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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64화 (264/300)

264화

결과적으로 우바오량보다는 리히터 회장의 유물 수집 능력이 더 뛰어났던 셈이다. 아니, 애초에 그가 가져온 유물을 찾아낸 사람이 바로 모리스 메시앙이었으니 결국은 메시앙의 안목이 빛을 발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도윤은 이르쿠츠크의 호텔에서 리히터 회장이 가져온 유물들을 감정할 때, 그 중 하나에서 흘러나온 아우라가 주인에게 연결되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 모두에게. 리히터 회장과 우바오량, 그리고 이브라힘 왕세제가 모두 유물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깜짝 놀란 그는 당시 그런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무진 노력을 해야 됐었다.

‘저렇게 욕심 많고 권력에 취한 자들이 주인이라고? 그렇다면 저 십자가 목걸이는 프란체스코 성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물건일 가능성이 크겠군.’

유물과 주인이 연결되는 방식에 정확히 어떤 인과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도윤도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연결이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가령 음악적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작곡가의 능력이 전해지는 경우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세 욕심꾸러기들이 십자가 목걸이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거기에 담긴 능력이 봉사나 헌신이 아니라 재화나 권력과 관계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프란체스코 성인은 평생 낡은 옷 하나 외에는 다른 물건을 소유한 적이 없이 오로지 봉사의 길을 걷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사람이 남긴 유물의 주인이 리히터 회장이나 이브라힘처럼 욕심이 하늘 끝까지 닿은 사람들을 주인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그 목걸이가 프란체스코 성인과는 거리가 먼 유물이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기대는 했지만 이건 최상의 결과야. 이럴 줄 알았으면 우바오량을 주인으로 택한 은막대기는 그냥 서울에 두고 와도 될 뻔 했네.’

십자가 목걸이에서 흘러나온 붉은 아우라가 세 사람 모두에게 연결되는 것을 처음 확인했을 때, 도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쓴웃음을 동시에 내뱉을 뻔 했다.

처음 우바오량이 서윤문화재단을 찾아왔을 때, 그가 들고 왔던 장신구와 만년필에서 흘러나온 붉은 아우라는 주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우바오량을 주인으로 택한 물건은 따로 있었다. 도윤이 이미 가지고 있던 두 개의 은 막대기 가운데 하나에서 흘러나온 붉은 아우라가 그에게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 은막대기에 담겨 있던 것은 본래 그리스의 바람 수도원의 발견한 촛대로부터 옮겨놓은 능력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도윤은 이번 일을 대비해서 세웠던 애초의 계획을 근본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원래 그는 세 사람을 칭기즈칸의 무덤 안으로 끌어들인 후 거기서 그들에게 목숨을 담보로 한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었다. 그걸 위해 일부러 무덤 속의 산소를 소진시켜 공기통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우바오량을 주인으로 택한 유물이 발견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우바오량의 말이 사실이라면 리히터 회장도 이르쿠츠크로 능력이 담긴 유물들을 가지고 올 것이다. 그는 몇 가지 경우를 상정한 후 거기에 맞는 각각의 계획을 세웠다.

최상의 경우는 세 명 모두 각각 서로 다른 유물의 주인으로 밝혀질 경우다. 반대로 이미 유물의 주인으로 확인된 우바오량 이외에는 다른 주인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최악의 경우다. 도윤은 그 모두에 대해 서로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막상 이르쿠츠크의 호텔에서 유물들을 감정한 결과 그가 기대했던 최상의 상황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브레토스의 회고록과 같은 경우가 또 생길 줄이야. 저들이 이 사실을 알면 운이 좋다고 기뻐하겠지. 미안하지만 이건 당신들에게는 최악의 경우야.’

물웅덩이 옆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날 아침, 도윤은 석훈이 준비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세 명의 VIP들을 보면서 복잡한 의미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저들은 이제 잠시 후에 자신들의 행운을 크게 기뻐하게 될 것이다. 도윤은 그들의 행운을 악운으로 바꿔놓을 생각이었다.

* * *

“이걸 꼭 입어야 하겠소? 이래 가지고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도윤은 세 VIP들에게 몸에 착 달라붙는 잠수복을 입게 했다. 그게 영 불편했는지 다들 석훈의 도움을 받아 잠수복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으면서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도윤은 그들의 불만을 무시했다.

