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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44화 (244/300)

244화

분지에서의 첫 아침은 바닥을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새벽, 도윤은 잠결에 텐트 바닥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잠이 덜 깬 눈을 억지로 뜨고 머리맡에 두었던 회중전등을 찾아 켜자 텐트 전체가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문풍지처럼 떨고 있었다.

얼른 침낭을 빠져나온 그가 텐트 문을 열고 밖을 살피는데 뒤에서 졸음기가 가득한 최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일어나셨어요? 근데 뭐가 이렇게 흔들리는 거예요?”

다행히 최서라가 침낭에서 몸을 빼내려고 부스럭거리는 동안 진동은 멈췄다. 그제야 대충 상황을 파악한 도윤이 신발을 찾아 신고 텐트 밖으로 빠져나오며 말했다.

“지진이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이미 멈췄으니까 안심해.”

“헉! 지진이라고요?”

최서라가 눈을 토끼처럼 뜨면서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이미 완전히 텐트 바깥으로 나와 주변을 확인한 도윤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다지 큰 지진은 아니었어. 아직 해도 안 떴으니까 벌써 일어나지 말고 조금 더 자. 아침 식사 준비가 다 끝나면 깨워줄게.”

“지진이라는데 어떻게 누워 있어요? 빨리 텐트를 걷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텐트가 조금 흔들리고 만 걸로 봐서는 기껏해야 진도 4 정도일 거야. 여기는 주변에 건물이나 돌이 굴러 떨어질 만한 급경사가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평지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나무가 쓰러질 정도로 큰 지진이 아닌 이상 특별히 위험할 일은 없어.”

그제야 최서라도 약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지 기어코 텐트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쐬자 정신이 금세 맑아졌다.

“우리 정말 안전한 거예요?”

“이런 곳에서 위험하려면 진도가 최소한 6.5 이상은 돼야 해. 어쨌든 이왕 일어났으면 세수부터 해. 그 사이에 내가 식사를 준비할 테니까 텐트 정리는 밥 먹고 나서 하자.”

최서라가 세수를 하는 동안 도윤은 물에 스프 가루를 풀고 딱딱하게 말린 빵을 찢어 넣어 함께 끓였다. 거기에 통조림에 든 소시지를 데워서 내자 그럭저럭 간단한 아침 식사가 마련되었다. 식사를 마친 도윤이 텐트를 접어서 정리하는 동안 최서라는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끓였다. 출발 전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던 그녀가 여전히 걱정이 되는지 물었다.

“근데 이 부근이 원래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던가요?”

“글쎄? 일본처럼 툭 하면 지진이 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자주 발생한다고 봐야 할 거야. 알타이 산맥으로부터 중국 북쪽을 가로질러서 바이칼 호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지역이 모두 높고 낮은 산들로 쭉 이어져 있거든. 히말라야 산맥으로 이어지는 중국 서부 지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심심찮게 지진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어.”

“우리가 탐사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는 이번 지진이 끝이었으면 좋겠네요. 자고 있는데 땅이 막 흔들리니까 너무 무섭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진을 경험하기가 어려우니까 낯설어서 그래. 여기는 지진이 일어나도 비교적 진도가 낮은 편이야. 몽골 수도가 있는 울란바토르만 하더라도 진도 3~4 이상의 지진은 거의 일어난 적이 없으니까. 아마 다시 지진이 일어나도 큰 위험은 없을 거야.”

물론 이 지역에서도 진도 8가량의 지진이 발생했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워낙 드문 일이었고, 도윤은 최서라의 정신 건강을 위해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신 두 사람은 곧바로 분지를 탐사하기 위해 출발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면적은 어림잡아 여의도 두 배 정도의 크기였다. 얼마나 샅샅이 조사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둘러보는 정도라면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을 넓이였다.

