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파리로 떠나기 전, 도윤은 먼저 국립박물관의 민경훈 관장을 만났다. 그로부터 오구라 컬렉션 가운데 반드시 돌려받아야 할 문화재의 목록을 건네받기 위해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전체 컬렉션을 몽땅 되찾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먼저 우선순위를 정한 뒤 그것들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정말 가능하겠나?”
민경훈은 목록을 건네면서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이제까지 수도 없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공연한 희망을 품었다가 또 다시 실망만 안게 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목록을 건넨 뒤에 도윤의 손을 꽉 움켜잡는 민경훈의 얼굴에 오랜 세월 이루지 못한 소망에서 비롯된 절절한 아픔이 흉터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도윤은 노학자의 눈빛에 어린 간절함을 느끼고 잠시 울컥했다.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시작한 겁니다. 이번만큼은 일본도 오리발만 내밀 수 없을 거예요. 꼭 좋은 소식을 들으실 수 있도록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선 대원수의 투구와 갑옷, 주칠12각상, 청자상감극접문병, 금동투조관모 등은 반드시 찾아와야 하네. 그건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보물이야. 이 목록에 있는 것들 가운데 절반만 찾아오면 내가 자네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이라도 하지. 꼭 부탁하네.”
“무릎은 관장님이 아니라 죽은 오구라가 꿇어야지요. 그 사람은 저승에서라도 생전에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 놈은 수집가가 아니라 그냥 도둑이니까요.”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 같은 건 없다. 그러나 도윤은 이번 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오구라가 한국에서 문화재를 반출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파리에 도착한 그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말레 회장을 만났다. 이미 행정명령서 사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서류의 이미지 파일은 메일을 통해 전해 받았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그걸 검토한 끝에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그 전에 먼저 실물을 확인하고 몇 가지 협조를 부탁할 사항들이 있었다.
“어서 오게. 여행은 편안했었나?”
지난번에 헤어질 때 도윤은 말레 회장에게 앞으로 만나면 말을 편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래도 그와는 앞으로도 자주 만나며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레 회장은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도윤을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던 가족을 대하듯이 환영해주었다. 그의 사무실은 파리 라데팡스 지역에 위치한 ‘쿠와’ 통신 회사의 본사 건물 내에 있었다. 그는 도윤에게 이미지 파일로 보낸 자료들의 원본을 자신의 방에 있는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윤이 일부러 그의 사무실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먼저 1959년 당시의 행정명령서 사본에 적힌 드골의 서명을 말레 회장이 확보한 다른 서명들과 면밀히 비교했다. 그가 비록 감정가이기는 하지만 필적 전문가는 아니었고, 드골의 서명 역시 예술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도윤이 보기에도 행정명령서의 드골 서명은 어설프게 흉내 낸 것이 불과한 가짜임이 분명했다.
“전문가들에게 감정을 의뢰했다고 하셨죠?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그의 질문에 말레 회장이 씩 웃으며 몇 장의 서류를 내놓았다. 복수의 필적 전문 감정가들이 작성한 감정평가서였다.
“파리에서 가장 실력 있는 감정가들에게 의뢰했네. 결과는 모두 서명이 위조되었다는 거였어. 비록 원본을 가지고 감정한 건 아니지만 이번 일이 계속 이슈가 되면 정부도 결국 원본 대한 감정을 의뢰할 수밖에 없게 될 거야. 드골의 서명은 확실히 위조되었네.”
“일반인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 여론 몰이를 하겠다고 하셨죠?”
“일주일 전부터 프랑스의 각 사이트와 SNS를 통해 마쓰가타 컬렉션을 돌려주기로 한 1959년의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퍼트리고 있네. 드골의 위조 사인이 적힌 행정명령서의 사본도 이미 사진 파일을 만들어 올렸어. 생각보다 빠르게 여론이 달아오르는 중이야.”
말레 회장은 도윤에게 그간 프랑스에서 전개된 여론 몰이의 현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네티즌들이 정보를 수용하는 일반적인 태도나 성향에 맞추어 너무 자세하거나 체계적인 주장은 가급적 삼갔다. 그 대신 감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에 좋은 단어들을 선택하고 결론을 쉽게 도출할 수 있도록 공을 들여 게시글들을 작성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도윤의 얘기에 말레 회장이 씩 웃었다.
“반응이 어떠냐고? 이걸 한 번 보게.”
회장이 여러 종의 프랑스 신문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이번 일과 연관된 기사 제목들이 앞면에 보이도록 미리 페이지를 넘겨놓은 것들이었다.
―일본 땅의 프랑스 문화재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1959년의 추악한 뒷거래. 모네의 그림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마쓰가타 컬렉션, 과연 돌려받을 수 있을까?
