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압둘과 크리스틴 리히터, 그리고 왕이푸 회장은 모이기로 약속한 날 하루 전에 모두 한국에 입국했다. 그들은 각각 여러 명의 수행원을 대동했는데 특이 왕이푸 회장은 자신의 딸인 왕화와 함께 왔다. 도윤은 그들을 마중 나가지 않았고, 묵고 있는 호텔을 따로 찾지도 않았다. 그냥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간에 한꺼번에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약속은 내일 아니었던가요? 연락도 없이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이브라힘의 비서실장인 압둘이 서윤문화재단 이사장실로 불쑥 그를 찾아왔던 것이다. 게다가 수행원도 없이 혼자였다. 시간을 보니 호텔에 가방만 내려놓은 채 수행원들을 따돌리고 곧장 이곳으로 온 게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압둘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사과부터 했다. 순간 도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다짜고짜 죄송하다니요? 뭐가 죄송하다는 말입니까?”
“리야드에서 이 박사를 억류하려 했던 일은 저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계획입니다. 그걸 사과하는 건 위선적인 행동이 되겠지요. 하지만 신혼여행 중에 발생했던 일은 솔직히 제 뜻과는 무관했습니다. 친구로 삼아야 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행위는 리야드에서 있었던 일 한 번으로 끝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게 아쉽고 죄송합니다.”
“제 신혼여행 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계시다는 뜻이군요.”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왕세제께서 직접 부리는 특수 요원 몇 명이 이 박사 부부를 납치하기 위해 이르쿠츠크까지 쫓아갔다는 것까지는 압니다. 그들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고 이 박사께서는 이곳에 계시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 작전은 실패한 모양이군요.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도윤이 피식 웃었다.
“왕세제의 뜻이 곧 압둘 실장님의 뜻이 아니었나요? 그 일을 사과한다는 건 실장님이 왕세제의 지시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또 지난번처럼 무모한 일을 벌이려고 하실 경우 최대한 만류할 수는 있겠지요.”
도윤은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압둘 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난번 일은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왕세제의 지시나 명령을 끝까지 거부할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고작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사과를 하러 온 게 아니군.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뭡니까?”
단도직입적인 그의 질문에 압둘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독일의 리히터 회장과 중국의 왕이푸 회장을 함께 불렀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박사님이 보낸 메일에 따르면 칭기즈칸의 무덤에 있는 칼은 하나뿐이지요. 그렇다면 그 칼에 담긴 능력을 전해 받을 수 있는 사람도 한 명 뿐이지 않겠습니까?”
“그 칼의 능력을 이브라힘 왕세제에게 전해달라는 말씀입니까?”
“원하시는 게 있으면 왕세제 전하의 능력이 닿는 한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알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요.”
알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대 당신이 따르는 왕세제에게 능력이 전해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게 아무리 하찮은 능력이라도. 도윤은 한국식으로 허리까지 굽혀가며 부탁하는 압둘의 머리를 한참동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그 문제에 관해서는 내일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논의할 겁니다. 이만 돌아가세요.”
“하지만 이 박사님….”
“내일 오시면 왜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안녕히 가세요.”
압둘은 도윤의 눈을 보고 그가 생각을 바꿀 의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돌아갔다.
압둘의 뒤를 이어 크리스틴도 서윤문화재단을 찾아왔다. 그녀는 압둘보다는 조금 더 진심이 담긴 사과 의사를 표시했다. 도윤은 시선을 돌린 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녀를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사실이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하필이면…. 아니지. 오히려 좋은 일인가?’
도윤은 신혼여행 길에 발견한 세 개의 유물에 담긴 능력을 은 막대에 옮겨두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는 혹시나 유물의 주인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해서 늘 가지고 다녔는데, 돌연 그 가운데 하나에서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오더니 크리스틴에게로 이어졌던 것이다. 칭기즈칸의 무덤에서 발견한 도자기에 담겨 있던 능력이었다.
“지난 일에 대한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의 여부는 앞으로 리히터 회장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겠지요.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할 테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십시오.”
그녀를 돌려보내자 이번에는 왕이푸 회장과 왕화가 함께 이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우바오량 상무위원께서 칭기즈칸의 무덤을 발굴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면 중국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발굴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왕이푸의 말을 들은 도윤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덤의 위치가 중국 땅이 아닙니다. 중국 정부에서 나서면 괜히 외교적인 문제만 생길 거예요. 마음만 감사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이 경우에는 그것조차 어려울 것 같군요.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선다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왕 회장을 돌려보낸 뒤 도윤은 기가 막혀 코웃음을 쳤다. 꼭 갖고 싶은 보물 앞에서는 부자와 권력자 역시 체면을 지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구나. 그들은 인간이 왜 짐승과는 달리 욕심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하는지 배우게 될 것이다.
