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말레 회장은 프랑스 재계의 거물로서 정관계는 물론이고 학계와 언론에도 넓고 깊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절친한 지인들 중에는 전직 장관들이 여러 명 포함되어 있었는데, 몇 년 전, 그 가운데 한 명이 사적인 자리에서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바로 마쓰가타의 그림을 일본에 기증한다는 행정 명령서에 적힌 드골 대통령의 사인이 위조되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사인이 위조되었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처음 말레 회장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도윤은 놀랍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샤를 드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군을 이끌던 장군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종전 후에 프랑스 임시 정부의 주석을 잠시 맡았다가 나중에는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었다. 또한 카리스마가 아주 강한 보수적 성향의 인물로 유명했었는데, 그런 드골의 서명이 위조되었다는 말이 선뜻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도윤의 반응을 본 말레 회장 역시 민망한 듯 입맛을 다셨다.
“프랑스가 일본 정부에게 마쓰가타의 그림을 돌려주기로 결정한 해가 바로 1959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즈음에 드골은 그런 문제에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 경황이 없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안팎으로 너무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알제리 전쟁과 개헌, 정권 교체 등의 문제 때문에 말입니까?”
“역시 이 박사답게 모르는 게 없군요. 맞습니다. 당시 알제리는 프랑스에 대해 독립전쟁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식민지를 계속 유지할 것을 고집했던 프랑스 제4공화국이 위기에 빠졌죠. 그 상황을 보고 있던 드골은 1958년 6월에 스스로 총리가 되어 제4공화국을 해체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개헌을 해서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죠.”
그 제5공화국의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이 바로 드골이었다. 새 대통령이 된 드골은 알제리의 독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문제의 해결에 전력을 기울였다. 결국 알제리는 1962년에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그 뒤로도 드골의 제5공화국 정부는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랑스가 아프리카에 가지고 있던 식민지들에서 대부분 손을 뗐다.
“일본은 프랑스가 내부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서 그림 반환을 요구한 거로군요.”
도윤의 말에 말레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1959년은 일본이 1964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해이기도 합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 전쟁을 통해 쌓은 부를 이용해서 자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고 무진 애를 썼지요. 마쓰가타의 그림에 대한 반환 신청 역시 그러한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들은 아주 강하고 집요하게 그 문제에 매달렸습니다.”
“그렇더라도 드골 대통령이 그림 반환을 승인한 건 좀 의외로군요. 그 양반은 솔직히 국수주의자라고 얘기해도 좋을 정도로 프랑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지 않았나요? 예전에 공부할 때도 좀 의아하기는 했었는데, 그런 사람이 자국의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시키는 것을 허락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드골은 웃기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습니다. 하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죠. 사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내용에 따르면 처음부터 일본의 요구는 억지에 불과한 것이었으니까요. 드골은 일본 정부가 마쓰가타의 그림 반환 문제에 그렇게까지 끈질기게 집착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종전 후에 연합군은 맥아더를 사령관으로 하는 미군을 일본에 보내 그곳을 점령하고 통치했다. 그러나 연합국들도 언제까지나 남의 나라 땅에 군정 체제를 유지하는 건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 일본에게 주권을 돌려주기 위한 조약을 체결한다. 그것이 바로 1951년, 48개국의 대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체결한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다.
나중에 1961년의 한일기본조약, 그리고 1965년의 한일 청구권 협정의 모태가 되기도 했던 이 강화조약에는 연합국 내에 존재하는 일본, 혹은 일본인의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4조에 의하면 각 연합국의 관할 하에 있는 일본 및 일본인, 혹은 그들의 대리인이나 회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은 해당 연합국이 자유롭게 압수, 보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쉽게 말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연합국 땅에 있던 일본과 관련된 모든 재산은 해당 국가의 소유가 된다는 뜻이다.
이 조약에 따르면 파리의 창고에 있던 마쓰가타의 수집품들은 모두 프랑스 정부의 소유가 된다. 그런데도 일본은 자국의 경제가 어느 정도 부흥기에 돌입했다는 판단이 들자 집요할 정도고 그의 컬렉션을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드골 대통령이 그들의 억지에 넘어갔다는 말인가요?”
도윤의 말에 말레 회장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문서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일본의 로비가 엄청 강하게 들어왔거든요. 당시 정부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에게 일본에서 흘러들어온 엄청난 액수의 돈이 은밀하게 건네졌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적지 않은 정부 인사들이 그 돈을 받고 일본 편에 섰지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아주 드문 일도 아닙니다.”
결국 장관과 실무자들의 거듭된 요구에 짜증이 난 드골 대통령이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내뱉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알아서 하라’는 말이 결국 큰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드골의 뜻은 원래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장관이나 실무자들이 임의대로 처리해도 좋다는 뜻도 되지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행정 명령서를 작성해서 거기에 대통령의 이름을 써 넣었지요.”
“아무리 그래도 정부 관료가 대통령의 사인을 위조하는 건 도를 넘어선 것 아닌가요?”
