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84화 (284/300)

284화

<3. 별이 빛나는 밤>

검은 옷을 입고 하얀 목도리를 걸친 여인이 테이블 위에 한쪽 팔을 올린 채 턱을 괴고 홀로 앉아 있었다. 싸구려 술병과 술잔이 놓여있는 테이블 뒤로는 왁자지껄 떠드는 술집 남자들 뿐. 얼굴은 정면을 향해

있지만 한쪽으로 쏠린 그녀의 두 눈동자는 은근히 뒤에 앉은 남자들을 의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럴 수가! 고흐는 고갱의 그림에 묘사된 여인을 보고 기가 막혔다.

“그래도 마담 지누를 이딴 식으로 그리는 건 너무 심하잖아.”

그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고갱은 코웃음을 쳤다.

“이딴 식이라니? 이게 어때서?”

“어때서라고? 얼굴을 왜 이렇게 퇴폐적으로 그린 거야? 마치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술집에 앉아 있는 여자 같잖아? 마담 지누는 창녀가 아니야.”

“술집 여주인이 창녀보다 나을 건 뭔데?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아무하고나 자는 여자를 그럼 정숙한 부인이라고 할까?”

고흐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그 말 당장 취소해! 지누 부인은 아무하고나 자는 여자가 아니야.”

고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눈이 충혈 되었다.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갱은 그런 그를 쳐다보며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었다.

“요즘 자주 어울리는가 싶더니 그 나이든 창녀에게 완전히 푹 빠져버린 모양이군. 그럼 자네는 마담 지누가 정숙한 귀부인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그녀를 그릴 때마다 테이블 위에 술병 대신 책을

그려 넣은 거야? 책이 그 여자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

“지누 부인은 책 읽는 걸 좋아해.”

“흥! 장담하지만 그 여자는 자기가 읽은 책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걸? 그 여자의 관심사는 언제나 오늘 밤을 함께 지낼 건강한 남자뿐이라고. 그 여자가 들고 다니는 책은 반지나 목걸이처럼 그저 겉을

꾸미기 위한 장신구에 불과하다고.”

고흐는 가슴 밑바닥을 뚫고 끓어오르는 격한 분노로 인해 숨이 막혔다. 자신이 한때 스승으로까지 삼고 싶어 했던 사람. 그래서 편지까지 보내 간곡하게 아를로 초대했던 위대한 화가 고갱. 그런데 정작 그의

외면을 덮고 있는 교양의 껍질을 깨고 안을 들여다보자 이처럼 천박하고 야비한 본성이 숨어 있을 줄이야.

고흐는 자칫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에 고갱의 화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의 화실은 고갱과 같은 건물에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를의 집 한 채를 빌려 여러 개의

화실을 만들고 화가들을 초대한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까. 물론 그 초대에 응한 화가는 고갱 한 사람뿐이었지만.

고흐는 한참 동안 어두운 론 강변을 걸으며 마음을 달랬다. 멀리 강가에 늘어선 건물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흐르는 강물 위에서 춤추듯 흔들리고 있었다. 갑자기 밤하늘이 김 서린 유리창처럼 뿌옇게 변하더니

달 없는 하늘을 가득 메운 별빛들이 안개 속에서 깜빡이는 호롱불처럼 노랗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찢어질 것 같은데, 세상은 또 왜 이렇게 아름다운 거냐….”

고흐는 넋을 잃고 별들이 일렁이는 강과 하늘을 쳐다보았다. 억울했다. 내 처지가 이토록 한심한데도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이 아름답다니! 마치 모두가 웃고 춤추며 즐기는 파티 한 가운데에서 자신만 뎅그러니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어두운 론 강변을 하염없이 거닐다 돌아와 화실 안에 틀어박혔다. 그날 그는 창밖에 일렁이는 강물과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을 쳐다보며 밤새 스케치를 했다. 며칠 뒤, 고흐는 친구이자 시인인 외젠

보흐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썼다.

“…… 어쩌면 죽음이란 화가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지도 몰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네. 하지만 지도에 작은 점으로 표시된 도시와 마을들이 그러하듯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나로 하여금 항상 꿈을 꾸게 만든다네.”

고흐는 그날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완성했다.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밝혔듯이 그즈음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담 지누의 초상화 때문에 격하게 다툰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갱은 다시 한 번 고흐로 하여금 치욕에 몸을 떨게 만드는 일을 저질렀다. 그는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그것을 본 고흐는 기가 막혔다.

“해바라기는 모조리 시들고 꽃잎마저 떨어졌군. 그리고 내 얼굴은 왜 또 저렇지? 머리카락은 반쯤 벗겨지고 입은 원숭이 같군. 난 이제 고작 서른다섯이야. 그런데 그림에 그려진 저 중늙은이는 도대체

누군가?”

고갱은 씩 웃으며 억울하다는 듯이 두 팔을 벌렸다.

