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가 이 박사를 찾아왔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을 떠나기 전에 우바오량은 그 점을 신신당부했었다. 혹시라도 그가 먼저 도윤을 만나 유물을 감정 받았다는 사실을 들킬 경우, 리히터 회장 역시 그를 배제한 채 자신만 따로 유물을 감정 받겠다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물의 주인은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서로 다른 유물의 주인들이 동시에 한 자리에 모이기는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도윤은 이미 이브라힘 왕세제의 저택에서 그런 경우를 목격했다. 영국의 해들리와 프랑스의 메시앙, 그리고 도윤까지 무려 세 명이나 동시에 브레토스 회고록의 주인으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드물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오랜 동안 링커에 관한 자료를 모아온 우바오량이나 리히터 회장 등도 이미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바오량은 혹시 자기 유물의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 봐 도윤을 몰래 찾아오는 무리수를 감행했다. 그 사실이 발각될 경우 리히터 회장은 자기 유물을 감정 받는 자리에서 우바오량을 배제하려 들 게 뻔했다.
“내가 서울에서 했던 당부를 명심하고 있을 거라 믿겠소.”
이르쿠츠크 공항에서 도윤을 만나자마자 우바오량은 다짜고짜 그 얘기부터 했다. 도윤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 많은 늙은이 같으니. 그래봤자 당신이 유물의 능력을 전해 받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칭기즈칸의 무덤 탐사에 나설 사람은 이브라힘 왕세제와 리히터 회장, 그리고 우바오량과 석훈, 도윤까지 모두 다섯 명이었다. 세 명의 거물들은 모두 여러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왔지만 그들은 탐사 내내 이르쿠츠크에 머물기로 약속했다. 도윤은 수행원들이 자신들의 뒤를 쫓거나 탐사에 개입하려 들 경우 그냥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공항에서 호텔로 직행한 일행들이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리히터 회장이 다가오더니 주위를 슬쩍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나한테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유물이 두 점 있습니다. 우바오량 상무위원께서도 비슷한 물건을 가지고 왔을 겁니다. 이왕 함께 모인 김에 그걸 좀 감정해주지 않겠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우리들 가운데 유물의 주인이 있을지.”
도윤은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우바오량과 이브라힘의 얼굴을 슬쩍 확인했다. 분명히 리히터 회장이 하는 말을 들었을 텐데도 그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우바오량이야 처음부터 약속한 일이었을 테니 그렇다 쳐도, 이브라힘 왕세제까지 태연하다고? 사전에 저희들끼리 얘기를 끝냈군.’
서울까지 직접 찾아와서 감정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바오량은 또 다시 이르쿠츠크까지 쑹칭링의 나비 모양 장신구와 덩샤오핑의 만년필을 가지고 왔다. 리히터 회장과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약속을 깨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리히터 회장이 가지고 온 유물을 함께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야 상관없지만 세 분이 모두 참석한 자리에서 유물을 감정합니까?”
도윤의 물음에 리히터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라힘 왕세제도 참석한다고?
우바오량의 유물에 담겨 있던 능력은 이미 빠져나갔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그걸 알지 못하니 우바오량이 감정 과정에 참가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브라힘 왕세제는 이제 능력이 담긴 유물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도 감정하는 자리에 함께 참석한다는 게 도윤으로서는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감정료는 유물의 주인들이 각자 낼 겁니다. 유물의 원래 소유자들이 자기 유물의 능력을 전해 받을 경우에도 천만 달러를 지불할 거요.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유물의 주인으로 판명될 경우, 일억 달러를 받고 해당 유물을 그 사람에게 넘기기로 했소.”
아하, 그렇게 된 거였군. 도윤은 하마터면 피식 웃을 뻔 했다. 아무리 저들이 부자라고 해도 일억 달러는 결코 가볍게 언급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신비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더구나 그것이 수명이나 권력, 재력 등과 관련된 능력이라면, 일억 달러는 차라리 푼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 식사 후 각자 유물을 가지고 제 방으로 모이십시오.”
