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43화 (243/300)

243화

<37. 칭기즈칸의 무덤>

이르쿠츠크가 바이칼 호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호수 연안에 붙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이칼 호에서 흘러나가는 안가라 강을 따라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칼 호 서남단 끝에 위치한 도시는 슬류단카였는데, 도윤과 최서라는 그곳을 서쪽으로 수십 킬로미터나 우회해서 차를 몰았다.

슬류단카에서 서쪽으로 20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는 홉스골이라는 또 다른 호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자체로 내륙의 바다나 다름없는 바이칼 호에 비해서는 작지만 홉스골 역시 길이 120 킬로미터에 폭이 20~30킬로미터에 달하는 큰 호수였다. 도윤과 서라는 홉스골과 슬류단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구릉 근처에서 첫 야영을 했다.

“머리 위에서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게 어떤 걸까 늘 궁금했었는데, 이젠 알 것 같아요.”

모닥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있는 도윤의 옆에 앉아 있던 최서라가 문득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 팔을 가지런히 모은 채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그녀의 모습에 도윤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저 여자는 이런 외진 풍경 속에서도 홀로 빛날 만큼 아름답구나.

“전에는 이렇게 공기가 맑은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어?”

밤하늘보다는 아내의 아름다운 자태에 잠시 넋을 잃었던 도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최서라는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가족들하고 동남아 쪽 휴양지에 놀러갔을 때도 하늘이 맑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고 전깃불 때문에 사방이 환했거든요. 게다가 가족들하고 얘기하고 노느라 이렇게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하긴 문명의 이기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야 비로소 자연이 제대로 보이는 법이지.”

도윤의 말에 최서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도윤 씨하고 떨어지는 건 싫어요. 이런 곳에서 도윤 씨마저 없으면 밤하늘이고 뭐고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 보일 거예요.”

“나는 평생 서라 곁에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러려고 결혼한 거니까.”

피식 웃으며 대답한 도윤이 고기를 굽던 집게로 석쇠를 탕탕 두드렸다.

“고기 다 익었다. 이제 그만 밥 먹자.”

최서라가 모닥불 가까이로 다가왔다. 야외에서 지은 밥은 생각보다 맛이 있었고, 이르쿠츠크에서 구입한 쇠고기 역시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안에서 스르르 녹았다. 밤하늘의 별들과 타닥거리며 타들어가는 모닥불 소리 자체가 훌륭한 양념이었다.

식사 후 도윤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최서라는 커피를 끓였다. 설거지한 코펠들을 닦은 뒤 차곡차곡 뒤집어 쌓은 도윤이 몸을 일으키자 최서라가 그에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캠핑용 컵을 내밀었다. 그녀가 약간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급 호텔에서 자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단 둘이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밤을 보내는 것도 정말 멋진 경험인 거 같아요.”

“가끔은 이런 곳에서 야영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하지만 이게 몇날 며칠씩 계속 되면 생각이 좀 달라질 걸? 색다른 체험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그때부터는 눈물 나는 스토리로 변하고 말거든. 이런 경험은 일상에 잠깐 자극을 주는 정도로 충분해.”

“그래도 도윤 씨하고 함께 하는 거라면 모험의 연속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모험의 연속이라니. 그런 소리는 절대 하지 마. 나는 서라하고 평안한 일상을 보내는 쪽이 훨씬 좋아. 날마다 좋은 작품들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한 침대에서 자는 것이야 말로 내 꿈이야. 스릴 넘치는 모험 같은 건 영화 속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 말에 최서라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평안한 일상을 좋아하시는 분이 툭 하면 사건 사고에 휘말리는 거예요?”

“내가 원한 게 아니야. 세상에 나쁜 놈들이 너무 많다 보니 그런 거지.”

최서라가 나른한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짓더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내일은 칭기즈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할 수 있겠죠?”