* * *
다음날 오후 세 시. 압둘과 크리스틴, 그리고 왕이푸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서윤문화재단의 대회의실이었다. 그들을 따라온 수행원들은 각자 서로 다른 방에 대기시켜 놓은 채 도윤을 포함한 네 사람만이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이미 메일에 첨부된 사진들을 통해 이번에 발견된 칭기즈칸 무덤 내부의 모습을 확인하셨을 겁니다. 혹시 제가 그의 무덤을 찾았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이 계시다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궁금한 점을 물으십시오.”
도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왕이푸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사진에 나와 있는 유물의 특징이나 묘실 내부에 쓰인 몽골 문자들의 내용으로 볼 때 저희는 이 박사가 발견한 게 칭기즈칸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무덤 내부에 들어가 사진까지 찍었다면 사실상 발굴이 시작된 것 아닙니까? 그럼 그냥 발굴을 완료하면 되지 왜 우리를 보자고 한 겁니까?”
그의 말에 압둘과 크리스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그 점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도윤은 별다른 대답 없이 리모컨으로 회의실 벽면에 걸려 있는 대형 모니터를 켰다. 그러자 사방이 벽돌로 되어 있는 통로 한 쪽 바닥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물웅덩이 사진이 나타났다. 세 사람에게 보낸 메일에는 첨부하지 않았던 사진이다.
“저건 무덤 내부를 찍은 사진입니다. 메일에서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칭기즈칸의 무덤은 연못과 연결된 수중 통로를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운 좋게 그 통로를 발견해서 무덤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장비와 시간 부족으로 본격적인 발굴이 불가능했지요. 그래서 몇 점의 유물만 챙기고 일단 물러나야 했습니다.”
“발굴이 아니라 단순한 발견에 불과했다는 겁니까?”
압둘의 질문이었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칭기즈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묘실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능력이 담겨 있는 그 칼의 사진 역시 묘실과 통로 사이를 가로막은 잔해 사이로 카메라만 간신히 집어넣어 찍은 것입니다.”
그가 리모컨을 클릭하자 모니터의 영상이 바뀌더니 무너진 천정과 벽에서 흘러나온 벽돌과 흙이 통로를 거의 메우다시피 한 모습이 나타났다. 사진 자체는 실제로 묘실로 통하는 통로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었지만, 도윤이 보낸 칭기즈칸의 칼 사진은 당연히 그 안에 있던 걸 찍은 게 아니었다. 사실 도윤은 묘실 내부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었다.
“그럼 우리에게 칭기즈칸의 무덤을 발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건가요?”
이번에는 크리스틴이었다. 도윤은 왕이푸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요? 저 무덤을 발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무덤 전체가 물에 잠길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발굴을 시도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건 여러분이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왕이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어제 도윤을 미리 만나서 중국 정부가 무덤의 발굴을 돕겠다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상대는 계속 무덤 발굴에 자신들이 개입하는 걸 거부했다. 우바오량의 비밀 지시를 받고 온 그로서는 속이 편할 수가 없었다. 도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칭기즈칸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몽골과 러시아 정부에 알릴 생각입니다. 그럼 양국 정부가 그걸 발굴할지 말지의 여부를 알아서 결정하겠지요.”
“그건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복잡한 외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인류의 문화유산이 양국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인해 오랫동안 발굴도 못한 채 방치될 수도 있습니다. 이 박사의 설명만으로는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이대로 내버려둘 경우 무덤 전체가 수장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압둘이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론을 제기했다. 그의 말은 부분적으로 타당했다. 도윤의 말로 미루어 짐작할 때 칭기즈칸의 무덤은 러시아 영토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무덤 자체는 모든 몽골인들이 영웅으로 떠받드는 칭기즈칸의 것이다. 무덤의 존재가 밝혀지면 두 나라 모두 발굴의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도윤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인류의 문화유산? 당신이 그걸 걱정한다고?
“저는 미술사학자이자 감정가이지 외교관이 아닙니다. 물론 정치에도 관심이 없고요. 압둘 실장님의 지적도 일리는 있지만 그건 우리가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솔직히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그 점이 걱정스러워서 서울까지 날아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좌중을 둘러보자 모두 침묵을 지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다들 서로를 의식하느라 선뜻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그러자 도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링커입니다. 유물에 담긴 능력을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지요. 보내드린 메일을 통해 그 사실을 밝혔지만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이미 제가 링커라는 걸 다들 짐작하고 있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굉장히 강압적인 방법으로 제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한 적도 있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도윤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맺혔다. 압둘과 크리스틴은 그가 설마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점을 언급할 줄은 몰랐던지 눈에 띄게 움찔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왕이푸 역시 그 말만으로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하고는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몇 번의 위기를 겪은 뒤에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링커라는 능력이 축복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재앙이 될 위험성이 더 큰 것 같더군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링커라는 사실을 계속 숨겨왔지만 여러분에게는 차라리 정체를 시원하게 밝히고 거래를 제안하기로요.”
