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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45화 (245/300)

245화

‘다들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의 출현에 잠시 동요했던 팀원들은 볼프의 수신호를 받고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았다. 다들 특수 훈련을 받은 요원들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도 적응하는 속도가 빨랐다. 볼프는 팀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사냥용 산탄총을 가지고 있는 팀원 막스에게 여차하면 사격할 준비를 갖추도록 지시했다.

‘빌어먹을. 자칫하면 총도 없이 맨몸으로 격투를 벌여야 할지도 모르겠군.’

새삼 모스크바에서 구했던 총들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총들은 이르쿠츠크로 오는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모두 버려야 했다. 대신 이르쿠츠크에 간신히 사냥할 때 쓰는 사냥용 산탄총을 구할 수 있었다. 단발 사격밖에 할 수 없고, 그나마도 한 번에 장탄할 수 있는 총알이 두 발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공식적인 통계에 잡힌 것보다 훨씬 많은 총이 암암리에 거래되는 나라다. 이르쿠츠크가 낯선 곳인데다 인구도 많지 않은 도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간만 충분했으면 자동소총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윤을 뒤쫓기 위해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 했고,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이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산탄총 한 자루가 전부였다.

저물어가는 햇살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일곱. 볼프 일행보다 한 명이 더 많은데다 다들 체격이 탄탄하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게다가 리더로 보이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으로 볼 때 최소한 어깨에 힘이나 주고 다니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었다. 상황이 몹시 난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디서 온 놈들이지? 외모로 볼 때 러시아 마피아는 아닌 것 같은데…….’

리더로 보이는 듯한 인물을 포함해서 일곱 명 가운데 세 명이 아랍인이었다. 순간 볼프는 이번 일을 맡을 때 리히터 회장이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어쩌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놈들하고 충돌하게 될지도 몰라. 그놈들도 이 박사를 노리고 있거든.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처리해 버려.”

상황으로 볼 때 아무래도 그 이브라힘 왕세제인가 뭔가 하는 작자가 보낸 놈들인 것 같았다. 저들도 보나마나 이도윤을 찾고 있는 게 분명할 텐데, 이 시베리아 구석까지 일부러 그를 뒤쫓아 올 놈들이라면 달리 누가 있겠는가?

볼프는 나무들 사이로 무성하게 자란 풀 속에 몸을 숨긴 채 상대를 관찰했다. 다행히 총을 들고 있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저들도 자신들과 비슷한 상황에서 여기까지 추적해왔을 것이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한두 명 정도는 옷 속에 권총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자신들이 이르쿠츠크에서 산탄총을 구할 수 있었으니 저들도 권총 정도는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가 보고 있는 사이에 주변을 뒤지던 상대는 어렵지 않게 나뭇가지로 위장해 놓은 도윤의 SUV를 발견했다. 그들은 차문을 열고 안팎을 샅샅이 살피더니 낮고 빠른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록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게 최소한 아랍어라는 것은 구분할 수 있었다. 역시 이브라힘 왕세제가 보낸 놈들이 분명했다.

볼프는 놈들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상대는 주변까지 꼼꼼하게 수색하는가 싶더니 차를 사이에 두고 볼프 일행과 정 반대쪽 공터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날이 저물고 있으니 이곳에서 하룻밤 야영을 하고 나서 움직일 생각인 게 분명했다. 빌어먹을. 볼프는 이빨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는 수신호를 통해 총을 가지고 있는 막스를 비롯한 팀원 세 명을 그들의 뒤로 우회시켰다. 이렇게 된 이상 어설픈 대화나 타협을 시도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는 기습을 통해 상대를 처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이곳은 총소리가 나도 들을 사람 하나 없을 정도로 외진 곳이다.

볼프의 지시를 받은 막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두 명과 함께 풀숲과 나무 사이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놈들의 뒤로 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볼프가 상대를 모두 처치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보다 한 명 더 많은 상대를 해치우려면 기습을 통한 선제공격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했다.

