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90화 (290/300)

290화

<외전 4. 갤러리의 주인>

귀국하기 전에 영국에서 잠깐이나마 휴가를 즐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한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간신히 당장 급한 일들은 해결했다는

생각에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밤늦게 귀가한 아빠가 그녀를 거실로 불러냈다.

“서라야. 다음 주 화요일이 할아버지 생신이라는 거 알지?”

“네. 알아요. 그래서 영국에서 귀국하기 전에 미리 할아버지 생일선물을 준비했어요.”

“그래? 그건 잘했다. 화요일 저녁에 할아버지 댁에서 일가친척이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으니까 다른 약속 잡지 마라. 퇴근하면 고모하고 함께 곧장 할아버지 댁으로 와.”

“그렇게 할게요.”

그때만 해도 늘 있는 가족 모임이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최인탁 회장은 최서라가 영국에서 가져온 넥타이핀과 와이셔츠의 커프스단추 세트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단하구나. 이걸 서라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네. 영국에 있을 때 유명한 금속 공예 장인에게서 잠시 기술을 배웠거든요. 아직 사람들에게 내놓기는 부끄러운 솜씨지만 그래도 정성을 다해 만들었어요. 마음에 드세요?”

“들다마다.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따로 공예까지 배우려면 힘들었을 텐데 기특하구나. 내일 출근할 때 꼭 이걸 달고 나가마.”

최서라가 선물한 공예품들을 들여다보는 최인탁 회장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변했다.

그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었지만 정작 손녀는 최서라 하나뿐이었다. 평소 장신구에 크게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운 손녀가 직접 만들었다는 넥타이핀과 커프스단추를

선물받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던 것이다. 더구나 공예의 정교함이나 문양의 품격이 의외로 평범하지 않았다.

최서라의 선물 덕분인지 식사 내내 오간 대화는 자못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그런 화목한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자 장남인 최병준과 최서라의 아빠이자 차남인 최병호, 그리고 막내 최수아는 모두 최인탁을 따라 2층에 있는 서재로 올라갔다. 그룹 내부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최인탁의 자식들이기에

앞서 각각 미래 건설과 미래 전자, 그리고 청파 갤러리를 맡고 있는 그룹의 핵심 멤버들이었다.

집안 어른들이 모두 사라지자 최서라를 비롯한 손자 손녀들은 거실에 모여앉아 함께 차를 마셨다. 자식이라고는 달랑 딸 하나를 낳은 최병호와는 달리 최인탁의 장남인 최병준은 아들만 셋을 두었다. 그 가운데

둘째와 셋째는 아직 미혼이었지만 장남인 최진석은 이미 몇 년 전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낳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얼마 전에 귀국한 최서라의 유학 생활이 대화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다가 그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때쯤, 계속 침묵을 지키던 최진석의 아내 유세희가 문득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최서라에게 말을

걸었다.

“청파 갤러리 일은 어떠세요, 아가씨. 할 만 하세요?”

최서라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갤러리에 출근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적응하느라 조금 정신이 없기는 해요. 그래도 고모가 많이 도와주시고 직원들도 친절해서 큰 문제는 없어요.”

“다음 달에 뉴욕 크리스트 정기 경매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신다면서요?”

“네. 고모가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계시던 그림 몇 점이 이번 경매에 나오거든요. 그래서 저도 경험을 쌓을 겸 해서 고모랑 함께 가기로 했어요.”

“런던에서 금속 공예를 배우셨다고 하셨으니까 경매에 공예품이 나오면 확실히 아가씨가 도움이 되겠네요. 하지만 그림은 워낙 가격 변동이 심해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으냐고?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안 괜찮을 리도 없지만 그러면 또 어떡할 건데? 최서라가 약간 뜨악한 표정으로 유세희를 쳐다보자 최진석이 얼른 나섰다.

“이 사람은 고모가 또 터무니없는 가격에 그림을 낙찰 받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야. 솔직히 그동안 고모가 너무 비싼 값을 주고 그림을 산 적이 몇 번 있잖아.”

