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도윤은 야마모토와 민경훈 관장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다부세 비서에게 몇 장의 서류를 건넸다. 그 얼마 안 되는 서류에 적힌 내용만으로는 이것이 언론에 유출될 경우에 현 수상의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거라는 걸 다부세는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정작 회의가 끝난 후에 그의 이메일로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서류의 사진 파일이 전송되었다.
그 파일의 내용을 살펴본 다부세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는 기무라 시로가 당시 프랑스 정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건넨 불법 자금의 명목이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돈을 받아먹은 것으로 되어 있는 상대편 인물의 신분이었다.
도윤의 보낸 자료를 살피던 그는 급하게 프랑스 언론에 보도된 기사의 내용을 찾아보았다. 리베라리옹의 앙토니 뒤브이 기자. 도윤이 만났던 뒤브이는 다소 말이 많고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그가 작성한 기사는 엄청나게 꼼꼼하고 철저했다.
그는 당시 프랑스 정부 인사들 가운데 드골의 허락 없이 행정명령서에 가짜 사인을 적어 넣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의 신분을 거론했다. 이름을 가명으로 처리하고, 기자의 추측이라는 단서를 붙여놓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가 해당 인물의 서명과 드골의 위조 서명을 비교하는 사진을 실었다는 점이었다.
뒤브아가 실은 사진은 사실 말레 회장이 찾아낸 것이었다. 말레 회장은 두 사진에 나타난 서명이 동일 인물의 것이라는 필적 감정가의 감정 소견까지 받아냈는데, 뒤브아는 그 사실을 자신의 기사에 적시했다. 다부세는 해당 인물의 1959년 당시의 직위를 바타으로 그게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아냈다.
“미치겠네. 이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폭탄을 사람들 앞에 내던진 거나 다름없잖아?”
도윤이 보내온 문서에 다부세가 알아낸 인물의 이름이 여러 차례나 등장한다는 사실이 다부세를 소스라치게 만들었다. 그 문서에 의하면 마쓰가타의 컬렉션을 일본에게 기증한다는 행정명령서가 만들어지기 직전에 기무라 시로의 지시에 의해 막대한 돈이 해당 인물에게로 넘어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건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는데….”
처음 도윤을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상대가 건넨 자료를 무시할 생각이었다. 외교라는 건 일반인의 상식과는 달리 합리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건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운 순수한 파워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드골의 행정명령서가 위조되었다고 해도 이제 와서 이미 일본의 손으로 넘어온 마쓰가타 컬렉션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물론 이 사실이 공개되면 양국 정부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과 항의는 있을 것이다. 여론도 나빠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게 현 수상에게 개인적인 흠집이 되지 않는 한 다부세는 오히려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게 더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도윤의 추가로 보내온 자료를 받아본 순간,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 *
기무라 츠요시. 젊은 날에 정치에 입문해서 현 일본 내각의 수장인 총리대신, 즉 수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오십대 중반의 인물.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내각의 주요 자리를 차지해왔다. 일본 정치계에는 이른바 금수저 출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 귀족들이 많았는데 기무라는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쌓아올린 집안의 내력 덕분에 기무라 역시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한 정치 행보를 밟아왔다. 그런 그가 지금 생애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도윤이라고 했나? 이 친구는 도대체 이런 자료를 어디서 어떻게 얻은 거지?”
기무라가 한껏 굳은 얼굴로 눈앞의 모니터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기무라 시로가 주 프랑스 대사로 근무하던 당시에 저질렀던 여러 가지 불법 로비의 정황이 담긴 문서 파일이 떠 있었다. 그의 앞에 서 있던 다부세 유키 비서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고베에 있는 낡은 집에서 도모토 유키히로라는 전직 서기관이 남긴 자료를 입수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도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그 작자가 주 프랑스 대사관에 근무할 때 얻은 비밀문서를 폐기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멍청한…! 아무튼 그 자료가 어떻게 해서 이도윤의 손으로 넘어간 거지?”
“그 집은 현재 아오키 고스케라는 노인의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도모토 유키히로의 손녀는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데, 그 여자가 아오키에게 집을 팔았습니다.”
“집을 팔았으면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은 원주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거 아냐? 집을 판 거지 그 안에 있던 가구나 문서까지 넘긴 건 아닐 거 아니야?”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매매 서류에 의하면 원주인이 집을 넘기면서 안에 있는 물건 모두를 구매자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고 승낙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무라 수상이 저도 모르게 끙 하고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할아버지고 손녀고 모두 멍청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럼 그 아오키라는 노인에게서 자료를 넘겨받는 건? 사람을 보내서 접촉해 봤나? 돈은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하면 되잖아?”