“자네 너무하는 군. 이건 자네와 나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거야. 자네가 내 화실을 꾸며주기 위해 해바라기를 그렸잖아. 이 그림은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그 해가 지나기 전에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고흐가 고갱의 화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고갱의 앞에는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고흐가 서 있었다.

“이, 이게 도대체 뭔가? 자네 왜 이래?”

척 봐도 정상이 아닌 듯한 고흐의 모습에 기겁한 고갱이 뒤로 주춤 물러서는 순간, 그를 향해 뭔가가 날아왔다. 그의 몸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고흐의 잘린 귀였다. 고갱은 그길로 곧바로 짐을

싸서 아를을 떠났다. 두 사람이 한 집에 기거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고작 아홉 주만의 일이었다.

“후기 인상주의에서의 ‘인상(Impression)’과 ‘표현(Expression)’의 문제”

도윤은 박사 논문의 제목과 목차를 정한 뒤 지도 교수인 에릭 타일러 교수에게 들고 갔다. 그 자리에서 그는 논문의 주제와 서술 방향을 놓고 타일러 교수와 한 시간 가량 이런저런 문답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한국에서 왔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우키요에에 대한 언급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정말로 고흐나 세잔이 일본의 판화 그림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타일러 교수가 문득 질책의 느낌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 시대 중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대중적 그림이다. 처음에는 손으로 직접 그리던 것이 19세기에 이르면 판화로 제작되어 싼 값에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급기야 일본 도자기를

수입하던 네덜란드 상선에 의해 포장지로 사용되면서 유럽으로 전해졌는데, 그때부터 당대의 유럽 화가들에게 큰 관심을 받게 된다.

도윤은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목차를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정확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키요에에 의한 직접적인 영향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일본식 판화라고 할 수 있는 우키요에에 표현된 동양식 화풍이 후기 인상주의에 미친 간접적인

영향을 언급하려는 겁니다.”

“가령 자기가 본 사물이나 풍경을 그리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창작된 허구적인 대상을 묘사하는 것 말인가? 그래서 사물로부터 받은 인상을 중시하던 당시 화가들로 하여금 주관적인 느낌이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거야?”

“절대적인 영향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실마리를 제시했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동양의 산수화 중에는 시점이 자유로운 게 많습니다. 세잔의 정물화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 화면에 다양한 시점을 동시에

표현하는 기법 말입니다. 그런 사고는 나중에 피카소의 입체파에도 영향을 미쳤지요.”

타일러 교수가 잠시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대학은 물론이고 다른 대학의 미술사 교수들 중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그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네. 이 목차 그대로 논문을 쓰면 심사 과정에서 이런저런

질문들이 많이 나올 거야. 자네도 잘 알겠지만 질문이 많아지면 심사가 어렵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

“그건 감수해야지요. 대신 주장을 너무 무리하게 끌고 가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나는 당연히 자네가 엄격한 사실에 입각해서 논리를 전개할 거라고 믿네. 하지만 다른 교수들은 자네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색안경을 끼고 쳐다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그들에게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별 차이가 없을 테니까.”

“목차를 보면 아시겠지만 우키요에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의 문인 산수화에서 표현된 기법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습니다. 어차피 여러 나라의 화풍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제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문제야. 차라리 우키요에는 이쪽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기라도 하지. 중국의 양주팔가와 정선의 금강산 진경이라니…. 쩝. 솔직히 그런 사람들은 나도 자네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거나

마찬가지니 다른 교수들은 오죽할까.”

“논문에 가급적 도록을 많이 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도교수는 걱정이 한 가득인데 정작 학생은 끝까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런가? 타일러 교수는 자신이 아끼는 제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번 학기 말까지는 초고가 완성되어야 하네. 그래야 다음 학기에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 알지?”

“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초고를 완성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래. 부심을 누구로 할지는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지. 논문을 쓰다가 혹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 방으로 오게. 최대한 도와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타일러 교수의 방문을 닫고 나온 도윤은 그제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 역시 속으로는 적지 않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의 교수들은 말로만 듣던 한국의 지도교수들과는 달리 상당히 친절하고 호의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해도 논문을 심사받는 입장에서는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목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아. 내일은 미술관에라도 가서 긴장을 좀 풀어야겠어.”

이튿날, 그는 워싱턴에 있는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 들렀다. 그곳은 주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과 조각이 많지만 그 중에는 고흐와 세잔을 비롯한 인상주의 미술가들의

그림도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심신에 쌓인 피로가 조금은 풀어질 것 같았다.

* * *

워싱턴 국립 미술관은 미국에서 가장 큰 미술관들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널리 알려진 유명 작품들이 많다. 특히 미국에 있는 유일한 다빈치의 진작인 ‘지네브라 데 빈치 초상화’나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도록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명품들이었다. 그러나 도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런 작품들과는 관계가 없었다.

