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76화 (276/300)

276화

[외전]

1. 매화의 품격

북경 중앙 미술대학 복원학과의 실습실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강의와 실습이 함께 이루어지는 그곳에는 네 개의 커다란 실습대가 놓여 있었다. 웬만한 크기의 족자를 펼쳐놓아도 공간이 넉넉할 정도로 커다란 그

실습대들 위에서 한 학기 내내 실습을 겸한 복원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중국 서화의 특성상 대부분의 복원 작업은 이젤이 아니라 평평한 실습대 위에서 진행된다. 표구를 분리하고 배접을 떼어내는 등의 작업을 하려면 바닥이 평평한 게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실습대 위에서

처리하기 곤란할 정도로 큰 대형 작품을 복원해야 될 경우에는 전체가 평평한 마룻바닥으로 이루어진 대형 실습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창문으로 비쳐 들어온 가을 햇살이 실습실 내부를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던 어느 날 오후. 스무 명의 학생들이 쳐다보고 있는 칠판 위에 네 개의 족자가 나란히 걸렸다. 각각 길이 1.5미터, 폭 1미터

가량의 비슷하게 생긴 족자 네 점이었다. 복원학과의 학과장인 장웨이닝 교수가 손으로 칠판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보다시피 네 점의 그림들은 모두 먹으로 매화를 그린 것이다. 누구의 그림인지 알겠나?”

장 교수가 엷은 웃음을 입에 매단 채 학생들을 쳐다봤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머리카락을 뒤로 잡아맨 여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화풍과 서명, 그림 위에 적힌 글귀의 내용 등으로 미루어볼 때 왕사신의 묵매도(墨梅圖)인 것 같습니다.”

“그래 맞다. 그럼 왕사신에 대해서 누가 설명을 좀 해 볼 사람?”

이번에는 머리를 짧게 깎은 남학생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왕사신은 청대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입니다. 양주 팔가, 혹은 양주 팔괴의 한 명인데 인물과 화훼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먹으로 그림 매화 그림들로 특히 유명하지요. 생전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가 사후에 비로소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남학생의 설명은 간단했지만 장 교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시 손을 들어 그림들을 가리켰다.

“상태를 봐서 알겠지만 하나같이 복원작업이 필요한 그림들이야. 그리고 이 그림들을 다시 복원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너희들이지. 조별로 맡은 그림들을 얼마나 완벽하게 복원하는지를 가지고 너희들의 이번 학기

중간고사 성적을 평가하겠다.”

장 교수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학생들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문제는 이 가운데 하나만 진작이고 다른 세 점은 모두 위작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어떤 그림이 진작일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든 학생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곳으로 쏠렸다. 이 자리에 모인 학생들 가운데 키가 제일 크지만 얼굴은 오히려 가장 앳되어 보이는 남학생 하나. 갑자기 학생들의 주목을 받게 된 그는

민망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장 교수가 예상했다는 듯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모든 학생들이 자네의 생각을 궁금해 하는 것 같군. 이도윤? 네가 보기에는 어느 작품이 왕사신의 진짜 묵매도인 것 같으냐?”

장 교수로부터 직접 지명을 받은 도윤이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작품이 왕사신의 진작입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라…. 왜 그게 진작인지 설명해 보겠나?”

“어…, 일단 먹의 농담 조절이 얼핏 보기에는 거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상당히 능숙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줄기를 완전히 생략하고 매화 가지와 거기에 달린 꽃들만을 이용해서 공간을 분할하는 방식에서도

왕사신의 화풍이 잘 드러나고 있고요. 게다가 시구를 적은 글씨체 역시 다른 사람들이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그의 독특한 필체에요.”

“화제를 적은 글씨는 확실히 왕사신의 것이지만 나머지는 필체가 다를 텐데?”

족자의 여백에는 그림의 내용을 밝히는 화제(畵題) 외에도 그림에 대한 평이나 감상을 적은 글귀가 여러 개 함께 적혀 있었다. 도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화가가 아니라 감상자가 쓴 것이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비로소 강남 최고의 꽃나무인 매화를 본다(才見江南第一枝)’라는 화제는 분명히 왕사신의 글씨입니다.”

도윤의 설명을 들은 장 교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글쎄다. 나름대로 무난한 설명이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너무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기는 어렵겠나? 왕사신의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말이야.”

“어, 그건….”

도윤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척 보면 알잖아? 저게 왕사신의 그림이라는 걸. 다른 그림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솜씨가 조잡하고 농담의 처리가 왕사신의 그것과는 명확하게 다른데 이

이상 어떻게 더 잘 설명해?

