과 위작 사이에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 인물을 보고 그린 그림과 그것을 다시 모사한 것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이기도 하죠.”

도윤이 설명을 시작하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파비앵과 말레 회장은 물론이고 그의 나이가 젊은 것을 두고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기색을 내비치던 르보 실장마저 입을 다물었다.

“특히 연필이나 목탄으로 그린 소묘의 경우 사람을 직접 보고 그린 쪽이 좀 더 선의 변화가 많고 명암도 뚜렷해집니다. 고민하고, 망설이고, 수정하면서 그리기 때문이죠. 반면에 모작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완성된 것을 흉내 내는 것이니까요. 원작에 비해 선이 과감해지고 명암의 대비 역시 약간 순화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고흐의 자화상은 소묘가 아니라 유화입니다. 게다가 그는 명암에 신경을 쓴 화가가 아니었죠.”

르보 실장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도윤은 일단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을 긍정했다.

“맞습니다. 고흐는 명암이나 원작에 구애받지 않는 그림을 그렸죠. 하지만 그의 붓 터치는 복잡하고 독특합니다. 특히 죽기 직전에 그린 그림들일수록 색깔이 다양해지고 붓질도 거칠어지는 경향을 보였죠. 아마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감, 삶에 대한 좌절, 깊어지는 정신병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 대목에서 도윤은 잠시 말을 끊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시선을 다시 전시된 자화상으로 돌렸다.

“그런데 이 자화상에서는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아요. 어디에 붓을 대서 어디서 떼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린 것처럼 전체적으로 붓놀림이 과감합니다. 나름대로 그의 거친 터치를 흉내 내려고 애쓴 흔적은 역력하지만, 글쎄요, 아직 연습이 덜 된 신인 배우의 발 연기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어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건 주관적인 편견이 잔뜩 개입된 애매한 견해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감상이 아니라 감정이에요. 좀 더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는 말입니다.”

르보가 또 다시 끼어들었다. 어느새 주변으로 다가온 다른 관람객들의 일부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도윤이 ‘어색하다’고 표현한 부분은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차이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었다. 도윤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왕 지적을 당했으니 개인적인 감상을 하나만 더 말씀드리죠. 저는 이 자화상이 고흐의 원작을 흉내 낸 모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위조범은 진짜 그림을 보고그린 것도 아니에요. 아마 위조범은 고흐의 그림을 찍은 흑백 사진을 참조해서 이걸 그렸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그림이 고흐가 죽은 뒤, 하지만 아직 컬러 사진이 발명되지 않은 20세기 초에 완성되었을 거라고 봅니다.”

르보가 또 다시 뭐라고 딴지를 걸려는 순간, 파비앵이 먼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맞아요. 저도 색의 배합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뭐라고 할까, 고흐의 그림 치고는 색깔들이 너무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오히려 낯설었어요.”

“마치 컴퓨터로 잘 보정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바로 그거에요. 보기에는 좋지만 어쩐지 지나치게 세련돼 보이는 느낌 말이에요.”

도윤과 파비엥이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보던 르보 실장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두 사람의 감상은 잘 알겠소. 그래서 도대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그러자 도윤이 씩 웃으며 자화상이 그려진 캔버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캔버스가 다 비슷할 것 같지만 고흐가 살았던 시대만 해도 나라마다 산업 수준의 차이가 컸습니다. 요즘처럼 운송 수단이 발달되지 않아서 지역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도 많이 달랐고요. 당시 고흐가 사용했던 캔버스는 모두 동생인 테오가 보내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테오는 오로지 프랑스제 캔버스만 고집했지요.”

“그런데 이 자화상에 쓰인 캔버스는 프랑스제가 아니란 말이오?”

말레 회장의 질문이었다. 도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기에는 네덜란드제일 것 같습니다. 만약 그게 맞는다면 이 위작이 만들어진 장소가 네덜란드였다는 뜻이겠지요. 정확한 것은 캔버스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검사해야 밝혀지겠지만 최소한 프랑스제가 아닌 건 확실합니다. 마감을 하기 위해 표면에 칠한 화이트의 종류는 동일할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천의 재질이 다릅니다.”

“그거야 그리 어려운 검사도 아니니까 당장이라도 하면 되겠지.”

말레 회장의 말에 르보 실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회장님. 천의 재질을 검사하는 게 그리 어려울 건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경매가 당장 내일인데 언제 검사를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이미 위작이라는 의문이 제기된 마당에 무턱대고 응찰을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오? 내일 경매 시간 전까지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도 응찰을 포기하겠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자화상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이왕 과학적 검사를 할 거라면 한 가지 더 확인할 게 있습니다.”

