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38. 오구라 컬렉션>
대만에서 열렸던 컴퓨덱스가 끝난 이틀 후, 도윤은 예상치 못했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파리에서 만났던 오르세 미술관의 후원 회장 알랭 말레에게서 온 것이었다.
“지금 서울이시라고요?”
전화를 받은 도윤은 깜짝 놀랐다. 그가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말레 회장은 그런 도윤의 반응을 짐작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프랑스에서 ‘쿠와(Coing)’라는 통신업체와 온라인 쇼핑 몰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모르셨나 보군요. 최근에는 온라인 콘텐츠 사업 쪽으로도 관심을 확대시키고 있지요. 하긴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군요.”
않았던 것 같은 게 아니라 그쪽으로는 전혀 언급한 적이 없었지. ‘쿠와’는 프랑스 최대의 통신 회사 이름이었다. 말레 회장이 그곳의 CEO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면 도윤이 기억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과 말레가 지금 서울에 와 있는 게 무슨 상관이지?
“컴퓨덱스에 새롭고 혁신적인 TPU가 등장할 거라는 소문이 있기에 일부러 참석했습니다. 제가 하는 사업의 성격 상 성능 좋은 TPU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거든요. 그런데 데바 인스트루먼트의 전시관에 들렀다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이 박사께서 그곳의 최대 주주라면서요? 오광표 이사라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작년에 그곳에 투자를 좀 했지요. 하지만 주식만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지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직책도 없고요.”
“직책을 맡지는 않았더라도 최대 주주로서의 영향력은 있지 않겠습니까? 직접 뵙고 부탁을 드릴 게 있어서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이 박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일부러 한국에 들렀습니다.”
말레 회장에게는 파리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신세를 진 바가 있었다. 도윤은 흔쾌히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날 오후 말레 회장이 서윤 문화재단의 이사장실로 직접 찾아왔다. 도윤을 만난 그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에 곧바로 사업 얘기를 꺼냈다.
“저희 쿠와에서 싸이레인 TPU를 대량 구입하고 싶습니다. 이 박사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미술품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의 말레 회장은 한없이 부드러운 신사였다. 그랬던 그가 막상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순식간에 노련한 사업가로 돌변해서 도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부탁을 들은 도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물건을 사고 싶다면 돈을 내고 구입하면 그만이다. 그 간단한 일을 왜 자신에게까지 부탁하는지 의아했던 그는 이어지는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번에 생산되는 TPU인 싸이레인의 초도 생산 물량의 상당수를 말레 회장님의 쿠와라는 회사에서 우선적으로 공급받고 싶다는 거죠? 아울러 데바가 회사의 기술진 일부를 파리로 파견보내서 쿠와의 새로운 인공지능의 개발을 도와줬으면 한다는 얘기이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싸이레인의 생산을 이 박사의 장인이 운영하는 미래 전자에서 맡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직 생산 설비 변경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당분간은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금의 절반을 먼저 드리는 대신 저희가 원하는 수량을 우선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고 싶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않나? 그걸 왜 나한테까지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거지?
아무리 싸이레인이 컴퓨덱스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형 TPU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제품을 먼저 공급받겠다고 프랑스 최대의 통신 회사의 CEO가 한국까지 직접 날아왔다. 그것도 선금까지 낸다는 조건을 내걸고. 데바든 미래 전자든 그렇게 좋은 거래를 거절할 리가 있을까?
그의 표정에서 내심을 읽은 말레 회장이 살짝 입맛을 다시더니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쿠와는 오래전부터 고객의 기호와 소비 패턴을 자동적으로 분석해서 소비자에게 적절한 상품을 제안할 수 있는 뛰어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하드웨어의 성능 문제 때문에 계속 어려움을 겪어왔지요. 그러던 차에 이번 컴퓨덱스에서 싸이레인을 발견한 겁니다.
“싸이레인이 쿠와가 당면한 고민에 대한 해답이 될 거라고 본다는 말씀이시군요.”