“이도윤이 아오키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으면서 인수증을 작성하고 사인까지 받았습니다. 워낙 철저하게 조치를 취해놔서 법적으로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기무라 수상은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럴 때….
남들은 자신을 가리켜 금수저 출신으로 순조롭게 정치적 이력을 쌓아올린 끝에 수상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의 속 편한 헛소리에 불과하다. 일본에 정치 귀족이 자신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역시 처음 정계이 입문한 뒤로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나름대로 험난한 여정을 거쳐왔다.
그 가운데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짓을 저지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 관행상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것들이었고 실제로 지금까지 그런 일들이 크게 문제가 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여론이 바뀌었다.
몇 가지 무리한 정치적 결단이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 때문에 현재 일본 내의 여당 지지율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게 어려워 보일 정도로 크게 내려간 상태였다. 뭔가 획기적인 일을 벌여 반전을 노려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하필이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자료가 등장한 것이다.
“이 자료들은 신빙성이 있는 건가? 공개될 경우 사람들이 믿을 것 같으냔 말이야.”
기무라 수상의 말에 다부세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의 내용이 너무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아직 국내에서는 제대로 보도되고 있지 않지만 프랑스 언론을 통해 이미 발표된 기사들의 내용과도 상당부분 일치합니다.”
“하지만 국내 언론에는 마쓰가타 컬렉션과 연관된 내용은 보도를 자제시키고 있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통제된 건 아닙니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들의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경제적인 수준에 비해 언론에 대한 통제는 생각보다 심한 편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게 정부의 강압적인 통제 정책 때문이 아니라 메이지 유신 시대 때부터 오랜 시간 이어지고 다져진 독특한 문화와 습관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 있다. 소위 말하는 언론사에 의한 자발적 통제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자칫 자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사가 알아서 보도를 자제하거나 한쪽으로 왜곡시키는 관행이 굳어져 있다. 특히 주요 언론사일수록 그런 관행은 더욱 강하게 작용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마쓰가타 컬렉션의 기증 문제가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내버려두면 문제가 커질 소지가 있다는 거야?”
기무라 수상의 목소리가 뾰족해지자 다부세가 고개를 푹 숙였다.
“프랑스 정부와 조율을 해야 합니다. 만약 프랑스 정부가 여론을 이기지 못해서 마쓰가타 컬렉션의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면 일본 언론도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도윤 박사가 이 자료를 공개하면….”
보나마나 난리가 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쿄 국립박물관이 순순히 마쓰가타 컬렉션을 반환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그 일이 이슈화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 수상의 할아버지인 기무라 시로가 저질렀던 일은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다. 그건 집안의 배경에 힘입어 현재의 자리에 오른 기무라 츠요시 수상에게는 정치적인 치명타가 될 위험이 컸다.
“서울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회의가 다음 주지?”
“네. 그때 한국 대통령과도 정상 회담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이도윤 박사를 잠깐 볼 수 있도록 약속을 잡아 봐.”
“직접 만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다부세는 깜짝 놀랐다. 이번 일이 자칫 심각한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수상이 도윤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본 기무라가 혀를 찼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던 마쓰가타 컬렉션의 기증 문제가 프랑스에서 새삼 화제가 됐어. 솔직히 우리도 드골의 서명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누군가 그 일을 파헤치고 나섰어.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는 이도윤이 할아버지의 로비 내역을 들고 나타났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누군가 오래 전부터 이번 일을 일부러 기획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오래 전부터인지 얼마 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일부러 기획한 건 맞을 거야. 이도윤이 그 기획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를 만나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건 내 정치 생명과 직결된 문제야. 소홀하게 처리하면 안 돼.”
“알겠습니다. 그에게 연락을 취해 약속을 잡겠습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스럽게 처리해야 한다는 건 알지?”
“만남 자체를 절대로 발설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이도윤이 그런 주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은 협조하는 자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다부세의 생각이었다.
