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이 박사가 이렇게 욕심이 많을 줄은 미처 몰랐군요. 미술품을 사랑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한 순수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바오량의 말이었다. 역시 정치인다운 말장난. 도윤은 그저 피식 웃었다.
“잘 보셨네요. 저 미술품을 사랑하는 자부심 강한 전문 감정가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 자부심이 그다지 순수해 보이지는 않는구려. 눈앞에 이익이 보이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물어뜯는 하이에나 같아요.”
“여러분하고 종자가 비슷해 보인다는 말씀이시죠? 그래도 품종은 좀 다르지 않겠습니까?”
“아직 젊은 사람이 너무 돈을 밝히지 마시오. 욕심을 버리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선을 지켜야지. 방금은 선을 살짝 넘었소.”
우바오량의 말에 살기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윤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여전했다.
“저도 돈만 보고 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받을 자격이 있는 돈까지 마다하지는 않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무덤과 칼은 제가 처음 발견한 겁니다. 고대 유적의 경우 최초 발견자에게 상당히 많은 권리가 주어진다는 건 아시죠? 적어도 여러분에게 최초 발견자로서의 권리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할 만한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바오량이 뭐라고 쏘아붙이려는 순간, 그의 옆에 있던 이브라힘이 나섰다. 입을 여는 그의 눈빛이 위험스럽게 빛났다.
“받을 자격이 있는 돈이라. 감정가 생활을 한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런데 벌써부터 뭐든지 자신이 직접 가치를 정하려 들려 하는군.”
“뭐든지가 아닙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물건에 대해서는 저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는 거죠.”
“분에 넘치는 돈을 탐내다가는 나중에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어요. 그걸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명백한 협박의 뜻이 담긴 말이었다. 순간 도윤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피의 사원에서 라스푸친의 목걸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하지만 그걸 얻은 대가로 등에 총을 맞았지요. 리야드에서는 저를 초대한 분에 의해 납치되고 감금당할 위기에도 처했습니다. 측천무후의 무덤에서는 하마터면 죽을 뻔 했고 칭기즈칸의 무덤을 발견하는 과정에서는 제 뒤를 쫓은 사람들에 의해 살해당할 위험까지 무릅써야 했어요.”
그의 말에 세 사람이 모두 움찔했다.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잠시 훑어보던 도윤이 호흡기를 문 채 크게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동안 누가 저나 제 아내의 목숨을 노렸는지는 굳이 지금 따지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러분에게 복수가 아니라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이 손을 뿌리치고 싶다면 그렇게 해 보세요.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아무런 능력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명심하세요. 저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링커입니다.”
실내가 고요한 침묵에 빠졌다.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따위로 할 말을 잃은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링커. 그 한 마디가 그들로 하여금 침묵 속에서 눈을 굴리게끔 만든 것이다. 잠시 후, 목소리를 낮춘 도윤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유물의 주인이 다른 사람으로 밝혀질 경우 1억 달러를 받고 팔기로 했다고 말했죠? 그래서 저 칼에 담긴 능력을 받을 분을 정하는 경매의 시작가도 1억 달러로 정하겠습니다. 한 번 호가를 부를 때마다 천만 달러씩 올라갑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불 수단은 무조건 현금이에요.”
그러자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히터 회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설마 1억 달러나 되는 현금을 계좌에 넣어두고 다니겠소? 대부분의 재산이 주식이나 채권이고 다른 것들도 부동산과 보석, 미술품 등입니다.”
“절 너무 만만하게 보시는군요. 만약 이루쿠츠크의 호텔에서 누군가 유물의 주인으로 밝혀졌을 경우, 그 자리에서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작정이었습니까? 일단 물건을 주고 능력이 전해진 다음에 천천히 돈을 받을 생각이었다고요? 진심이세요?”
리히터 회장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민망한 표정으로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도윤이 코웃음을 치며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여러분이 갖고 계신 주식이나 채권은 온라인으로 매도가 가능할 겁니다. 그걸 팔아서 현금으로 바꾼 뒤 제가 지정하는 계좌로 이체시키면 됩니다.”
이브라힘 왕세제가 또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온라인 매도라고? 여기는 휴대폰이나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곳이오. 그걸 잊었소?”
“아,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위성 연결이 가능한 전화기와 노트북을 가지고 왔으니까요. 여러분이 평소에 사용하는 계좌와 비밀번호를 기억하고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이 거래를 완료할 수 있을 겁니다. 설마 제가 그런 준비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내 생각에는 너무 지나친 준비를 한 것 같군. 우리가 여기서 능력을 전해 받은 뒤에 밖에 나가서 입을 씻으면 어쩌려는 거요?”
