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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42화 (242/300)

242화

도윤과 최서라가 말레 회장과의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로비에서 어떤 여자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삼십대 초반의 전형적인 서양 미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도윤 박사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아트 프레스(Art Press)’의 마그리트 모리스 기자라고 합니다.”

환환 미소와 함께 자신을 기자라고 밝힌 여자가 도윤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넸다.

“네. 제가 이도윤이 맞습니다만,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죠?”

일단 명함을 받아들기는 했지만 도윤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상대가 사전 연락도 없이 무작정 호텔 로비에서 자신을 기다린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별로 달갑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봤음에도 불구하고 모리스는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미술 잡지 기자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감정가를 찾는 이유는 뻔하지 않겠어요? 취재를 겸해서 혹시 괜찮으시면 간단한 인터뷰를 부탁할 수 있을까 해서 기다렸습니다.”

“인터뷰는 그렇다 치고 취재는 뭐죠? 저한테 뭐에 관해서 취재를 하시려고요?”

“며칠 전에 소더비 경매에 올랐던 고흐의 자화상이 유찰되었어요. 그만한 작품이 유찰된 게 이상하다 싶어 알아봤더니 프리뷰 전시 때 이 박사님이 위작 의문을 제기했다더군요. 그래서 소더비에서도 지금 해당 작품에 대한 재 감정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그 일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볼 게 있는데 잠깐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기자에게 구구절절이 사정을 얘기하기는 좀 껄끄러운 일이었다. 도윤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에둘러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글쎄요. 지금은 저희가 피곤해서 조금 곤란하겠는데요.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이제 막 들어오는 참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저런, 그러시군요. 그럼 제가 내일 오전 중에 다시 올까요?”

“아뇨. 내일 아침에는 저희가 파리를 떠날 예정입니다. 일부러 찾아오셨는데 아쉽게도 취재에 응하기는 좀 어렵겠네요.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모리스 기자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 찰나, 옆에 있던 최서라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트 프레스는 프랑스에서도 꽤 인기 있는 미술 잡지에요. 화가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싣기도 하고요. 나쁘지 않은 기회니까 이왕이면 잠깐이라도 인터뷰에 응해주세요. 전 먼저 방에 올라가 쉬고 있을게요.”

도윤처럼 젊은 감정가의 입장에서는 전문 미술 잡지에 자주 이름이 거론되는 것도 일종의 경력이 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최서라는 그에게 은근히 인터뷰에 응할 것을 권했다. 결국 도윤은 30분 이내로 끝내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모리스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박사께서는 이번 파리 소더비 경매에 나왔던 고흐의 자화상이 위작이라고 보시죠?”

모리스의 첫 질문은 짐작했던 대로 고흐의 자화상에 관한 것이었다. 도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품이라고 보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위작임을 의심케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겠어요?”

“먼저 붓의 터치가 원작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명확합니다. 보통 위작들의 경우에는…….”

그의 입장에서는 자화상에서 아무런 아우라도 내비치지 않는다는 게 결정적인 증거였지만 기자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미 사람들 앞에서 설명했던 부분을 다시 한 번 가급적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렇게 문답을 주고받은 지 20분가량이 지났을 때 모리스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까 내일 아침에 파리를 떠나신다고 했는데, 그럼 이제 한국으로 귀국하시는 건가요?”

“네?”

“아, 지금 신혼여행 중이시라고 들었거든요. 다른 여행 일정이 없으신가 해서요.”

“…그것도 미술 잡지의 관심사인가요?”

도윤이 뜨악한 표정을 짓자 모리스가 얼른 웃으며 변명했다.

“저희 아트 프레스의 관심사라기보다는 독자들의 관심사죠. 이 박사님은 최근 떠오르고 있는 감정계의 젊은 천재시잖아요. 독자들은 유명 인사들의 사생활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그렇다고 아트 프레스가 연예계 가십을 싣는 잡지는 아니잖아? 그렇잖아도 그리스에서부터 계속 미행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 때문에 계속 뒷머리가 따가웠었다. 도윤은 왠지 기분이 찜찜했다.

“제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잡지에 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질문은 못들은 걸로 하지요.”

“알겠어요. 그럼 이 박사님의 여행 일정에 대해서는 기사를 쓰지 않는 걸로 할게요. 그래도 당장 귀국한다고 하시지는 않는 걸 보니까 다른 일정이 있긴 있으신가 보죠? 아, 죄송해요. 이건 기자이기 이전에 이 박사님의 팬으로서 호기심으로 여쭙는 거예요.”

이것 봐라? 도윤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생글생글 웃는 모리스에게서 어딘지 위화감을 느꼈다. 나이를 보건대 분명 신입 기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칫 상대방을 언짢게 할 수도 있는 걸 굳이 다시 묻는다고? 사생활에 관한 질문은 못들은 걸로 하겠다고 말했는데?

“내일 파리를 떠나서 일단 런던으로 갈 겁니다. 그곳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독일을 둘러볼 계획으로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일정이 바뀔 수도 있지만요.”

