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크리스틴은 아빠인 리히터 회장의 서재에 들어서는 순간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의 책상 위에 남의 눈에 함부로 띄어서는 안 되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달걀 하나 크기의 은제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 하나. 그리고 멋들어지게 제본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백년은 넘어 보이는 고서 한 권. 웬만해서는 금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그걸 왜 꺼내놓으셨어요? 이 박사한테 보여주기라도 하시려고요?”
그녀가 책상 앞으로 다가가며 묻자 리히터 회장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바람에 무심코 물었던 크리스틴이 오히려 깜짝 놀고 말았다.
“정말이요? 그걸 이르쿠츠크까지 가지고 가시겠다는 거예요?”
두 사람은 도윤이 칭기즈칸의 무덤으로 가기 위해 사람들을 모이게 할 출발 장소가 이르쿠츠크 일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신혼여행 중이던 그들을 납치하기 위해 리히터 회장이 특수 요원들을 그곳까지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도윤과 최서라를 뒤쫓던 특수요원들은 이르쿠츠크를 출발한다는 연락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나중에 도윤의 메일을 받고 나서 급히 조사한 결과 당시 이르쿠츠크에는 이브라힘 왕세제의 부하들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리히터 회장과 크리스틴은 양쪽 요원들 사이에 충돌이 생기는 바람에 서로 싸우다가 상잔한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민간인에 불과한 도윤과 최서라가 양쪽 합해서 열 명이 넘는 특수요원들을 모두 해치웠다는 뜻인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러시아 쪽에서 무슨 수를 쓴 게 아닌지도 조사해봤지만 현재까지는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었다.
도윤은 이르쿠츠크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았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그런 사실로 미루어볼 때 비록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지만 칭기즈칸의 무덤이 이르쿠츠크 주변의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크리스틴의 말을 들은 히리터 회장은 대답을 하는 대신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받은 능력은 어떠냐? 변화가 있니?”
“꾸준히 강해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작은 구분하기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냥 척 보는 것만으로도 뭐가 진작이고 뭐가 위작인지 뚜렷하게 구분이 되더라고요. 도자기를 만드는 솜씨 역시 계속 발전하고 있고요.”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 그대로구나.”
“네. 유물에 담긴 능력을 처음 전해 받았을 때는 그 특징만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 별로 강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죠? 그러다가 그게 몸에 익숙해지면 점점 발전할 거라고 한 말 그대로예요. 이 박사는 링커가 확실해요.”
“그거야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지. 그런데 그가 정말 나와는 손을 잡지 않겠다고 하더냐? 케퍼 자동차의 지분을 20퍼센트나 준다고 했는데도?”
크리스틴은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서울에서 도윤을 만났을 때 그녀는 은밀한 제안을 했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케퍼 자동차의 지분 20퍼센트를 줄 테니 앞으로 이십 년 동안 오직 리히터 회장만을 위해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도윤은 일언지하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들은 척도 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솔직히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 박사를 독점하려고 하실 필요 있어요? 천만 달러만 주면 유물의 능력을 전해주겠다고 했잖아요. 그게 적은 돈은 아니지만 케퍼 자동차 주식에 비하면 훨씬 싼 편 아니에요?”
리히터 회장이 피식 웃으며 크리스틴을 쳐다봤다.
“내가 무리한 제안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게 비싼 거 같아?”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니라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실제로 능력이 담긴 유물을 발견하더라도 아빠나 꼭 그 유물의 주인일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평생 노력해도 기껏해야 한 두 개 정도의 능력을 받는 게 고작일 텐데 그걸 위해서 케퍼 자동차 주식을 20 퍼센트나 준다는 건 너무 지나친 거 같아요.”
사실 그녀의 지적은 타당한 것이었다. 케퍼 자동차 주식의 20퍼센트면 현재 리히터 회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의 절반에 해당할 뿐 아니라 시세로 떠져도 십억 달러가 훨씬 넘는 엄청난 액수다. 그걸 고작 유물을 찾아서 능력을 전해주는 조건으로 주겠다고? 그녀는 말도 안 되는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히터 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목걸이와 십자가를 가리켰다.