“최소한 저와 이번에 동행한 우리 임원들의 견해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몇 가지를 알아봤습니다. 그 결과 올해 안에는 싸이레인을 대량으로 공급받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지요. 또한 저희 연구진들이 기존에 개발해 오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새로운 TPU에 맞춰서 수정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라면 저보다는 데바나 미래 전자 사람들을 만나셔야 하지 않나요? 제가 데바의 대주주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이 박사님에게 계약서에 사인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단지 양쪽 회사 모두에 다리를 놓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거지요. 지금 상황에서 이 박사만큼 데바 인스트루먼트와 미래 전자 양쪽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도윤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나 미래 전자의 생산 설비 교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선뜻 편의를 봐달라고 부탁했다가는 자칫 민폐를 끼칠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일단 말은 전해보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그날의 만남을 끝냈다.
말레 회장을 돌려보낸 도윤은 급하게 장인인 최병호와 인도에 있는 오광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에게 말레 회장의 요구 사항을 자세하게 전달한 그는 다행히 양쪽 모두로부터 말레 회장을 만나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만에서 컴퓨덱스를 마치고 인도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오광표는 그 일 때문에 급히 한국으로 귀국하기까지 했다.
결국 말레 회장은 미래 전자의 임원과 오광표를 만나 협상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얘기가 진행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대충 협상이 무난하게 진행된 것 같기는 했다. 협상과 계약을 일사천리로 끝마친 말레 회장은 파리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도윤을 찾아왔다. 그러더니 그로서는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도쿄에 있는 우에노 공원 안에 ‘국립 서양미술관’이 있다는 걸 혹시 아십니까?”
사업 문제가 일단락되니까 다시 미술에 관한 얘기야? 도윤은 허탈하게 웃으면서도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압니다. 몇 번 가보기도 했지요. 아마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서양 미술관일 겁니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는 오로지 서양 미술품들만 전시하는 국립 미술관이 없으니까요.”
“역시 잘 아시는군요. 그런데 최초 그 미술관이 설립될 때 소장했던 작품들은 전부 파리에서 건너간 것들이었습니다. 사실은 거기에 재미있는 비밀이 숨어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처음 말레 회장이 얘기를 꺼낼 때만 해도 도윤은 당연히 자신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얘기가 점점 끝에 이르면서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그건 말레 회장의 말대로 정말 엄청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심지어 나중에는 그렇게 묻기까지 했다. 그러자 말레 회장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는 정부에서 오래 일한 친구들이 여러 있지요. 그 중 한 명에게서 들은 얘기이니 거의 확실할 겁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박사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실 거예요. 이번 일을 도와주신 보답으로 제가 드리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 박사가 그 비밀을 활용하실 일이 생길 경우 언제든지 연락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말레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서울을 떠났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참으로 묘한 부분이 있었다. 불과 며칠 뒤에 그가 일러준 비밀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실제로 발생했던 것이다.
* * *
한국으로 돌아온 뒤 당장 급한 몇 가지 일들을 해결한 도윤은 날마다 석훈과 함께 새로운 작전을 모의했다. 리히터 회장과 이브라힘 왕세제가 보낸 요원들이 모두 몇 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당장 특별한 반응이나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부하들이 시베리아에서 비명횡사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더 이상 웅크리고만 있는 건 사양이야.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것도 어느 정도지 이런 식으로 방어적인 자세만 취하다가는 결국 언젠가는 당하고 말 거야.”
도윤의 말에 석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선제공격을 하려고요?”
“안 그러면 내 가족까지 다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네가나를 좀 도와줘야겠다.”
도윤의 살벌한 눈빛을 대한 석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팔자가 늘 그렇지 뭐. 알았으니까 계획이나 말해 봐요. 어떻게 할 건데요?”
도윤은 석훈에게 자신의 계획을 모두 설명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두 사람은 거의 날마다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자신들의 계획에 혹시 모를 허점이 있는지 논의하면서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차곡차곡 세워나갔다. 그러던 도중, 일본으로부터 얄미운 소식이 날아왔다.
