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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86화 (286/300)

286화

케힌데 와일리는 비주얼 아티스트로 분류되는 미국의 현대 화가다. 그는 꽃이나 화려한 문양을 배경으로 해서 미국 흑인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얼핏 로코코 화풍을 연상시킬 정도로 감각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그림은 이슬람 건축 양식부터 현대 힙합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느낌을 하나의 화면 속에 담아내고는 했다.

비츠 부인이 와일리의 그림을 기증한 것은 그걸 팔아서 자선 단체의 활동 기금으로 써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단체의 주축들 가운데 하나이자 기증된 작품을 처분하는 일을 위임받은 곳이 바로 워싱턴 국립

미술관이었다. 그래서 이곳의 감정가가 와일리의 그림을 감정한 것이다. 슈미츠 교수는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비츠 부인이 기증한 그림이 미술관 측에 귀속되는 거라면 몰라도 어차피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판매할 계획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무작정 접수를 거부하지 말고 한 번 더 감정을 맡겨봅시다. 그런다고 해서

미술관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증자의 선의를 존중한다는 뜻도 있으니 서로가 좋은 것 아닙니까?”

슈미츠 교수는 꽤 유명한 미술사 교수이자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르네상스 거장들의 회화에 대한 권위 있는 감정가이기도 했다. 더구나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미술관의 일을 도와준 경력도 있기 때문에

직원으로서도 그의 제안을 모른 척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럴 경우 누가 감정료를 지불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더구나 그림의 기증자인 비츠 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전 찬성이에요. 슈미츠 교수님이 직접 감정해주시면 더 좋겠지만 다른 분이라도 상관없어요. 교수님이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어요.”

직원이 말끝을 흐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려는 찰나, 비츠 부인이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딱 잘라 그렇게 말하고 나섰다. 순간 직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슈미츠 교수가 웃으면서 비츠 부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부인이 기증한 그림이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대가들의 작품이었다면 당연히 제가 감정하겠다고 나섰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밖의 분야라면 저보다는 여기 있는 이 젊은 친구가 훨씬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고 맡기셔도 될 겁니다.”

“그 밖의 다른 분야요? 이 젊은 분이 감정 가능한 분야가 그렇게 넓다는 말인가요?”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 말고도 그걸 평가하는 분야에서도 가끔씩 믿을 수 없는 천재들이 나타나고는 하지요. 리가 바로 그런 천재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츠 부인은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도윤의 능력이 그렇게까지 뛰어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잠시 그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슈미츠 교수의 추천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는 남편이 생전에 자주 교류를 나눴던 지인이었다.

‘이거야 원. 난 아직 감정을 맡겠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정작 감정을 맡을 당사자로 지목된 도윤은 아무런 의견도 내지 못한 채 한쪽에서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그러자 클라우디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수님이 리를 감정가로 추천하기는 했지만, 그럼 저 직원 분이 말씀하신 대로 감정료의 문제가….”

“괜찮습니다. 어차피 자선 파티에 기증된 그림을 감정하는 일이 아닙니까? 더구나 슈미츠 교수님께서 일부러 저를 추천하셨는데 돈을 받겠다고 할 수는 없지요. 저도 보잘 것 없는 재주지만 이번 자선 파티에

재능 기부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도윤이 얼른 나서서 손을 내저으며 감정료를 사양했다.

‘돈은 무슨…. 여기서 어떻게 감정료를 달라고 할 수 있겠어?’

슈미츠 교수는 당장 다음 학기에 자신의 박사 논문 부심을 맡을 가능성이 큰 사람이었다. 어차피 거절하기 난감한 상황이라면 차라리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림을 감정해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솔직히

비츠 부인과의 악연으로 인해 아주 기꺼운 마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왕 받아들일 거라면 공연히 군말을 하지 않는 게 나았다.

* * *

졸지에 감정가의 역할을 떠맡게 된 도윤은 슈미츠 교수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과 함께 와일리의 그림이 보관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림은 다른 기증품들과 함께 임시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직원이 수장고

내부에 이젤을 세운 뒤 와일리의 그림을 꺼내서 올려놓았다.

도윤은 그림을 보는 순간 한 눈에 그것이 진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림에서 환한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아우라는 둘째 치고 그냥 겉으로 보기에도 위작이라는 느낌은 전혀 안 들잖아? 이 정도면 미술관에서도 진작으로 감정했을 것 같은데 누가 가짜라고 한 거지?’

그는 미술관 직원과 비츠 부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액자를 살짝 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림을 조금 더 자세히 감정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 자세에서 눈을 감은 채

거기에 남아 있는 잔류 기억을 읽으려는 행동이었다.

와일리는 아직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사십대의 현역 작가였다. 당연히 기번에 기증된 그림 역시 완성된 지 이십 년 이상이 되지 않은 것이었고, 덕분에 비교적 선명한 잔류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빠르게 그

기억들을 훑어본 도윤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죄송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그림은 틀림없이 와일리의 진작입니다. 하지만 미술관측에서는 이 그림을 위작으로 감정했다는 말씀이죠?”