“아, 부인께서 런던에서 오래 공부하셨다고 하더니 역시 영국을 들르시는군요?”

“네. 저도 그렇고 제 아내가 거기서 만나고 싶어 하는 지인이 몇 명 있어서요.”

“그럼 런던까지는 유로스타를 타고 가시나요?”

“네. 아무래도 여기서 런던까지는 비행기보다는 기차가 더 빠르고 편하니까요. 그나저나 이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세요. 오늘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을 마무리할 때까지 즐거운 일만 있기를 바랄게요.”

도윤은 모리스와 헤어진 뒤에 곧바로 방으로 올라갔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얼굴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 * *

그날 밤, 도윤과 최서라는 파리에서 산 두 개의 커다란 트렁크에 가지고 있던 짐의 대부분을 집어넣었다. 그리스에서부터 새로운 도시에 들를 때마다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사다 보니 어느 새 짐이 상당히 불어나 버린 것이다. 그것들을 포함해서 앞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트렁크에 담았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두 개의 여행용 캐리어가 더 있었지만 그 안에 든 것은 태블릿과 속옷, 그리고 비누, 샴푸 등을 비롯한 간단한 여행용품들 뿐이었다. 그 때문에 캐리어의 내부는 대부분 텅 빈 상태였다.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그들은 호텔 프런트에 트렁크를 맡기고 한국의 ‘서윤 문화 재단’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두 사람이 묵었던 곳은 파리에서도 최고급에 속하는 호텔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객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화물 배송 서비스도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호텔을 떠난 그들은 곧바로 공항으로 가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현장 구입이었기 때문에 남은 표가 거의 없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퍼스트 클래스에는 여분의 좌석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최서라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정말로 누군가 우리 뒤를 쫓는 것 같아요? 저는 도윤 씨를 믿지만 차라리 그게 다 착각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확신을 하기는 어려워. 확실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 같아. 느낌이 영 이상한데다 어제 그 여기자가 자꾸만 우리 일정을 물은 것도 좀 수상해. 아무튼 혹시 모르니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걸로 생각하자.”

도윤은 파리를 떠날 때까지도 런던 행 유로스타 표를 무르지 않았다. 생으로 표 값을 날리는 셈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걸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호텔의 경우에는 모두 현장 결제를 하겠다고 예약했기 때문에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에 취소하면 된다. 이미 예약해 두었던 비행기 표들 역시 모스크바에서 전화를 걸어 취소할 생각이었다.

‘미안하네. 신혼여행을 와서까지 미행을 걱정하게 만들다니.’

옆 좌석에 앉은 최서라를 힐끗 돌아본 도윤이 입맛을 다셨다. 이 모든 게 결국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과 함께, 새삼 이브라힘 왕세제와 리히터 회장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모스크바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곳에서 배낭 두 개를 샀다. 최서라의 것은 보통 당일치기로 등산할 때 매는 30리터짜리였지만, 도윤은 그보다 두 배나 큰 60리터짜리를 샀다. 그리고 그 안에 텐트와 침낭 등을 비롯해서 장기간 트래킹을 할 때 필요한 것을 잔뜩 사서 채웠다. 옷과 신발 역시 트래킹에 적당한 것을 사서 바꿔 입었다.

기존에 가지고 다니던 빈 여행용 캐리어를 버린 그들은 모스크바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르쿠츠크 시로 날아갔다. 그곳은 이르쿠츠크 주의 주도이자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지나는 바이칼 호수 인근의 도시였다. 인구는 60만 정도지만 인근에서는 제일 큰 도시였다.

“이러니까 마치 모험가가 된 것 같아요.”

최서라는 미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도윤의 말 때문에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파리를 떠나면서 여행의 성격이 확 달라진 게 한편으로는 즐거운 모양이었다. 도윤은 어찌 보면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그녀의 반응에 속으로 입맛을 다시면서도 겉으로는 해맑게 웃어주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아야 할 텐데…….

이루쿠츠크에 도착한 그들은 먼저 오프로드를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는 튼튼한 SUV를 렌트했다. 그런 다음 비행기에는 실을 수 없었던 취사도구와 식품, 그리고 배터리를 잔뜩 샀다. 그것들을 배낭에 꽉꽉 채우는 한편, 남는 것은 차 트렁크에도 실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직 정확한 위치도 모르는 ‘기련 산맥’을 향해 떠날 준비가 되었다.

이르쿠츠크 시는 바이칼 호수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시였다. 그곳을 떠난 도윤은 몽골과의 국경이 있는 남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 잠시나마 문명의 품을 떠나 야생이 지배하는 곳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그나마 이미 5월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서 시베리아의 추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근데 원사(元史)에 기록된 기련 산맥 속의 칭기즈칸 무덤이 정말 도윤 씨가 잔류 기억에서 봤다는 그 분지에 있는 게 맞을까요?”