도윤이 석훈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연 석훈이 세 명의 VIP를 확인하더니 그들을 들여보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유물을 감정하는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 사람이 거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파에 둘러앉자 리히터 회장이 들고 온 가방에서 두 개의 유물을 꺼냈다.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와 낡은 고서였다. 우바오량 역시 예의 나비 모양의 장신구와 덩샤오핑의 만년필을 그 옆에 놓았다.
“전하기로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께서 생전에 아꼈던 목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평생을 검약으로 일관하신 그 분께서 은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다녔을 리는 없을 것 같고, 솔직히 말하면 누구의 물건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아프리카의 성인으로 알려진 슈바이처 박사의 유품들 가운데서 발견된 성경이입니다.”
리히터 회장은 간단하게 자신이 내놓은 유물들의 정체를 밝혔다. 우바오량 역시 이미 도윤이 잘 알고 있는 물건의 출처에 대해 설명했다.
마음 같아서는 유물에 남아 있는 잔류 기억을 읽어서 목걸이와 성경의 진짜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아예 유물을 빌려야 하는데 눈치를 보니 그건 불가능할 게 뻔했다. 대신 이번에는 처음부터 유물들을 손으로 만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확실히 여기 있는 네 점의 유물 모두 능력을 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어디서 이런 귀한 유물들을 구하셨는지 감탄스러울 정도군요. 다만 유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손으로 직접 만져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편하게 하십시오.”
리히터 회장과 우바오량 모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가장 왼쪽에 있는 은 목걸이를 손으로 살짝 잡은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가 정신을 집중시키자 목걸이로부터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오더니 그의 몸을 거쳐 왼쪽 옆구리로 흘러들어갔다. 도윤이 미리 은 막대기를 테이프로 붙여 놓은 곳이었다.
리히터 회장이 능력이 담긴 유물 두 개를 가지고 올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윤은 그들이 방문하기 전에 미리 은 막대기 두 개를 양쪽 옆구리에 하나씩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굳이 손으로 잡지 않아도 살에 닿아만 있으면 능력을 저장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목걸이의 능력을 왼쪽 옆구리에 붙여놓은 은 막대에 흡수한 그는 이어서 성경책의 능력마저 오른쪽 옆구리의 은 막대기로 옮겼다. 그러고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이미 능력이 사라진 우바오량의 장신구와 만년필까지 일일이 손을 대고 눈을 감는 연극을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도윤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여기 있는 유물들 가운데 세 분이 주인인 물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어렵게 가지고 오셨을 텐데 아쉽게 됐군요.”
모든 감정 작업이 끝난 뒤 그가 짐짓 미안해하며 감정 결과를 말하자 세 사람이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들 눈앞의 유물들 가운데 최소한 하나 정도는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감정을 잘못했거나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우리가 유물의 주인인데도 능력을 옮겨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 하는 건 혹시 아닙니까?”
리히터 회장이 무례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말을 내뱉었다. 눈치를 보니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윤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제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뭘 위해서요? 그런다고 제가 이 유물들에 담긴 능력을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능력을 옮겨드리면 천만 달러를 얻을 수 있는데 그런 좋은 기회를 포기한다고요? 두 분과는 달리 저는 그 정도까지 부자가 아닙니다.”
사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한 짓을 하기는 했지. 도윤이 노골적으로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자 세 사람이 흠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미안합니다. 결과가 너무 실망스럽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실언을 했군요.”
리히터 회장이 즉각 사과했다. 그들은 여전히 도윤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도윤은 칭기즈칸의 무덤에 가서 거기 있는 유물을 감정한 뒤 어쩌면 그가 남긴 능력을 자신들에게 전해 줄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누그러드는 것을 확인한 도윤이 짐짓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은 끝났으니 돌아가서 쉬십시오. 내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할 겁니다.”