“이미 돈은 많이 받아먹었는데 눈치로 봐서는 드골이 명령서에 직접 서명을 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요. 당시의 프랑스 정부 상황을 요즘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절대로 불가능한 범죄가 당시에는 엘리제 궁 한 가운데서 태연하게 저질러지곤 했습니다.”
위조 서명이 적힌 행정명령서는 대통령이 실제로 서명한 다른 문서들 사이에 끼어져서 실무 부서로 전달되었다. 드골이 사태가 이상하게 전개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일본 정부가 그림 반환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표하고 선적 작업마저 진행되고 있었다. 일을 되돌리려면 대통령 스스로 프랑스 정부의 치부를 까발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정작 서명을 위조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찾을 수도 없었어요. 결국 드골은 실무 부서를 통해 그림을 돌려주는 행위가 반환이 아니라 기증임을 강조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었지요. 그는 그 일로 프랑스 정부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 문서가 아직도 프랑스 정부 내에 존재합니까?”
도윤의 질문에 말레 회장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박사 정도라면 그 서명이 진짜 드골의 서명인지 아니면 위조된 가짜인지를 알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제가 프랑스 정부의 행정명령서를 직접 열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겠군요.”
“제가 말씀드렸죠? 원하시면 도와드릴 수 있을 거라고.”
말레 회장이 눈을 찡긋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도윤은 굳이 남의 나라 사이에서 있었던 해프닝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한 달이 지나기 전에 그럴 필요가 생겼다.
* * *
도윤의 얘기를 들은 구상춘 관장과 민경훈 관장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시절이 수상했던 때라고는 하나 명색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나라 사이에 설마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몇 번이나 혀를 차던 민경훈 관장이 문득 물었다.
“그래서 그 일이 오구라 컬렉션 반환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건가?”
도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마쓰가타의 그림을 일본에 기증한다는 프랑스의 행정명령서는 대통령의 이름으로 발부된 겁니다. 그런데 거기 적힌 대통령의 사인이 위조로 밝혀질 경우, 기증 자체가 무효가 되죠. 다시 말해 프랑스 정부는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마쓰가타 컬렉션을 다시 돌려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말에 구상춘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프랑스 정부가 이제 와서 그런 요구를 할 수 있을까? 그건 자기들의 치부를 스스로 까발리는 짓이나 다름없는데? 일본 정부 역시 호락호락 그런 주장에 응할 리도 없고 말이야.”
사실 구상춘의 얘기가 도윤의 말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아무리 과거의 문서가 위조되었다고 해도 무려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마쓰가타 컬렉션은 현재 프랑스가 아닌 일본 땅에 있다. 프랑스 정부가 이제 와서 그걸 다시 돌려달라는 주장을 한들 일본이 그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도윤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단 찔러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그렇죠. 사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당시의 문서가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프랑스 정부가 자발적으로 그걸 문제 삼을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여론이 들고 일어난다면 문제가 좀 달라질 거예요”
“여론? 무슨 여론? 프랑스 국민들이 마쓰가타 콜렉션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들고 일어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러려면 먼저 그 사실을 공론화시켜야 할 텐데?”
“당연히 공론화시켜야죠. 일을 벌이려면 말씀대로 그게 선결 조건입니다.”
“어떻게? 프랑스 언론에 그 사실을 흘릴 작정인가?”
“이런 일은 언론에 흘리는 게 아니라 그냥 까발리는 방법을 택하는 게 더 좋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말이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기존의 언론이 아니라 인터넷이니까요.”
이번에는 민경훈 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고는 해도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은데? 한국 네티즌들이 프랑스 사이트에 불어로 게시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건 힘들어. 그렇게 불어에 능통한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 일에 굳이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프랑스 현지에서 그 일을 도와줄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미 약속도 받아놨고요”
도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말레 회장이었다. 그는 프랑스 최대의 통신 회사인 ‘쿠와’의 CEO였고, 온라인 쇼핑 몰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단기간에 위조 서명 문제를 부각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일을 진행시키려면 사람들을 대거 동원해야 하겠지만 그 정도 비용은 도윤이 충분히 부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가 마쓰가타 컬렉션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오구라 컬렉션을 반환받는 게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민경훈의 말에 도윤이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속담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경우에는 반대로 가는 거지요. 일단 싸움을 붙이고 나서 양쪽을 말리는 척 하면서 흥정을 하는 겁니다.”
“싸움을 붙이고 나서 흥정을 한다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간단히 말하면 프랑스 정부의 체면은 세워주고 일본은 마쓰가타 컬렉션을 계속 가지고 있게 해주는 거죠. 그 대가로 저희는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 혹은 전부를 되돌려 받는 거고요. 그럼 일본으로서도 도덕적인 나라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를 쳐다보는 민경훈과 구상춘의 얼굴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도윤은 그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오구라 컬렉션 반환과 관련한 문제 때문에 도윤은 어쩔 수 없이 파리를 한 번 더 방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아직까지 이브라힘과 리히터 회장이 어떻게 나올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런 대비도 없이 해외로 나가는 건 너무 위험했던 것이다.
