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며칠 뒤, 도윤은 슈미츠 교수와 함께 비츠 부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녀의 집은 워싱턴 시 남동부 쪽에 있었는데, 한때 거주민들 가운데 흑인의 비율이 무려 90퍼센트를 넘어서기도 했던 곳이다. 대표적인
빈민가라는 뜻이다.
한낮의 태양이 제법 따가운 기운을 뿌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의 먼지를 몰고 가는 1월의 찬바람으로 인해 동네 전체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재개발 열풍이 이곳까지 불어
닥쳤는지 군데군데 빈집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종종대며 걷던 도윤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코트 깃을 치켜 올렸다.
“콜린 비츠 씨가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살다 돌아가셨다고 했죠? 그 양반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었다고 해도 설마 이렇게까지 어렵게 살았는지는 미처 몰랐는데요?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가끔씩 이름이 거론되고는 했잖습니까?”
멀리 떨어진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윤과 함께 비츠 부인의 집을 향해 걸어가던 슈미츠 교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콜린은 실력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화가야. 전시회를 몇 번 열기는 했지만 늘 다른 화가들과 함께 하는 공동 전시회였고,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미술 중개인이나 화랑 측
사람들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차갑게 대했거든.”
“그림을 파는데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뜻인가요?”
“단순히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그림을 팔아주겠다는 사람들에게 거의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어. 그나마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집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릴 장소조차 구하기
힘들었을 거야.”
“생활은요? 부인이 있는 걸 보면 결혼을 했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가족을 건사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는 돈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었어. 그래도 자네 말처럼 생활은 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 일을 하기는 했지. 주로 남의 집 잔디를 깎거나 지붕을 수리해주는 일들이었지만. 배관공 노릇을 한 적도 있고. 하지만
그걸로는 물감이나 캔버스를 사기에도 빠듯했을 거야. 그래서 비츠 부인이 남의 집 아이를 돌봐주거나 가정부 일을 해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했지.”
슈미츠 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도윤은 문득 그가 짐작보다 콜린 비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낯이 익은 사이였다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세세한 가정사까지 훤히 꿰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콜린 비츠 씨와 생전에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었나 보네요?”
그러자 슈미츠 교수가 고개를 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하얀 입김이 차가운 거리 위로 담배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내가 지금은 하버드에서 교수를 하고 있지만 대학은 뉴욕에서 다녔어. 그때 처음으로 콜린 비츠를 만났지. 같은 과는 아니었어도 서로 죽이 맞아 자주 어울렸어. 툭하면 미술이나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예술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았거든. 비츠 부인도 그때 인연이 돼서 콜린과 결혼을 하게 됐고.”
“비츠 부인도 같은 대학에 다니셨나요?”
“아니야. 마가렛은…, 비츠 부인 말이야. 우리가 자주 들르던 술집의 여종업원이었어. 하도 자주 가다 보니까 결국 콜린과 눈이 맞았지. 다들 젊었을 때였어. 지금 자네처럼.”
얼핏 들으면 흔하고 흔한 젊은 예술가들의 젊은 시절에 대한 얘기였다. 하지만 도윤으로서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결혼 후에 생활이 그렇게 어려웠다면 남의 집 잔디를 깎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림을 파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교수님 말에 의하면 비츠 씨의 그림에 관심을 보인 미술 중개상도 있었다면서요?”
슈미츠 교수가 허탈하게 웃었다.
“나를 비롯해서 친구들 역시 수도 없이 그렇게 하라고 권했어. 하지만 본인이 영 내켜하지 않으니 어쩌겠나? 아마 아버지 때문에 그랬을 거야.”
“아버지 때문이라고요?”
“그래. 콜린의 아버지는 워싱턴에서 태어나서 자란 분이야. 지금 비츠 부인이 사는 집도 원래는 그 양반 것이었고. 그런데 콜린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 히피 문화에 깊이 빠졌었어.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만
해도 그게 큰 유행이었으니까. 콜린이 태어난 때가 전쟁이 끝나면서 히피 집단이 급격히 해체될 때였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지.”
콜린 비츠가 태어날 무렵, 히피 문화와 집단은 거의 해체 수순을 밟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히피 문화에 깊이 빠져있던 이들 가운데는 그 이후로도 당시의 이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콜린 비츠의 아버지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사랑과 평화를 주된 기치로 내걸었던 히피 집단은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모든 것을 집단이 공유한다는 이른바 공유 경제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나중에 몇몇 약삭빠른 이들에 의해 처절하게 이용당하는
빌미가 된 것이다. 대표적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비현실적인 경제관념을 가진 이들은 아주 쉽게 이용해 먹기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콜린의 아버지는 뛰어난 기타리스트였어. 콜린이 태어난 이후에 부인과 헤어진 그는 아들을 데리고 워싱턴에 있던 집으로 돌아왔지. 그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접근한 몇몇 프로듀서들이 거의 착취하다시피
부려먹었던 모양이야. 그 양반은 결국 인기도 얻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이용만 당하다가 콜린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죽고 말았지.”
