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칭기즈칸이 분명히 관을 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사이 도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그는 평소에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것을 믿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관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때와는 달리 관 뚜껑에 새겨진 경고나 다름없는 유언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엄청난 밝기의 붉은 빛에 직격 당했던 터라 눈앞이 잠시 깜깜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시력이 어느 정도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자 도윤은 눈에서 손을 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으면 뭐해? 욕심에 눈이 가리면 어린애만도 못한 짓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래도 설마 관 뚜껑까지 열어젖힐 줄은 미처 몰랐군.’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 둔중한 충격이 강하게 머리를 덮쳤다. 황당한 것은 그 충격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으윽. 뭐야, 이거.”
머리가 쪼개질 듯한 아픔에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러나 간신히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던 그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저절로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무덤에서 흘러나온 붉은 아우라가 선명한 구름 모양으로 뭉쳐진 채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갈라져 나온 네 갈래의 아우라가 도윤을 비롯해서 실내에 있는 네 사람의 머리에 이어진 상태였다.
“저 구름은 뭐야? 아우라가 유형화될 수도 있는 거였어?”
조금 전에 머리를 덮쳐서 지금까지 계속 고통을 주고 있는 충격은 아무래도 저 구름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도윤은 얼빠진 사람처럼 구름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다가 문득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쳤다. 구
름의 정체, 그것을 만들고 있는 아우라에 담긴 능력의 특성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익숙한 느낌이었다. 유물이 담고 있는 능력을 전해 받았을 때 얻게 되는 지식. 능력의 성격과 특징을 깨달을 때 받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붉은 아우라가 피어오른 것으로 보아 칭기즈칸의 관 속에는 분명히 능력을 담은 유물이 놓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윤은 아직 그 능력을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그가 뭘 어쩌기도 전에 유물로부터 흘러나온 아우라가 스스로 자신을 비롯한 네 사람에게 직접 능력을 옮기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아니야. 저 자식은 지금 능력을 전해주려는 게 아니야.”
어째서 그걸 알 수 있는지는 도윤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아우라가 보통 링커가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동, 즉 능력을 전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그걸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거칠고 위험스러운 방식으로.
‘막아야 해. 이대로 두면 나도 나지만 저 사람들까지 모두 죽을지도 몰라.’
본래 아우라에 담겨 있던 능력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그 주인에게 복종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능력의 주인이 살아있고, 그가 이 능력을 쓴 것이었다면 실내의 네 사람은 상대에게 무한한 경외심을 느끼고 그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그들에게 연결된 아우라가 사람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정상적인 상태조차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빌어먹을. 관을 열지 말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그럼 칭기즈칸은 죽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는 뜻이야?’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도윤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이미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우바오량의 경우에는 입에서 거품까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십중팔구 백치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도윤은 머리가 빠개질 듯한 고통을 무릅쓰면서 억지로 몸을 움직여 관으로 다가갔다.
이 불길한 아우라를 흘려내고 있는 유물이 저 관 안에 있을 것이다. 저들을 살리고 자신도 살려면 더 이상 아우라가 흘러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차라리 유물을 파괴시켜서라도 더 이상 아우라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그러나 간신히 힘을 내서 관 안을 들여다 본 도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박에 없었다.
관 안에는 짐작대로 금과 은으로 만든 여러 가지 부장품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아우라는 그런 물건들에서 새어나오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우라의 근원지는 관 중앙에 놓인 해골, 죽은 칭기즈칸의 것이었을 게 분명한 머리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도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을 목격하고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혀를 차고 말았다. 이게 무슨 기도 안 차는 상황이란 말인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 머리뼈는 도대체 뭐지?”
붉은 아우라는 칭기즈칸의 머리 뼈 전체에서 눈부시게 밝은 빛을 내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능력을 담은 유물들을 적지 않게 보았고 거기에 담긴 능력을 주인에게 전해주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런 그로서도 사람이나 동물의 뼈에 능력이 담겨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로서는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적조차 없었다.
“이게 가능해? 설마 이 머리뼈가 돌이나 쇠로 만든 건 아니겠지?”
손으로 두드리고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지만 관속에 있는 것은 확실히 사람의 해골이 맞았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던 도윤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궁금증을 풀려고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머리를 안으로부터 짓이기는 듯한 고통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 가면 그도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게 뻔했다. 그 정도로 고통이 지독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리히터 회장을 비롯한 다른 세 사람은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일단 부수자.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야.”
도윤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높이 쳐들었다.
바닥에 쓰러진 세 사람을 속이기 위해 만든 가짜 칼.
하지만 지금은 그게 자신과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깡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칭기즈칸의 칼로 해골을 내려쳤다. 하지만 그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칼은 요란한 쇳소리만 낼 뿐 해골을 부수지 못했다. 황당했다. 아무리 사람의 두개골이 단단하다고 해도 무려 팔백 년이나 된 것이었다. 그렇게 삭은 해골이 비록 녹이 슬었다고는 하나 쇠로 만든 칼을 이렇게 간단하게 튕겨낸다고?
깡, 깡, 깡, 깡.