도윤이 단정적으로 진작이라는 의견을 내놓자 잔뜩 굳어 있던 비츠 부인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거봐요. 이 그림은 우리 남편이 와일리에게서 직접 받은 거라고 했잖아요. 기껏 좋은 일에 써달라고 내놓았더니 가짜라면서 모욕이나 주고 말이야.”

도윤의 말을 들은 비츠 부인이 당장 기세등등해져서 직원을 닦달했다. 하지만 직원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더니 완고한 태도를 견지했다.

“비츠 부인의 그림을 감정한 분은 저희 미술관에서도 꽤 경력이 많은 전문 감정가입니다. 그 분은 이 그림이 와일리의 화풍을 비슷하게 흉내 낸 위작이라고 판단하셨습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던 얘기인데…,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채색이 너무 거칩니다. 터치의 세밀함도 떨어지고요. 와일리가 화면의 완성도를 굉장히 중시하는 화가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의 진품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그가 아직 이십대 때 그린 그림으로 보이는데요? 그 당시는 와일리도 아직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시험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작품이 아닌 일종의 실험작이었다면

디테일을 조금 소홀히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죄송하지만 그런 막연한 짐작만으로 감정 결과를 바꾸기 어렵습니다.”

막연한 짐작이라고? 도윤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가 눈앞의 그림이 일종의 실험작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한 것은 막연한 짐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 전 그림에 남아 있던 잔류 기억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어차피 현대 화가의 그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과학적인 검사를 통한 객관적인 감정을 하기가 어렵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제 얘기가 막연한 짐작이라고 주장하신다면 저 역시 전에 이 그림을

감정하신 분에게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도윤이 짐짓 표정을 굳히면서 반박하자 직원도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걸 의식했는지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미술관으로서는 저 그림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스스로 가짜라고 생각하는 그림을 수집가들에게 판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미술관 직원의 완고한 태도에 비츠 부인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그러니까 그 감정가라는 작자는 눈이 삐었다니까요? 왜 당신들만 옳고 나는 거짓말쟁이라는 거예요? 내가 가짜 그림을 기증해서 어떤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희가 비츠 부인을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부인이나 돌아가신 콜린 비츠 화백께서도 누군가에게 속았을 가능성은 있는 것 아닙니까?”

“케인데 와일리 본인이 우리 남편한테 직접 선물한 그림이라니까요? 설마 화가 본인이 자기 그림을 위조해서 친구에서 줬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기증된 그림이 죽은 콜린 비츠가 와일리에게서 직접 선물 받은 게 맞는다면 비츠 부인이 주장에는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인지는 오직 비츠 부인만이 알 수 있었고, 미술관 직원은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한동안 두 사람의 언쟁이 계속되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도윤은 물론이고 기껏 중재를 모색했던 슈미츠 교수조차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지금까지 말없이 두 사람의 언쟁을

지켜만 보고 있던 클라우디아가 갑자기 불쑥 나섰다.

“얘기가 자꾸 겉도는 것 같은데 여기 있는 리가 비츠 부인이 기증한 그림이 와일리의 진작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국립미술관으로서는 제3의 감정가에게 재감정을 의뢰하거나 비츠

부인의 그림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건가요?”

미술관 직원이 클라우디아와 비츠 부인, 그리고 도윤의 얼굴을 한차례씩 돌아보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이미 저희 감정가의 판단이 내려진 작품에 대해 재감정을 의뢰하는 일은 제 권한을 넘어섭니다. 슈미츠 교수님에게는 죄송하지만 저 젊은 분의 의견만으로 결론을 바꾸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맡은 일은 비츠 부인의 양해를 구하고 그림을 돌려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슈미츠 교수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려는 찰나, 클라우디아가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그럼 저 그림은 제가 개인적으로 살게요. 그 돈을 비츠 부인의 이름으로 재단에 기부하면 되잖아요. 그럼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와일리는 미국은 물론이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해외에까지 그 이름을 알려나가고 있는 주목받는 현대 화가다. 그 때문에 그의 그림은 전시회나 옥션에서 1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아직 학생에 불과한 클라우디아가 그 만한 돈을 내고 그림을 사겠다고?

도윤과 슈미츠 교수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자 클라우디아가 씩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가 진작이라고 감정한 그림이잖아요? 그럼 누가 뭐래도 와일리의 진짜 그림이라는 뜻인데 그의 진작이라면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요?”

도윤은 당황했다.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까지 가는 건데? 그는 클라우디아를 말렸다.

“아니, 날 그렇게까지 인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그래도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는 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슈미츠 교수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고 보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군. 미안하지만 그렇다면 이 그림은 우리 둘이서 경매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비츠 부인. 죄송스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부인께서는 이 그림 값으로 얼마를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까? 생각하신 금액이 있다면 그걸 경매의 시작가로 정하고 싶습니다.”

비츠 부인은 멍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상황이 그녀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가 돌연 얼굴을 굳히더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다들 지금 뭐하시는 거죠? 그림을 팔다니요? 누구 마음대로요? 저는 와일리의 그림을 기증하고 싶은 거예요. 팔려고 했으면 자선 파티가 아니라 경매 회사에 맡겼겠지요.”