말레 회장이 다녀간 다음 주 수요일, 도윤은 약속대로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해 작품 감정을 도왔다. 그가 일을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구상춘 관장이 잠깐 들러서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며 그를 방으로 불렀다. 그런데 막상 그가 노크를 하고 관장실로 들어가자 전에 보았던 국립 박물관의 민경훈 관장이 얼굴이 벌게진 채로 씩씩대며 화를 내고 있었다.
“하여튼 이 빌어먹을 새끼들은 염치가 없어요, 염치가. 이걸 도대체 말이라고….”
그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앞에는 반쯤 구겨진 신문 한 장이 내던져진 채였다. 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을 힐끗 본 도윤은 민경훈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 오구라 컬렉션은 합법적으로 수집한 개인 재산. 반환은 절대 불가신문의 기사 제목이었다. 합법적이라고? 도윤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 강점기 때 실업가인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한반도 등에서 수집해 간 유물 1400여점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가 유물을 수집한 방법은 가히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불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는 도굴은 물론이고 약탈과 불법 밀반출까지 서슴지 않았을 정도로 소문난 유물 도둑이었던 것이다.
오구라는 죽기 전에 자신의 수집품 가운데 상당수를 도쿄국립박물관을 비롯한 몇 군데 박물관과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 수가 엄청나기도 했지만 일부는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재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진짜 큰 문제는 그 가운데 일부가 너무나 명백하게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물건들이라는 점이었다.
가령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 중인 조선 대원수 투구와 갑옷, 그리고 주칠12각상이라는 옷 칠한 밥상은 명백하게 경복궁에 있던 물건들을 훔쳐낸 것이었다. 오구라가 자신의 수집품들을 정리한 오구라 목록에 의하면 투구와 갑옷은 고종 황제의 물건이고, 주칠12각상은 명성 황후가 시해 당했던 바로 그 현장에서 가져온 물건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몇몇 물건들에 대해서는 불법적인 반출이 분명함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1965년 당시의 한일 청구권 협상 때에도 한국 정부는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을 강력하게 요청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개인 재산이라는 이유를 들어 완강하게 반환을 거절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정부를 비롯한 여러 민간단체들에서 끊임없이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해왔다. 얼마 전에는 민경훈 관장 역시 직접 나서서 다시 한 번 정식으로 반환을 요구했었다. 그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답변이 바로 눈앞의 신문 기사 제목이었다. 당사자인 민 관장으로서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문 기사를 보던 도윤은 여러 가지 점에서 오구라 컬렉션과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이 서로 겹치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떡할까 고민하는 사이에도 일본 정부와 도쿄 국립 박물관, 그리고 문화재를 가져간 오구라 본인에 대한 민경훈의 욕설은 계속되었다. 보다 못한 구상춘 관장이 민경훈을 말렸다.
“이 사람아, 이 박사도 있는데 이제 그만 좀 해. 애초에 될 거라고 생각하고 추진한 일도 아니었잖아? 그놈들이 한 번 뺏어간 걸 그렇게 쉽게 내줄 것 같아?”
하지만 그의 만류는 오히려 민 관장의 화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쉽게 안 내주면? 그럼 그놈들이 자기 것도 아닌 걸 저렇게 계속 움켜쥐고 있으려는 걸 그냥 두고 보겠다는 거야? 자네도 미술관 관장이면서 그렇게 맥없는 소릴 하면 안 되지!”
민경훈은 이제는 절친한 사이인 구상춘 관장에게까지 화살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 그를 보고 있던 도윤이 속으로 가만히 혀를 차면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 오구라 컬렉션 말입니다. 어쩌면 전부는 몰라도 일부는 찾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
그 말에 지금까지 길길이 화를 내던 민경훈은 물론이고 구상춘마저도 움찔했다. 두 사람의 눈이 한꺼번에 도윤에게 날아와 꽂혔다. 민경훈이 득달같이 입을 열었다.
“오구라 컬렉션을 찾아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그게 뭔가?”
“아, 말씀드렸듯이 전부는 아마 힘들 거고 일부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것도 일본 정부가 판단을 잘 해야 되는 거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젊은 사람이 괜히 뜸들이지 말고 얼른 얘기해 봐.”
