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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62화 (262/300)

262화

“죄송하지만 이 유물들의 능력은 상무위원님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유물들에서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건 분명하지만 아쉽게도 그게 상무위원님에게는 연결되지 않는군요. 일부러 멀리서 찾아오셨는데 원하시는 답을 드리지 못해서 저도 안타깝습니다.”

도윤은 최대한 정중히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우바오량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정말 저와는 상관이 없는 물건입니까? 다시 한 번 잘 봐주십시오.”

“저기, 심정은 이해하지만 다시 한 번 본다고 한들….”

“부탁입니다. 이 박사가 바쁘다는 건 잘 알지만 나도 어렵게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한 번만 더 꼼꼼하게 확인해 주십시오.”

도윤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이 양반이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예전에 북경에서 만났던 우바오량은 늘 과묵한 카리스마를 철철 흘리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마치 불 난 집에 귀한 물건을 두고 온 것처럼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이렇게 급변할 수도 있구나. 속으로 혀를 차던 도윤의 머리 위로 문득 번쩍이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무언가를 찾는 척 하면서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은 막대기 두 개를 살며시 집어 들었다. 유물에 담긴 능력을 옮길 때 사용하는 매개체였다. 우바오량이 눈치 채지 않게 손가락 하나 정도 길이의 은 막대기들 두 개를 양복 상의의 양쪽 주머니에 넣은 그는 다른 서랍에서 커다란 확대경을 꺼내들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우바오량에게 다가가며 확대경을 슬쩍 들어올렸다.

“이건 제가 평소에 미술품을 감정할 때 쓰는 것입니다. 사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붉은 아우라가 희미하게 연결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정당한 주인은 아니지만 능력의 일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다만 그럴 때는 연결되는 빛줄기가 워낙 희미해서 이걸 써야지만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런 경우도 있습니까?”

어두웠던 우바오량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돌아왔다. 도윤은 짐짓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죠. 다만 그럴 경우 능력을 온전히 전해받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어쨌든 빛이 너무 희미하면 맨눈으로는 확인이 안 되니까 이걸 써서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유물의 주인이면 주인이고 아니면 아니지 그렇게 어설프게 빛이 연결되는 경우는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다급해진 우바오량은 그걸 따져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애초에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연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도윤은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확대경을 유물들에 들이댔다. 마치 희한 빛줄기라도 찾으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확대경을 이리저리 올길 때마다 우바오량의 시선도 확대경을 따라 움직였다. 그가 온통 확대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도윤의 다른 한 손은 양복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은 막대기를 슬며시 움켜잡았다.

“잘 보이지 않는데요. 이 물건들을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도윤이 확대경을 내려놓으면서 묻자 우바오량이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만져보십시오. 만진다고 해서 쉽게 닳아 없어질 물건들도 아니니까요.”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도윤은 애써 심각한 표정을 유지한 채 손으로 나비 모양의 장신구를 잡았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고 정신을 집중시키자 옥으로 만든 장신구에서 붉은 빛이 확 일어나더니 그의 몸을 타고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안타깝지만 역시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눈을 뜬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우바오량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윤은 손을 옮겨 덩샤오핑의 만년필을 잡았다. 이번에도 그가 정신을 집중시키자마자 만년필에서 붉은 빛이 일어나더니 주머니 속의 은막대기로 흘러들어갔다. 그 뒤에도 약간 뜸을 들이며 시간을 끌던 도윤이 결국 아쉽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역시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물건들의 주인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우바오량이 마치 자식을 잃은 부모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면서 도윤은 다시 한 번 인간이 욕심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이브라힘 왕세제와 리히터 회장은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재력과 권력을 움켜진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유물에 담긴 능력을 전해 받고자 사람을 납치하고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굳이 필요하지도 않을 수 있는 능력까지 욕심을 내다 벌어진 일들이었다.

우바오량 상무위원 역시 당 서열 5위 안에 드는 실세였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왕이푸 회장의 뒷배를 봐주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산도 엄청날 것이다. 그런 그가 혹시라도 유물의 능력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수행원 두 명만 달랑 데리고 비공식적으로 한국을 찾아왔다. 그의 신분이나 지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짓이었다.

