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81화 (281/300)

281화

“르노와르의 그림하고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가짜입니다. 이걸 판 가게 주인의 말에 의하면 캔버스하고 액자는 오래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원성훈의 대답에 젊은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는 표정이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잠깐 그림을 볼 수 있을까요? 아참, 저는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어요.”

“아, 그러시군요. 저는 원성훈입니다. 요리사예요.”

상대가 먼저 이름을 밝혔기에 그도 어쩔 수 없이 일단 통성명을 했다. 하지만 원성훈은 상대에게 선뜻 그림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상대는 타지에서 처음 보는 낯선

젊은이였다. 그런 사람이 대뜸 그림을 보여 달라고 하자 아무리 가짜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하셨는데, 실례지만 어떤 대학을 다니시는지….”

“하버드입니다.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후기 인상파가 전공이에요.”

원성훈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박사 과정이라고? 아무리 많이 잡아줘도 이십대 중반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상대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졌다.

“동안이신가 보군요. 외모만 봐서는 이십대 초반인 줄 알았습니다.”

“아, 이십대 초반 맞습니다. 올해 스물 둘이거든요. 제가 검정고시를 보고서 대학에 조금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남들보다 나이가 좀 어려요.”

아무리 학교를 일찍 들어갔어도 그렇지 스물 둘에 벌써 박사과정이라고? 그것도 하버드인데? 그럼 천재라는 얘기잖아? 멀쩡하게 생긴 친구가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이도윤이라는 친구에 대한 신뢰가 더욱 더 떨어졌다. 그가 어떻게 하면 상대의 요구를 거절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웨이터가 주문한 음식을 들고 다가왔다. 웨이터가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자 이도윤도 잘

됐다는 듯이 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아 적고 돌아가자 그가 겸연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요리사가 주문한 음식이니까 저도 같은 것으로 하는 게 현명할 것 같아서요. 그런데 옆에 세워놓은 저 그림말이에요.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봐도 될까요?”

원성훈이 주문한 생선 요리를 잘라 막 입에 넣으려는데 이도윤이 다시 또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옆자리에 있던 액자를 넘겨주었다. 어차피 이백 유로를 주고 산

가짜 그림이었다. 망가져도 크게 아까울 정도는 아니니 공연히 퉁명스럽게 굴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가 식사를 하는 동안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겨낸 이도윤이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르노와르의 진작이 맞네요. 저도 처음 보는 것인데다가 보관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약간 복원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도 진품이라는 건 확실합니다. 이거 죄송하지만 이렇게 함부로 들고 다니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원성훈은 하마터면 입안에 넣었던 생선살을 도로 뱉어낼 뻔 했다. 놀라서가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그게 르노와르의 진작이라고?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사기를…. 그는 냅킨으로

입가를 대충 닦아낸 뒤 허탈하게 웃었다.

“그게 정말 르노와르의 진품이라면 굉장히 비싸겠군요. 그럼 제가 횡재를 한 셈인가요? 불과 한 시간 전에 이백 유로를 주고 산 것이거든요.”

일부러 비아냥대듯이 물었다. 그러나 이도윤은 정말로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진짜요? 우와 그럼 정말 횡재를 한 게 맞아요. 르노와르의 ‘물랑 드 갈레트의 무도회’ 같은 경우에는 1억 3천만 달러에 팔렸거든요. 이건 그렇게까지 유명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십만 달러는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가끔 이런 식으로 횡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저도 직접 보기는 처음이네요.”

원성훈이 노골적으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도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때부터 소위 말하는 횡재의 사례들을 줄줄이 읊어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버지니아에 사는 여자 하나가 벼룩시장에서 7달러를 주고 산 그림이 나중에 10만 달러를 호가하는 르노와르의 진품으로 밝혀졌다. 인디애나 주의 작은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서는 50년 동안 창고에서

잠자던 그림 한 점이 피카소의 진품으로 확인되어 난리가 났었다. 작년에 런던 벼룩시장에서 있었던 일을 아느냐 등등.

