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소더비에서 르노와르의 그림을 감정 받은 며칠 뒤, 도윤은 면바지 위에 반팔 셔츠를 입은 간편한 차림으로 레스토랑 르미즈를 찾았다. 명색이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혹시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원성훈에게 물은 결과 그렇게까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했다.
그가 르미즈의 입구를 들어서자 넓은 홀 한 쪽에 자리 잡은 주방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월요일은 레스토랑이 쉬는 날이라서 서빙을 하는 웨이터가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 주방에 요리사 복장을 갖춘
원성훈과 중년의 백인 남자 둘이 서 있었다. 주방과 접해 있는 스탠드 바형 테이블에도 비슷한 연령으로 보이는 백인 여자가 한 명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그가 계단을 내려가며 목소리를 높여 인사하자 원성훈이 주방 밖으로 나왔다.
“어서 오게. 파리 관광은 잘 하고 있는 거야? 나 때문에 공연히 귀한 시간을 뺏긴 건 아닌지 모르겠군.”
도윤이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파리에 처음 오는 것도 아니고, 관광이라고 해봤자 박물관과 미술관을 순례하듯 돌아다니는 게 전부에요. 오히려 아저씨 덕분에 이렇게 좋은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셰프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게 바로 진짜 파리 관광인 셈이죠.”
그 말에 원성훈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그의 뒤에 있던 백인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불쑥 끼어들었다.
“옳은 말이야. 파리에서 가장 오래 되고 멋진 건 루브르나 에펠 탑이 아니라 바로 이곳의 요리라고 할 수 있지. 요리야 말로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이 집약된 결정체니까.”
그는 원성훈에게 도윤이 올 거라는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찬 인사말을 내뱉은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제라드 르콤트라고 하네. 르미즈의 주인이자 파리에서 가장 멋진 요리사지.”
“처음 뵙겠습니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원에게 얘기 들었어. 스물두 살에 벌써 하버드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천재라면서? 자네의 혀가 머리만큼 뛰어나다면 오늘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야.”
자신만만한 그의 얘기에 뒤로 밀려난 원성훈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홀에 앉아 있던 여자도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엘리즈 르 소메에요. 이 두 고집쟁이의 꼬르동 블루 동창생이죠. 오늘 있을 요리 대결의 심판으로 긴급 호출되었어요.”
“요리 대결이라고요? 저는 그저 원 셰프님의 요리를 먹을 생각으로 온 건데….”
깜짝 놀란 도윤이 의아해 하자 원성훈이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원래 오늘은 나만 요리를 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이 친구가 어제 갑자기 전화를 하더니 자신과 요리 대결을 하자는 거야. 나도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녀석이 하도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엘리즈까지
소환하게 됐어. 이 박사에게는 미리 얘기하지 않아서 미안해.”
소더비에서 르블랑이 그를 이 박사라고 부르는 걸 들은 원성훈은 그 뒤로 도윤에게 계속 이 박사라는 호칭을 썼다. 뭔지 곤란한 상황에 말려들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도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럼 저도 두 분의 요리를 심사해야 하나요? 눈으로 그림을 보는 거라면 몰라도 제 혀는 음식 맛을 구분하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는데요.”
옆에 서 있던 엘리즈가 실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심사는 제가 할 테니까 이 박사는 그저 요리를 즐기기만 하면 돼요. 이 사람들이 쓸 데 없는 고집을 부려서 가끔씩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요리 솜씨만은 나쁘지 않으니까요. 공짜로 괜찮은 점심을
먹는다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제라드가 발끈하며 나섰다.
“솜씨가 나쁘지 않다니? 내 요리는 최고라고. 이 박사라고 했죠? 오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제라드의 자신만만한 호언장담에 원성훈이 코웃음을 쳤다.
