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78화 (278/300)

278화

차오싱과 함께 리우리창의 화림으로 다시 돌아온 도윤은 그곳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화림은 그다지 큰 가게가 아니었지만 규모에 비해 제법 괜찮은 고서화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차오싱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지만 그의 집안 자체가 과거 명문이었다고 했다.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뒤로 가문은 몰락했지만 물려받은 고서화가 상당히 많았다.

“어릴 때는 비좁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래된 그림과 책들이 무척 거추장스러웠지요. 하지만 아버님이 그걸 들고 북경으로 와서 가게를 여신 덕분에 지금은 이게 제 밥줄이 되었습니다. 조상의 은덕

덕분에 살고 있는 셈이지요.”

약간은 푸념이 섞인 차오싱의 말을 들으며 도윤은 가게 안에 있는 고서화들을 일일이 살펴보며 전시된 그림과 책들의 정체와 내력을 읊어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짓이었지만 차오싱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일부러 한 짓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그는 도윤의 정확한 안목에 새삼스럽게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장 교수님이 천재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인재라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선생처럼 젊은 나이에 이렇게 풍부한 식견을 지닌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정말 믿겨지지가

않는군요.”

처음에는 약간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의 설명을 듣던 차오싱은 마침내 그의 식견과 안목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도윤은 그가 자신을 전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소육봉의 ‘광동조광’을

왕사신의 묵매도와 면밀히 비교했다.

가게가 쉬는 날이라 아예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다. 두 작품을 꼼꼼히 살피던 도윤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 아무래도 이건 제가 착각을 한 것 같네요.”

차오싱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양쪽의 글씨가 똑같지 않다는 말입니까?”

“네. 얼핏 보기에는 유사한데 자세히 살펴보니까 같은 사람의 글씨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공연히 저 때문에 일을 번거롭게 만들었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도윤이 진심어린 표정으로 사과하자 차오싱 역시 허탈하게 웃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도 없는 녀석이 짧은 재주를 믿고 함부로 내뱉은 말이었다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이미

도윤의 뛰어난 안목에 진심으로 승복한 상태였다.

차오싱은 아무런 말없이 펼쳐놓았던 묵매도를 도로 말아서 가게에 있는 책상 서랍 안에 넣었다. 여기에 두면 나중에 장웨이닝 교수가 들러서 가져가겠다고 했으니 이대로 보관해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색하게

굳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도윤은 정말 미안했다. 애초에 그와 단둘이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했던 사실이 은근히 켕겼던 것이다.

차오싱이 묵매도를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던 도윤의 눈에 문득 책상 옆에 세워져 있는 접이식 야전 침대가 보였다.

“저 침대는 뭔가요? 가게에서 주무시는 때도 있는가 보네요?”

그제야 벽에 기대어져 있던 야전 침대를 흘낏 쳐다본 차오싱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던 때만 하더라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하지만 집에는 작업실로 쓸 만한 공간이 없어서 이곳에서 주로 그림을 그렸지요. 그러다가 너무 늦으면 그냥 가게에서

자기도 했거든요. 그때 쓰던 겁니다.”

“아, 그렇군요.”

아주 잘 됐네. 가게 안에 접이식 야전 침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도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그는 막 서랍 문을 닫고 돌아서던 차오싱에게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저쪽 구석에 놓인 액자들은 어떤 그림인가요? 고서화를 유리 액자에 넣은 것 같지는 않고…, 화림에서 현대화가의 작품을 팔기도 하는 모양이죠?”

접이식 침대가 기대어져 있는 벽의 맞은편에 먼지가 뿌옇게 앉은 액자들이 여러 개 쌓여 있었다. 도윤이 그것들을 가리키며 묻자 차오싱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건 제가 예전에 그렸던 그림들입니다. 집에 마땅히 둘 곳이 없어서 쌓아둔 거예요.”

“차오 선생님 작품이라고요? 그럼 죄송하지만 한 번 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중국 현대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거든요. 부탁드립니다.”

도윤이 갑자기 자신의 그림을 보여 달라고 하자 차오싱은 무척 난감해 했다. 처음에는 한사코 사양하던 그는 도윤이 자꾸 부탁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쌓여 있던 액자들 가운데 하나를 꺼냈다. 20호 정도

크기의 액자 안에는 하나하나가 달걀처럼 커다란 콩과 견과류, 그리고 곡식 낱알들이 잔뜩 그려진 그림이 들어있었다.

“굉장히 정교하게 그렸네요, 마치 전통화 기업으로 그린 극사실화 같네요?”