하버드에 다닌다는 건 지극히 의심스러웠지만 적어도 말 하나는 그럴 듯하게 잘 하는 친구였다. 원성훈은 상대가 사기꾼일 확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잠시 식사를 멈추고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내뱉었다.

“새로 내는 식당에 걸어두려고 산 건데 도윤 학생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그림을 걸어놓을 뻔 했군요. 그럼 이제 어떡하죠? 이만한 그림을 들고 비행기를 타려면 세관 신고액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농담 삼아 한 얘기였다. 하지만 이도윤은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어떤 식당을 내실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비싼 호텔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이런 그림을 걸어놓는 건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 잘못하면 국물 같은 게 틜지도 모르잖아요. 그러지 말고 이건 차라리 여기서

파시는 게 어때요?”

“그림을 판다고요? 화랑 같은데 말입니까?”

“화랑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이 정도 그림이라면 차라리 경매에 올리는 게 나을 거예요. 마침 여기 소더비 경매장에 제가 잘 아는 감정가가 한 분 계세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 분께 연락해서 감정을

부탁해 볼까요?”

소더비라고? 게다가 거기에 잘 아는 감정가까지? 얘기가 점입가경이다. 원성훈은 결국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말았다.

“정말 그 그림이 르노와르의 진작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네. 백퍼센트로요. 특별히 일정이 바쁘지 않으시면 한 번 속는 셈치고 같이 가보시는 게 어때요? 제가 파리 소더비 위치를 잘 알거든요.”

이쯤 되면 더 이상 단순한 농담이거나 사기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게 됐다. 설마 소개비나 감정비라며 몇 천 유로를 부를 생각은 아니겠지? 설사 그렇더라도 눈앞의 젊은이가 다른 곳도 아니고 소더비 감정가와

입을 맞춰 자신을 속일 정도로 대단한 인물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일정 또한 전혀 바쁘지 않았다. 그가 이번에 파리에 온 것은 말 그대로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푹 쉬려는 목적이었으니까. 어쩌다 보니까 제레미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게 됐지만 그 역시 절반가량은

스스로 의도한 결과였다. 본래는 오랫동안 근무하던 직장을 때려 치고 새 가게를 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음껏 여유를 즐기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가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하는 동안 도윤이 시킨 음식이 나왔다. 그는 눈앞의 젊은이가 열심히 식사를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툭 하고 말을 내던졌다.

“그럽시다. 댁의 말대로 어쩌면 내가 횡재를 한 것일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을 내뱉으면서도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마음이 느긋해지니까 별 일을 다 하는구나. 어차피 이곳에서 공부할 때는 물론이고 파리를 여러 차례 드나들면서도 소더비 경매장에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경매장 구경이나 하자는 심정이었다.

* * *

도윤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약속이 되었음을 알린 그가 우버 택시를 불렀고, 원성훈은 얼떨결에 파리 소더비로 향하게 됐다. 생전 처음으로 경매회사에 들른 원성훈이

약간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것과는 달리, 이도윤은 망설임 없이 담당 직원을 찾아 용건을 밝혔다.

“하버드에서 미술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제이유 르블랑 박사님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거든요.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그림을 감정하는 곳은 도난이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직원은 도윤의 말에 따라 전화기를 들면서 다시 한 번 구체적인 방문 이유를 물었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르블랑 박사님을 찾아오신 건지 여쭤 봐도 될까요?”

“아, 제 일행이 여행을 왔다가 이곳에서 우연히 르노와르의 진작으로 생각되는 그림을 한 점 구입했어요. 그래서 박사님께 감정을 부탁드리려고요.”

직원의 눈 위로 떨떠름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눈치를 보니 어디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그럴 듯한 그림을 한 점 구입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런 그림들은 본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십중팔구 가짜였다.

직원이 전화를 통해 손님이 방문했음을 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건물 안쪽에서 안경을 쓴 반백의 남자 하나가 허둥지둥 걸어 나왔다. 그는 도윤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대뜸 포옹부터 했다.

“이 박사, 반갑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르블랑 박사라는 사람은 진심으로 도윤을 반가워했다. 도윤은 자신을 껴안은 그의 팔을 슬쩍 풀어내며 실소를 터트렸다.