“벌써 9월입니다. 여기서는 잘 못 느끼시겠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수온이 제법 차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무덤 속의 기온도 여기보다는 낮고요. 맨몸으로 잠깐 수영하는 거라면 몰라도 무덤 안에 들어가서 움직이다 보면 분명히 추위를 느끼게 될 겁니다. 잠수복을 입지 않으면 나중에 체온이 내려가서 쇼크를 일으킬 위험이 있어요.”

도윤이 그들에게 잠수복을 입히는 것은 실제로 체온을 보존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저들의 행동을 제약시키려는 의도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UDT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던 도윤에게도 잠수복을 입고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등에는 20Kg 가까운 공기통을 매고 입에는 호흡기까지 달고 다녀야 한다. 아마 저들은 무덤 안에서 움직이다 보면 체력이 급격하게 소진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렵게 될 거라는 점이었다.

도윤은 세 사람이 아침을 먹고 난 뒤에도 일부러 열두 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수온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저들을 고생시키자는 거지 죽이자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에 최소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도윤이 먼저 조심스럽게 웅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 세 명의 VIP들이 차례로 잠수를 시도하자 석훈이 가장 마지막으로 물속에 몸을 담갔다.

웅덩이는 꽤 깊었다. 도윤이 먼저 앞장서서 무덤과 연결되는 크랙을 향해 천천히 헤엄치자 그 뒤를 세 사람이 따랐다. 원래라면 적어도 하루 정도는 간단하게라도 잠수 훈련을 시켜야 하겠지만 도윤은 그 과정을 생략했다. 그래도 물속에서 움직여야 하는 거리가 그리 길지는 않았기 때문에 세 사람은 석훈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그의 뒤를 따를 수 있었다.

도윤은 능숙하고 부드럽게 움직인 끝에 가장 먼저 크랙을 빠져나가 무덤 가장자리의 통로에 도착했다. 그가 먼저 몸을 빼서 통로 안에 올라서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 명의 VIP 들이 차례로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모두 통로 위에 올라서는 것을 확인한 석훈이 가지고고 왔던 꾸러미를 건넸다.

“오십 분 뒤에 다시 이 자리로 오겠습니다. 공기통의 용량이 한 시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하니까 그 전까지는 다들 이 자리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의 경고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들의 체력으로 볼 때 무덤 안에서는 고작해야 삼사십 분 정도를 버티는 게 한계일 것이다.

도윤은 그들이 오리발을 벗는 걸 도운 뒤 석훈이 건넨 꾸러미에서 샌들을 꺼내 갈아 신게 했다. 오리발을 신고 움직이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는데, 그렇다고 맨발로 여기저기 무덤이 무너진 잔해가 나뒹구는 곳을 걸어 다니는 건 곤란했다. 사람들이 샌들로 갈아 신은 뒤에도 한 동안 가쁜 숨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린 뒤에야 비로소 움직일 수 있었다.

“여기서는 말을 할 때마다 호흡기를 입에서 떼야 합니다. 그러니까 길고 복잡한 말을 하기가 어려워요. 필요할 때마다 최대한 간단하게 주의 사항을 말씀드릴 테니까 큰 이견이 없는 한 되도록 제 말을 그대로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도윤이 지시를 내리자 세 사람은 차마 입에서 호흡기를 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물속을 조금 헤엄쳐 온 것만으로도 이미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들의 표정을 확인한 도윤이 씩 웃으며 몸을 돌렸다.

도윤은 가능한 천천히 움직였다. 묘실에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려는 의도였지만 그의 뒤를 따르는 세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게 고마운 일이었다.

다들 몸에 찰싹 달라붙는 잠수복을 입은 상태에서 등에는 무거운 공기통까지 매고 있던 터라 제대로 걸음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무너져 내린 흔적이 역력한 무덤의 상태가 그들을 한껏 긴장하게 만들었다.

“여기 정말 괜찮은 거요? 혹시 천장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우리 모두 꼼짝없이 이 안에 갇히는 것 아닙니까?”

한동안 도윤이 든 랜턴의 불빛에만 의지해서 어둠 속을 헤치며 걷자니 새삼 무서워진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체력이 좋은 편인 이브라힘 왕세제가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시했다. 도윤은 피식 웃으며 입에 문 호흡기를 잠시 떼었다.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지진 때문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요. 그러니까 묘실만 얼른 확인하고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애초에 세 분이 동의하셨더라면 저나 제 일행이 묘실 안에 있는 칼만 빼서 밖으로 나오면 되는 일이었어요.”

