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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59화 (259/300)

259화

서울에서 이틀 간 계속된 APEC 회의가 끝나고 도쿄로 돌아가는 일본정부 전용기. 길지 않은 비행시간 내내 비행기 내의 집무실에 틀어박힌 채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던 기무라 수상이 문득 다부세 비서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어떻게 생각해?”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날아온 기무라의 질문에 다부세가 잠시 움찔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는 게 혹시…?”

“그래. 이 박사 말이야. 내가 정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그 자가 전 세계 언론에 자료를 뿌려댈까? 그럴 경우 해외 언론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아? 우리나라 여론은? 그게 다가오는 총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해?”

여러 개의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평소의 수상답지 않게 조급한 태도였다. 다부세는 기무라 수상이 짐작했던 것보다 진지하게 도윤의 제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생각하기에 따라 심각할 수도 있고 별 일 아닐 수도 있다고 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그게 무슨 소리야?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갑자기 목이 칼칼해졌다. 다부세는 얼른 헛기침을 한 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 박사가 가지고 있는 자료가 공개될 경우 국내 여론이 나빠질 가능성은 높다고 봐야 합니다. 총선 전체에 대한 영향은 섣불리 짐작하기 어렵지만 수상께서는 확실히 타격을 입으실 겁니다. 어쩌면 당 내에서 수상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 심각한 거잖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 게 아니라.”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가 공식적으로 마쓰가타 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 저들도 잘 알 테니까요. 그들로서는 구태여 양국의 관계를 해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여론은? 그 친구들도 여론을 상당히 의식하지 않나?”

“프랑스 내에서 잠시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잠잠해질 겁니다. 어느 나라든 대중의 관심이라는 건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가라앉는 법이니까요.”

“결국 마쓰가타 컬렉션의 반환 문제는 총선이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대충 해결될 문제라는 얘기군. 이 박사가 요구한 오구라 컬렉션 반환 문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지부지 되겠지.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듯이.”

물론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다부세는 수상의 얼굴이 여전히 찌푸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가 다른 문제를 염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부세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가슴 속에 있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문제는 그 총선이 어떻게 끝나느냐는 겁니다. 어떤 컬렉션이든 돌려주지 않는 게 결국에는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그 대신 수상께서는 피해를 감수하셔야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잘못하면 총선에서 패하거나 간신히 승리를 거두더라도 수상 자리는 내놓아야 할 거라는 얘기군. 그게 싫으면 최소한 두 컬렉션 가운데 하나는 돌려줘야 한다는 건가?”

“만약 프랑스 정부가 마쓰가타 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할 경우 필연적으로 기무라 시로 어르신의 비리, 죄송합니다, 그 분의 과거사는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일이 그렇게 진행 되면 작품을 돌려주느냐와 관계없이 수상께서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오구라 컬렉션을 돌려주면? 이 박사 말대로 될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이 박사가 약속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말씀드리자면 오구라 컬렉션을 돌려주는 것과 동시에 말레 회장이 힘을 쓰겠지요. 그는 프랑스 내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입니다. 말레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여론이 수그러들 경우 프랑스 정부는 아마 마쓰가타 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구라 컬렉션을 돌려주면 우리나라의 여론이 나빠질 수도 있잖아?”

“그래서 그 문제는 되도록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좋습니다. 반환과 관련된 공식적인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국내 여론이 미처 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오구라 컬렉션을 돌려줘야 하겠지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사실 한국의 문화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흐음….”

다부세가 한 말은 대체적으로 타당했다. 기무라 역시 이미 몇 번이나 생각을 되짚고 또 되짚은 끝에 비슷한 결론을 얻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결론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그는 자신이 개미귀신의 함정에 빠진 개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쾌하고 짜증나고 답답했다.

그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손짓으로 다부세를 나가게 했다. 다부세가 나간 뒤에도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집무실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도쿄로 돌아온 뒤에도 최소한의 공식적인 일정만 소화할 뿐 되도록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사흘 째 되던 날, 그가 다시 다부세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 * *

“이 박사. 도쿄에서 연락이 왔네.”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무라 수상을 만난 지 정확히 일주일째 되던 날, 국립박물관의 민경훈 관장이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오구라 컬렉션 가운데 조선대원수 투구를 비롯한 주요 문화재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 도쿄 국립박물관의 야마모토 관장이 사흘 후 서울로 오겠다고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공문을 보냈다고요? 그냥 전화를 한 게 아니라?”

“그래. 전화가 아니라 공문이야.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 문제에 대해 사전 논의를 하자더군. 정식으로 공문을 보낸 것으로 보아 마음 먹고 반환을 추진할 모양이야.”

“잘 됐네요. 이 기회에 협상을 잘 해서 도쿄국립박물관을 싹 털어보세요.”