석훈과 길고 긴 논의를 하고 계획을 꼼꼼하게 뜯어고친 끝에, 그는 먼저 이브하림과 리히터 회장, 그리고 북경의 왕이표 회장에게 각각 이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에는 여러 개의 첨부파일이 달려 있었다.
“이 사람들이 과연 한국으로 직접 올까요? 그냥 형을 잡아가겠다고 또 다시 이상한 놈들만 잔뜩 보내는 거 아니에요?”
이미 얘기를 다 끝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석훈은 여전히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도윤이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대책을 세워놨으니까 그땐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하면 돼.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 오지 않고는 못 배길 거야. 욕심이 하늘 끝까지 닿은 인간들이니까.”
도윤이 그들에게 보낸 메일에는 자신이 칭기즈칸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사실을 이브라힘과 리히터에게 알릴 것인지의 문제를 놓고 도윤과 석훈은 장시간 논의를 거듭했다. 만약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도 꼼꼼하게 체크했다. 그 결과 비록 위험 요소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메일에 내가 칭기즈칸의 무덤 내부에서 휴대폰으로 찍었던 사진을 첨부했잖아. 세 사람 모두 고대 유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안목이 있는 자들이니까 그게 가짜가 아니라는 건 알아볼 거야. 특히 칭기즈칸의 칼과 문서 사진을 보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질 걸?”
그가 이번에 보낸 메일에 첨부된 사진들은 대부분 진짜였지만 그 가운데 두 가지는 가짜였다. 그 중 하나는 몽골 문자로 기록된 문서였고, 다른 하나는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과거 몽골군의 장수가 쓴 것이 분명한 칼의 사진이었다.
몽골 칼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아니라 현소 화랑의 비밀 수장고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물건이었다. 또한 몽골 문자로 된 문서 역시 도윤이 직접 공들여 만든 가짜였다.
“근데 메일을 보내려면 이브라힘하고 리히터 회장한테만 보낼 것이지 왕이푸 회장은 왜 넣은 거예요? 그 사람도 한꺼번에 제거하려고요?”
석훈의 얘기에 도윤이 피식 웃었다.
“아마 내 짐작에는 편지를 받은 건 왕 회장이지만 한국으로 오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우바오량 상무위원일 가능성이 커. 설사 주변의 눈을 의식해서 이번에는 왕 회장이 오더라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그 사람이 직접 등장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래도 그 사람들은 형이 링커라는 걸 모르는 거 아니었어요?”
“왕이푸 회장한테 사실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 사람 역시 이브라힘이나 리히터처럼 오래 전부터 내가 링커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던 게 분명해. 그 칼에서 붉은 아우라가 피어오르는 걸 보았다고 메일에 적었으니까 지금쯤 한국으로 오기 위해 이미 짐을 꾸리고 있을지도 몰라.”
도윤이 만든 가짜 몽골 문서의 내용은 칭기즈칸이 그 칼을 얻게 된 경위와 그것으로 인해 누렸던 여러 가지 혜택에 관한 것들이었다. 세 사람 모두 그 정도의 문서는 충분히 해독할 수 있는 재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도윤이 왜 그 사진들을 보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권력자들이 링커를 찾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얻기 위해서야.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불로장수의 능력,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지배의 능력, 그리고 재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재신의 능력이 그거야. 문서를 해석했다면 칭기즈칸의 칼이 그 가운데 지배의 능력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겠지.”
도윤의 말에 석훈이 한숨을 푹 토했다.
“하지만 그건 전부 거짓말이잖아요.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난리를 칠 게 뻔한데….”
도윤이 씩 웃으며 석훈을 쳐다봤다.
“그래서 이번에 너를 이르쿠츠크로 보내려는 거 아니냐. 이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잘 부탁한다.”
막상 말을 하고 나니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일로 인해 번번이 녀석을 위험한 곳으로 끌어들이는 꼴이 된 것이다.
“미안하다. 너한테는 항상 위험하고 힘든 일만 시키는 것 같다.”
그의 사과에 석훈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형. 내가 그렇게 경우를 잘 따지고 예의 바른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염치까지 없지는 않아요. 형이 지금까지 해 준 게 얼만데 고작 이런 일을 가지고 엉덩이를 빼면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니지. 걱정하지 말아요. 서울에서의 모임이 끝나는 대로 곧장 이르쿠츠크로 갈 테니까. 형은 여기 일이나 잘 처리하세요.”
벌써 7월이나 도심을 비추는 햇볕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7월 첫 주, 그의 예상대로 이브라힘과 리히터 회장, 그리고 우바오량이 도윤의 메일에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한국으로 오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왕 회장은 본인이 직접 서울을 찾았지만 이브라힘과 리히터 회장은 각각 압둘과 크리스틴을 보낸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