도윤의 얘기에 이브라힘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을 가장 앞장서서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당연히 동의하지 않을 줄 알면서도 도윤은 그들에게 웅덩이 밖에서 그냥 기다리기를 권했었다. 어차피 무덤 안에 있는 유물들 가운데 능력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은 낡은 칼 한 자루뿐이니 자신이나 석훈이 들어가서 그것만 빼내오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다들 그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특히 이브라힘이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다.

“다름 아닌 칭기즈칸의 관이 안치된 무덤이요. 이 박사가 확인한 것은 막힌 통로 사이로 얼핏 보인 칼 한 자루뿐이잖소? 그것 말고도 능력을 담은 유물이 더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 같이 들어가서 묘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소.”

물론 그러시겠지. 도윤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그들의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브레토스의 회고록에서 전해 받은 능력 덕분에 유물이 어디에 있는지 보지 않고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도윤이 유물을 직접 봐야지만 그 안에 능력이 담겼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 칼이라는 것도 그가 공들여 위조해서 석훈을 시켜 묘실 안에 가져다 놓게 한 물건이었다. 진짜 능력을 담은 유물이 무엇인지는 아직 도윤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지 결과적으로 이번 탐사를 통해 그가 가지고 나올 유물은 자신이 만든 가짜 칼 한 자루뿐일 것이다.

‘이번에는 능력을 담은 진짜 유물이 뭔지만 일단 확인하면 돼. 그걸 가지고 나오는 것은 나중에 석훈이를 시켜서 하면 되니까.’

석훈이 미리 묘실로 연결되는 통로를 뚫어 놓은 덕분에 일행은 십여 분이 채 걸리지 않아 중앙의 묘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나마도 이브라힘을 비롯한 세 사람이 중간에 거쳐 온 다른 방들에 놓인 부장품들을 들여다보느라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빨리 도착했을 것이다. 도윤은 진귀한 부장품들에 넋이 빠진 그들을 재촉하느라 입에서 여러 번 호흡기를 떼야 했다. 이럴 때는 한 나라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애들 같았다.

‘그나저나 능력이 담긴 유물이 뭐인지는 나도 궁금하군.’

사실 칭기즈칸의 묘실 안에 들어가는 것은 도윤으로서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묘실로 통하는 통로가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역시 자신이 만든 가짜 칼이 아니라 진짜 능력이 담긴 유물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정작 묘실에 들어선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이마를 찌푸렸다. 이건 또 뭐지?

“저게 칭기즈칸의 무덤인 모양이군. 목관일 줄 알았더니 돌로 만든 석관이었어.”

“관의 발치에 놓인 목함을 보시오. 이 박사가 보았다는 칼이 바로 저것임이 틀림없소.”

세명의 VIP은 중앙에 안치된 칭기즈칸의 관을 발견하고 단숨에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칭기즈칸의 관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전체를 돌로 마든 석관은 길이가 2.5미터, 폭과 높이가 각각 1미터 남짓에 불과했다. 아시아와 중동,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넓이의 땅을 정복했던 영웅의 관 치고는 오히려 아담해보일 정도였다.

관의 발치에는 뚜껑이 없는 길쭉한 목함이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녹이 잔뜩 슨 칼이 들어 있었다.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도윤이 석훈을 시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세 VIP들은 대뜸 그 칼에 관심을 보였지만 도윤의 이마를 찌푸리게 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왜 무덤 안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오지? 능력을 담은 유물이 관속에 넣은 부장품이라는 뜻인가? 이러면 관을 열어야 한다는 뜻인데?’

돌로 만든 석관의 몸체와 뚜껑 사이의 가느다란 틈을 통해서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사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우라가 어지간히 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덤 안의 부장품에 담긴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렇게 강한 아우라를 흘려내는 거야? 도윤은 얼핏 그 사실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여기 관 뚜껑 위에 뭔가 새겨져 있는데? 이 박사 혹시 이게 무슨 글자인지 알겠소?”

우바오량이 관 뚜껑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는 관 뚜껑에 양각으로 새겨진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몽골문자라는 건 알아보았다. 지금도 중국 곳곳의 라마 불교 사찰이나 유적지에 몽골 문자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무카가 옳았다. 내 관을 절대로 열지 마라는 뜻입니다. 칭기즈칸의 유언인가 보군요.”