“실종된 메시앙이 능력이 담긴 유물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아우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와 거래를 시작했다. 아낌없이 지원했지. 그때부터 최근까지 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메시앙이 찾아낸 게 고작 이 두 개야. 십 년 동안 고작 두 개란 말이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내가 이 유물들의 주인인지조차 확인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건 메시앙이 주로 프랑스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게다가 자기 일을 다 보고난 여가 시간에만 유물들을 찾아다녔고요. 만약 그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능력이 담긴 유물을 찾아다녔다면 지금쯤 이보다 훨씬 많은 유물을 모을 수 있었을 거예요.”
“내 말이 그거다. 난 메시앙에게 직업적인 감정가 일을 그만 두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일해 달라고 늘 부탁했었어. 하지만 그는 세계적인 감정가라는 자신의 명성을 포기하려 들지 않았지. 어쩌다 붉은 아우라가 내비치는 유물을 보게 되면 알려주겠다고 한 게 고작이었다. 그가 이미 목숨을 잃은 게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나는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또 다시 놓치고 싶지 않아. 난 이 박사를 시간을 몽땅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다.”
“그래서 이 박사를 오로지 아빠만을 위해서 일하는 노예로 만들겠다는 거예요?”
어렸을 때 가졌던 존경심은 이미 희미해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빠를 사랑했다. 그런데 리히터 회장은 최근 들어 자꾸만 무리한 일을 시도함으로써 그녀를 실망시켰다. 그녀는 아빠가 이 박사를 우리 안에 가두기보다는 가능하면 그와 좋은 협조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리히터 회장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 거 같으냐? 기껏해야 이십 년?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감안하면 늦어도 십 년 안에는 원하는 능력을 얻어야 해. 그러지 못할 경우 설사 뒤늦게 능력을 얻는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쓸 시간조차 없이 죽고 말 거다.”
“하지만 이 박사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많아요. 케퍼 자동차가 아무리 큰 회사라고 해도 주식 20퍼센트를 주는 것만으로 그를 완전히 고용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돈으로 안 되면 무력이라도 사용해야지.”
“무력이라고요? 그의 가족을 납치해서 협박이라도 하시려고요? 아빠 그건 이미 실패한 일이잖아요? 이르쿠츠크까지 특수 요원들을 보냈던 것만으로 그는 아빠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이번에 이 박사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걸 다행으로 생각하셔야 돼요. 그 손을 잡으세요. 안 그러면 자칫하다가 영영 원수가 될 수도 있다고요.”
“나는 그와 친구가 되려는 게 아니야. 내키든 안 내키든 나를 위해서 일을 하게 만들려는 거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잖아? 차분하게 그의 호의를 기다리면서 원하는 능력을 담은 유물이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어.”
크리스틴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녀는 어렸을 때 그토록 존경스러웠던 아빠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사업을 할 때는 한 없이 냉정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리히터 회장은 늘 일정한 선을 지켰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지면서 그 선이 무너졌다. 리히터 회장처럼 막대한 재산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징조였다.
“이 박사로부터는 연락이 왔어요? 언제쯤 칭기즈칸의 무덤을 찾으러 떠나겠대요?”
그녀는 자신의 실망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말을 돌렸다. 그러자 잠시 살벌한 표정을 지었던 리히터 회장의 얼굴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친구가 요즘 몹시 바쁜 모양이더구나. 일본의 기무라 수상이 도쿄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오구라 컬렉션을 한국에 반환하려는 모양이야. 그 일 때문에 현재는 도쿄에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그 일이 끝난 뒤에 출발할 생각인 것 같아.”
“그래도 9월에 출발한다고 했잖아요.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슬슬 연락이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생각에도 조만간 연락이 오기는 할 거 같다. 그래서 나도 이미 준비를 시작했어.”