그녀의 목소리에서 잠기운이 묻어나왔다.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했으니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도윤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내가 잔류 기억과 자료들을 제대로 해석했다면 아마 그렇게 될 거야.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더라도 문제는 그때부터야. 몇 백 년이 지나는 동안 원래의 무덤 위에 흙이 두껍게 쌓이거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랐을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아예 땅이 꺼져 연못이나 호수로 변해버렸을지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까 이 부근에 큰 호수가 많더라고요. 나는 바이칼 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긴 시베리아 벌판과 몽골 초원 사이에 끼인 대륙의 주름이나 마찬가지야. 2천 미터가 넘지 않는 고만고만한 산들이 파도처럼 이어지는 산줄기 사이사이마다 분지가 호수가 많아. 당연히 계곡을 따라 흐르는 크고 작은 강이나 시냇물도 적지 않고.”

“우리가 타고 온 SUV로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지도상으로 봐서는 목적지 바로 앞에서 산을 하나 걸어서 넘어야 할 거야. 거긴 산을 우회하는 도로 같은 게 전혀 없으니까. 최소한 반나절 정도는 고생할 각오를 해야 돼.”

“칭기즈칸의 무덤은 평평할 거라고 했죠?”

“기록에 의하면 그의 무덤에는 봉분을 쌓지 않았어. 무덤 위를 평지처럼 평평하게 다지고 말 수백 마리를 그 위로 돌아다니게 해서 땅을 팠다가 덮은 흔적을 완벽하게 없앴다고 했거든. 어쩌면 묘실을 찾기 위해서 땅을 수십 미터 이상 파고 내려가야 할지도 몰라. 우리 힘만으로 그런 공사를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흔적만 확인해도 운이 좋다고 생각해야지.”

말을 하다 보니까 어깨에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눈만 살짝 옆으로 돌리자 최서라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얹은 채 잠이 든 게 보였다. 도윤은 손에 들었던 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그녀의 몸을 안아들었다. 그가 미리 침낭을 펼쳐놓은 텐트를 향해 움직이자 그제야 최서라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억지로 눈 뜰 필요 없어. 피곤할 테니까 그냥 이대로 자.”

도윤의 말에 최서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꿍얼거렸다.

“아, 나 이빨도 아직 안 닦았는데…….”

“오늘은 그냥 자. 하루 이 안 닦는다고 해서 설마 이가 썩겠어?”

도윤은 그녀의 신발을 벗긴 뒤 옷을 걸친 그대로 침낭 안에 집어넣고는 지퍼를 올려주었다. 그가 최서라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런한 숨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도윤은 커피를 먹은 잔을 마저 씻어서 다른 그릇들과 함께 텐트 옆에 세워놓은 SUV 안에 집어넣었다. 모닥불을 끄고 주변을 정리한 뒤에 텐트 안에 들어가 최서라 옆에 눕자 사방에서 밤바람이 나뭇잎들을 스산하게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칭기즈칸의 무덤은 못 찾아도 좋으니까 돌아갈 때까지 오늘 같기만 했으면 좋겠네.”

그나마 주변에 비교적 물이 풍부하고 계절이 여름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밤공기도 차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잠시 주변에서 들려오는 풀잎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도 곧 잠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하늘을 온통 채우고 있는 별들 사이로 커다란 달이 환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 * *

도윤과 최서라가 바이칼 호수 남쪽의 산속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날,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에서는 서로 다른 두 무리의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각 이브라힘 왕세제와 리히터 회장을 위해 일하는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기어코 도윤과 최서라가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정작 눈썹을 휘날리며 모스크바에 도착한 결과 시내의 호텔 어딘가에 있을 거라 짐작했던 두 사람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사방으로 전화를 걸고 발로 뛰어다니면서 도윤과 최서라의 행방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그들이 확인할 수 있었던 건 고작해야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4성급 이상의 호텔에는 두 사람이 체크인 한 적이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죄송하지만 시간을 좀 더 주십시오. 모텔과 게스트하우스까지 샅샅이 뒤져보겠습니다.”