순간적으로 짜증이 울컥 치솟았다. 항상 이게 문제다. 그는 그림을 보면 늘 어떤 게 진작이고 어떤 게 위작인지 한 눈에 가려낼 수 있었다. 그건 소금과 설탕 가운데 어떤 게 짜고 어떤 게 단지를 가려내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진작에서는 언제나 환한 아우리가 흘러나오니까. 문제는 그 이유를 남에게 설명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 하얀 알갱이의 맛은 짭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먹어보면 알잖아요. 맛이 다르니까. 댁이 느끼기에는 비슷하다고요? 생각보다 혀가 무디시군요.

그런 식으로 설명했다가는 상대를 납득시키기는커녕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그림을 복원하는 방법 못지않게 이미 진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린 그림에 대해 그

이유를 남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위한 공부에 몰두해야 했다.

‘그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건 솔직히 인정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답답한 것도 사실이야. 그냥 보면 알겠는 걸 어떻게 설명하란 말이야.’

생각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장교수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을 본 도윤은 얼른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그가 입을 다문 채 속으로 불만을 삼키는 사이, 장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번 학기의 실습 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금 이도윤 학생이 얘기한 대로 왼쪽에서 두 번째 그림만 진작이고 나머지는 현대에 와서 만든 위작들이다. 위작의 가치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쓰레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걸 복원하려는 것은

너희들의 연습과 평가를 위해서야. 다들 위작이니까 실수하거나 망쳐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열심히 작업해주기 바란다.”

설명을 마친 그는 스무 명의 학생들을 다섯 명씩 묶여서 네 개의 조로 나누었다. 각 조가 그림을 하나씩 맡아 중간고사 전까지 복원작업을 수행한 뒤 그 완성도를 바탕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도윤이 속한 조는 진작으로 지목된 그림의 복원 작업을 맡게 되었다. 장 교수가 일부러 그렇게 조를 편성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윤의 조에 있던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이게 왕사신의 진작이라면 엄청나게 비싼 그림일 텐데 저희가 복원해도 됩니까?”

약간 겁을 먹은 듯한 학생의 질문을 받은 장 교수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건 안 되지. 진작의 복원 작업은 내가 직접 할 거다. 너희들은 배접을 떼어내고 풀칠을 다시 하는 등의 작업을 보조하면 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희들 실습 점수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어차피 기존의 그림에 덧칠을 해서 보완하는 건 이번 복원작업에서 중요한 평가 대상이 아니니까. 그건 중간고사 이후의 실습에서

집중적으로 연습하게 될 거야.”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네 점의 족자가 각각의 실습대 위에 올려졌다. 실습 첫 날은 앞으로 진행될 복원 작업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한 강의를 듣는 가운데 기본적인 작업 준비를 갖추는 것으로

끝났다. 학생들이 실습대 위에 천을 깔고 그림을 옮겨놓은 뒤 다시 그 위에 천을 덮자 실습 시간이 모두 끝났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친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복원작업을 진행해야 하니까 다들 필요한 사항을 미리 공부해서 오도록. 이제 4학년이잖아? 기본도 안 되어 있다는 게 발견되는 조는 크게 감점을 받을

테니까 열심히들 준비해라.”

마지막에 한 차례 엄포를 놓은 장 교수가 실습실을 나가는데 도윤이 얼른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저기, 교수님.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문을 열던 장 교수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물어볼 게 있다고? 뭔데?”

“묵매도 진작 말이에요. 저 그림의 복원을 의뢰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장 교수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의뢰자를 알고 싶다고? 자네가 그걸 왜 알고 싶은데?”

“그게….”

막상 거꾸로 질문을 받자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 * *

규모로만 따질 경우 북경에서 가장 큰 골동품 시장은 시내 한 가운데에 위치한 판자위안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급격히 발달한 판자위안과는 청나라 때부터 이미 고서적과 골동품 가게가 즐비했던 전통적인

골동품 시장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자금성 남쪽에 자리 잡은 리우리창(琉璃廠)이다.

리우리창은 천안문 광장에서 도보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북경의 인사동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은 원래 원나라 때 유리기와를 굽던 곳이었던 까닭에 ‘유리 만드는 공방’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청나라 때 사고전서의 편찬 작업이 이곳에서 이루어지면서 전국의 고서화가 집결되었고, 덕분에 서적과 서화를 거래하는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

“분명히 여기 어디라고 했는데….”

마침 실습이 있었던 다음날은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도윤은 곧바로 이곳으로 찾아왔다. 장웨이닝 교수에게 왕사신의 묵매도 복원을 부탁한 사람은 리우리창에서 작은 고서화점을 운명하고 있는 가게

주인이었다.

“차오싱이라고 원래는 화가야. 우리 중앙 미술대학에서 중국화를 전공했으니까 학과는 다르지만 자네 선배라고 할 수 있지. 그 친구 선친이 나하고 막역한 사이이기도 했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묵매도의 의뢰자를 묻는 도윤의 질문에 장 교수는 선선히 누구인지 가르쳐줬다. 원래는 화가를 꿈꿨지만 재능이 부족함을 절감하고 결국 붓을 꺾은 차오싱. 그는 현재 리우리창에서 선친이

물려주신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크흠. 안녕하세요?”