르보 실장이 초조해 하며 말레 회장을 설득하려는데 도윤의 그의 말을 툭 끊어버렸다.

“잘 아시겠지만 유화는 마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완전히 말리려면 하루 이틀 정도로는 어림도 없죠. 그래서 대부분의 위조범들은 그림을 완성한 다음에 건조제를 바릅니다. 그림이 빨리 말라야 그만큼 빨리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건조제는 고흐와 같은 진짜 화가들은 전혀 사용할 이유가 없는 약품이지요.”

“이 그림의 물감에서 건조제 성분이 검출된다면 십중팔구 위작이라는 뜻이겠군요.”

말레 회장의 말에 도윤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검출되더라도 미량에 불과할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미량이라도 그건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위작의 증거가 되겠지요. 객관적인 증거 말입니다.”

도윤은 마지막 말을 할 때 르보 실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르보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결국 끙 하고 신음소리를 뱉고 말았다.

말레 회장의 반응으로 볼 때 그는 결국 이 그림에 대해 과학적인 조사를 하자고 요구할 게 뻔했지만 경매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소더비가 새삼스럽게 그런 요구에 응할 리가 없었다. 오르세가 눈앞의 자화상을 소유할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말레 회장이 그의 짐작에 쐐기를 박고 말았다.

“나는 정식으로 소더비 측에 이 자화상의 캔버스와 물감 성분에 대한 과학적 검사를 요구하겠소.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오르세의 전시 작품 목록에 고흐의 자화상이 추가될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 하겠지.”

도윤은 이제 이 문제에서 빠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고, 그걸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소더비나 오르세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이 정도면 파비앵이 보여준 호의에 대해 충분히 의리를 보여주었다고 할 만 했다. 그는 전시장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르보 실장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세상의 모든 견해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으로 딱 부러지게 나뉘지는 않습니다. 가령 똑같은 검사 결과를 놓고도 의사들의 진단은 서로 달라질 수 있죠. 하지만 그들의 해석을 일반인들의 주관적인 짐작과 똑같이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 그게 단순한 주관이 아니라 전문가의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감정 역시 전문과의 안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소더비의 감정 실장께서 그 점을 모를 거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르보 실장이 그 점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역시 프랑스에서는 제법 인정을 받는 전문 감정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도윤의 얘기는 너도 잘 알면서 왜 쓸 데 없이 객관적인 증거를 내놓으라며 떼를 쓰느냐고 꼬집은 것이다. 그것도 신혼여행 중에 잠시 전시장을 둘러보러 온 것일 뿐인 사람한테.

‘도대체 그렇게 무리하게 저 그림을 구매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뭐야?’

내놓고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그가 진짜 궁금한 건 바로 그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구심은 파비앵과 말레 회장을 비롯해서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비슷하게 떠오른 생각이기도 했다. 도윤과 최서라는 그 말을 끝으로 전시장을 떠났다. 남은 사람들의 눈길이 하얗게 변한 르보 실장의 얼굴 위에 따갑게 쏟아졌다.

* * *

소더비 경매장에서의 해프닝이 있은 후에도 도윤과 최서라는 차를 빌려 파리 인근의 명소들을 구경하면서 나흘을 더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던 도중에 말레 회장이 전화를 걸었다.

“곧 파리를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시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저희가 지금 …….”

고민할 필요도 없이 거절하려던 도윤의 머리에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죄송하지만 내일 저녁에는 선약이 있습니다. 혹시 전에 보셨던 소더비의 파비앵 큐레이터를 기억하십니까? 그 친구와 파리를 떠나기 전에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모레 저녁이라도…….”

“모레 아침에는 저희가 일찍 파리를 떠납니다. 아쉽지만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네요.”

도윤은 거기서 잠시 뜸을 들였다가 슬쩍 말을 꺼냈다.

“회장님만 괜찮으시다면 내일 다 같이 함께 만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 친구도 오르세에서 근무하니까 회장님과 함께 식사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저야 바랄 게 없지만 그 분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만약 함께 식사하는데 동의해 주시면 제가 좋은 곳에서 대접하겠다고 전해주십시오.”

“제가 파비앵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전화 드리죠.”

전화를 끊은 도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모레 아침에 파리를 떠나는 건 맞지만 내일 저녁에는 아무런 약속이 없었다.

그가 굳이 말레 회장을 만나는 자리에 파비앵을 부르려고 한 것은 르보 실장 때문이었다. 지난번 소더비 전시장에서의 일로 인해 르보는 도윤에게 앙심을 품었을 것이다. 물론 도윤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제아무리 오르세의 감정 실장이라고 해도 프랑스에 있는 르보가 한국에 사는 그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 수 있겠는가?