그는 다른 작품들보다 고흐의 자화상과 세잔의 초상화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두 사람의 작품들은 워낙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전작을 보기 위해서는 거의 세계 일주를 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도윤은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나라와 미술관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래도 이곳의 자화상은 다른 것들보다 도움이 많이 돼. 나로서는 다해인 셈이지.”

고흐는 평생 많은 수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 중에서도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 있는 것은 그가 자신만의 기법을 완성한 뒤, 하지만 아직 귀를 자를 정도로 정신이 불안정해지기 전에 그린 것이었다. 물감을 직접

찍어 바른 뒤 붓이나 막대를 이용해 모양을 만드는 그의 기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논문을 쓰면서 수십 번은 보러 온 그림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날을 잘못 택한 게 분명했다. 그가 고흐의 자화상 앞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 이젤을 펼쳐놓고 자화상을 모사하는 중년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큰 미술관에서는 유명 작품 앞에 이젤을 펼쳐놓고 그림을 모사하는 것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물론 그림의 크기를 원작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비롯한 몇 가지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도윤도 처음에는 그 부인이 그림을 모사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봐요. 여기 그림 그리고 있는 거 안 보여요? 그렇게 자꾸 그림을 가리면 어떡하자는 거예요? 사람이 교양 없이.”

그림을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흐의 자화상 앞으로 다가가던 도윤의 등 뒤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림을 모사하던 부인이 붓을 멈춘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윤은 잠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자화상을 전세 낸 것도 아니고 관객이 그림을 감상하는 것까지 방해를 하면서 모사하겠다고 나서면 어쩌다는 건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부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고흐의 자화상에 관심이 많아서요. 잠시만 가까이에서 보고 곧 비켜드리겠습니다.”

“뭘 잠시만 가까이에서 봐요? 보아하니 안경을 쓰지도 않은 게 멀리서 봐도 잘만 보일 것 같은데. 누군 뭐 마음이 없어서 이젤을 이렇게 멀리 떨어뜨려놓고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당장 그림에서

떨어지세요. 방해가 되니까.”

도윤은 기가 막혔다. 이 아줌마 왜 이렇게 막무가내야? 아니 미술관에 걸린 그림은 사람들에게 감상시키기 위한 거지 모사를 도우려는 게 주 목적이 아니잖아?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당장 언쟁이 벌어질 게 뻔했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일단 그림이 가려지지 않게 조금 멀리 떨어졌다. 그러면서 부인의 캔버스를 슬쩍 훔쳐본 순간 하마터면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뭐야, 저건 새로운 기법인가? 고흐를 모사하는 거야, 아니면 피카소를 흉내 내는 거야?’

모사라는 게 항상 대상을 그대로 베껴서 그릴 필요는 없다. 하나의 곡을 가수에 따라 자기 스타일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편곡하는 것처럼 대가의 그림 역시 자기 나름대로 변형시키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하지만 부인의 그림이 피카소의 그림과 비슷하게 보이는 건 절대로 그런 식의 자유로운 변형의 결과가 아닌 것 같았다.

‘기본적인 드로잉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부인의 그림은 발상의 전환에 따른 변형이 아니라 아무리 봐도 그냥 그림을 너무 못 그린 결과에 불과했다. 저 정도 솜씨라면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대놓고 이젤을 펼쳐놓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설마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발상을 하고 있는 건가?

이유가 어떻든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 대해서는 도윤이 섣불리 상관하거나 참견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속으로 고소를 삼키면서 되도록 부인의 그림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도 나름대로 목적이

있어서 그림을 보러 온 것이기 때문에 당장 자리를 떠나기는 싫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에 선 채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있었다.

‘저 그림에도 고흐의 잔류기억이 남아 있을까? 직접 만져보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그림을 보면서도 그 점이 아쉬웠다. 후기 인상파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그로서는 화가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지 직접 알 경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림에 직접

손을 댄 채 한동안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대가들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고흐 그림들은 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런 곳에 전시된 그림들은 일정 한도 이상으로 다가가면 어김없이 경보음이 울리도록 보안 장치가 설치되어 있기

마련이다. 섣불리 그림을 만지려들다가는 공연히 경비원에게 붙들려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가 속으로 아쉬움을 삼키고 있는데 또 다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당신 도대체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왜 아까부터 자꾸 알짱대면서 사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거예요? 경비원을 부르기 전에 얼른 저리 가지 못해요?”

고개를 돌리자 약간 떨어진 곳에서 그림을 그리던 부인이 또 다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윤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부인이 그림을 그리는 걸 방해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부인의 시야가 가려지지지 않잖습니까?”

“옆에 계속 빤히 서 있으니까 신경이 쓰이잖아요? 그림 다 봤으면 방해하지 말고 다른 데로 가세요. 그림도 볼 줄 모르면서 왜 자꾸 서 있는 거야? 보면 뭘 알아?”

도윤은 기가 막혔다. 이 아줌마 도대체 뭐야?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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