“자네 요리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최고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하필이면 자네 옆에 늘 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박사. 이 친구가 한 말 중에 적어도 한 가지는 맞아. 자네는 오를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거야.”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다 주방 안으로 사라지자 엘리즈가 웃음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도윤을 주방 앞에 늘어선 자리로 데리고 갔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바보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늘 저랬으니까. 하지만 둘 다 솜씨만은 정말 좋은 편이니까 오늘 요리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편하게 즐기세요.”
“동창인 거 같은데 이십 년 전부터 저렇게 사이가 안 좋았다고요?”
“라이벌이었으니까요. 꼬르동 블루에서도 가장 장래가 기대 되는 두 명이기도 했고. 꼬르동 블루에서는 언제나 요리를 만들어 실력을 겨뤄야 했어요. 그때마다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교수님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었죠. 근본적으로 성격이 나쁜 사람들은 아닌데 그러다보니까 경쟁의식이 치열해졌어요.”
“아…. 말씀을 들으니까 오늘 요리가 더욱 기대되네요. 뭐든지 강력한 라이벌이 있으면 훨씬 실력이 빨리 느는 법이잖아요.”
“맞아요. 예전부터 저 두 사람은 요리에 관해서만은 양보가 없었어요. 어쩌면 그래서 둘 다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있었을 거예요. 만약 원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서 일을 했으면 두 사람 모두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요리사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엘리즈 역시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메인 셰프로 일을 하고 있는 요리사였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도윤은 엘리즈가 두 사람의 실력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문득
원성훈의 진짜 실력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제레미야 같은 파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다가 미슐랭 스타까지 받은 요리사니까 그렇다 칠 수 있어. 하지만 아저씨와는 서로 못 본 지 23년이나 되었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그의 요리에 대해 여전히 기대를
갖고 있다면 예전에는 도대체 얼마나 뛰어났었다는 얘기야?’
갑자기 오늘 나올 요리에 대한 기대가 훨씬 높아졌다. 그러는 사이 식사를 하기에 앞서 마시는 아페르 디프, 즉 식전주가 나왔다. ‘더 그레이프 그라인더 슈냉블랑’. 남아공의 스워트랜드에서 재배되는 포도로
만든 좋은 와인이었다.
“심사를 맡았다고는 하지만 일단은 식사를 대접받는 입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식전주는 제가 가지고 왔어요. 프랑스 와인은 아니지만 아몬드와 복숭아 향이 살짝 풍기고 미네랄의 느낌도 은은해서 식사 전에
마시기에는 좋을 거예요.”
제인과 건배를 한 도윤이 가볍게 와인을 음미하고 있는 동안 한 입 요리에 해당하는 아뮤즈 부쉬가 나왔다. 두 사람 모두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냈는데, 제라드가 준비한 것은 새우의 몸통에 해초를 두른
다음 살짝 데쳐낸 것이었다. 그에 반해 원성훈은 물기를 뺀 굴에 튀김옷을 입한 다음 일본식으로 튀긴 요리를 준비했다.
“와우! 이거 엄청난데요?”
새우와 굴튀김을 한 입씩 먹은 도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입 안 가득히 스며드는 풍미도 기가 막혔지만 무엇보다 일종의 전채답게 식욕을 강하게 돋우는 효과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자 제라드가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래서 아뮤즈 부쉬를 먹어보니까 어때? 누가 만든 게 더 맛있는 거 같아?”
둘 다 엄청 맛이 좋았다. 하지만 순위를 가리기가 곤란하다는 문제였다. 도윤이 어떻게 대답해야 몰라 망설이자 엘리즈가 인상을 쓰면서 핀잔을 주었다.
“요리에 대한 평가는 식사가 모두 끝난 다음에 종합적으로 할 거야. 두 사람은 대결을 하는지 몰라도 이 박사는 식사에 초대받은 거잖아? 괜히 밥 먹는데 부담주지 말고 식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열심히
요리나 해.”