그림을 살펴본 도윤의 말에 차오싱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아버님 덕분에 시내 한 가운데서 가게를 열고 있지만 어렸을 때는 내내 시골에서 살았어요. 그때 계절마다 농부들이 추수를 하던 모습이 지금까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북경에서 살게 된

이후로도 늘 그때의 풍경을 그리워하고는 했지요.”

도윤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그림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약간 아쉽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화면 전체를 무수히 많은 견과류와 낱알들로 가득 채운다는 발상 자체는 신선했다. 그림을 그린 스킬 역시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화가답게 세련되고 뛰어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분명히 잘 그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의 시선을 확 끌어 잡거나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옆에서 도윤의 표정을 살피던 차오싱이 피식 웃으며 그의 손에서 액자를 뺏어들었다.

“잘 그린 그림이기는 하지만 개성이 돋보이지 않는다. 대학에 다닐 때 저를 지도하던 교수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었죠.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저도 그 분의 평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재주는

그럴 듯하지만 화가의 작품이 되기는 어려운 그림입니다.”

씁쓸하게 웃는 그를 보며 도윤은 공연히 미안해졌다. 공연히 상대의 아픈 상처를 들춘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게 여전히 조금 더 노력을 해보라고 권하던 장웨닝 교수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차오싱의 그림에서는 이제 막 개화를 앞두고 시들어가는 꽃봉오리 같은 느낌이 났던 것이다. 그냥 포기하게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그냥 먼지만 뒤집어쓰게 내버려두지 말고 벽에 걸어두지 그러셨어요? 가게에 오는 손님들 가운데 관심을 보일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자 차오싱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화림은 고서화점입니다. 오래된 그림이나 책을 파는 곳이에요. 반면에 제 그림은 현대화지요. 이 가게에 걸어놓기에는 적절치 않은 그림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아는 화랑에라도 부탁을 좀 해보시면….”

“대학을 졸업한 뒤에 전시회를 열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는 선배에게 부탁해서 그 양반이 운영하는 화랑에 그림을 걸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한 점도 팔리지 않았어요. 물론

손님 가운데 몇 분이 관심을 보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림 값을 너무 싸게 부르더군요. 제 그림을 작품이 아니라 단순한 장식물로 생각한 거죠.”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밥을 굶어야 하는 처지도 아니다보니 그런 식으로까지 자존심을 굽혀가면서 그림을 팔고 싶지는 않았다는 얘기였다. 도윤은 이십대의 차오싱이 느꼈을 고민과 갈등이 손에 잡힐 듯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림에서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화가의 사고에 개성이 부족하다는 뜻인데….”

“뭐라고 말씀하셨죠?”

도윤이 무심을 가장해서 중얼거린 말에 차오싱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도윤은 의도적으로 내뱉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반응에 짐짓 흠칫 놀란 듯한 표정을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사실은 저희 집도 서울에서 화랑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여러 화가들의 전시회를 구경하며 자랐습니다.”

“집에서 화랑을 한다고요?”

“네. 저희 할아버지가 세운 화랑이에요. 그걸 아버지께서 물려받았고, 저도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면 그 화랑 일을 돕게 될 겁니다. 지금은 그때를 위해 공부하는 중이에요.”

“부모님께서는 좋겠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

“에이, 뛰어나긴요. 장 교수님이 괜히 과찬하신 거예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절대 과찬이 아니에요. 그 분이 그렇게 학생을 쉽게 칭찬하는 분이 아니라는 건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때 몇몇 화가들에 대해 부모님이 하시던 말씀이 문득 기억납니다. 세상에는 재주를 가지고 태어났고 노력도 열심히 하는데도 이상하게 껍질을 쉽게 깨지 못하는 화가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방법만

제대로 알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틀을 깰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그 마지막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는 바람에….”

도윤이 짐짓 말끝을 흐리자 차오싱이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다가왔다.

“그림을 대하는 저의 사고방식 자체에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학교에 다닐 때도 자주 들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방법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더구나 그냥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이라서….”

차오싱은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당연히 벽을 만난 화가들이 그걸 깨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역시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직접 실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도윤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신기하고 새로운 방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 학생의 말에는 마음이 쏠린단 말이야….’

그는 벽에 걸린 시계를 흘낏 보더니 도윤에게 조심스럽게 권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괜찮으시다면 함께 저녁 식사나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거야 말로 도윤이 원하던 일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근의 식당으로 차오싱을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신인 화가들이 자신의 틀을 깨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도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짐작했던 대로 차오싱 역시 대부분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얘기를 들을수록 상대의 말이 지루하기보다는 오히려 새롭게 느껴졌다.