분지 탐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도윤은 유물 감지 능력을 발동시켰다. 그는 이번 탐사의 성패 여부가 바로 그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칭기즈칸은 살아생전 아시아와 중동 지역은 물론이고 동유럽까지 세력을 확장했던 사람이다. 그 정도 인물의 무덤이라면 최소한 한두 개 정도는 능력이 담긴 유물이 묘실 안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칭기즈칸의 무덤이라고 해도 설마 묘실을 만들기 위해 땅을 100미터씩 파내려가지는 않았겠지. 지금 내 능력의 감지 범위가 대략 반경 170미터 가량이니까 웬만하면 유물이 있는 곳을 감지할 수 있을 거야.’

물론 기대와는 달리 탐사에 실패할 가능성도 엄연히 존재했다. 아예 분지의 위치를 잘못 파악했거나, 처음부터 묘실 안에 능력이 담긴 유물을 넣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원래 유물에 담겨 있던 능력이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흩어져 버렸든지.

그러나 탐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윤은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사실을 발견하고 혀를 찼다. 함께 걷던 최서라가 그의 표정이 변한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요?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요?”

도윤이 난감한 표정으로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봐. 분지 안에 냇물이 있잖아. 저거 잔류 기억에서는 못 봤던 거야.”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폭 이십 미터 가량의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분지를 둘러싼 산들에서 흘러나온 두 가닥의 냇물들은 중앙에서 하나로 합쳐진 뒤 다시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전체적으로 약간 삐뚤어진 ‘Y’자 모양을 이루며 흐르는 냇물은 얼핏 봐도 상당히 깊었다.

“여긴 주변에 산이 많으니까 거기서 흘러나온 물들이 모여서 냇물이 되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게 그렇게 이상한 거예요?”

“이상하지. 여기는 평지야. 그런데도 냇물이 뱀처럼 구불대며 흐르지 않고 하나하나가 거의 직선에 가까워. 게다가 팔백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냇물이라고 보기에는 깊이도 너무 깊고. 팔백 년이 적은 세월은 아니지만 냇물이 자연스러운 침식 작용에 의해 저렇게 깊어지기에는 너무 짧지.”

“자연스럽지 않다면 누군가 일부러 땅을 파서 냇물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건 아니야. 인위적으로 만든 냇물이라면 일부러 두 갈래로 팠다가 다시 하나로 합치는 수고를 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냇물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자세히 봐봐.”

도윤의 말대로 냇물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던 최서라가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뭘 보라고 한 건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전 모르겠어요. 나무의 종류가 다르지도 않고 특별히 이상한 건 안 보이는데요?”

“내가 보기에는 나무들이 너무 어려. 냇물 주변에 있는 것들만 다른 나무들에 비해 키가 작고 굵기도 더 얇은 것 같지 않아?”

“그러고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그게 왜요?”

“짐작이기는 한데 원래 저기서 자라던 나무들은 한꺼번에 모두 죽거나 뽑힌 적이 있을 거야. 그런 뒤에 다시 자란 어린 나무들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보다 작은 게 아닐까 싶어.”

그제야 최서라는 도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

“설마 이 지역에 지진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땅이 갈라지고 나무들이 마구 쓰러질 정도 큰 지진이?”

“맞아. 그 바람에 지형이 변하면서 없던 냇물이 생기고 나무들도 새로 자라야 했을 거야.”

“혹시 우리가 분지의 위치를 잘못 짚은 건 아닐까요?”

도윤이 주변을 둘러싼 산들을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주변의 산과 봉우리들의 모양이 내가 봤던 잔류 기억의 영상과 거의 흡사해. 몇 곳이 기억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건 아마 과거에 발생했던 대규모 지진 때문이겠지. 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최서라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만약 땅이 갈라지고 나무들이 쓰러질 정도로 큰 지진이 발생했다면 십중팔구 지하 깊숙한 곳에 있을 칭기즈칸의 묘실 역시 훼손되거나 무너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럴 경우 애써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어지고 만다.

“명색이 칭기즈칸의 무덤인데 몽고 사람들은 왜 하필 이런 곳에 무덤을 만들었을까요.”