감정을 빙자한 도둑질을 마친 도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다음 달이면 어차피 저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급하게 여기까지 찾아오셨습니까? 나중에 만났을 때 부탁하셨더라도 얼마든지 감정을 해 드렸을 텐데요. 약속하신 보수만 지급하시면 능력도 전해 받을 수 있으셨을 테고요. 물론 상무위원께서 유물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 점이 이상했다. 사실 아무리 욕심이 크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무엇이 노회한 정치인을 이토록 어린아이처럼 급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의 질문에 잠시 움찔하는 기색을 보인 우바오량이 이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 회장을 통해서 이 박사가 리히터 회장의 딸에게 능력을 전해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참을 수가 없더군요. 평생을 품고 살아온 호기심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주책없이 마음이 급해졌나 봅니다. 공연히 폐를 끼친 꼴이 되어서 민망합니다. 하하하.”

우바오량은 정말로 민망한 듯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일견 이해가 가는 말이기는 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도윤이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것을 본 우바오량이 유물들을 도로 가방 안에 집어넣고는 몸을 일으켰다.

“개인적으로 방문한 터라 저도 시간이 넉넉하지 않습니다. 공연히 이 박사를 번거롭게 했으니 더 폐를 끼치기 전에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물건을 감정해주신 수고비는 왕 회장을 통해 전달하겠습니다. 두 개를 감정하셨으니까 서윤 문화재단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이백만 달러를 보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만 해 주시면 재단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방문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그럼 저는 이만.”

자신이 유물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우바오량은 어느새 예전에 만났던 침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상무위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 뒤에 숨겨져 있던 조급한 갈망을 이미 훔쳐본 터라 도윤으로서는 오히려 쓴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우바오량이 돌아간 뒤에 도윤은 주머니에서 감춰두고 있던 은 막대기를 꺼내 금고 속에 집어넣었다. 이로써 크리스틴으로 인해 두 개로 줄었던 은 막대기의 능력이 오히려 네 개까지 늘었다. 금고를 닫은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브라힘 왕세제가 가지고 있던 유물에 담긴 능력은 이미 모두 수거한 셈이고, 혹시 모르니까 이르쿠츠크에 갈 때는 은 막대기를 조금 넉넉하게 가지고 가야겠는데?”

우바오량이 저럴 정도면 리히터 회장도 뭔가 감정을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번거로운 일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은 막대기 몇 개만 더 준비하면 되는 일이었다.

* * *

9월 초에 이르쿠츠크로 가려고 했던 도윤의 계획은 갑작스러운 일로 인해 한 주 가량 뒤로 미뤄졌다. 그동안 걸핏하면 병원을 왔다 갔다 하던 최인탁 회장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승계 문제를 모두 마무리 짓고 나서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 있는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그룹 전체가 벌컥 뒤집혔다.

도윤은 거의 일주일가량 꼬박 병원을 지키면서 기운이 회복될 때마다 최 회장에게 아낌없이 치유 능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비록 거의 대부분의 능력이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최 회장은 일주일 만에 간신히 기력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만 해. 죽을 사람이 너무 오래 세상에 남아 있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야. 앞으로는 더 이상 날 치료할 생각하지 말게. 갈 사람은 가야지. 그래야 남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해.”

일주일 만에 입을 열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최회장이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도윤의 팔을 붙잡았다. 도윤은 애써 눈물을 참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최서라는 기어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착잡한 표정을 짓는 도윤을 향해 최 회장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라를 잘 돌봐주게. 그럼 되는 거야. 저 녀석이 아이를 낳는 것까지는 보고 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아. 자네가 내 몫까지 많이 예뻐하고 사랑해주게.”

유언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도윤은 입을 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희미하게 흐뭇한 미소를 짓던 최회장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이 든 것이다. 체력이 떨어진 그는 최근 들어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이 들어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도윤이 잠든 최 회장을 뒤로 하고 병실을 나오자마자 최서라가 얼른 다가왔다.

“이르쿠츠크로 간다고 했죠? 그거 조금만 연기하면 안 돼요?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오래 못 사실 것 같아요.”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도윤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약속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막대한 힘을 가진 자들이라는 게 더 문제였다. 그것도 아무런 사전연락도 없이 불쑥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 정도로 욕심이 많은 자들. 아마 무작정 날짜를 뒤로 미루자고 하면 그들이 또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길어도 갔다 오는데 보름 이상은 걸리지 않을 거야. 내가 장담하는데 그때까지는 회장님도 돌아가시지 않을 거야. 미안하지만 이번 약속은 미룰 수가 없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도윤 씨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주 말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할아버지가 도윤 씨를 굉장히 좋아하세요.”