“파, 팔지 않으시겠다고요? 하지만 어차피 기증하실 생각이었다면 그림을 팔아서 그 돈을 기부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슈미츠 교수가 당황해서 약간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비츠 부인의 태도는 완강했다.

“저는 남편이 남긴 그림 가운데 단 한 점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놓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이가 죽기 전에 유언을 했어요. 가지고 있던 그림을 팔지 말고 가능하면 모조리 기증하라고요. 그게 아니었으면

굳이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내놓으면서까지 가짜니 뭐니 하는 거지같은 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었을 거예요.”

예전에 미술관에서도 한 차례 겪었지만 비츠 부인은 말을 거침없이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 거친 말 속에 담긴 생각만큼은 분명했다. 그녀는 와일리의 그림을 팔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슈미츠 교수와

클라우디아의 표정이 구겨졌고, 기껏 내키지 않은 감정까지 했던 도윤 역시 허탈한 마음에 실소를 터트렸다.

* * *

우여곡절 끝에 와일리의 그림은 다시 비츠 부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도윤은 그것으로 그 일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자신의 논문을 다듬는 일 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바빴기 때문에 다른 일을 신경

쓸 형편도 아니었다. 그런데 새해가 밝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슈미츠 교수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크리스마스 마티 때의 일을 다시 거론했다.

“저더러 비츠 부인 댁을 방문해 달라고요?”

학교 내의 카페에서 슈미츠 교수를 만난 도윤은 그로부터 난감한 요청을 받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내가 왜 그 성질 더러운 여자의 집을 찾아간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겠는데.

그의 표정을 통해 도윤의 속내를 짐작한 슈미츠 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논문 때문에 바쁘다는 걸 나도 잘 알아. 그래서 나도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참 염치없네. 하지만 저쪽에도 나름대로 딱한 사정이 있어. 미안하지만 딱 하루만 시간을 좀 내주면 안 되겠나?”

슈미츠 교수는 죽은 콜린 비츠와 잘 아는 사이였다. 당연히 그의 아내인 비츠 부인과도 여러 차례 안면이 있었는데 이틀 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의 집에 보관 중인 그림들을 전체적으로 감정해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부탁에 덧붙여 그 일을 해줄 감정가로 도윤을 콕 집어 언급했다는 것이었다.

“저를요? 하지만 비츠 부인은 저를 잘 알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저는 아시다시피 전문 감정가도 아닌데요?”

“지난 번 파티에서의 일 때문에 자네에게 크게 호감을 가지게 됐나 봐.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으니 자네가 꼭 감정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네. 그리고 전문 감정가니 뭐니 하는 타이틀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자네 실력이 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하버드 교수들이 다 알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 도윤은 슈미츠 교수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하고 싶었다. 비츠 부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첫인상부터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터라 정말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돌아오는 새

학기에 자신의 논문을 심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선뜻 거절의 말을 내뱉지 못하게 만들었다.

“비츠 부인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이라면 죽은 남편, 그러니까 콜린 비츠의 그림을 말하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사실 가짜일 확률이 적지 않나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죽은 남편의 그림을 그 부인이 소장하고

있는 건데.”

도윤이 입맛을 다시며 묻자 슈미츠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부인이 감정해달라고 부탁한 그림들은 콜린의 유작들이 아니야.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이 더 많아.”

“다른 화가들의 그림이 더 많다고요? 어떻게요?”

“친구로서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콜린은 생전에도 자신의 그림을 파는데 별 관심이 없었어. 이른바 마케팅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얘기지. 하지만 같은 화가들은 그의 작품이 지닌 가치를 알아봤네.

그래서 생전에 여러 동료 화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서로 각자의 그림들을 많이 주고받았어. 그게 고스란히 유품으로 남은 거네.”

“그럼 저는 콜린의 유작보다는 그가 선물 받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주로 감정하게 되는 건가요?”

도윤의 말을 통해 그가 이미 자신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깨달은 슈미츠 교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 지었다.

“맞아. 사실 콜린이 선물 받았던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을 모두 팔면 비츠 부인은 당장이라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거네. 그러면 그녀도 지금보다 편하게 살 수 있겠지.”

순간 도윤은 슈미츠 교수가 그림의 감정도 감정이지만 그걸 통해 비츠 부인이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 형편이 많이 어려운가? 그럼 진즉에 가지고 있는 그림들을 좀 팔았으면 될 텐데.’

파티 장에서 있었던 일을 감안하면 비츠 부인은 남편이 남긴 유품들을 절대로 팔지 않겠다는 고집 같은 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이 감정을 해준다고 해도 그걸 선뜻 팔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알겠습니다. 이번 주 주말에 시간을 낼게요. 하지만 딱 하루만입니다. 죄송하지만 그건 교수님께서도 이해해주셔야 할 거 같아요.”

“고맙네. 자네 실력이면 하루면 충분히 감정을 끝낼 수 있을 거야.”

그가 시간을 내겠다고 하자 슈미츠 교수가 크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도윤으로서는 어째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콜린 비츠가 남긴 유품들에 어떤 그림이 포함되어 있을지

은근히 궁금하기도 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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