그 말에 머쓱해진 제라드가 몸을 뒤로 물리자 도윤이 엘리즈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혼자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즈의 핀잔이 효과를 거두었는지 그 뒤로는 두 사람 모두 요리를 내놓을 때마다 슬쩍슬쩍 두 사람의 반응을 훔쳐보기만 할 뿐 대놓고 감상을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윤으로서는 그들이 한 번씩 쳐다볼
때마다 방금 전에 먹은 요리들이 배 안에서 곤두 서는 느낌이었다. 이거 오늘 잘못하면 좋은 음식 먹고 배탈이 날 것 같은데?
이어서 나온 전채요리인 앙트레로 제라드는 거위간인 푸와그라를 사용했고, 원성훈은 버섯을 이용한 요리를 만들었다. 푸와그라 요리는 의외로 감칠맛을 내기는 했지만 도윤으로서는 느끼하게 입안에 남는 뒷맛
때문에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에 반해 원성훈의 버섯 요리는 식감과 맛이 모두 훌륭했다.
주방에 선 채 도윤의 표정을 살피던 제라드가 툭 하고 불만을 내뱉었다.
“이 박사는 프와그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군.”
도윤이 어쩔 수 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르콤트 씨의 요리 솜씨는 정말 훌륭해요. 하지만 거위간은 역시 맛이 너무 진한 것 같아요. 여러 번 먹어봤지만 잘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그건 실망스러운 얘기군. 프와그라의 진한 풍미를 즐길 수 있어야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러자 원성훈이 코웃음을 치며 나섰다.
“음식을 사람에게 맞춰야지 사람이 거꾸로 음식에 자신을 맞추는 법이 어디 있어? 처음부터 이 박사가 나와 같은 한국 사람이라고 얘기했잖아? 제대로 대접할 생각이었다면 상대의 취향을 고려했어야지.”
“내 프와그라 요리가 나쁘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 게다가 프와그라는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요리라고.”
두 사람이 험악하게 부딪치려는 기색을 보이자 엘리즈가 포크로 접시를 땅땅 두드렸다.
“오늘 이 자리는 요리 대결을 하기 위해 만든 거야. 설마 요리가 아니라 싸움 실력을 겨루려는 건 아니지? 서로 말싸움 할 시간이 있으면 음식을 만드는데 더 신경을 쓰라고.”
그녀가 두 사람을 나무라자 원성훈과 제라드는 서로를 노려보면서도 다시금 조리대로 돌아갔다. 도윤은 공연히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 같아서 난감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전채 요리에 이어서 나온 생선 요리인 프와송 역시 무난했다. 아니 무난하다기보다는 아주 훌륭했다. 그러나 메인 디시라고 할 수 있는 고기 요리 비아드가 나오자 엘리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라드가 내놓은
것은 쇠고기 안심을 삶고 소스를 부은 뒤 몇 가지 야채를 곁들인 것이었다. 원성훈 역시 쇠고기를 재료로 썼지만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이건 뭐지? 설마 두 사람의 실력을 겨루는 자리에 햄버거 패티를 내놓은 건 아니겠지?”
원성훈이 내놓은 것은 쇠고기를 잘게 다진 뒤 뭉쳐서 구워낸 것이었다. 그 모양이 얼핏 보기에는 햄버거 스테이크와 비슷했는데, 이처럼 고기를 다져서 뭉치는 방식은 정식 프랑스 요리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조리 방법이었다. 자칫하면 질이 좋지 않은 잡고기를 섞어서 조리한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즈가 원성훈의 요리를 보며 목소리를 살짝 날카롭게 하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한국에서 떡갈비라고 하는 거야. 옛날 우리나라에서 왕이나 귀족들이 잔치에서 즐겨먹던 고기 요리지.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양념의 종류를 바꾸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정성이 많이 들어가야
제대로 맛이 나는 요리라고. 엘리즈는 몰라도 옆에 앉은 이 박사라면 이걸 햄버거 패티라고 오해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엘리즈가 도윤을 쳐다봤다. 도윤은 나이프로 고기를 잘라 한 입 먹어본 다음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떡갈비는 얼핏 햄버거 패티와 비슷하게 조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맛은 물론이고 식감도 달라요. 과거에는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죠. 그리고 이건 말씀하신 대로 양념이 굉장히
독특한데요? 모양은 한국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요리 같으면서도 한국이 아니라 서양 요리 같다는 느낌이 훨씬 강해요.”