도윤의 대답에 우바오량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자무카라고? 그 사람은 칭기즈칸의 적수 가운데 한 명이 아니었소? 이상한 일이군. 칭기즈칸이 직접 죽인 사람인데 왜 정작 자신의 관에 그가 옳았다는 말을 새기게 했지?”

중국 정부는 몽골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제멋대로 편입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바오량은 자무카가 누군지 금세 알아들었다.

“그거야 모르죠.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저 칼에 담긴 능력을 전해받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니까요. 설마 당장 저 관을 열자고 하시는 건 아니겠죠?”

말을 하면서도 도윤 역시 머리가 복잡했다. 이거 상황이 생각보다 난감하네….

그는 칭기즈칸의 묘실에 들어오면 다른 것보다 진짜 능력이 담긴 유물이 무엇인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그러려면 관 뚜껑을 열어야 했다. 문제는 그럴 경우 칭기즈칸의 유언을 무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평소 같으면 개의치 않고 그렇게 했겠지만 지금은 그게 조금 망설여졌다. 유물에 담긴 능력이 지나치게 강해 보였던 것이다.

도윤이 고민에 잠겨 있는데 목함 속의 칼을 쳐다보던 리히터 회장이 그에게 손짓했다.

“이 칼이 이 박사가 말한 유물이 분명한 것 같소. 한 번 확인해 보시오.”

그는 목함에 다가가 일부러 공들여 칼을 살피는 척 했다. 그런 뒤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 칼이 능력을 담고 있는 게 분명하군요.”

그러자 이브라힘 왕세제가 얼른 나서서 물었다.

“그거야 이미 처음부터 짐작하고 들어왔던 사실이고, 이 박사가 보기에 다른 물건들은 어떻소? 이 안은 물론이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방을 거쳐 오지 않았습니까? 혹시 능력이 담긴 유물이 더 있지는 않던가요?”

도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예술적이거나 역사적 가치를 따지자면 관심을 가질만한 유물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유물은 이 칼 하나뿐이군요. 그런데 조금 난감한 문제가 있습니다.”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는 도윤의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움찔했다.

“난감한 문제라니? 그게 뭡니까?”

“이 칼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가 세 분 모두에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칼이 지닌 능력을 옮겨 받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잘 된 문제가…, 끙. 그게 아니군.”

무심코 입을 열던 이브라힘 왕세제가 곧 뭐가 문제인지를 깨닫고는 도로 호흡기를 입에 물었다. 유물은 하나인데 주인은 세 명이다 그 얘기는 이 가운데 한 명이 능력을 전해 받을 경우 다른 사람들은 헛고생을 하게 되는 셈이라는 뜻이었다.

“물건은 하나인데 주인은 세 명이니 결국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능력을 전해 받을지 결정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럼 우리끼리 또 의논을 해야 하나…?”

리히터 회장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도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이 의논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느 분이 능력을 받을지 지금부터 경매에 붙이겠습니다. 가장 높은 조건을 제시한 분에게 능력을 전해드리죠.”

그의 말에 이브라힘 왕세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 박사는 이미 유물의 능력을 전해주는 조건으로 천만 달러를 받기로 하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경매를 붙여 조건을 올리겠다니? 당치도 않아요. 누가 능력을 받을지는 우리가 알아서 결정할 테니 이 박사는 가만히 계시오.”

그러자 도윤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세 사람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뭔가 착각을 하시는 것 같군요. 그거야 여러분이 직접 물건을 구해서 가져왔을 때의 조건이었죠. 하지만 여기 있는 이 칼은 여러분이 아니라 제 것입니다. 누가 이 칭기즈칸의 무덤을 발견했죠? 통로를 뚫은 건 또 누구입니까? 칼이 능력을 담고 있다는 걸 알아낸 사람은요? 제가 아니면 여러분들이 이 칼의 능력을 전해 받을 수나 있습니까?”

도윤의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그제야 그들은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이르쿠츠크의 호텔에서 유물을 감정 받을 때, 상대가 유물의 주인임이 확인될 경우 일억 달러를 받고 그것을 넘기기로 했다고 스스로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눈앞의 칼은 도대체 얼마를 줘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칭기즈칸이 남긴 유물이었다. 어쩌면 그 안에는 칭기즈칸이 천하를 정복한 원동력이 되었던 능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세 사람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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