모두 1959년에 프랑스 정부가 마쓰가타 컬렉션을 일본에 기증한 행위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기사들이었다. 사실상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을 이리저리 조합한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가운데 몇 개는 기자가 직접 뛰어다니며 자료를 수집해서 작성한 것도 존재했다. 기사 내용을 빠르게 살펴본 도윤이 휘파람을 휙 불었다.
“생각보다 논조가 강경하네요? 기대는 했지만 그래도 예상 밖인데요?”
그의 얘기에 말레 회장이 이번에는 태블릿을 꺼내서 켰다. 화면을 몇 번 조작하던 그가 마쓰가타 컬렉션에 관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기사를 띄워서 보여주었다. 도윤이 기사를 읽는 동안 말레 회장이 부연 설명을 했다.
“올해 초에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 중인 작품의 일부를 원주인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네. 2차 세계 대전 중에 파리에 거주하던 유대인을 비롯한 외국인들로부터 압수해서 가지고 있던 것들이지. 그 때문에 당시에 시민들 사이에 조금 묘한 기류가 형성되었어. 아는지 모르겠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자국의 문화와 정당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거든.”
말레 회장이 보여준 기사의 내용은 도윤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반응까지는 미처 살피지 못했었는데, 말레 회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의 분위기가 이번 사태에 생각지도 못했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도중, 나치는 파리에 있던 유대인은 물론이고 많은 개인 수집가들로부터 그림을 압수해서 독일로 보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루브르도 조금 떳떳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던 모양이다. 당시 프랑스를 통치하던 괴뢰 정부인 비시 정권을 뒤에서 부추겨서 직접 유대인들의 그림을 약탈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 일은 나치와는 독립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때문에 한 때는 루브르가 시골의 창고에 몰래 숨긴 그림들을 나치가 찾아나서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었다.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에 의해 원주인들에게 반환된 나치의 약탈 작품들과는 달리, 루브르가 빼돌린 미술품들의 상당수는 지금까지도 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것들이 많았다.
“정말 많이 늦은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 초에 루브르가 당시 약탈한 작품들의 목록을 다시 작성해서 원래의 소유자나 그 후손들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시작했지. 그런데 국민들 사이에 그 일에 대한 찬반양론이 일어났어. 마땅히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는 했지만 굳이 이제 와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존재했지.”
루브르 궁을 루브르 박물관을 개조한 장본인은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유럽과 이집트 등지에서 약탈한 엄청난 수의 미술품과 유물들을 루브르 궁에 전시하도록 명령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성장한 루브르의 시작이었다. 루브르의 역사는 약탈 문화재들을 토대로 해서 쌓아올려진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제 와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빼앗았던 것들만 돌려주는 건 오히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는 뜻인가요? 그래도 굳이 반대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도윤의 말에 말레 회장이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상식적인 얘기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반응은 조금 복잡했지. 부끄러움과 뻔뻔함이 교차하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러던 차에 이번 일이 터진 거야. 우리는 늘 약탈만 하고 산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프랑스도 남의 나라에 자기 문화재를 뺏긴 적이 있다는 식으로 애기가 퍼진 걸세. 어떤 의미에서는 참 재미있는 현상이지.”
“그래도 마쓰가타 컬렉션은 뺏긴 게 아니라 기증한 거잖아요? 애초에 마쓰가타도 그 그림과 조각들을 자기 돈을 주고 사서 모으기도 했고요.”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일본이 뇌물을 쓰고 서명까지 위조해서 그림을 가지고 갔으니 뺏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인터넷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강하지.”
심지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반응도 프랑스를 두둔하는 쪽이 많았다. 말레 회장은 프랑스의 여론이 어느 정도 방향을 잡는 듯하자 곧바로 영어, 독일어, 중국어 사이트에도 같은 얘기를 퍼트리는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반응이 아주 뜨거운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일본이 정당하다는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현재 프랑스 내에서는 그림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는 거군요.”
“우세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절대적이야. 우리가 부당하게 뺏은 걸 돌려줘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부당하게 뺏긴 건 돌려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지.”
도윤은 그냥 웃고 말았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런 주장의 오류를 여러 개나 지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굳이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말레 회장이 새로운 얘기를 넌지시 꺼냈다.
“근데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준비 중인 신문사가 하나 있네. 정확히 말하면 신문사가 아니라 인터넷 언론사라고 해야겠지만.”
“재미있는 기사요? 어떤 건데요?”
도윤이 관심을 보이자 말레 회장이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주었다. ‘리베라시옹’이라는 인터넷 언론사에 근무하는 앙토니 뒤브아라는 기자의 것이었다.