속상해하는 그녀의 말에 도윤이 실소를 터트렸다.

“13세기의 몽골에 지질학자가 존재했던 것도 아니니까 이제 와서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 당시에는 여기가 무덤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을 거야. 아니면 칭기즈칸이 유언으로 직접 장소를 지명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무덤이 무너졌든 말든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 흔적이라도 발견했으면 하는 게 도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능력이 담긴 유물이 묘실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게 있어야 최소한 어디를 파야할지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지진 때문에 혹시 유물마저 모조리 파괴된 건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차라리 이곳이 잔류 기억에서 보았던 그 분지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겼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다시 탐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감지 능력에 능력을 담은 유물의 존재가 느껴졌다. 정확한 건 땅을 파봐야 알겠지만 대략 지하 20미터 가량의 깊이에 묻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유물의 존재가 느껴지는 곳에 다가간 도윤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웃었다.

“도윤 씨, 왜 또 그러세요?”

그가 허탈하게 웃는 것을 본 최서라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도윤은 약간 떨어진 곳을 세차게 흘러가는 냇물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물이 묻혀 있는 곳이 저 부근이야. 저 웅덩이 근처의 지하에 뭔가 있는 것 같아.”

그제야 도윤이 어디를 말하는지 깨달은 최서라도 기가 막힌 표정을 저었다.

“유물이 물 속에 잠겨 있다고요?”

“아니. 물 속은 아니야. 그보다 더 밑일 거야. 유물이 느껴지는 장소는 지하 20미터 정도거든. 저 웅덩이가 제법 깊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깊이가 십 미터 이상은 아닐 거야. 그리고 유물이 묻힌 곳은 웅덩이 중앙에서 삼십 미터가량 옆으로 벗어나 있어.”

두 사람이 보고 있는 장소는 산에서 발원한 두 갈래 냇물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작은 웅덩이를 이루는 곳이었다. 두 줄기의 냇물이 하나로 합치면서 소용돌이치다가 반대쪽으로 빠져나가는 합류점이었다. 얼핏 봐도 바닥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심이 20미터씩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유물이 묻혀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장소가 웅덩이에서 멀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곳에서 땅을 파면 십중팔구 벽에서 물이 새어나올 것이다. 자칫하면 축축해진 벽이 무너지면서 작업을 하던 그를 덮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 꼼짝없이 흙더미에 깔려 생매장을 당할 수도 있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 * *

토니 볼프는 리히터 회장으로부터 처음 지시를 받았을 때만 해도 그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이도윤 박사라는 한국인 감정가를 납치해 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는 팀원들과 함께 일찌감치 런던으로 건너가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도윤을 기다렸다.

그는 사실 리히터 회장이 이번 일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인다고 생각했다. 리히터 회장은 자신들 외에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따로 사람을 보내서 이도윤 박사 부부를 줄곧 미행하게 했다. 심지어 파리에서는 모리스까지 보내 그의 일정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볼프가 보기에 그건 너무 지나친, 그리고 쓸 데 없는 인력과 시간의 낭비였다.

그러나 런던으로 오기로 했던 이 박사 일행이 파리에서 갑자기 사라지자 이번에는 그와 팀원들이 준비했던 것들이 모두 쓸 데 없는 짓으로 바뀌었다. 그는 화가 잔뜩 난 리히터 회장의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모스크바로 달려갔고, 거기서 하루 만에 다시 이르쿠츠크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비행 내내 창밖으로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이 보였다.

이르쿠츠크의 한 렌터카 회사에서 이도윤 박사 부부의 행방을 확인한 건 재수가 좋은 일이었다. 거기에 뜻하지도 않게 사장이 도윤의 차에 GPS까지 붙여 놓는 깜찍한 짓을 했다는 걸 알게 되자 자신에게 천운이 따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GPS 수신 장치가 없었으면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길 잃은 어린 양이 될 뻔 했군.”