“저 아직 박사 아니에요. 학위를 받으려면 몇 년 더 있어야 합니다.”

“그 까짓 형식적인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어? 자네 실력이면 이미 박사나 마찬가지야. 그나저나 파리에는 어쩐 일이야? 방학을 이용해서 여행을 온 건가?”

“원래는 그랬는데 오늘 우연히 한국 분을 만나면서 박사님께 부탁드릴 일이 생겼어요. 아참 인사하세요. 여기는 한국에서 온 요리사 원성훈 씨에요.”

그제야 도윤의 뒤에 서 있던 원성훈이 앞으로 나서며 악수를 청했다.

“원성훈입니다. 소개받은 대로 요리사입니다.”

“제이유 르블랑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요리사시라면 한국 요리가 전문이신가요?”

“아닙니다. 오래 전에 이곳에서 꼬르동 블루를 졸업했어요. 프랑스 요리를 배웠습니다.”

그 말에 도윤도 깜짝 놀랐다. 원성훈이 요리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가 설마 꼬르동 블루를 졸업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곳은 세계 3대 요리학교 가운데 하나였다. 얘기를 들은

르블랑 박사 역시 적지 않게 놀란 표정이었다.

“오우. 꼬르동 블루라고요? 그럼 저보다 프랑스 요리를 훨씬 잘 아시겠네요. 그곳은 세계 제일의 프랑스 요리학교니까요. 생각지도 않게 뛰어난 요리사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르블랑은 명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상대로 한동안 선 채로 수다를 떨더니 도윤이 기침을 하면서 포장된 액자를 가리키자 비로소 두 사람을 건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가 두 사람을 데리고 간 곳은

작은 실험실처럼 생긴 방이었다. 도윤은 르블랑의 지시에 따라 그림의 포장을 벗기고 한쪽 옆에 세워져 있던 이젤에 올려놓았다.

그림을 감정하기 시작하자 유쾌하기만 하던 르블랑의 얼굴 표정이 신중하게 변했다. 한참 동안 확대경까지 들고 그림을 구석구석 살펴보던 그가 마침내 흐음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도윤을 손짓해서 불렀다.

“자네가 설마 이 그림을 감정하지 못해서 나한테 가져온 건 아닐 테고…. 이 박사 생각은 어때? 내가 보기에는 르노와르의 진작이 맞는 것 같은데.”

그의 말에 도윤이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르노와르의 진작이 틀림없어요. 그림 내용으로 볼 때 ‘강변에서의 점심식사’ 정도로 제목을 붙이면 적당할 것 같아요.”

“강변에서의 점심식사라…. 무난한 제목이야. 그런데 이거 경매에 붙일 생각인가?”

“원 셰프님께서 이 그림을 한국으로 가져가기는 좀 까다로운 상황이어서요. 여기서 그냥 파는 게 더 낫기는 한데, 소더비에서 경매에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출처만 확실하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경매에 올리기 전에 몇 군데 복원작업을 거쳐야 하겠지만 이 정도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면 100만 유로부터 시작해도 될 거야.”

약간 물러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원성훈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100만 유로부터 시작한다고? 그럼 원화로는 무려 13억 원이 넘는 돈이다. 더구나 그게 시작가라고 했으니 실제 낙찰가는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도윤이라는 저 친구는 도대체 정체가 뭐지? 이젠 하버드 박사 과정이라는 얘기를 의심할 수도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저 르블랑 박사라는 사람의 태도는 여전히 이상해. 마치 자신이 감정한 결과를 저 젊은

친구에게 승인받으려는 듯한 모습이잖아?’

원성훈이 속으로 기가 막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윤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봤다. 그는 르블랑 박사도 들으라는 듯 일부러 프랑스어로 말했다.

“셰프 아저씨. 조금 더 철저한 감정 과정을 거쳐야 최종 결론이 나오겠지만 아무래도 아저씨가 사신 그림은 르노와르의 진작이 맞는 것 같아요. 이 그림 진짜로 소더비 경매에 올리고 싶으신 게 맞죠?”