머리를 파고드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문 도윤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연달아 칼을 내리쳤다.
그러나 해골에는 희미한 흠집만 몇 개 날 뿐 깨지기는커녕 금조차 가지 않았다. 심지어 나중에는 거듭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한 녹슨 칼이 중간에서 뚝 부러지고 말았다.
부러진 칼을 확인한 도윤은 기가 막혀할 틈도 없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황금으로 만든 장식품들과 부서져 뒹구는 돌조각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그것을 몇 개 가져다가 다시 내리쳐봤지만 쇠도 부러뜨린 해골이 그보다 무른 황금이나 돌에 깨질 리가 없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고통은 갈수록 심해지고 마음이 급격하게 초조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있다가는 다 죽고 말 텐데…?
그때 다른 것들과는 달리 음산한 기운마저 풍기며 허공에 뭉쳐져 있는 아우라를 쳐다보던 도윤의 머리에 ‘혹시’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잠수복 허리에 매어져 있는 작은 주머니를 뒤져 그 안에 은 막대기를 하나 꺼냈다. 묘실 안의 부장품들 가운데 능력을 담고 있는 유물이 발견될 경우 그 능력을 옮겨 담기 위해 가지고 온 것이었다. 유물이 하필이면 돌관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했었는데, 문득 어쩌면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도윤은 왼 손으로 은막대기를 꽉 움켜잡은 채, 오른손을 뻗어 관속의 해골에 손바닥을 대었다. 그런 다음에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시켰다.
아무리 어려 번 해 본 일이라고 해도 머릿속이 온통 용암처럼 펄펄 끓고 있는 상태에서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뇌가 통째로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 그의 정신을 자꾸만 여러 갈래로 흩어놓았다.
도윤은 이를 악물고 정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기를 썼다. 이마에 맺혔던 굵은 땀방울들이 꽉 깨문 입술을 타고 턱 밑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잠수복 안은 이미 땀으로 흥건할 게 분명했다. 숨을 가쁘게 쉰 탓에 공기통의 공기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거의 사선을 넘나드는 듯한 심정으로 기를 쓴 끝에 간신히 정신을 한 군데로 모을 수 있었다.
그는 사력을 사해 해골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를 은 막대기로 몰아넣으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 그런 노력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는 볼 수 없었지만 허공에 뭉쳐져 있던 구름 모양의 아우라가 움찔거리더니 조금씩 은막대기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우라 구름의 부피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자신의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에게 뻗었던 촉수 모양의 아우라를 거둬들였다.
그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있던 사람들이 경련이 멈췄다.
링커로서의 자신의 능력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윤은 계속 초조했다. 사람들의 공기통에 남은 공기의 양은 많지 않았다.
시간이 늦을 경우 설사 아우라를 제압하는데 성공하더라도 자신을 비롯한 세 사람은 결국 공기 부족으로 질식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꾸만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시켰다.
아우라가 은 막대기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지 오 분가량이 지났다. 한동안 반항하듯이 요란하게 꿈틀대던 아우라 구름이 스르르 흩어지더니 기어코 모조리 은 막대기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제야 도윤은 감았던 눈을 떼며 입에서 호흡기를 뱉어냈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후우, 하마터면 칭기즈칸의 무덤이 내 무덤이 될 뻔했네.”
그의 앞에는 여전히 칭기즈칸의 해골이 놓여 있었지만 거기서는 더 이상 아무런 아우라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해골에 담겨 있던 능력이 모두 은 막대기로 옮겨졌다는 뜻이다.
“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잠시 안도하던 도윤이 다시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기통의 게이지가 이미 위험 수준 밑으로 내려가 있었던 것이다. 숨을 쉴 수 있는 여분의 공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려져 있는 세 사람의 가슴이 조금씩 오르내리는 것으로 봐서는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상태로 계속 내버려두면 저들은 결국 공기 부족으로 질식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은 막대기를 다시 허리띠에 매달린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묘실을 빠져나갔다.
석훈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묘실 주변에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는 석실의 곳곳에 여분의 공기통을 숨겨놓았다.
문제는 그게 모두 합해도 세 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도윤은 그걸 모두 끌고 와 일단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연결시켜 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은 재빨리 묘실을 빠져나가 통로로 향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그가 통로를 빠져나오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잠수복을 입은 석훈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무덤과 연결된 물웅덩이 근처에서 일행을 기다리던 그가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직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형, 어떻게 된 거예요? 왜 형 혼자 나왔어요? 다른 사람들은요?”
도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그의 입에서 다짜고짜 호흡기를 빼냈다.
아무리 숨을 쉬어도 공기통에서는 더 이상 공기가 나오지 않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가 석훈의 침이 잔뜩 묻은 호흡기를 입에 물고 숨을 헉헉 대자 녀석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모습을 쳐다봤다.
“헉헉, 사람들은 모두, 헉, 무사해. 하지만 일단 …, 헉, 여기부터 빠져나가자.”