그들은 민망한 표정으로 유물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방을 떠나자마자 허리에 붙은 은 막대기를 떼낸 도윤은 그것을 내일 가지고 갈 배낭 깊숙이 숨겨놓았다. 이로써 능력을 담은 은 막대기가 여섯 개로 늘었다. 적어도 6년간은 능력이 담긴 유물을 찾느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 * *
다음날 아침 일찍, 도윤은 세 사람을 미리 준비한 승합차에 태웠다. 운전대는 그가 직접 잡았다. 무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그와 석훈뿐이었는데, 석훈은 컨테이너 트럭을 끌고 가야 했다. 도윤은 세 사람에게 단 하나의 배낭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텐트와 식량 등을 포함한 필요한 물품들은 모두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세 분은 갈아입을 옷을 필요해서 꼭 필요한 생활용품만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차를 출발시키기 전에 도윤과 석훈은 그들의 배낭과 소지품을 비롯해서 차량 외부를 다시 한 번 철저히 조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명도 예외 없이 짐 속에서 강력한 위치 발신기와 고성능 배터리가 나왔다. 전부 다 위성으로 직접 신호를 쏘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이 물건들은 모두 놓고 가셔야 하겠습니다. 나중에 본인들의 기억으로 무덤을 다시 찾아가는 것까지는 제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여러분의 수행원들이 몰래 저희 뒤를 쫓는 건 곤란하거든요.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짐 속에 숨겼던 전자 장비를 모두 빼내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두 대의 차는 예정 시각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출발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차를 모든 동안 계속 뒤를 살펴봤지만 미리 단단히 경고를 한 덕분인지 다행히 뒤를 쫓아오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도윤은 무려 사흘 동안 바이칼 호 남쪽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미행자가 없다는 것을 완전히 확인한 뒤에야 차를 숨겨야 하는 곳에 멈췄다. 이제부터는 바이크로 이동해야 한다.
처음 최서라와 함께 산을 넘을 때는 하루를 산속에서 야영해야 됐을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침에 출발해서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브라힘 왕세제와 리히터 회장, 그리고 우바오량은 무리 없이 바이크를 운전했다. 지난번에 석훈과 조민아가 미리 옮겨놓은 물품들이 커다란 텐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분지와 트럭 사이를 여러 번 오갈 필요도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고 쉴 겁니다. 칭기즈칸의 무덤 탐사는 내일 아침을 먹고 나서 시작할 거예요. 쉽지 않은 탐사가 될 테니 오늘밤은 푹 주무시기 바랍니다.”
도윤과 석훈은 세 사람을 위한 일인용 텐트 세 개를 쳐주었다. 비록 바이크를 능숙하게 타는 모습을 보여주어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이 든 사람들이 하루 종일 산길을 달려온 뒤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던 세 사람은 두 사람의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도윤은 모닥불을 피우고 일행을 가까이 모이게 했다.
“무덤 안은 칭기즈칸의 관이 안치된 중앙의 묘실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방들이 방사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 이 부근에 큰 지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내부가 여기저기 무너져서 묘실로 이르는 통로 하나만 간신히 뚫어놓은 상태예요. 혹시 추가 붕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안에 들어가시면 벽과 천장에 충격을 주는 일을 삼가셔야 합니다.”
이미 각자에게 무덤 내부를 찍은 영상을 이메일로 보낸 터였다. 그래도 도윤은 다시 한 번 무덤의 상태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 했다. 세 사람은 그의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윤이 무덤 내부의 산소가 모두 고갈되었다는 얘기를 했을 때는 흠칫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 안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이오?”
이브라힘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행히 내부가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던 덕분에 웅덩이의 물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말로 하면 공기가 한정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 때문에 여기 이 친구가 안에서 통로를 뚫기 위한 작업을 하는 동안 공기 중의 산소가 모두 소모되었어요. 그래서 내일 여러분은 공기통과 호흡기를 가지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리히터 회장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물웅덩이를 통해서만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으니까 잠수 장비를 착용하는 거야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문제는 무덤 안에 들어가서도 공기통을 등에 맨 채 돌아다녀야 한다는 건데, 그러면 탐사를 하기가 너무 힘들지 않겠습니까?”