도윤이 ‘화린(畵林)’이라는 간판이 붙은 조그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방에 고서와 그림이 잔뜩 쌓여 있는 비좁은 실내에서 삼십대 초반의 남자 하나가 안경을 쓴 채 책을 읽고 있는 게 보였다.

분명히 문소리가 났을 텐데도 상대가 고개도 들지 않자 그는 짐짓 헛기침을 한 다음에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제야 남자가 흠칫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약간 피곤한 듯한 모습에 착 가라앉은 목소리. 손님을 맞는 가게 주인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먼 모습으로 용건을 묻는 남자를 보고 도윤은 속으로 고소를 삼켰다. 물건을 전시하고 파는 가게를 찾아온 사람이

무슨 일로 왔겠어? 순간적으로 어지간히 손님이 없는 가게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미술대학에서 복원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장웨이닝 교수님께 왕사신의 묵매도 복원을 의뢰하셨죠? 그 그림 때문에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제야 사내가 책을 옆에다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실례지만 대학생이시라고요?”

“네. 지금 4학년입니다. 졸업반이죠.”

“4학년이요? 신입생이 아니라?”

남자가 미심쩍어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바람에 도윤도 입맛을 다셨다.

그의 키는 190cm에 가까우니 보통 성인 남자들보다 훨씬 큰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얼굴이 너무 앳되어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그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그가 대학생이라는 애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항상 눈앞의 차오싱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꽤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할 때마다 입맛이 쓴 게 사실이었다.

“네. 제가 학교를 조금 일찍 들어가서요. 나이에 비해 학년이 조금 높습니다.”

조금 높은 정도가 아니다. 열다섯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 탓에 4학년이 된 지금도 만 나이로는 겨우 열여덟 살에 불과했으니까. 남들이라면 이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에 그는 이미 대학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

차오싱이 약간 떨떠름해 하는 목소리로 묻자 도윤은 일부러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이번에 장 교수님의 묵매도 복원 작업을 돕게 됐거든요. 다음 주부터 복원에 들어갈 텐데 그 전에 그림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글쎄요…. 그 그림에 대한 얘기라면 이미 장 교수님에게 자세히 설명을 드렸는데….”

“저도 교수님께 그림에 대한 설명은 전해 들었습니다. 다만 복원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런데…, 그 그림을 혹시 다른 사람에게서 사들이신 건가요?”

“아닙니다. 묵매도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거예요. 청나라 때 저희 집안 어르신들 가운데 한 분이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 그림의 화제 말이에요, 그게 분명히 왕사신의 글씨여야 하는데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요. 혹시 그 점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묵매도가 위작이라는 말씀입니까?”

차오싱의 표정이 굳는 것을 본 도윤이 얼른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그림은 왕사신의 진작이 틀림없어요. 다만 화제의 글씨 가운데 일부를 누군가 나중에 수정한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하시겠지만 고서화의 감정에 대해서는 저도 나름대로 보는 눈이 있어요. 화제는 분명히 왕사신의 글씨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가게를 물려주고 돌아가신

아버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너무나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을 들은 도윤은 조금 난감했다. 화제의 글씨는 그가 보기에도 전체적으로 왕사신의 친필이 맞았다. 문제는 글자 가운데 일부에 누군가 살짝 손을 대었다는 점이었다. 복원 작업을

하려면 그걸 손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의뢰인에게 그에 대해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죄송하지만 번거롭지 않다면 저희 대학에 한 번 방문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림을 직접 들고 와서 묻고 허락을 받았으며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함부로 그림을 옮기기가 어려워서요. 저희가

수정을 하기 전에 아무래도 의뢰인에게 먼저 문제되는 부분을 보여드리고 상의를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도윤의 말을 들은 차오싱이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혼자서 가게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낮에 자리를 비우기가 곤란합니다. 월요일에는 문을 닫으니까 그때 잠깐 들르는 건 가능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물론 괜찮습니다. 그럼 교수님께도 그렇게 말씀을 드려놓겠습니다.”

도윤은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글씨의 이상함을 먼저 지적하고 장 교수에게 허락을 구한 장본인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일부러 문제를 만드는 꼴이라서 내심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의뢰자가 선선히 학교로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

‘귀찮더라도 이렇게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게 맞아. 그래야 나중에라도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는 걸 피할 수 있지.’

그때만 해도 단순히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차오싱이 학교로 자신이 맡긴 그림을 보러오면서 그로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왕사신의 묵매도에서 갑자기 붉은 아우라가

피어올랐던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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