“어떤 거래를 말씀하시는 거죠?”
크리스틴이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며 물었다. 도윤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종류에 관계없이 어떤 유물에 능력이 담겨있는지를 한 번 감정하는 데 백만 달러, 유물에 담긴 능력을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에게 전해주는 데는 천만 달러입니다. 그 돈을 지불하시는 분에게는 언제든지 제 능력을 기꺼이 사용하겠습니다.”
그의 노골적인 제안이 다소 뜻밖이었던 모양이다. 다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기색이 뚜렷했다. 도윤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다들 돈이 많은 분들 아닙니까? 저 또한 가난한 처지는 아니고요. 그러니 이왕이면 돈으로 해결합시다. 서로 목숨까지 위험할 정도로 험한 일을 벌이지 말고 말이지요. 대신 앞으로는 저나 제 가족의 신상에 해가 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시도하면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그 사람과 저의 거래는 영원히 끝날 겁니다.”
백만 달러나 천만 달러라는 돈은 엄청난 거액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그 돈을 아까워할 사람은 없었다. 도윤이 세 사람의 대답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때, 문득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압둘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 박사가 이번에 발견한 칭기즈칸의 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그냥 포기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른 겁니까?”
도윤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제가 사정이 여유롭지 못해서 움직일 수 없지만 9월경에 다시 한 번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갈 겁니다. 그때는 최소한 묘실로 이어지는 통로를 뚫어서 안에 있는 칼을 직접 확인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걸 들고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묘실까지 들어가고도 거기 있는 유물을 건드리지 않겠다고요?”
“괜히 그 칼을 들고 나왔다가 무슨 꼴을 또 당하려고요? 여러분들 가운데 누군가 한밤중에 저희 집으로 쳐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 칼을 빼앗고 능력을 전해 받기 위해서 말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이미 몇 차례나 몸으로 직접 겪은 일이니까요.”
크리스틴이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따로 생각해 둔 제안이 있나 보네요. 그게 뭐죠?”
“여러분들 가운데 한 분씩, 모두 세 분이 9월에 있을 탐사에 동행하는 겁니다. 단, 유물의 능력을 전해 받고 싶은 사람이 직접 참가해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묘실 안에 있는 물건은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니까요. 만약 그분들 가운데 칼의 주인이 있을 경우 현장에서 제가 직접 능력을 전해주겠습니다. 대신 주인이 없을 경우 군소리 없이 물러나는 겁니다.”
“왜 그렇게까지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거죠?”
크리스틴의 말에 도윤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복잡하게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 그게 오히려 간단하기 때문이지요. 일단 누군가 능력을 전해 받을 경우 그 칼은 여러분에게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럼 칼을 두고 나오는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만약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도 칼의 주인이 아닐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그 칼을 두고 오려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능력이 담긴 모든 유물에는 주인이 따로 있다. 그 때문에 아무리 링커라고 해도 유물의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까지 능력을 전해주는 건 불가능하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도윤은 자신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밝혔다. 만약 한 사람만 데리고 갈 경우 그가 유물의 주인이 아니라는 게 판명되었다고 해도 그 칼을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건 원래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세 명이 함께 들어간다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기가 주인도 아닌 물건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기까지 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울러 제가 그 칼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걸 입증해 줄 수도 있을 테고요. 저로서는 최대한 의심스러운 구석이나 시빗거리를 남겨두고 싶지 않습니다.”
도윤의 말은 끝났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모두 밝혔고, 이제 판단은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 아니 정확히는 그들로부터 보고를 받을 배후의 세 명에게 달렸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문득 왕이푸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저는 이 박사가 링커라는 얘기를 이번 메일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눈치를 보니 다른 분들은 모두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사실 아직 완전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링커라는 걸 입증할 수 있습니까?”
혹시 그런 요구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었다. 그럴 경우 원래의 계획은 알아서 판단하라고 몰아칠 생각이었는데, 어제 크리스틴을 만난 뒤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도윤은 품 안에서 작은 연적을 하나 꺼냈다. 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두는 그릇이었는데, 어제 크리스틴이 다녀간 후에 부랴부랴 준비한 것이었다. 도윤은 칭기즈칸의 무덤에서 발견된 도자기가 담고 있던 능력을 그 연적에 옮겨두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