새 공기통으로 갈아주었으니 무덤 안의 사람들은 앞으로 한 시간 가량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절한 그들을 밖으로 빼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러자면 일단 도윤부터 공기통을 새 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아직 오늘의 고난은 끝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 * *
잠수복을 입고 공기통까지 매단 사람들을 옮기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윤과 석훈은 무덤 안에 쓰러져 있던 세 사람을 웅덩이 밖으로 빼내기 위해 무진장 고생을 했다.
정신을 잃었던 세 VIP들이 모두 눈을 뜬 것은 그날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 도윤과 석훈은 멍한 눈빛으로 누워 있던 그들을 일으켜 억지로 스프를 먹게 했다.
“형. 이 사람들 상태가 아무래도 이상해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사람들에게 스프를 떠먹이던 석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다행히 그들 모두 입가로 스프를 흘릴 정도로 완전히 넋이 나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스프를 먹으면서도 동공이 풀린 채 엉뚱한 곳만 쳐다보는 그들의 상태는 마치 전원이 나간 로봇처럼 보였다.
“나중에 설명할게. 일단 식사부터 끝내자.”
도윤은 식사를 마친 그들을 각자의 텐트에 뉘었다. 그러고 나서야 석훈과 함께 커피를 끓여 마시면서 칭기즈칸의 무덤 안에서 겪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은 석훈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저 사람들은 이제 백치가 되는 거예요? 그럼 진짜 골치 아픈데….”
“글쎄다. 그래도 스프를 떠 주면 잘 받아먹는 것으로 봐서 정신이 완전히 나간 것 같지는 않아. 지금으로서는 나도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없으니까 일단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보자. 시간이 지나면 상태가 나아질지도 모르잖아.”
그날 밤, 도윤과 석훈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교대로 불침번을 서면서 세 사람이 잠든 텐트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셋 모두 날이 밝을 때까지 별다른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제일 먼저 눈을 뜬 리히터 회장이 텐트를 열고 나오면서 도윤을 불렀다.
“이 박사. 배가 좀 고픈데 혹시 먹을 게 있겠소?”
도윤과 석훈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사람을 알아보고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낄 줄 안다. 게다가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내용을 의사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는 의식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다행히 백치는 면한 것 같은데요? 어제보다는 훨씬 나아 보여요.”
도윤 역시 비슷한 생각이어다. 아예 죽일 생각이었다면 모를까, 저들을 이르쿠츠크까지 데리고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리히터 회장의 뒤를 이어 이브라힘 왕세제와 우바오량도 차례로 눈을 뜨고 텐트에서 나왔다.
개인차가 약간 있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세 사람 모두 최소한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도윤은 하루 더 웅덩이 주변에 머물면서 그들의 상태를 살피기기로 했다.
그날 하루 종일, 세 사람은 그저 자신의 텐트 안에 멍하니 앉은 채 하루를 꼬박 보냈다.
배고프다거나 대소변이 마렵다는 등의 간단한 의사 표현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다.
저러면 심심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료한 하루를 보낸 세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얼마 되지 않아 또 다시 텐트 안에 들어가 깊이 잠들었다.
도윤이 하루 종일 세 사람의 상태를 관찰하는 동안 석훈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 그곳을 정리했다.
빈 공기통을 비롯해서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 온 것이다.
도윤은 신분을 숨긴 채 이 무덤의 위치를 몽골 정부에 알릴 생각이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몽골 정부에서 탐사대를 파견할 것이고, 그러면 이미 누군가 먼저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흔적을 도윤이나 석훈과 연결지을 수만 없다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무덤은 학자들보다는 도굴꾼들의 손을 먼저 타게 마련이었다.
석훈은 무덤을 정리하면서 도윤이 지정해 준 몇 가지 유물도 가지고 나왔다. 주로 최서라가 좋아하며 연구할 만한 것들이었다. 처음부터 무덤을 싹 털 생각은 하지 않고 왔지만 그래도 완전히 빈손으로 돌아가기는 아쉬웠던 것이다.
“그 해골 말이에요, 날카로운 물건으로 살살 긁으니까 긁히던데요? 형이 했던 말과는 달리 별로 단단하지 않더라고요.”
석훈의 말을 통해 칭기즈칸의 해골에 담겨 있던 힘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도 확인됐다.
그날 밤, 도윤과 석훈은 세 VIP들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 버너 위에 은막대기를 올려놓고 가열했다. 칭기즈칸의 해골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옮겨 담은 은 막대기였다.
“여기 담겨 있는 게 다른 사람을 완전히 내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면서요? 이대로 없애기는 좀 아깝지 않아요?”
집게로 은 막대기를 잡은 채 녹이던 석훈이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도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팔백 년 동안 무덤 속에 잠들어 있으면서 능력이 폭주 상태로 변질됐어. 이런 건 아예 없애버리는 게 나아.”
은막대기가 녹아내리면서 붉은 아우라가 피어오르더니 허공에서 서서히 흩어졌다.
더 이상 아우라가 흘러나오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한 도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으로는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섣불리 건드리기보다는 역시 그냥 없애는 게 나은 물건이었다.
설사 능력의 상태가 정상이라고 할지라도 남의 마음을 함부로 유혹해서 복종시키는 능력은 선하게 쓰이기보다는 악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런 능력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