그제야 미심쩍은 표정을 풀지 못하던 엘리즈도 자기 앞에 놓인 떡갈비를 잘라 먹어보았다. 잠시 후 맛을 음미하던 그녀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좋아. 맛은 확실히 훌륭하다는 걸 인정하지. 하지만 솔직히 약간 찜찜한 건 사실이야.”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제라드가 나섰다.
“맛이 아무리 좋아도 이건 레스토랑에서 내기 어려워. 음식이 문화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여기 사람들은 아마 햄버거 패티처럼 생긴 고기 요리가 고급스럽다는 걸 쉽게 인정하지 못할 걸? 그 선입견을
어떻게 해소하려고 그래?”
나름대로 날카로운 지적이었지만 원성훈은 그저 피식 웃었다.
“원래 오늘의 주빈은 엘리즈나 네가 아니라 이 박사야. 내가 앞으로 식당을 낼 곳도 한국이고. 프랑스라면 제라드 네 말이 타당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얘기가 전혀 달라지지. 너도 알잖아? 음식은
요리사가 아니라 그걸 먹을 사람을 위해 만드는 거라는 걸.”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럼 내가 손님을 고려하지 않고 내 취향대로만 요리를 한다는 거야?”
“네가 진정으로 손님을 생각한다면 기본도 되어 있지 않은 어설픈 보조에게 고기를 자르거나 굽게 하지는 않았겠지. 넌 너무 자기 솜씨를 자랑하는 데만 신경을 써.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부터 늘 그랬지. 그
못된 버릇을 하루라도 빨리 고치지 않는다면 이 식당이 가지고 있는 미슐랭 스타를 잃게 될지도 몰라.”
“너, 이 자식 보자보자 하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분위기가 아까보다 더 사나워졌다. 그러자 엘리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양 허리에 손을 짚고는 고함을 빽 질렀다.
“두 사람 모두 정말 왜 이래요? 자꾸 이럴 거면 신성한 주방에서 싸우지 말고 밖으로 나가요. 밖에서 시원하게 치고받아 보라고요. 사람들이 이제 오십이 다 되었으면 철이 좀 들어야지 어떻게 이십 년
전하고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그 말에 제라드가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결국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원성훈 역시 얼굴이 붉어진 게 심사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도윤은 다시 한 번 오늘 틀림없이 배탈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요리를 대접해주겠다고 해서 왔더니 이게 무슨 봉변이냐….
고기 요리가 중심이 된 비아드가 끝나자 몇 종류의 치즈가 나왔다. 코스 요리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프로마쥬였지만 두 사람의 요리 솜씨가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저 두 분이 예전에 학교 다닐 때도 저랬어요?”
치즈 조각을 씹어 삼킨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엘리즈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실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성향이 크게 달랐어요. 제라드는 늘 정통 프랑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죠. 그에 반해 원은 새로운 재료나 조리법을 시도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고요. 그 때문에
걸핏하면 말싸움을 벌이고는 했어요. 그래도 서로 주먹다짐을 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 보니까 예전보다 상태가 더 심각해진 것 같아요.”
하긴 오늘 요리에서도 두 사람이 가진 성향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기는 했다. 도윤 역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먹는 코스 요리에서 떡갈비가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두 사람이 치즈를 한 조각씩 먹고 나자 디저트가 나왔다. 순간, 이제까지 조용하던 도윤의 눈이 단 번에 크게 떠졌다.
‘요리도 예술의 일종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진짜로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그의 눈앞에 놓인 접시 위에 담긴 타르트 한 조각. 그런데 거기서 엷은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도윤도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숱한 요리를 먹어보았지만 음식에서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