“괜히 이상한 방식으로 집적대면 그에 맞게 대응을 해주면 그만이지.”

현재 그에게는 오르세의 실장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명성과 재력이 있었다. 그러나 비록 부서가 달라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파비앵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를 게 분명했다. 자칫하면 르보에게 괴롭힘을 당할 가능성이 컸다.

“말레 회장은 매년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 오르세의 후원회장이잖아. 그와 파비앵 사이에 친분이 생기면 르보도 함부로 선을 넘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짐작했던 것처럼 파비앵은 말레 회장과 저녁을 함께 먹자는 도윤의 제의를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이튿날 저녁, 도윤과 최서라, 그리고 말레 회장과 파비앵 네 사람은 파리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레스토랑에 함께 모였다. 장소를 연락받고 확인해 보니 미슐랭 스타를 무려 세 개나 받은 최고급 레스토랑이었다.

“이 박사 같은 인재가 한국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는 건 세계적인 손실입니다. 혹시 프랑스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져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이 박사는 프랑스 어에도 능통하시니 여기서 생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의향만 있으시다면 제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요리는 단순히 맛이 좋은 것을 넘어서 혀끝에서 톡톡 튀는 창의성마저 느껴졌다. 내심 요리도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감탄을 금치 못하던 도윤은 갑작스러운 말레 회장의 제의에 깜짝 놀랐다.

“저보고 프랑스로 이민이라도 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이민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 주시면 더 좋지요. 이 박사 정도의 재능을 가진 인재라면 프랑스 정부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이 양반도 은근히 저돌적이시네. 도윤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워낙 욕심이 많다보니 동서양의 미술품 모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살다 보면 감정 분야가 너무 유럽 미술품에만 치우칠까 걱정됩니다. 게다가 지금은 가족이 모두 한국에 있고 이미 벌여놓은 일도 적지 않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사는 건 힘들 것 같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한국을 떠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글쎄요. 감정 분야가 협소해지는 게 걱정이라면 그건 기우입니다. 요즘은 프랑스에서도 동양의 미술품을 감정하게 될 기회가 많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보다 더 다양하고 풍성한 미술품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역시 곤란하겠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예전부터 뛰어난 감정가가 많은 나라가 아닙니까?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회장님을 만족시켜 드릴 감정가를 얼마든지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도윤의 얘기에 말레 회장이 입맛을 다시며 손을 내저었다.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프랑스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부끄럽지만 사실 최근에는 모리스 메시앙 외에는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감정가가 없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메시앙마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죽은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이 박사라면 충분히 그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을 겁니다.”

말레 회장의 입에서 느닷없이 메시앙의 이름이 언급되는 바람에 도윤은 하마터면 입에 머금었던 커피를 뱉을 뻔 했다. 눈치를 보니 말레 회장은 아직 메시앙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초대받아 갔다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메시앙이 리히터 회장의 앞잡이 노릇을 하더니 주변에는 자신의 행적을 알리지도 않은 모양이군. 당시 함께 갔던 다른 감정가들도 아직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고.’

십중팔구 이브라힘 왕세제로부터 협박이나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다. 도윤은 입 안에 머금었던 커피를 꿀꺽 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를 메시앙 같은 대가와 비교하시는 건 너무 과분합니다. 하지만 그의 빈자리를 채울 인재가 없다는 건 너무 성급한 판단이십니다. 당장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파비앵만 하더라도 충분히 프랑스 감정계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니까요.”

도윤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칭찬하자 파비앵이 작게 기침을 했다. 그 말에 말레 회장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고흐의 자화상이 위작일지도 모른다고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이 파비앵 말레 씨라고 들었습니다. 나하고는 마침 성이 비슷해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알랭 말레 회장과 파비앵 말레의 성은 발음만 비슷하지 철자가 달랐다. 하지만 서양의 경우에는 워낙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적다보니 호기심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도윤은 과거 트루쓰 앤 밸류를 촬영할 때 파비앵이 얼마나 뛰어난 감정 실력을 보여주었는지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이 정도면 파리에서 받은 호의는 충분히 보답한 거다?’

도윤은 말레 회장의 호의적인 태도에 얼굴이 환해진 파비앵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만약 자신에 대한 말레 회장의 호감이 진짜라면, 그런 자신의 입으로 극구 칭찬한 파비앵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울 때 그의 도움을 받고 안 받고는 이제 파비앵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