요원으로부터 전화로 보고를 받은 리히터 회장은 기가 막혀서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들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부자야. 그런데 신혼여행까지 와서 고작 모텔이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에 묵을 리가 없잖아? 신혼부부가 위조여권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들이 모스크바에서 투숙한 기록이 없다면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게 분명해. 여기 사람들을 시켜서 이도윤이 기차나 비행기 표를 끊은 기록이 있는지 확인할 테니까 기다려.”

리히터 회장의 드라이바인 그룹은 전 세계 도처에 지사를 두고 있었고, 주요 국가나 도시에는 반드시 정보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직원들을 배치했다. 그는 모스크바 지사를 닦달한 결과 이튿날 원하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그 정보를 모스크바에 머무르고 있는 요원들에게 전했다.

“이도윤과 최서라가 러시아 국내선을 타고 이르쿠츠크로 갔으니까 당장 추격해. 이르쿠츠크는 여름마다 한국 항공사가 취항하는 곳이야. 잘못하면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놓치기 전에 빨리 움직여서 잡으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요원은 난감한 심정에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들은 어제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마피아를 통해 총기를 사들였다. 도윤과 최서라가 아직 모스크바에 있을 경우에 지체 없이 행동에 나설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변해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르쿠츠크에 가야 하게 되자 기껏 샀던 총기가 순식간에 쓸모없는 짐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아무리 러시아라고 해도 항공 안전 요원이 아닌 이상 총을 든 채로 비행기를 탈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은 총기를 모두 처분하고 이르쿠츠크에 가서 다시 무기를 구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모스크바를 떠나는 그들은 도윤을 만나기만 하면 그를 납치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상대는 기껏해야 감정사에 불과했고, 일행 역시 평범한 여성이었다. 특수 훈련을 받은 다수의 요원들이 고작 민간인 두 명을 사로잡지 못하는가?

리히터 회장의 부하들이 모스크바를 떠난 다음날, 이번에는 이브라힘 왕세제의 부하들이 이르쿠츠크 행 비행기를 탔다. 그들은 이르쿠츠크에 도착해서 수소문한 끝에 한 렌트카 회사에서 젊은 동양인 부부 한 쌍이 SUV를 빌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도윤이라……. 네. 확실히 그런 이름으로 차를 빌린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사흘 전이었죠. 그런데 그 분들은 왜 찾으십니까? 혹시 죄를 짓고 쫓기는 범죄자들이에요? 어허, 그러면 곤란한데. 이러다 비싼 차를 돌려받지도 못하고 날리는 거 아냐?”

도윤이 차를 빌렸던 렌트카 사장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왕세제의 요원들을 흘낏흘낏 훔쳐봤다. 그들은 사장이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 챘다.

“범죄자라니요? 집안에 큰 문제가 생겨서 연락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소식이 뚝 끊겨서 그럽니다. 혹시 지금 어디쯤 있는지 알 방법이 있겠습니까? 사례는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무려 다섯 명인데다 그 중 둘은 아무리 봐도 아랍인이었다. 이도윤 부부가 모두 동아시아인아라는 점을 생각할 때 생김새에서부터 집안 일 운운은 씨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렌트카 사장은 처음부터 그런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사람들이 빌려간 차에 GPS 발신 장치가 붙어 있기는 한데…….”

사장의 얘기에 왕세제의 요원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빌려준 차에 GPS 발신 장치를 달았다고요?”

“아니, 내가 뭐 꼭 그 사람들을 의심해서 그런 건 아니고……. 하지만 가끔씩 차를 빌린 뒤에 그냥 몰고 도망가 버리는 나쁜 놈들이 있어서 말이죠.”

“그렇죠. 정말 그런 나쁜 놈들이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러면 그 GPS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수신기도 있겠군요.”

“있기야 있죠. 근데 그게 꽤 비싼 거예요. 빌려주는 물건도 아니고…….”

사장의 눈앞에 백 유로짜리 지폐 이십 장이 놓였다. 그제야 사장이 씩 웃으며 지폐를 집어넣더니 서랍 안에서 액정 화면이 달린 GPS 수신기를 꺼냈다.