“이왕 파리까지 왔으니 그 친구를 한 번 만나보게. 1959년 당시에 프랑스 정부 관료가 일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나도 그 자료가 정확하게 어떤 건지는 몰라. 하지만 자네라면 한 번 만나서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말? 말레 회장의 말을 듣는 순간 도윤은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저한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자 말레 회장이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일이 잘 풀리면 꼭 기억해야 하네? 내가 자네에게 큰 도움을 줬다는 걸 말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기억력은 또 좋거든요. 그래도 그걸 핑계로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도윤은 그와 헤어져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앙토니 뒤브아라는 기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뒤브아는 생각 외로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묵고 계신 호텔과 방 번호를 말씀해주십시오. 퇴근 후에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물론 도윤도 그를 만나고 싶었다.
* * *
“리베라시옹의 앙토니 뒤브아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호텔 로비의 커피숍에서 만난 뒤브아는 도윤을 보자마자 대뜸 영광이라는 말을 내뱉어서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반가워해주는 건 고마운데 무슨 영광씩이나….
“서윤문화재단의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도윤은 그와 명함을 주고받은 뒤 커피를 시켰다. 앙토니 뒤브아는 엷은 갈색 머리를 한 삼십대 중반의 기자였는데, 처음부터 그에게 굉장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제 꿈이 원래 미술사학자가 되는 거였습니다. 나중에 그림을 보는 안목이 평균 이하라는 걸 깨닫고 결국 기자의 길을 택했지만요. 그림을 좋아하는 것과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눈을 가지는 건 전혀 다른 얘기더군요. 결국 내가 직접 프로가 되는 걸 포기하고 그 대신 프로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을 택한 셈이지요. 운동을 좋아하는 스포츠 기자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하.”
그리고 첫 만남의 자리에서부터 드부와가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었다.
드브와는 도윤이 트루쓰 앤 밸류에서 우승할 때부터 그의 열혈 팬이었다는 얘기를 해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는 도윤이 일본에서 해바라기를 발굴해낸 것부터 얼마 전 고흐의 자화상이 위작이라는 걸 밝혀낸 것까지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그의 활약상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누가 보면 연예인 사생 팬인 줄 알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거 은근히 부담되는 사람이네. 말레 회장은 왜 이런 사람을 나한테 소개한 거지?’
그에 대한 의문은 금세 풀렸다. 말 많은 드부와 자신의 입을 통해서.
“보름쯤 전에 ‘쿠와’의 말레 회장님으로부터 은밀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1959년에 프랑스 정부가 일본에 마쓰가타 컬렉션을 돌려준 사건에 뭔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데 혹시 기획 취재를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이 박사님이 그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즉석에서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아하, 그렇게 된 거였군. 말레 회장이 그 일에 굳이 자신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건 평소부터 드부와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 말레 회장은 오르세의 후원 회장으로서 평소에도 여러 언론사의 미술 관련 기자들과 두루 친분을 맺어왔다. 그러던 중 뒤브아가 도윤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은밀히 그에게 정보를 흘려준 게 분명했다. 뒤브와는 그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여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취재를 한 모양이었다.
“1959년의 그 일에 대해서는 저 역시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에 관한 논문을 하나 쓸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거든요. 기획 취재를 하셨다니까 묻는 건데, 혹시 제가 논문을 쓸 때 참조할 만한 자료나 정보가 있습니까?”
마쓰가타 컬렉션에 대해 논문을 쓸 생각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거야말로 한국의 미술사학도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는 주제니까.
“물론이지요. 잠깐만요.”
도윤이 넌지시 밑밥을 깔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드부와가 가방을 열어 두 장의 서류를 꺼냈다. 거기에는 여러 사람의 이름과 주소 같은 것들이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두 장의 서류 가운데 한 장에는 프랑스 사람들의 이름이, 그리고 다른 한 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류를 슬쩍 살핀 도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드부와가 손가락으로 종이 위의 이름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했다.
“이쪽은 1959년 당시의 프랑스 외무부를 비롯한 여러 부서의 고위 관료들 이름입니다. 모두 일본 정부로부터 뇌물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이쪽은 당시 뇌물을 건네주는데 관계한 것으로 파악된 당시 일본 관리들의 이름입니다.”
르부와의 설명을 듣던 도윤은 깜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도윤의 표정을 보고 그가 놀랐다는 것을 알아챈 르부와의 얼굴에 더욱 더 의기양양한 기색이 떠올랐다.
“처음 이번 일의 취재를 맡았을 때 제가 가장 우려한 것은 프랑스 정부 관료들의 성향이 상당히 완고하다는 거였습니다. 평소의 태도로 볼 때 아무리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른다고 해도 정부는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게 분명해요. 비록 이미 오래 전 일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사인이 위조되었다는 건 정부 입장에서도 무척 껄끄러운 일이니까요.”
“게다가 뇌물까지 받고서 그 일을 진행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더욱 망신이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뒤가 구린 일이 진행될 때는 만약을 대비해서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그건 프랑스와 일본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그 기록 가운데 하나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친구 제법인데? 말이 많은 건 좀 흠이지만 생각보다 기자로서의 취재 역량은 뛰어난 친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