“걱정 안합니다. 여기서는 경매만 진행하고, 능력 전달은 당연히 웅덩이 밖에서 이루어질 테니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능력을 전달 받은 사람은 최소 반나절, 길게는 하루 이상 정신을 잃게 됩니다. 그러니 여기서 능력을 전해드렸다가는 정신을 잃은 동안에 질식사 하겠죠. 경매를 낙찰 받은 분이 밖에 나가 대가를 지불하시면 그 다음에 능력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차라리 경매도 밖에서 하는 게 낫지 않겠소? 공기통에 든 공기의 양도….”
“경매는 무조건 여기서 합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경매 시작가는 1억 달러고 호가는 한 번에 천만 달러씩 올라갑니다. 응찰에 참여실 분은 말할 필요 없이 그냥 손을 드시면 됩니다. 그럼 누구부터 가격을 부르시겠습니까?”
그가 차가운 미소를 입에 매단 채 쳐다보자 세 사람이 저마다 다른 신음소리를 냈다. 그들은 도윤이 오늘을 위해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판을 뒤집어엎고 그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은 갑이 아니라 완벽한 을이었다. 세 사람의 숨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공기통의 공기 역시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 * *
경매의 시작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선뜻 가격을 부르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잠자코 보고 있던 도윤이 입에 물었던 호흡기를 뱉었다.
“지금 여기서 경매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십오 분 정도가 한계입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응찰하지 않으면 이번 경매는 자연히 유찰되겠지요.”
“경매가 유찰되면 이 박사도 아무것도 없는 게 없을 텐데요?”
이브라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도윤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무덤 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얻을 게 없다니요? 오시면서 온갖 진귀한 부장품들이 여기저기 있는 걸 못 보셨어요? 그리고 세상에 칭기즈칸의 능력이 담긴 유물을 원하는 사람이 여기 계신 세 분밖에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세 사람의 입이 다시 닫힌 것을 확인한 도윤이 말을 이었다.
“경매가 유찰되면 여러분은 그대로 무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 칼은 물론이고 무덤 안에 있는 어떤 물건에도 손끝 하나 대지 못한 채 말입니다. 아울러 한번 이곳을 빠져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저와 제 일행이 그렇게 만들 겁니다.”
“이 박사, 지금 우리를 협박하는 거요?”
“협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저한테 총을 쏘고 납치를 시도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려 들었던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들이었죠. 제가 아니라.”
말을 하던 도윤이 호흡기를 입에 물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잠시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힌 그가 다시 호흡기를 입에서 뗐다.
“제 뜻은 이미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니 경매에 응하든 말든 그건 여러분이 알아서 하십시오. 오 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응찰에 임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번 경매는 자동적으로 유찰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들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도윤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면서 일 분이 지나갈 때마다 시간을 고지했다. 하지만 그가 정한 오 분의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갈 때까지도 손을 들어 응찰의 의사를 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십 초 남았습니다. 생각보다 다들 칭기즈칸이 남긴 능력에 대해 큰 관심이 없으신가 보군요. 그럼 이 경매는 유찰….”
도윤이 경매가 유찰되었음을 선언하려는 찰나, 손 하나가 불쑥 위로 올라갔다. 우바오량이었다. 리히터 회장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는 사이 도윤이 물었다.
“지금 그 손은 응찰에 임하겠다는 뜻입니까?”
우바오량이 호흡기를 입에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의 입가에 의미한 미소가 맺혔다.
“좋습니다. 우바오량 상무위원께서 일억 천만 달러를 부르셨습니다. 다른 분은 없습니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오래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일억 천만 달러 한 번 갑니다. 일억 천만 달러 두 번…, 네, 좋습니다. 리히터 회장님이 일억 이천만 달러를 부르셨네요.”
우바오량이 암중으로 합의된 묵계를 깨고 응찰에 참여하자 팽팽하던 분위기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우바오량에 이어 리히터 회장까지 손을 들어 올린 것이다. 도윤은 일고의 여지도 없다는 듯이 빠르게 경매를 진행시켰다.
호흡기를 입에 물었다 뗐다 하면서도 도윤은 마치 능숙한 경매사처럼 계속해서 호가를 불러댔다. 우바오량과 리히터 회장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번갈아 손을 들어 올리는 사이에 호가는 순식간에 이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이브라힘의 얼굴이 어느 순간 와락 일그러졌다.
“말씀드렸듯이 결제는 무덤을 빠져나가는 즉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네, 드디어 이브라힘 왕세제께서도 손을 드셨네요. 이억 천만 달러 갑니다.”