“그 사람들 차에 붙여 놓은 GPS가 배터리 때문에 열흘 밖에 못 견뎌요. 이제 사흘이 지났으니까 일주일 정도 남았겠네. 그 전에 찾지 못하면 신호를 못 받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원들 역시 도윤 일행을 쫓기 위해 그 렌트카 회사에서 두 대의 차를 빌렸다. GPS 수신 장치를 통해 도윤과 최서라가 인적이 없는 산맥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들은 야영에 필요한 물건들과 식료품을 구입한 뒤 곧바로 이르쿠츠크를 출발했다. 그들이 사라진 뒤, 렌트카 회사 사장이 씩 웃으며 손에 든 돈을 세었다.

“별일이네? 보기에는 착하고 멀쩡해 보이는 부부였는데 설마 도망자였던 거야? 아니면 그 사람들을 뒤쫓는 저 친구들이 오히려 범죄자인가? 에이, 내가 왜 그런 걸 신경 써? 아무튼 이틀 동안 GPS 수신 장치 두 개 빌려주고 꽤 짭짤하게 수입을 올렸네? 내일도 또 저런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군.”

이브라힘 왕세제의 요원들이 다녀가기 하루 전에 리히터 회장의 요원들 역시 그의 회사를 다녀갔다. 덕분에 사장은 뜻밖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혹시 도윤에게 빌려준 SUV 차를 회수하지 못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무려 열흘이나 차를 빌려주면서 받은 보증금이 두둑한데다 보험까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 * *

산속에서의 첫 야영을 마친 도윤과 최서라는 다음날 아침 일찍 레토르트 음식을 데워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뒤 차를 출발시켰다. 그날 저녁, 잔류 기억을 통해 보았던 분지 근처에 도착한 그들은 거기서 다시 한 번 텐트를 치고 잠을 청했다.

“여기부터는 차로 이동하는 게 불가능해.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부터는 걸어서 움직이는 걸로 하자. 꽤 힘이 들 테니까 미리 각오를 단단히 해야 될 거야.”

말을 하면서도 도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자 최서라가 팔에 힘을 줘서 나오지도 않는 알통을 자랑하며 웃었다.

“이래 봬도 수영과 조깅으로 다져진 몸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걱정이 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한 두 사람은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도윤은 먼저 작은 톱을 이용해서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자른 뒤 그것으로 차를 위장시켰다. 아무리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해도 만약을 대비해 차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최서라를 생각해서 최대한 행군 속도를 늦췄기 때문에, 두 사람이 완전히 산을 넘어서 제법 커다란 분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산 너머로 진 뒤였다. 도윤은 서둘러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했다. 최서라는 자기도 돕겠다고 나섰지만 도윤은 그녀를 텐트 안에서 쉬게 했다. 힘든 걸 억지로 참고 걷느라 체력이 완전히 방전된 게 훤히 느껴졌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는데 쓸 수 있는 시간이 나흘인 건가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최서라가 묻는 말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탐사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열흘인데 벌써 사흘이 지났잖아. 돌아갈 때도 사흘이 걸릴 걸 생각하면 여기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나흘밖에 없다고 봐야지.”

“근데 분지가 생각보다 넓네요? 여기서 나흘만에 무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출발할 때는 여기 오기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조금 암담하긴 하네요.”

“처음부터 큰 가능성을 기대하고 온 건 아니잖아? 그냥 신혼여행 기념으로 추억을 하나 만들고 간다고 생각해. 너무 욕심내지 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윤은 나름대로 품고 있는 희망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칭기즈칸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부장품 가운데 능력을 담고 있는 유물이 최소한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에게는 브레토스의 회고록에서 얻은 새로운 두 가지 능력을 새로 전해 받았다. 그 중 하나는 주변에 능력을 담은 유물이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사방 백 미터에 불과하던 탐지 범위가 지금은 대략 170미터 정도까지 늘어난 상태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