그는 곧바로 이르쿠츠크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 뒤 두 대의 차를 빌려 바이칼 호 남쪽을 향해 달렸다. 렌터카 사장이 이도윤 부부가 몽고 쪽으로 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정도는 과거 특수 부대에 근무할 때부터 이미 익숙해진 일이다. 하지만 고작 감정가 한 명과 그의 부인을 잡기 위해 지난 며칠 동안 난리를 쳐야 했던 것을 생각하자 새삼 이가 갈렸다.

비록 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GPS 수신기를 빌리기는 했지만, 그나마 추적을 시작한 촣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이 박사 일행이 탄 차의 신호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 팀원들은 이틀 동안 바이칼 호 주변의 도로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들이대며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야 했다.

렌터카 회사 사장이 도윤의 SUV에 부착한 GPS 발신기는 반경 100킬로미터 정도의 신호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만 해도 일반적인 휴대용 발신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성능이 좋았지만, 문제는 도윤 일행이 그들보다 이틀이나 먼저 출발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아직까지 그 차가 수신기의 신호 거리 안에 머물러 있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사흘 째 되던 날, 바이칼 호와 홉스골 호 사이의 비포장도로에서 도윤이 탄 것으로 짐작되는 SUV의 바퀴 자국이 발견되었다. 워낙 차량 통행이 뜸한 곳인데다 도윤이 탄 차의 바퀴는 특별히 튼튼하고 비싼 것이라서 특징이 뚜렷했다. 그 바퀴 자국을 따라 차를 몰던 볼프 일행은 다음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GPS 신호를 잡는데 성공했다.

“이 박사 부부가 아무래도 여기서 차를 버리고 걸어간 것 같습니다.”

해가 거의 질 무렵이 다 되어서야 볼프 일행은 도윤이 나뭇가지로 숨겨놓은 SUV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트렁크에 남아 있던 여러 가지 장비와 물건들을 통해 그 차가 도윤이 빌린 SUV임을 확인하는 건 가능했다.

“어떻게 할까요? 여기부터는 저희도 더 이상 차를 타고 가기 힘들 것 같은데.”

부하 가운데 한 명이 자신들 앞에 펼쳐진 긴 산비탈을 가리키며 물었다. 잠깐 고민하던 볼프는 일단 부하들에게 휴식을 지시했다.

“지금 해가 지고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야영한다. 내일부터는 또 강행군이 될지도 모르니까 되도록 빨리 식사를 마치고 쉬도록 해.”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산을 쉽게 여기는 건 위험하다. 자신까지 포함해서 여섯 사람이 회중전등에만 의존해서 산을 넘는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해가 있을 때 조금 더 빨리 움직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팀원들과 함께 저녁을 먹던 볼프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이 친구들이 설마 걸어서 중국이나 몽골로 넘어가려는 건 아니겠지?”

그의 물음에 팀원들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도시가 나올 때까지 걸으려면 일주일 이상 걸릴 겁니다. 그 사람들이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그런 미친 짓을 하겠습니까?”

“내 생각도 그래. 그럼 두 사람 모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지?”

볼프의 말에 이번에는 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발견한 도윤의 차에는 아직도 건조 식량과 가득 찬 휘발유 두 통이 남아 있었다. 이도윤과 최서라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부근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차로 돌아와서 이르쿠츠크로 복귀할 생각일 것이다. 결국 그는 하염없이 그들을 뒤쫓으려던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주변을 정리하고 여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 야영지를 만들자. 그런 다음에 이 박사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교대로 이곳을 감시하면서 잠복하는 거야.”

제 발로 돌아올 토끼라면 억지로 쫓는 것보다는 차라리 보금자리를 지키고 있는 편이 낫다. 그건 얼핏 굉장히 현명한 판단으로 보였지만 아쉽게도 볼프는 한 가지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도윤의 SUV 차량을 지키기 시작한 다음날 저녁, 갑자기 멀리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나더니 여러 명의 남자들이 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브라힘이 보낸 요원들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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