상황이 이미 기울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브라힘 왕세제도 결국은 응찰에 참여했다. 일단은 이 경매에서 이기고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잠수복을 입고 공기통까지 매고 있는 상황에서 다들 차분하게 생각하고 따질 정신이 없는지 그때부터 호가는 미친 듯이 위를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호가가 삼억 달러를 넘자 도윤은 저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하고 속으로 혀를 내둘러다. 그는 호가의 액수를 바꿨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이러다가는 경매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군요. 지금부터는 한 번 손을 들어 올릴 때마다 2천만 달러씩 가격이 올라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남들이 들었다면 살이 떨릴 수밖에 없는 엄청난 액수의 경매가가 세 사람의 손짓에 따라 춤을 추며 올라갔다. 처음에는 불만과 주저가 가득 차 있던 세 사람들이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응찰을 포기하고 나가떨어진 사람은 우바오량이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실세이자 왕이푸 회장의 배후 세력으로서 막대한 비자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모를까, 기업가가 아닌 그로서는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자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호가가 십억 달러를 넘어서자 결국 그는 더 이상 손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왕이푸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주먹을 꽉 쥔 채 손을 부르르 떠는 게 보였다. 여전히 치열하게 응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리히터 회장과 이브라힘 왕세제의 쳐다보는 그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판을 만든 도윤보다 그 판에서 신나게 활개를 치고 있는 두 사람이 더 미운 모양이었다.
“십일 억 달러 한 번 갑니다. 십일 억 달러 두 번 갑니다. 십일 억 달러 세 번 갑니다. 축하합니다. 이브라힘 왕세제께서 칭기즈칸의 칼에 담긴 능력을 전해 받을 사람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까 다들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하지요.”
경매의 최종 승자는 이브라힘 왕세제였다. 리히터 회장이 눈을 꽉 감은 채 더 이상 손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도윤이 재빨리 경매의 종료를 알렸다. 그러자 이브라힘 왕세제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시했다. 잠시 후, 엄청난 액수의 돈을 지불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에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모습이었다.
‘아람코가 세계에서 주가 총액의 가장 큰 회사라더니, 정말 엄청나군.’
솔직히 도윤도 설마 이번 경매의 낙찰가가 10억 달러를 넘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하니 그 액수조차 이브라힘 왕세제에게는 재산 가운데 일부에 불과할 거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브라힘 왕세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기업인 아람코 석유 회사의 사장으로 적지 않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람코는 국영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2019년 말에 주식을 상장시켰다. 공모주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아람코는 시장에 상장되자마자 단숨에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를 뛰어넘는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되었다. 전체 지분의 1.5퍼센트만 공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로 256억 달러나 끌어 모은 것이다. 그걸 기준으로 따질 때 아람코 전체의 기업 가치는 2조 달러에 가까웠다.
경매가 끝나자 리히터 회장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먹고 덤빈 돈 싸움에서 상대에게 밀린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그가 놓친 것은 평생을 찾아 헤매며 갖고 싶어 했던 능력일 가능성이 컸다. 그걸 눈앞에서 뺏겼다는 사실이, 그것도 당장 동원 가능한 자금이 부족해서 그랬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아프게 건드렸다.
도윤이 목함 속에 놓여 있던 칼을 집어 들고는 등을 돌렸다. 경매에서 이긴 이브라힘 왕세제가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경매에서 진 우바오량과 리히터 회장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공기통의 공기가 지금도 줄어들고 있으니 이제 그만 나가야 한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선뜻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나가셔야 합니다. 자꾸 머뭇거리면 웅덩이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공기가 다 떨어질 수도 있어요.”
이미 묘실 입구까지 도달한 도윤이 두 사람을 재촉했다. 그때 우바오량이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더니 칭기즈칸의 관으로 바짝 다가갔다.
“난 이 관 속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야겠소.”
도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관 뚜껑을 열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유물, 돌로 만든 관 뚜껑을 비집고 나올 정도로 강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도 호기심을 애써 억누르고 이곳을 나가려고 하는데 저 철없는 노인네가….
“공기통에 남아 있는 공기의 양이 십오 분가량 버틸 정도밖에 안 됩니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위험해요.”
“하지만 이 안에 능력을 담은 유물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 거 아니요?”
“그래서 그런 유물이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그걸로 다시 경매라도 하자는 말입니까? 설사 그런 게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 계신 분들이 그 유물의 주인이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공연히 미련 부리지 말고 얼른 나가시죠.”
그때 도윤으로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넋을 잃은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던 리히터 회장이 느닷없이 우바오량의 말에 동의하고 나선 것이다.
“나도 우바오량 상무위원의 말에 동의합니다. 일단 여길 나가면 이 박사가 우리더러 다시는 여기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러니 나가기 전에 최소한 이 안에 뭐가 있는지는 확인해야 되겠습니다.”
“그러신다고 제가 그 안에 있는 유물을 감정해드릴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 안을 들여다보면 뭘 알 수 있는데요? 쓸 데 없는 말씀하지 마시고….”
그가 짜증 섞인 어투로 말을 하고 있는데 우바오량이 리히터 회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시에 팔을 뻗어 관 뚜껑을 잡았다.
깜짝 놀린 도윤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두 사람이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돌과 돌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관 뚜껑이 옆으로 밀려나갔다. 순간 안에서 눈부실 정도로 환한 붉은 아우라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저 미친 놈들이….’
묘실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우라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도윤뿐이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관 안을 살피는 동안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눈을 가려야 했다. 그 잠깐 사이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