“그래서 콜린 씨가 예술가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는 건가요?”
“그래. 철이 들기 전부터 보고 자란 것들 때문에 굉장히 강한 트라우마가 남았는가 봐. 문제는 그게 경제적으로는 차라리 이용당하는 것보다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는 거지.”
별로 즐겁지 않은 얘기를 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어느 새 비츠 부인의 짚 앞에 이르렀다.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단층이었지만 적어도 외관은 깔끔해 보이는 집이었다.
* * *
비츠 부인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단번에 도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수많은 별들이었다. 그녀의 집 거실에는 콜린 비츠가 남긴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었는데, 캔버스마다 별들이 가득했다. 커다란 태양이 화면을
온통 채운 그림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은하를 촘촘히 그려 넣은 그림도 보였다.
“별을 그리는 화가라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게 이런 뜻이었군요.”
도윤은 거실에 걸린 그림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콜린 비츠가 비록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지만, 도윤도 미술사를 전공하다 보니 자연히 그의 그림에 대해 들은 바가 있기는 했다. 다만 워낙
사진이나 도록조차 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직접 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모두 환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콜린 비츠를 ‘별을 그리는 화가’라고 지칭하자 비츠 부인이 말을 덧붙였다.
“남편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 때문에 뉴욕에서 생활할 때에는 걸핏하면 현대미술관(MOMA)을 찾고는 했지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두 종류의 그림이 존재한다. 하나는 1888년에 그린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그와는 달리 이듬해인 1889년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뉴욕의 현대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 둘 다 유명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후자가 더 유명했다.
비츠 부인의 말을 듣고 보니 콜린의 그림은 고흐와는 전혀 다르면서도 어딘지 느낌이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물감을 캔버스에 직접 짜서 바른 뒤 붓이나 막대로 거칠게 모양을 만든다거나, 각각의 별들은
물론이고 그것들이 모인 은하가 회오리치듯 맴도는 모습 역시 은근히 고흐를 연상케 했다.
“고흐는 별이 빛나는 밤의 풍경을 그렸는데 콜린 비츠 씨는 별 그 자체에 좀 더 주목한 것 같군요. 고흐에게서 모티브를 끌어온 것 같기는 하지만 그와는 달리 자신 만의 독특한 느낌을 표현하는데
성공했어요. 고흐가 별들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면 비츠 씨는 별들에 의해 만들어진 몽환 자체를 그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도윤의 말에 비츠 부인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젊은 사람이 남편의 그림에 대해 정확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평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미소를 짓더니 도윤과 슈미츠 교수를 거실 소파에
앉게 한 뒤 커피를 내오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때? 그림들이 마음에 드나?”
그녀가 사라지자 슈미츠 교수가 은근히 물었다. 도윤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선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요. 화가의 개성도 뚜렷하고요. 그의 전시장을 찾았던 미술 중개상들이 왜 그림을 팔아주겠다면서 접근했었는지 이해가 되네요.”
“좋은 화가였지. 끝내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죽은 게 안타까울 정도로. 콜린 자신은 평생 그 점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아쉽네요. 제대로 홍보하고 비평을 받았다면 상당히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그림들인 것 같은데. 그럼 예술적인 인정도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늦지는 않았어. 화가는 이미 죽었지만 그의 그림들은 이렇게 잘 남아 있으니까. 뒤늦게나마 고흐의 가치를 발굴해냈던 사람들도 역시 당대의 미술 중개상들이었잖은가?”
“콜린 비츠 씨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셨죠? 그럼 살아 계실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림의 전시와 판매를 권하지 그러셨어요? 교수님은 좋은 중개상이나 화랑들을 많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
도윤의 말에 슈미츠 교수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콜린이 살아 있을 때 그 친구에게는 물론이고 비츠 부인에게도 적극적으로 그림을 알리자고 수백 번은 더 얘기했을 거네. 하지만 콜린 그 고집통은 둘째 치고라도 비츠 부인마저 그림을 파는 걸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 남편의 뜻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다는 거야.”
“비츠 씨도 생전에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기는 했다면서요? 그럼 판매는 어렵더라도 그림을 전시하고 비평가들에게 그에 대해 언급해 달라는 부탁은 할 수 있지 않나요?”
“그것도 비츠 부인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남편이 죽은 뒤로는 새로운 전시회를 여는 것 자체를 꺼리는 눈치야.”
도윤이 뭐라고 한 마디 더 하려는 찰나, 비츠 부인이 세 잔의 커피를 쟁반에 받쳐들고 거실로 왔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대화는 잠시 끊기고 말았다.
“자, 그림들을 감정하기 전에 커피 한 잔씩들 먼저 드세요.”
슈미츠 교수와 비츠 부인은 커피를 마시면서 죽은 콜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생전의 그의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도윤으로서는 커피를 홀짝이면서 두 사람의 대화에 묵묵히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가 비츠 부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인께서 저를 콕 집어 감정을 부탁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특별히 저를 지목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비츠 부인이 그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문득 쓸쓸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도윤 씨라고 하셨죠? 그날 도윤 씨가 보여준 용기 때문이에요.”