“정말 혼자 가실 거예요? 저라도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건 곤란해. 유물의 능력을 전해 받을 사람 한 명만 오라고 했으니까 네가 간다고 하면 이 박사가 거부할 거야. 아무튼 그에게서 연락이 오면 이 물건들을 가지고 갈 생각이다.”
리히터 회장이 책상 위에 놓인 목걸이와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얘기였기 때문에 크리스틴은 화들짝 놀랐다.
“그걸 이르쿠츠크까지 가지고 가시겠다고요? 유물들을 얻은 뒤로 한 번도 아빠 서재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잖아요? 괜히 움직였다가 혹시 파손되거나 잃어버리면 어쩌시려고요?”
“그래도 가지고 가야 해. 중국의 우바오량 상무위원하고 그러기로 약속했다. 그 사람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유물들을 가지고 오기로 했어.”
“우바오량도 능력이 담긴 유물을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 나도 이번에 알았다. 저쪽에서 먼저 그렇게 제안을 해왔어. 각자 가지고 있는 유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혹시 주인이 될 수 있는 게 존재하는지 확인해보자고 하더구나. 그런 게 있으면 즉석에서 이 박사에게 능력을 전해달라고 요구할 작정이다.”
“그러다 목걸이나 책의 주인이 우바오량으로 밝혀지면 어쩌시려고요? 그거 모으느라 굉장히 많은 돈과 시간을 쓰셨잖아요?”
“아무리 귀한 보물이라고 해도 계속 품에 안고만 있으면 뭐하겠냐? 내가 그 유물의 주인이 아닐 경우 결국 오래된 골동품에 지나지 않는 것을. 각자 가지고 있는 유물의 주인이 밝혀지면 서로 유물을 교환하거나 적당한 대가를 받고 넘기기로 했다. 그 사람이나 나나 계속 미련을 떨고 있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려을 가지고 있어도 시간의 흐름만은 멈추게 할 수 없다. 크리스틴은 왠지 쓰러져가는 고목들의 마지막 발버둥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짠했다.
그녀는 새삼 이도윤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와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만약 그가 링커라는 사실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면 리히터 회장은 물론이고 우바오량 역시 선뜻 그런 결정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링커의 존재가 명확해진 이상 이제까지와는 달리 최대한 자신이 주인인 능력을 확인해서 그걸 전해 받으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현명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리히터 회장의 말마따나 천하의 보물이 금고 속에서 낡은 유물로 썪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 제발 너무 무리하거나 선을 넘지는 마세요.’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목걸이와 책을 쳐다보고 있는 리히터 회장을 보면서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 일을 앞두고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계속 떠나지를 않았다.
* * *
“누가 찾아왔다고?”
도윤은 황당해서 입을 쩍 벌렸다. 그런 그에게 석훈이 다시 한 번 똑같은 말을 했다.
“우바오량이라고요. 중국 공산당의 상무위원 말이에요. 그 사람이 지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지금 이쪽으로 곧장 오겠대요.”
“우바오량이 한국에 왔다고? 언제 연락이 왔는데?”
“한 5분 전쯤에요. 그러니까 형도 평소에 상근 비서도 두고 좀 그러라고요. 아무리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 아니라고 해도 명색이 재단 이사장이잖아요? 그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남의 눈을 생각해서라도 비서 한 명 정도는 둬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한테 비서가 무슨 필요 있어? 별로 시킬 일도 없는데.”
“시킬 일이 없기는? 이번에도 내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연락도 없이 손님을 맞을 뻔 했잖아요. 그 사람 그래도 중국에서 꽤 높은 사람 아니에요?”
“굉장히 높은 사람이지. 근데 그 양반이 왜 갑자기 한국을 찾아왔지? 날 보려는 거라면 어차피 다음 달이면 서로 만나게 될 텐데…. 무슨 일 때문인지 짐작이 안 가네?”