한편, 막스 일행이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동안 이브라힘 왕세제가 보낸 요원들은 리더인 아심을 중심으로 모여 앉았다. 아심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들 잘 들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발견한 차바퀴 자국이 세 종류였다는 걸 기억할 거야. 하나는 우리가 발견한 SUV의 것이지만 다른 두 개는 아니야. 이 박사가 이르쿠츠크에서 빌린 차는 SUV 한 대뿐이니까 나머지는 그의 뒤를 쫓는 놈들이 타고 온 거겠지.”

“혹시 그 놈들도 이도윤의 일행은 아닐까요?”

부하들 가운데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아심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렌터카 회사 사장의 말에 의하면 이도윤은 그의 부인과 둘이서 움직였어. 만약 그에게 다른 일행이 있었다면 굳이 직접 나서서 차를 빌리지 않았겠지. 그리고 우리가 확인했듯이 누군가 SUV 부근에 난 다른 바퀴 자국들을 지웠어. 정작 이도윤이 탔던 SUV의 바퀴 자국은 그대로 둔 채. 그런 점으로 볼 때 놈들은 최소한 이도윤의 일행이 아니야.”

“이도윤의 일행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라는 말입니까?”

“아마 리히터 회장이 보낸 놈들이겠지. 우리가 떠나기 전에 압둘 실장님이 말씀하셨잖아? 리히터 회장 역시 이도윤을 노리고 있다고.”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죠. 놈들이 이미 이도윤 부부를 잡았으면 어떡합니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아마 아닐 거야. 나는 놈들이 이 부근에 자신들이 타고 온 차를 숨기고 이 박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해. 나 같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대장님 같으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요?”

“그래. SUV가 나뭇가지로 잘 위장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여기다 차를 숨긴 사람은 이 박사 자신일 거야. 만약 리히터 회장의 부하들이 여기서 그를 잡아서 끌고 갔다면 굳이 필요 없게 된 차를 공들여 위장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 박사는 이곳에 차를 숨기고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이동했을 거라고 보는 게 맞아.”

“그럼 리히터 회장이 보낸 놈들도 부근에 자기들 차를 숨기고 이 박사를 따라갔겠군요?”

“이 박사를 따라가? 그가 어디로 갔을지 알고?”

“그거야 수색을 하면서 찾아봐야죠. 저희도 그러려고 온 게 아닙니까?”

부하의 말에 아심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이 차를 찾은 건 렌터카 사장이 준 GPS 수신기 덕분이야. 하지만 그건 차에 붙어 있는 발신기의 신호를 잡는 장치지. 만약 이 박사가 여기서부터 걸어서 이동했다면 발신기를 몸에 달고 갔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위치를 파악하려고?”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추적을 포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포기할 수 없지.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의 행적을 밝히는 게 아니라 사로잡는 거야. 그 자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확신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이미 하루 이상 뒤처졌을 게 뻔한 상태에서 굳이 산속을 헤매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어차피 이곳으로 돌아올 텐데? 이 박사도 그러려고 애써 차를 숨겼을 거 아니야?”

그제야 부하들이 비로소 알아들었다는 듯이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이 부근에서 잠복한 채 놈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되겠군요?”

그때 부하들을 쳐다보던 아심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문제는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온 리히터 회장의 부하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라는 점이지. 그게 아니라면 굳이 자신들의 차바퀴를 숨기려는 수고를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놈들은 아마 이 부근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을 거야. 바로 지금처럼. 다들 전투 준비!”

마지막에 소리를 버럭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심이 재빨리 허리에 차고 있던 군용 대검을 뽑아들었다. 그 지시에 따라 부하들도 신속하게 자세를 고쳐 잡으며 각자 칼과 손도끼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무기들을 손에 들었다. 볼프 일행과는 달리 아심의 부하들은 이르쿠츠크에서 총기를 전혀 구하지 못했다. 대신 이런저런 흉기를 사가지고 온 것이다.