“용기라고요?”
“네. 워싱턴 국립미술관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미술관일 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힐 수 있을 정도로 권위 있는 곳이에요. 그곳의 감정가들은 자부심이 아주 강할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미국 감정계에서 영향력이 세죠. 그런데 이도윤 씨는 그런 감정가의 감정 결과에 정면으로 대드셨잖아요.”
“그건 제가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철이 없고 무모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학교를 졸업한 뒤에 제가 주로 활동할 곳은 미국보다는 한국이기도 하고요. 워싱턴 국립 미술관의 권위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게 한국에까지 미치지는 못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기존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는 용기 있는 감정가에요. 아까 제 남편의 그림을 평하는 말을 듣고는 역시 제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어요.”
도윤이 옆에 앉은 슈미츠 교수를 힐끗 쳐다보자 그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 사람 사이에 그 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던 게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많은 시간을 내기는 좀 어려운 처지입니다. 이왕 왔으니 얼른 감정을 원하시는 그림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잖아도 박사 논문 준비 때문에 몹시 바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럼 곧바로 그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할게요.”
비츠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도윤과 슈미츠 교수는 그녀를 따라 그림들이 보관된 방으로 움직였다. 생전에 콜린의 작업실로 쓰였던 것이 분명한 방에 들어서는 순간, 도윤은 저도 모르게 헉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 방에는 콜린 비츠의 유작들과 함께 서로 다른 화풍을 가진 그림들이 벽면이 빽빽하도록 걸려 있었다. 일부는 더 이상 걸 자리가 없어 밑바닥에 기대어져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그림들에서 하나같이
환한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보물창고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네요.”
벽면을 돌아보며 그림들을 한 차례씩 죽 살펴본 도윤이 그런 말을 내뱉자 슈미츠 교수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 방에 여러 번 들어와 봤지만 그때마다 비슷한 느낌을 받고 했어. 웬만한 부자가 아닌 이상 개인이 이렇게 많은 걸작들을 소장하기는 어려울 거야.”
“부인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이렇게 방치해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림들이에요.”
“방치라. 사실 그 말이 맞아. 온도와 습도를 제대로 조절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서 이대로 두면 오래지 않아 그림들이 훼손될 거야. 그래서 자꾸 차라리 팔아버리기를 권하는 것이기도 하고. 누군가 비싼 돈을
주고 사면 이것보다는 소중히 관리를 할 테니까.”
도윤은 긴 시간을 들여 콜린 비츠의 유작들은 물론이고 그가 생전에 동료들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그림들까지 꼼꼼하게 감정했다. 그런 뒤에야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던 비츠 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이건 데이빗 하퍼의 그림이고, 저건 안나 포슬렛의 작품이 분명하군요. 파이언 쿤츠와 알렉스 게오르그의 그림들도 보이고요. 콜린 비츠 씨께서는 생전에 동료들과 그림을 많이 주고받았던 모양이네요?”
그러자 그녀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이는 일반 관객들보다는 동료 화가들에게 자기 그림을 보여주는 걸 더 좋아했어요.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그림을 진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요. 그러다 서로 마음이 맞으면 각자의 그림을
교환하기도 했죠.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해서 모은 것들이에요.”
“글쎄요. 이 그림들은 일반 관객들에게 전시하더라도 분명히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기 있는 그림들은 모두 진작입니다. 비츠 씨의 작품을 제외한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전부 포함해서요.”
“다행이네요. 그럼 지금 말씀하신 내용을 문서로 작성해서 주실 수 있으세요?”
“감정서를 써달라는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저는 전문 감정가가 아니라서….”
“그런 건 상관없어요. 어차피 감정가라는 게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보기에 이도윤 씨는 아주 뛰어난 감정가에요.”
비츠 부인의 말처럼 세계 어느 곳에도 국가가 발부하는 공인 감정가 자격증 같은 것은 없었다. 도윤이 다시 슈미츠 교수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자 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어깨를 으쓱한 뒤 자신의
의견을 담은 감정서를 만들어주었다. 작품이 워낙 많기 때문에 화가의 이름과 그림 제목들을 일일이 쓰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하시는 대로 감정서를 작성했습니다. 괜찮다면 한 가지만 충고를 드려도 될까요?”
도윤이 감정서를 건네며 말하자 비츠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이도윤 씨 얘기라면 귀담아 들을게요.”
“여기 있는 그림들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보관 상태가 너무 안 좋습니다. 모두 좋은 그림들이기는 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방치하면 결국 오래지 않아 상하고 말 거예요. 형편이 되신다면 온도와 습도 조절
장치라도 해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비츠 부인이 뭔가를 망설이는 듯 하더니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그런 설비를 갖추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내심 워싱턴 국립미술관 같은 곳에 이 그림을 모두 기증할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어요. 작년에 크리스마스 자선 파티에 그림을 기증했던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런 수모를 당하고 말았지요.”
그림을 몽땅 기증할 생각이 있다고? 도윤과 슈미츠 교수가 깜짝 놀라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