“이 선생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옛 추억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분입니다. 누군가와 이런 얘기를 나누었던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눈앞의 어린 학생은 생각보다 대화를 재미있게 끌고나가는 재주가 있었다. 차오싱은 한동안 다른 미술 관계자들과 교류를 하지 않고 집과 가게에서만 웅크리고 지내왔다. 그는 상대의 얘기에 유난히 마음이 끌리는

게 아마 그 때문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아직 그림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나보구나.“

그는 도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내심 고소를 금치 못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식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고, 차오싱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술을 주문했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술을 많이 마시기는 어렵습니다.”

도윤이 슬쩍 발을 빼자 차오싱이 피식 웃었다. 다른 많은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법적으로는 열여덟 살 이상이 되어야 술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런 제한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다가

도윤은 이미 만으로 열여덟 살이 넘은 상태였다.

“이 선생과 얘기를 하다 보니 오랜만에 속이 시원합니다. 취해서 쓰러지면 제가 책임질 테니 오늘 만큼은 사양하지 마십시오.”

차오싱은 계속해서 상대의 잔에 술을 따랐고, 도윤 역시 그가 잔에서 입을 뗄 때마다 새롭게 술을 채웠다.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열 시가 훌쩍 지났다. 도윤이 쓰러지면

책임지겠다던 차오싱은 결국 자신이 먼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식탁 위에 늘어졌다.

“이 양반, 큰 소리 친 거에 비해서는 술이 약하네.”

사실은 도윤이 엄청 술이 센 거였다. 식탁 위에는 두 사람이 마신 술병이 무려 열 개나 나뒹굴고 있었다. 하나같이 도수가 엄청 센 독주들이었다.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차오싱은 지갑을 꺼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도윤은 자신이 계산을 한 뒤 차오싱의 주머니에서 가게 열쇠를 꺼냈다. 그런 다음 완전히 나가떨어진 그를 등에 들쳐 업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화림으로 돌아왔다. 가게 안에 있던 야전 침대를 펼친 뒤 그 위에 차오싱을 뉘인 도윤은 그제야 가쁜 숨을 골랐다.

“덕분에 핑계 거리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능력을 전해줄 때마다 매번 이러는 것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네.”

그가 이곳으로 온 것은 처음부터 왕사신의 묵매도에 담겨 있는 능력을 차오싱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건 차오싱을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유물의 주인에게 능력을 전해준 지 어느덧 열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자칫 끔찍한 두통에 시달릴 위험이 컸다.

도윤은 가게 안의 책상 서랍에서 차오싱이 넣어두었던 묵매도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거기서 흘러나온 붉은 아우라가 차오싱의 몸으로 연결되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혹시 모르잖아요? 이 능력을 받게 되면 당신이 벽을 깨게 될지도.”

아까는 부모님이 말씀하신 방법을 운운했지만, 사실은 그게 도윤이 생각하고 있던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이었다. 물론 그림에 담긴 능력이 화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그게 차오싱에게

도움이 되면 되지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도윤은 차오싱이 누운 침대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은 뒤 무릎 위에 묵매도 족자를 올려놓았다. 한쪽 손을 족자에 대고 다른 손으로 차오싱의 머리를 짚은 그가 정신을 집중시키자 묵매도에 서려 있던 붉은

아우라가 그의 몸으로 빨려들었다. 잠시 후, 붉은 아우라가 그의 몸을 거쳐 차오싱의 몸으로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후우~. 갈수록 능력을 전해주는데 걸리는 시간이 빨라지는구나.”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아 능력을 전해주는 작업을 끝낸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묵매도를 도로 책상 서랍 안에 넣었다. 혹시나 싶어서 차오싱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맥박이 정상적으로 뛰고 호흡 역시 안정적이었다. 별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은 엿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정신을 잃고 널브러진 차오싱을 잠시 지켜보다가 가게 열쇠를 그의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화림을 빠져나왔다. 아마 늦어도 내일 저녁쯤에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겠지. 차오싱이 어떤

능력을 받았을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건 며칠 지나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 나오자 리우리창의 가게들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도윤은 택시를 잡아 타고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며칠 뒤, 장 교수의 지도 아래 복원학과 4학년들이 중심이 된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거의 두 달이 다 지나도록 차오싱으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도윤은 그가 어떤 능력을 갖게 되었을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일도 없는데 불쑥 그의 가게를 찾아가기도 애매해서 차분히 기다렸다.

‘설마 무슨 부작용이 생긴 건 아니겠지?’

억지로라도 핑계를 만들어서 그의 가게를 찾아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 차오싱이 먼저 학교로 찾아왔다. 복원이 끝난

왕사신의 묵매도를 돌려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장교수의 방을 찾아온 그의 손에는 제법 커다란 액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