“미리부터 너무 흥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문 내용이 상당히 긍정적이었어. 이게 다 이 박사 덕이야. 난 지금 자네에게 뭐라고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감사라니요? 이게 다 관장님을 비롯해서 그동안 여러 시민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반환 요구를 한 덕분이지요. 아참, 저쪽에서 제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죠?”

“전혀 없던데? 이번 일에 자네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숨겨달라고 부탁했나?”

“네. 그러는 게 서로 편할 것 같아서요. 자세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오구라 컬렉션을 반환해주면 저도 일본 정부를 위해 골치 아픈 일 하나를 해결해주기로 했거든요. 대외적으로 밝히기 곤란한 일이니까 관장님도 비밀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알겠네. 그럼 나중에 진행 사항을 언론에 공표할 때에도 자네 이름은 빼야 하나?”

“그렇게 해 주시면 제가 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 내가 미안한데? 이 박사가 한 일은 훈장을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닌가?”

“전 훈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시고 반환 문제만 잘 처리해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뿌듯했다. 비록 기무라 수상을 협박하다시피 해서 얻어낸 결과이지만 그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진즉에 돌려보냈어야 할 물건이다. 그걸 지금까지 꼭 쥐고 있었던 놈들이 악질일 뿐이다.

사흘 뒤, 약속대로 도쿄 국립박물관의 야마모토 관장이 서울로 와서 민경훈 관장을 만났다. 그는 이틀에 걸쳐 민 관장과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 문제를 놓고 전체적인 틀에서 논의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거기서 도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론이 도출되었다.

야마모토 관장이 도쿄로 돌아가자마자 민경훈 관장이 곧장 서윤문화재단으로 찾아왔다. 그로부터 논의의 결론을 전해들은 도윤은 적지 않게 놀랐다.

“오구라 컬렉션을 모두 반환하겠다고 했다고요?”

“아니, 그건 아니야. 정확하게는 도쿄 국립박물관이 소장 중인 것만 전부 반환하기로 한 거니까. 하지만 그것만 해도 천 점이 넘네. 당장 그걸 어떻게 보관하고 전시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할 지경이야.”

“그건 좀 의외네요? 주요 문화재 일부만 반환받을 수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마찬가지네.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까 야마모토 관장이 처음부터 전체 반환을 염두에 두고 서울에 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그래서 나도 밀어붙였지. 하하하.”

민경훈은 기분이 좋은지 얘기를 하면서도 연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도윤 역시 의외이기는 하지만 기분이 나쁠 리 없었다. 그들이 야마모토 관장의 그토록 저자세로 나온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다.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 문제는 전적으로 기무라 수상의 지시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그가 야마모토 관장에게 지시한 내용은 간단했다. 최대한 빨리, 가능한 신속하게 반환 문제를 마무리 지으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야마모토 관장은 울분을 금치 못하면서도 어떤 문화재를 반환할지를 놓고 차분하게 협상을 진행할 수 없었다.

기무라 수상이 그런 무리한 지시를 내린 이유는 이번 일로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 문제가 단기간에 마무리 되지 않을 경우 오랫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될 우려가 컸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반환에 반대하는 여론을 야기할 것이다. 문제는 그 반대 여론의 중심이 보나마나 여당의 표밭인 보수층일 것이라는 점에 있었다.

“공식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되 언론에 알려지는 것은 최대한 억제해.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눈치를 챘을 때에는 이미 오구라 컬렉션이 모두 한국으로 넘어간 뒤여야 해. 상황이 이미 종료된 뒤에는 언론의 보도를 자제시키는 게 한결 쉬워질 거야.”

그래서 기무라는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을 되도록 빨리 진행시킬 것을 주문했고, 그 때문에 야마모토 관장은 눈물을 머금고 전체 반환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반환할 문화재 목록을 놓고 한국 측과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가는 수상이 정한 기일 내에 일을 끝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 * *

일주일 후, 민경훈이 국립박물관의 직원들을 이끌고 도쿄 국립박물관을 방문했다. 반환받기로 한 오구라 컬렉션의 문화재들을 소장 목록과 비교해서 확인하고 진위 여부를 감정하기 위해서였다. 도윤은 민경훈의 부탁을 받아 초빙 감정가의 자격으로 그 일행에 합류했다.

한국 국립박물관 소속의 감정가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보름에 걸쳐 도쿄 국립박물관의 소장 문화재들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도윤 역시 그들의 틈에 끼어 천여 점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다행히 위작은 발견되지 않았고 보관 상태 역시 훌륭했다.

‘기무라 수상이 여러모로 큰 도움을 줬군. 워낙 일을 빨리 진행시키는 바람에 도쿄 국립박물관 측도 물건을 빼돌리거나 가짜를 만들어 바꿔치기할 여유가 전혀 없었을 거야.’