“어…, 나야 그래주면 좋지요. 갑자기 너무 엄청난 액수를 듣고 나니까 살이 떨려서라도 그걸 들고 비행기를 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자 도윤이 씩 웃더니 다시 르블랑 박사를 보며 말했다.

“들으셨죠? 그럼 그림은 여기에 맡기고 갈 테니까 최종 감정 결과가 나오면 최대한 빨리 경매에 올려주세요. 언제쯤이면 경매에 올릴 수 있을까요?”

“한 달 뒤에 정기 경매가 있으니까 그때 올리면 될 거야. 르노와르의 작품이라면 큰 인기를 얻을 게 분명해.”

“한 달이면 너무 늦네요. 그림 주인이 그때까지 이곳에 머무르기는 곤란할 거예요.”

“그럼 계좌만 적어주고 가도 돼. 그럼 낙찰된 돈을 이체시켜줄 테니까.”

도윤이 허락을 구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원성훈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 주인이 그렇게 해도 괜찮대요. 그럼 그렇게 부탁드리고 저는 이만 갈게요.”

“벌써 가려고? 이왕 온 김에 함께 식사라도 하고 가지 그래?”

“오늘은 제가 저녁에 선약이 있어서 곤란해요. 앞으로 파리에 며칠 더 있을 예정이니까 식사는 다음에 함께 하죠. 제가 전화 드릴게요.”

그 말과 함께 도윤은 르블랑 박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소더비를 떠났다. 원성훈도 얼른 인사를 한 뒤 그를 따라 나섰다. 막상 소더비 건물을 빠져나오자 마치 잠시 귀신에 홀렸던 것처럼 기분이 얼떨떨했다.

“제 그림이 정말 100만 유로 이상에 팔릴 수 있을까요? 오늘 오전에 불과 이백 유로를 주고 산 것인데?”

그러자 도윤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세는 저보다 르블랑 박사님이 더 잘 아세요. 그 분이 말씀하신 거니까 아마 그게 최소 금액일 거예요. 아저씨는 오늘 정말 횡재를 하신 거라고요.”

“솔직히 나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잘 믿어지지도 않고요.”

“지금은 그래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실감이 나실 거예요. 아참 그리고 저한테 말 편하게 하세요. 한두 살도 아니고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으신 분이 계속 존댓말을 쓰니까 거북해요.”

“어…? 으응. 그래도 될까?”

“그럼요. 당연하죠.”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도윤을 쳐다보던 원성훈의 머리 위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자네 혹시 나흘 뒤에 시간 있나? 그날 내가 옛 친구에게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기로 했거든. 이왕이면 자네도 그 자리에 참석했으면 해서 말이야.”

그 말에 도윤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아저씨 참 요리사라고 하셨죠? 그것도 코르동 블루 출신의. 사실은 저도 아까 르블랑 박사님처럼 아저씨가 한식 요리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통 프랑스 요리사일 거라고는 짐작도 못했었거든요.”

원성훈이 비로소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흘 뒤에 내가 요리를 대접할 친구도 나처럼 코르동 블루 출신이야. 내가 실망스럽지 않을 만한 요리를 대접할 테니까 가능하면 꼭 참석했으면 좋겠어.”

“저야 좋지만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원래는 친구 분에게 대접하려던 자리라면서요?”

“당연히 괜찮지. 샹델리제 거리에 있는 르미즈라고 혹시 아나? 월요일 점심시간에 그곳의 주방을 빌리기로 했어. 아까 말한 친구가 바로 거기 사장이거든.”

“르미즈라면 미슐랭 스타를 받은 집 아닌가요? 거기 사장님하고 친구라고요? 우와, 그럼 정말 기대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날 요리하는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니라 나야. 하지만 마음껏 기대해도 좋아. 그 친구보다는 내 솜씨가 조금 더 나으니까. 한 시까지 거기로 오게.”

“알겠어요. 꼭 갈게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도윤을 쳐다보는 원성훈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무려 100만 유로가 넘는 횡재를 안겨준 장본인이었다. 월요일에는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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