* * *
어제부터 시작된 APEC 회의 때문에 서울 시내의 고급 호텔들이 외국 정상들과 그들을 따라온 수행원들로 가득 찼다. 당연히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고, 객실 주변은 물론이고 로비까지 경호원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서울의 한 특급 호텔 스위트룸의 문을 조용히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시각은 벌써 밤 아홉 시. 손님이 찾아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윤은 경호원들의 매서운 눈빛을 받으며 일본 수상의 묵고 있는 방문을 노크했다.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도윤도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다부세 비서관이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널찍한 객실 거실에는 뉴스를 통해 낯이 익은 일본의 거물 정치인이 앉아 있었다. 기무라 츠요시 현 일본 수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도윤은 간단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재빨리 주변을 훑어봤다. 객실 안에는 다부세 비서를 제외하면 수상뿐이었다. 경호원들조차 모두 밖으로 내보낸 게 분명했다.
“일본국 총리대신 기무라 츠요시입니다. 이도윤 박사의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감정가가 나오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기무라 수상은 짐짓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가 내민 손을 가볍게 잡았다 놓은 도윤이 거실 소파에 앉자 다부세가 얼른 차 두 잔을 가지고 와서 두 사람 앞에 놓았다. 그의 앞에 자리를 잡은 기무라는 대뜸 본론을 꺼냈다.
“다부세 비서에게 재미있는 자료를 보내셨더군요.”
상대의 목소리에서 약간 거친 느낌을 받은 도윤이 슬쩍 웃음을 지었다.
“그 자료가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찌 보면 진즉에 사라졌어야 할 자료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지료를 없애줄 수 있다. 도윤 역시 쓸 데 없는 밀고 당기기를 생략하고 대뜸 그런 뜻을 내비쳤다. 일국의 수장답게 얼른 말귀를 알아들은 기무라 수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원하는 게 뭡니까?”
직설적인 질문. 도윤 역시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오구라 컬렉션을 한국에 반환해 주십시오. 그러면 마쓰가타 컬렉션에 관한 논쟁도 금세 잠잠해질 겁니다. 제가 가진 자료가 없으면 프랑스 측의 주장은 자신들의 잘못을 입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게 될 테니까요.”
“일본이 마쓰가타 컬렉션을 계속 소유하는 대신 오구라 컬렉션을 넘기라는 뜻입니까?”
“원칙을 따지면 두 가지 모두 일본이 정당하게 소유할 수 있는 문화재가 아닙니다. 그걸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저는 그 중 하나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하나를 보존할 길을 찾으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건방진 자식. 기무라의 얼굴 위로 분노의 기운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노련한 정치인답게 재빨리 안색을 회복했다.
“오구라 컬렉션을 한국에 돌려주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합법적으로 얻은 개인 재산이고, 도쿄 국립박물관이 정당한 절차를 밟아 기증받는 거니까요. 그걸 한국에 넘긴다는 건 어떠한 명분이나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도윤이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기무라 수상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건 수상 개인의 의견입니까, 아니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입니까?”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자 제 의견이기도 합니다.”
“그럼 수상께서 개인적인 의견을 바꾸시고 아울러 일본 정부까지 설득하셔야 되겠군요.”
그가 태연하게 내뱉은 말을 들은 기무라 수상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자신의 할아버지와 관련된 약점을 쥐고 있다고는 해도 감히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건방진 말을 지껄이다니. 아직 나이가 젊어서 세상 무서운 줄을 몰라서 이러나? 그가 한 마디 쏘아붙이려는 찰나, 도윤이 절묘하게 먼저 입을 열어 그의 말을 막았다.
“오구라 컬렉션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은 개인 재산이 아닙니다. 그게 도굴과 절도에 의해 취득된 장물을 사들인 거라는 건 이미 오구라 목록에도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그 자료는 이미 오래 전에 공개된 겁니다. 이제 와서 모른 척 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죠. 수상께서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오구라 목록에 기재된 내용은 일종의 정황 증거일 뿐입니다. 일본이 과거 조선 땅에서 도굴과 절도를 했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군요.”
조선 땅이라…. 도윤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얘기를 자꾸 돌리시니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논의하기로 하죠. 얘기를 마쓰가타 컬렉션에 집중시켜 볼까요? 일단 그건 개인이 합법적으로 얻은 개인 자산이 맞습니다. 하지만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이 컬렉션을 돌려받은 것은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이루어진 게 아니지요. 그럼 그건 도로 프랑스 정부에 반환하겠군요.”
“그것 역시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드골 대통령이 행정명령서에 직접 사인을 했으니까요.”
그냥 판을 뒤집어 엎어버릴까? 도윤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애써 눌러 참았다. 명색이 일본 수상이라는 작자가 되도 않는 억지를…. 그는 심호흡을 해서 일단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당신은 상대를 잘못 고른 거야, 이 양반아.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