“나도 어르신을 좋아해. 그래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어.”

최서라가 입술을 꼭 깨물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약속하지.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가슴이 답답하기는 도윤도 마찬가지였다. 새삼 최 회장과 다른 노인들이 비교가 됐다. 한쪽은 신비한 치료 능력까지 거절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에 반해 다른 노인들은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끝까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재산과 권력이 인격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그 사람들이 적당히 선을 지켜주기만 하면 좋을 텐데. 그럼 나도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잖아.’

도윤은 이미 그들에게 공존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까지 그 문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평생의 우환거리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을 뒤통수에 둔 채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저들이 선을 넘는다면 이쪽만 선을 지키며 산다는 건 웃기는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 * *

아침마다 풀잎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백로가 며칠 전에 지나갔다. 도윤은 석훈과 함께 이틀 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이브라힘 왕세제를 비롯한 세 사람에게 이르쿠츠크의 한 호텔에서 만나자고 연락한 게 벌써 일주일 전이었다.

약속 날짜는 아직 이틀이나 남았지만 두 사람은 그 전에 미리 이르쿠츠크에 도착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예전처럼 모스크바에서 오는 컨테이너 트럭을 수령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그것 외에도 세 명의 거물을 태울 고급 승합차를 하나 더 요구했다.

“네가 그 렌터카 회사를 몽땅 태워버렸단 말이야? 정말?”

도윤은 이르쿠츠크에 도착해서야 예전에 석훈이 이곳에서 저질렀던 일을 전해 들었다.

“네. 무슨 호구도 아니고 그런 일을 당하고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사람은 다치지 않게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야, 여기서 장사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보험도 안 들었어. 주차장에 있던 차를 수십 대나 태웠으면 그 사장 쫄딱 망했겠는데?”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든 놈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놈은 알거지가 돼도 싸요. 설마 미안해하는 건 아니죠?”

도윤이 씩 웃으며 석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 하기는? 쌤통이지. 사람이 다치지 않은 건 확실하지?”

“다 확인하고 불을 질렀다니까요? 잠입, 폭파. 그거 예전에 군대 있을 때 지겹도록 훈련한 거잖아요. 실수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됐다. 남들이 들으면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할지 몰라도 도윤은 그런 문제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만약 최서라가 큰 부상이라도 당했다면 그도 대충 잊고 지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을 때리려고 하는 놈은 자기도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다.

그들이 이르쿠츠크에서 컨테이너 트럭과 승합차를 수령한 다음날, 이브라힘 왕세제와 리히터 회장, 그리고 우바오량이 각자 자신들의 전용기를 타고 도착했다. 우바오량이 탄 전용기는 사실 왕 회장의 것이었지만 그와 왕회장의 관계를 감안할 때 그냥 우바오량의 전용기라도 보아도 무방했다.

공항에서 석훈과 함께 세 사람을 마중하기 위해 나갔던 도윤은 그들이 입국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세 사람 모두 각자 십여 명에 해당하는 수행원들을 데리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가 분명히 유물의 능력을 받을 분들 한 명씩만 오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그러자 이브라힘 왕세제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이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가지 않고 이르쿠츠크에서 기다릴 테니까. 그래도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무작정 이 박사를 따라간다는 것도 너무 위험한 것 아니겠소?”

“함께 오신 분들의 면면을 보니까 위협을 느껴야 할 사람은 왕세제가 아니라 저인 것 같은데요? 우리가 칭기즈칸의 무덤에서 돌아올 때까지 저 분들이 정말 얌전히 이곳에서 기다릴 거라고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적어도 보름 동안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을 거요. 하지만 그때가 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나를 찾아 나서겠지. 보름이면 충분히 일을 끝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기야 하지요. 하지만 이러실 거면 최소한 저하고 미리 상의라도 하셨어야죠. 아무런 통보도 없이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시면 어떡합니까?”

“그 점은 미안하게 됐소. 하지만 이 박사도 워낙 연락을 촉박하게 해서 나도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부디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오.”

도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직도 네가 갑이고 나는 을인 것 같지? 그 생각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바꿔주마.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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