아심은 이미 자신을 보고 있는 부하들의 등 뒤로 몇 명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키 큰 나무들과 무릎 위까지 길게 자란 풀들 때문에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놈들의 움직임에 따라 풀들이 부자연스럽게 흔들리는 것을 예리하게 잡아낸 것이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눈썰미 덕분이었다.

아심 일행의 움직임이 돌변함에 따라 몰래 접근하던 막스와 그의 동료들 역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막스가 손에 든 산탄총을 어깨에 붙이는 순간, 아심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설마 했는데 상대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심 역시 이르쿠츠크에서 총기를 구하려고 애를 썼었다. 그러나 이미 도윤과 거리가 많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다급해진 그는 결국 총기를 구하는데 실패했고, 대신 칼과 손도끼를 비롯한 재래식 무기만을 몇 개 사서 서둘러 차를 출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내심 상대 역시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이기를 바랐는데, 아무래도 저쪽은 총을 구한 모양이었다.

“전부 흩어져서 돌진해!”

아심은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과 동시에 손에 든 대검을 날렸다. 다행히 그의 손을 떠난 대검은 이십여 미터의 거리를 가로질러 단번에 총을 든 상대의 목에 박혔다. 그러나 컥 하는 비명을 지른 막스가 총을 제대로 겨누지도 못한 채 쓰러지자 그의 옆에 있던 다른 동료가 재빨리 총을 집어 들었다.

“탕, 탕.”

권총도 아닌 산탄총을 피하기에는 서로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비록 아심이 놀라운 솜씨로 막심을 쓰러트리는데 성공했지만 이어진 두 발의 총소리와 함께 그의 부하 두 명이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더블 배럴이다. 계속 공격해.”

상대의 총이 총열이 두 개 붙어 있는 더블 배럴 샷건이라는 것을 확인한 아심이 고함을 지르면서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잠시 움찔했던 그의 부하들 역시 이를 악물며 손에 든 무기를 치켜든 채 돌진했다. 그 바람에 재장전할 여유를 갖지 못한 볼프의 부하가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심을 향해 산탄총을 그대로 휘둘렀다.

아심은 허리를 숙여 상대의 공격을 피한 뒤,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올려 잡았다. 그 상태에서 재빨리 몸을 돌려 놈의 등 뒤를 제압한 뒤 팔뚝으로 목을 잡고 비틀어버렸다. 상대의 목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축 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온 손도끼가 아심의 부하 등 뒤에 깊이 박히는 게 보였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

이번에는 볼프와 그의 또 다른 부하들이 고함을 지르며 반대편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이브라힘 왕세제와 리히터 회장의 부하들이 시베리아 한쪽 구석에서 정면으로 맞붙었다. 혹독한 훈련을 거친 특수 부대 출신이 대부분인 양쪽 요원들 사이에 말 그대로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진 것이다.

* * *

도윤은 조금 망연자실한 심정이었다. 그는 두 갈래의 냇물이 한 자리에 모였다가 다시 흘러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쩔 수 없네. 일단 이 근처에 텐트를 치고 쉬면서 어떻게 할지 좀 생각해 보자.”

그는 웅덩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텐트를 설치했다. 그가 텐트 앞에 주저앉은 채 하염없이 웅덩이만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자, 보다 못한 최서라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배낭에서 버너와 라면을 꺼내자 도윤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라면을 끓이려고?”

“벌써 점심때가 다 됐어요. 모스크바에 있는 한국 슈퍼에서 구한 우리나라 라면이니까 먹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예요. 풀리지도 않는 생각만 계속 붙잡고 있으면 뭐해요? 정 안 되면 포기하고 돌아가면 그만이니까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그 말에 도윤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내심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칭기즈칸의 무덤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이 꿈에라도 찾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그는 맨 땅에서 맨 손으로 일어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점령했던 정복자였다. 또한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각지에서 약탈하거나 공물로 바쳐진 엄청난 양의 재화와 보물들을 한 자리에 모은 사람이기도 했다.