“그러니까 이럴 때를 대비해서라도 비서를 두라니까요? 이러다 귀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형하고 연락이 안 돼서 그냥 돌아가는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비서실에서 전화를 안 받으면 나한테 직접 연락을 하겠지. 고작 전화 하나 받게 하겠다고 월급까지 줘가면서 쓸 데 없이 인력을 낭비할 필요가 뭐 있어?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일 때문에 온다는 얘기는 없었어?”
“글쎄요? 형이 사무실에 있는지 확인하더니 그냥 오겠다고만 했는데요?”
“혼자 온대? 왕이푸 회장이나 다른 사람은 같이 안 오고?”
“그건 안 물어봤는데요? 그래도 혼자 오지는 않겠지요. 명색이 당 고위직 간부인데 설마 딸랑 가방 하나 들고 여기까지 왔겠어요?”
우바오량이 서윤문화재단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반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석훈의 말처럼 그는 혼자 오지 않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수행원이 두 명 동행했는데 모두 체구가 건장한 젊은 사람들이었다. 왕이푸 회장이나 아리스 옥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생각보다 일행이 단출한 것으로 보아 공식적인 방문은 아닌 게 분명했다.
“급하게 연락하고 찾아뵙게 돼서 미안합니다. 이 박사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할 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바쁘신데 괜히 방해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도윤의 방으로 찾아온 우바오량은 짐짓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얼떨결에 그의 손을 잡으면서도 도윤은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도대체 무슨 도깨비장난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왜 갑자기 나를 찾아왔지?
“가능하면 우리 둘만 은밀히 얘기를 나눴으면 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석훈이 존재하지도 않는 비서를 대신해서 차를 준비하자 우바오량이 그에게 슬쩍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도윤은 어쩔 수 없이 석훈을 내보내면서 부를 때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일렀다. 우바오량의 수행원들도 그의 뒤를 따라 조용히 방을 떠났다. 도윤은 애써 어색한 분위기를 참으며 우바오량에게 자리를 권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은밀한 얘기를 하자고 그러시니까 왠지 긴장이 되네요. 혹시 제가 감당할 수 없을 큰일을 부탁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도윤의 얘기에 우바오량이 껄껄대고 웃더니 가지고 온 캐리어를 열었다. 그는 안에서 옥으로 만든 나비 모양의 장신구와 낡은 만년필을 꺼냈다. 그걸 본 도윤은 단번에 그가 무슨 목적으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깨달았다. 두 물건 모두에서 환한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능력을 담은 유물들이군요. 이걸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도윤의 말에 우바오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비 모양의 장신구는 쑨원(孫文) 총통의 부인인 쑹칭링(宋慶齡) 여사가 죽을 때까지 아끼던 물건입니다. 전하는 얘기로는 본래 서태후의 애장품이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저도 확인하지 못해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만년필은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이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사용하던 것이지요.”
도윤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쑨원은 신해혁명을 이끈 지도자로 현재의 중국과 대만 양쪽에서 모두 존경을 받는 국가적 지도자다. 그의 부인인 쑹칭링 역시 ‘인민을 사랑한 여인’으로 불릴 정도로 지금까지 거의 모든 중국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여인이었다.
마오쩌뚱을 이어 중국 주석을 지낸 덩샤오핑은 젊었을 때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귀국한 뒤 마오쩌뚱을 도와 공산 혁명을 성공시킨 그는 마오쩌뚱의 뒤를 이어 2대 주석에 취임한 뒤 온화하지만 강력한 카리스마로 중국의 개혁 개방을 이끌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유물을 대한 도윤의 목소리가 저절로 잠겼다.
“그 분들이 이런 유물들을 남겼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군요. 그런데 이 것들은 왜 저에게 가져오신 겁니까? 그것도 미리 연락도 주시지 않고 불쑥.”
우바오량은 그의 말투에 약간 긴장감이 서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윤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 그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이 물건들이 저와 인연이 있는지를 확인하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이 유물들에 담긴 능력을 전해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 봐라? 도윤은 자신을 보는 우바오량의 눈 속에서 숨길 수 없는 욕심이 이글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속으로 가만히 혀를 찼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