당장 말을 하지 않으면 주리라도 틀 기세였다. 도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동경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을 아십니까?”
그 말에 구상춘 관장이 먼저 머리를 끄덕였다.
“거기라면 당연히 알지. 근데 오구라 컬렉션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국립서양미술관은 왜?”
“그곳에 있는 마쓰가타 컬렉션을 프랑스 전부가 도로 돌려달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구상춘과 민경훈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게 말이 돼? 벌써 수십 년 전에 반환, 아니 기증이 끝난 작품들인데? 아무리 프랑스 정부가 뻔뻔해도 그건 곤란하지. 일본도 약소국가도 아닌데 그런 요구를 들어주겠어?”
도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레 회장의 말을 듣기 전만 해도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말레 회장이 전해준 얘기가 사실이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은 원래 일본의 전설적인 수집가인 마쓰가타 고지로(松方幸次郞)가 프랑스 파리의 창고에 모아두었던 미술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189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수상을 역임했던 마쓰가타 마사요시의 아들이기도 한 그는 가와사키 조선소의 초대 사장에 취임해 32년간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마쓰가타는 192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유럽에 장기 체류했다. 그러면서 그 돈으로 고흐와 르노와르, 모네, 로댕 등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그는 당시 워낙 많은 작품들을 사들인 탓에 그걸 한꺼번에 일본으로 가지고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파리와 런던의 창고에 엄청난 수의 작품들을 남겨둔 채 일부만 가지고 귀국해야 했다.
1927년, 일본에 경제 공항이 닥치면서 가와사키 조선소가 문을 닫게 했다.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작품을 모두 팔아치운 그는 파리와 런던의 창고에 맡겨두었던 그림들도 가져오려 했다. 하지만 막대한 운송비가 문제였다. 그가 그림 운송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그 바람에 당분간 그림을 가져오는 건 어려워졌다.
안타깝게도 세계 대전 도중, 런던에 있던 마쓰가타의 그림 창고가 폭격을 맞아 전소되어 버렸다. 게다가 파리의 창고에 있던 그림마저도 전쟁이 끝나면서 회수가 불가능해졌다. 1951년,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한일 청구권 협정의 모태가 되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르면 연합국의 관할 지역에 있는 일본 정부와 일본인의 재산은 모두 종전과 함께 압수된다. 다시 말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등지에 있는 일본인과 일본 정부의 재산은 모두 해당 국가에 귀속된다는 뜻이다. 이 조약에 따르면 파리의 창고에 있는 마쓰가타의 그림들은 모두 프랑스 정부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종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정부는 수상이 직접 나서면서까지 끈질기게 마쓰가타의 그림들을 반환해 달라고 프랑스 정부에 요청했다. 프랑스 정부는 절대 불가를 선언했지만 일본 정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개인이 돈을 주고 산 것이니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는 주장이었는데, 사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따르면 억지에 불과했다.
그런데 1959년, 프랑스 정부가 돌연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완강한 태도를 바꾸어서 마쓰가타의 그림을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고흐의 ‘아를의 침실’ 등을 비롯한 10여 점을 제외한 나머지 396점을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는 그림을 돌려주면서 그것을 ‘기증’이라고 표현했는데, 원래 정당한 프랑스의 재산을 선의로 일본 정부에게 선물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자신들의 정당한 재산을 돌려받았다는 뜻에서 굳이 그것을 ‘반환’이라고 표현하려고 애썼다. 나중에는 ‘기증 반환’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프랑스는 마쓰가타의 작품들을 돌려주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 작품들만을 위한 미술관을 따로 세운 다음, 그것을 일본 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마쓰가타의 수집품을 전시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한복판에 민간 미술관이 아닌 ‘국립서양미술관’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도윤은 자신을 거의 노려보다시피 하고 있는 두 관장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제가 알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 기증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증에 문제가 있다고? 구상춘과 민경훈의 시선이 그에게 날카롭게 날아와 꽂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