“칭기즈칸이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는 기록은 없어. 그렇다고 기껏 모은 보물을 내다버렸을 리는 없을 테니, 그의 무덤에는 얼마나 많은 부장품들이 함께 묻혔을까?”

어쩌면 그의 무덤은 여러 문명권의 유물들이 한 자리에 모인 땅 속의 박물관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최소한 그의 무덤이 실재한다는 증거라도 찾아내고 싶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가슴이 뛰는 한편 마음이 더욱 답답해졌다. 그가 한숨을 푹 내쉬는 순간, 최서라가 라면이 가득 담긴 그릇을 코앞에 불쑥 들이대었다.

“한숨은 뜨거운 라면을 식힐 때나 쓰고 일단은 배부터 채우세요. 머리만 괴롭히지 말고.”

“어, 그래. 고마워.”

도윤은 괜히 민망해져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빈속을 채우고 나자 오히려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는 설거지까지 혼자서 마친 최서라를 불러 일단 사과부터 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처음 여기로 올 때만 해도 무덤을 못 찾을 경우 그냥 돌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땅 속에서 능력이 담긴 유물의 존재가 느껴지니까 잠시 욕심이 앞섰던 것 같아. 여기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대략 사흘 정도니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무덤 안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다 안 되면 돌아가면 그만이고.”

최서라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래요. 무덤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위치를 대강 확인했으니까 나중에 다시 방법을 강구해보면 돼요. 정 우리 힘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으면 러시아나 몽골 정부에 위치를 알리고 공식적인 발굴을 하자고 건의하면 되잖아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몽골 정부에게 알리는 건 조금 천천히 생각해 보자.”

“왜요? 칭기즈칸은 원래 그 사람들의 조상이자 영웅이잖아요? 위치를 찾았다는 얘기를 하면 당장 발굴 계획을 세우지 않을까요?”

“그게 꼭 그렇지가 않아. 예전에 여론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몽골 사람들의 과반 수 이상이 칭기즈칸의 무덤을 발굴하는 건 고사하고 위치를 찾는 것조차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어. 칭기즈칸이 죽을 때 절대로 자신의 무덤을 찾을 생각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거든.”

“그래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그 유언을 지키고 싶어 한다고요?”

“그 사람들한테는 칭기즈칸이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신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까지 우리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니지.”

말을 마친 그가 몸을 일으키더니 가볍게 체조를 하면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최서라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몸은 왜 풀고 그래요? 어디가 혹시 안 좋은 거예요?”

그러자 도윤이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웅덩이를 가리켰다.

“라면을 먹으면서 생각해 봤는데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을 것 같아. 하나는 최대한 웅덩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유물이 묻혀 있는 데까지 땅을 비스듬하게 파내려가는 거야. 일종의 터널을 파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묘실까지 도달하려면 시간이 엄청 걸리지 않을까요?”

“맞아. 중간 중간 터널이 무너지지 않게 버팀목까지 세우면서 파내려가야 하니까 지금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야. 그러기에는 장비하고 시간이 모두 부족해. 그래서 이제부터 두 번째 방법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려고.”

“두 번째 방법이요? 그게 뭔데요?”

“내 짐작에 의하면 저 냇물하고 웅덩이는 전부 지진 때문에 땅에 틈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거야. 그래서 웅덩이 밑의 틈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어쩌면 잠수한 상태에서 끝부분을 조금 긁어내는 것만으로도 유물을 꺼낼 수 있을지도 몰라. 묘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면 더욱 좋고.”

“아무리 그래도 그러려면 잠수를 굉장히 오래 해야 하지 않아요? 더구나 한두 번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도윤이 씩 웃으며 가슴을 탕탕 쳤다.

“내가 이래 뵈도 UDT 출신이잖아. 잠수라면 자신 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최서라는 기가 막혀 실소를 터트렸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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