그들이 탄 차가 아스팔트를 벗어나 포장이 안 된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하자 최서라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윤은 운전대를 잡은 상태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모르지. 나도 잔류 기억 영상에 나왔던 자료를 구글 어스는 물론이고 여러 자료와 면밀하게 대조하고 나서야 간신히 비슷한 지형을 찾아낸 거니까. 그래도 정확한 위치는 그 근처를 샅샅이 뒤지기 전에는 알 수가 없어. 그걸 위해서 지금 우리가 이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도윤은 황금 술병 세트에서 잔류 기억을 읽은 이후, 거기서 봤던 지형을 찾아내려고 민간에 공개되지 않는 항공사진까지 참조하면서 인근 지형을 샅샅이 훑었다. 그 결과 가장 유력한 곳을 선정하기는 했지만 그건 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본 잔류 기억 자체가 무려 800년 전의 것이었으니, 그 사이에 주변의 지형이 변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들이 이번 여행에서 바이칼 호와 몽고 사이 돌아다니며 탐사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열흘 정도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벌여놓은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신혼여행 일정을 그 이상 늘리는 게 곤란했기 때문이다. 최서라가 과연 그 열흘 간을 버텨줄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최서라 본인은 탐사가 아니라 여행을 나온 느낌인 모양이었다.

“저는 야외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밖에서 누워 밤하늘을 보면서 자는 게 어떤 기분일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주변에 인가가 거의 없어지고 저 멀리 초원을 무찌를 것처럼 늘어선 산봉우리들이 나타나자 최서라가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텐트를 치고 누울 테니까 밤하늘을 보면서 자는 건 안 되지. 하지만 모닥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는 건 가능할 거야. 여긴 공기가 무척 맑으니까.”

“벌서부터 기대가 돼요. 도윤 씨는 예전에 야영을 많이 해 봤다고 했죠?”

그녀의 말에 도윤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겹게 했지. UDT로 근무할 때는 최서라의 말마따나 밤하늘을 보며 자야 했던 경우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식으로 거칠게 먹고 자는 건 곤란했다. 자신의 옆에 있는 건 UDT 동료들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거친 세상을 경험한 적이 없는 아내였으니까.

* * *

도윤과 최서라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무렵, 런던과 네덜란드에서 두 사람을 낚아챌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사람들은 발칵 뒤집혔다. 예상과는 달리 두 사람이 유로스타의 영국 쪽 종점인 런던의 세인트 팬크러스 역에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네가 이도윤을 직접 만나서 일정까지 확인했다면서? 그런데 왜 그 친구가 런던에서 기차를 내리지 않았다는 거야?”

모리스의 보고를 받은 리히터 회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게 말이 돼?

그리스부터 이탈리아를 거쳐 파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이도윤과 그의 아내를 납치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려고 했다. 그래서 납치 장소를 런던으로 택했던 것인데, 엉뚱하게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비행기는? 혹시 파리에서 기차를 취소하고 비행기를 탄 건 아니야?”

그의 소리를 버럭 지르자 파리에서 도윤을 취재하겠다며 접근했던 여자, 아트 프레스의 모리스는 잔뜩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녀가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갔다.

“유로스타는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탑승을 안 한 것 같습니다. 대신 런던과 암스테르담,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 표와 호텔 들은 전부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그럼 뭐야? 이도윤 부부가 파리에서 곧장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거야?”

“그건 현재 확인 중입니다. 혹시 이 박사 이름으로 구입된 비행기 표나 호텔 예약이 더 있는지 찾아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더 걸린다고? 지금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당장 찾아내! 두 사람의 행방을 알아낼 때까지는 잠도 자지 말고 밥도 먹지 말란 말이야.”

리히터 회장은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소리까지 내뱉고 나서는 신경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무슨 정부 요인을 납치하라는 것도 아니고 감정사 하나를 잡아오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거야?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모리스가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은 다음날 저녁이 다 되었을 때다. 그녀는 정말 그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전화기와 컴퓨터에 매달렸었다.

“찾았습니다. 이 박사와 그의 부인이 파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모스크바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갔답니다.”

“이르쿠츠크? 거긴 바이칼 호 부근에 있는 도시잖아? 두 사람이 거기는 왜 갔는데?”

“죄송하지만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환장하겠군. 당장 이르쿠츠크로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이 한국으로 귀국해버리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몰라. 어떡하든 러시아를 벗어나기 전에 잡아와.”

“알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모리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던 그 시각,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브라힘 왕세제도 압둘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총기는 러시아 현지에서 조달하도록 하고 당장 요원들을 파견해. 이도윤의 팔다리를 병신을 만들어도 좋으니까 무조건 목숨만 붙여서 데리고 오란 말이야. 정도 안 되면 그 자식 마누라라도 잡아. 자기 마누라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면 설마 버티지 못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자를 가지고 협박하라고? 그건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일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파렴치한 짓이었다. 압둘은 수치심에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로 고개를 숙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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