“무덤 안에서까지 오리발을 신고 다니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기통과 호흡기는 착용하셔야 되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결국 숨이 가빠서 죽게 될 테니까요.”
“공기통 무게가 만만치 않을 텐데 물속도 아니고 지상에서 그걸 매고 다녀야 한다니….”
“공기통 무게를 최대한 가벼운 것으로 골랐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힘이 드시겠지만 그래도 숨을 쉬면서 탐사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우바오량 상무위원이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입에 호흡기를 물고 있으면 서로 말도 하지 못할 거 아니오?”
“말을 할 때는 호흡기를 잠깐 입에서 떼시면 되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자유로운 대화를 하기에는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은 가능할 거예요.”
도윤은 그들이 무덤 내부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함부로 지껄이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공기통과 호흡기가 반드시 필요하게 되도록 석훈을 시켜 미리 무덤 안에 남아있던 산소를 모두 소진시킨 것이다. 그 뒤로 웅덩이와 연결된 물에 녹아 있던 산소가 공기 중으로 조금 퍼져 나왔겠지만 그 정도로는 오래 숨을 쉬기에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이브라힘 왕세제는 아직 오십대였지만 다른 두 명은 이미 육십이 넘은 나이였다. 그런 이들이 등에 20Kg 가까운 무게의 공기통을 매고 돌아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체력이 쉽게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도윤은 혹시 그들이 약속과는 다른 행동을 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그런 식으로 행동의 제약을 걸어놓은 것이다.
무덤 내부에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석훈이 가져다 놓은 여분의 공기통을 비롯해서 곡괭이, 정글도, 랜턴과 여분의 배터리 같은 것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탐사 도중 무덤의 일부가 또 다시 무너져 내리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비치해 둔 것이다. 물론 그 물건들을 사용할 필요 없이 탐사가 끝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었다.
“탐사는 매일 한 시간씩 합니다. 여러분이 매고 들어갈 공기통의 용량 때문에 그 이상은 힘들거든요. 체력적으로도 더 버티기는 어려울 겁니다.”
마지막으로 도윤이 당부한 것은 능력이 담긴 유물을 제외한 다른 것에는 절대로 손대지 말라는 것이었다. 저들이 평소에 하는 짓으로 볼 때 만약 그런 제약 조건을 걸어놓지 않으면 틀림없이 무덤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 게 뻔했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말을 잘 따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형. 설마 저 사람들 무덤 안에 끌고 들어가서 다 죽일 건 아니죠?”
브리핑이 끝난 뒤 2인용 텐트 안에 함께 눕게 되자 석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살인자냐? 죽이긴 누굴 죽여?”
도윤이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석훈이 약간 안도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요. 아무리 미운 놈들이라고 해도 사람까지 죽이는 건 아니다 싶어서요. 솔직히 무덤 안에 들어가서 형이 마음만 먹으면 저 사람들 다 죽이는 건 일도 아니잖아요. 호흡기만 망가뜨려도 빠져나오기도 전에 질식해서 죽을 텐데요.”
“그런 거 아니야. 쓸 데 없는 생각하지 말고 얼른 자라.”
“네. 형도 푹 주무세요.”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도 싶었다. 저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내내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경솔한 짓이었다. 세 사람 모두 수행원을 데리고 와서 이르쿠츠크에서 대기시켰다. 만약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당장 그 수행원들이 수색에 나설 것이다.
설사 그들이 수색에 실패하더라도 도윤과 석훈에게 책임 추궁이 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각자 자기 나라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행방불명 될 경우, 도윤의 남은 인생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당하고만 살 수는 없지.”
일단 무덤 안에 들어가면 승부를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승부를 통해 최소한 주는 만큼은 얻어낼 생각이었다. 며칠 전 호텔에서 도윤은 그들에게 줄 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능력이 담긴 은 막대기를 몽땅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게 무용지물이 되었으면 작전을 바꾸었겠지만 다행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