진위 감정이 끝난 문화재들은 즉석에서 잘 포장되어 미술품 운송용 상자 속에 차곡차곡 들어갔다. 일본 측이 일을 서둘러 준 덕분도 있지만, 문화재를 한국으로 가져가는 일을 맡은 한국 국립박물관 역시 마음이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워낙 급하게 결정된 일이니만큼 언제 또 저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반환이 중단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윤이 정한 한 달 기한이 다 되었을 때, 마지막 문화재가 상자에 담겨 비행기에 실렸다. 일이 모두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침묵을 지킨 일본 언론과는 한국에서는 연일 난리가 났다.

오구라 컬렉션을 담은 첫 번째 상자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각종 언론마다 그 사실을 대대적인 특종으로 다루었다. 소감을 묻는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 가운데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들까지 있었다. 빼앗겼던 문화재의 반환이라는 사건은 왜곡된 과거를 수정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은 물론이고 일종의 민족적 한풀이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상자를 실은 비행기가 도쿄 인근의 나리타 공항을 떠나는 순간,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민경훈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드디어 평생의 숙원을 풀었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처음 역사를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평생 동안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살아왔네. 일본 땅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가 어디 한둘인가? 이제 겨우 그 가운데 일부를 되찾은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한 걸음을 내디딘 셈이야. 이 한 걸음이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거야.”

도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구라 목록에 적혀 있는 문화재의 수는 삼천 점이 넘는다. 이번에 도쿄 국립박물관이 내놓은 천여 점 외에도 일본 각지의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오구라의 후손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합하면 아직도 이천 점 가량의 한국 문화재들이 일본 땅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었다.

심지어 오구라 컬렉션은 일본 땅으로 반출된 전체 한국 문화재들의 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각지에는 아직도 수많은 한국 미술품들이 산재해 있었고, 현재로서는 그 소재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민경훈의 말마따나 이번 반환은 비록 크게 내딛기는 했지만 결국 한 걸음에 불과한 것이다.

오구라 컬렉션을 담은 마지막 상자가 일본을 떠난 날 저녁, 도윤은 다부세 비서의 안내를 받아 비밀리에 일본 수상 관저를 방문했다. 기무라 수상이 자기 집무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마주앉자마자 도윤은 그에게 꽤 큼직한 가방 하나를 통째로 건넸다. 가방을 열어 안에 든 서류 뭉치를 대충 확인한 기무라가 착잡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가지고 있는 자료의 전부가 맞습니까?”

“전부입니다. 프랑스에 있는 자료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도모토 유키히로 전직 서기관이 자택에 남긴 문서는 그게 다예요.”

가방을 닫아 옆자리로 치운 기무라 수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박사에게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고 싶습니다. 이 박사가 일본에 드나들수록 우리나라에는 손해만 계속 늘어나는 꼴이지 않습니까?”

웃으면서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표정에서 진심이 묻어나왔다. 도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일개 감정가에 불과합니다. 그런 제가 일본에 무슨 손해를 끼쳤다고 그러십니까?”

“무슨 손해를 끼쳤냐고 하셨소?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이 박사에 대해 알아봤소. NK 생명보험이 가지고 있던 고흐의 해바라기가 위작이라는 소문이 떠도는 바람에 경매에서 결국 유찰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그런 소문을 냈는지 알아봤더니 진원지가 이 박사더군요. 아마 그게 시작이었지요?”

NK 생명보험은 그 때문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엄청난 곤란을 겪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고베의 아오키가 가지고 있던 진품 해바라기는 도윤에 의해 미국으로 옮겨진 뒤 다른 나라의 수집가에게 팔려나갔다.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해 도쿄 국립박물롼은 소장하고 있던 오구라 컬렉션을 전량 한국에 돌려줘야 했다.

기무라 수상은 그가 일본에서 한 짓을 하나하나 거론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도윤이 결국 실소를 터트렸다.

“말씀하신 내용들 가운데 실제로 일본이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위작을 위작이라고 말한 것뿐이고 오구라 컬렉션 역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간 것에 불과합니다. 고베에 있던 해바라기 역시 오히려 저로 인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거지요. 그걸 손해라고 생각하시다니, 저로서는 뜻밖이군요.”

기무라 수상이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악수를 청했다.

“며칠 전 말레 회장과 통화를 했소. 마쓰가타 컬렉션의 반환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다부세 비서의 말에 의하면 리베라시옹의 뒤브아라는 기자도 더 이상 드골의 위조 서명 문제를 기사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소.”

도윤이 그의 손을 마주잡으며 씩 웃었다.

“저도 수상께서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일 관계가 늘 이런 식으로 풀리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해 늘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된 우방 아닙니까?”

우방은 개뿔. 자고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끼리 사이가 돈독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임진왜란 이후로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도윤의 생각이었다. 우방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제발 서로 지킬 것만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이 모두 끝난 다음날, 도윤은 민경훈 관장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치 그 시간을 맞추기라도 하듯 석훈과 조민아 역시 인천 공항에 내렸다. 어느 새 8월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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