“터무니없다고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청파 갤러리가 사들인 그림들 가운데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로 비싼 돈을 지불한 건 없는 것 같던데요?”

그러자 유세희가 이때다 싶었는지 다시 끼어들었다.

“그건 아가씨가 아직 갤러리 사정을 잘 모르셔서 그래요. 재작년에 고모님이 매입하신 마크 로스코의 ‘레드 앤 블랙(Red and Black)’만 해도 1300만 달러에 낙찰 받았잖아요. 그것 때문에 하마터면

갤러리 재정이 휘청할 뻔했다고 들었어요.”

1300만 달러면 한화로 166억에 달한다. 아무리 청파 갤러리가 큰 미술관이라고 해도 그 정도 가격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액수이기는 했다. 하지만 최서라의 생각은 달랐다. 유세희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 건은 저도 알아요. 액수만 놓고 보면 굉장히 큰 지출이기는 하죠. 하지만 로스코의 그림은 그 뒤로도 계속 값이 오르고 있어요.”

“에이, 나야 로스코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림 한 점에 백 억이 넘는 건 조금 너무한 거 아니냐? 그 사람이 무슨 다빈치나 피카소도 아니고.”

최진석이 다시 끼어들었다. 최서라는 그를 보며 살짝 혀를 찼다.

“로스코도 굉장히 유명한 화가예요. 그의 그림들 가운데 가장 비싼 건 이미 1억 달러에 호가되고 있으니까요. 최근까지 5000만 달러 이상에 팔린 것만 해도 벌써 여섯 점이나 돼요. 언니 비싸게 샀다고

말씀하신 ‘레드 앤 블랙’도 지금 당장 다시 팔면 최소 1500만 달러 이상 받을 텐데요?”

그 말에 유세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부부가 쌍으로 아주 작심을 한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앞으로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런 고가의 그림은 값이 10퍼센트만 빠져도 앉은 자리에서 수십억이 날아가는 셈이에요. 그리고 매입 가격보다 비싸게 판다고 해도 어지간해서는

세금을 제할 경우 오히려 손해가 나지 않나요?”

유세희의 말은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하지만 그건 미술품 시장의 특성을 전혀 모르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최서라로서는 바로 그 점이 이상했다.

‘언니가 은근히 청파 갤러리를 탐내고 있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왜 오늘따라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고모를 깎아내리려 들지? 마치 미술시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청파 갤러리의 현 관장인 최수아는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어려서부터 그림을 비롯한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다. 관장에 취임한 이후로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의 미술계에서도 나름대로 큰손으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 그녀의 전공은 미술과 무관했다. 최서라 역시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공부했고, 영국에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미술사와 예술경영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에 반해 최진석의 아내인 유세희는 대학에서 서양회화를 전공했다. 요즘도 집에 화실을 만들어놓고 이따금씩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는 처음 최진석과 결혼할 때부터 은근히 청파 갤러리에 관심을

드러내고는 했는데,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노골적이었다.

“이상하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화를 전공했던 언니라면 시장에서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어떻게 거래되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로스코뿐만이 아니라 널리 알려진 대가들의 그림

값이 떨어진 적이 있나요?”

최서라가 똑바로 쳐다보며 묻자 유세희가 움찔했다. 그러자 자기 아내가 여동생에게 면박을 당한다고 생각한 최진석 성큼 나서며 입을 열었다.

“야, 너야 말로 그게 무슨 소리냐? 그림도 시장에서 거래되면 어차피 상품이나 마찬가지잖아? 당연히 경우에 따라서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겠지. 로스코인지 뭔지 하는 사람의 그림이라고 해도 가격을

붙들어 매놓은 것도 아닐 텐데 떨어질 날이 없기야 하겠어?”

“로스코의 그림 값이 떨어질 수도 있을 거라고요?”

“당연한 거 아냐? 시장에 나온 모든 물건은 그게 뭐든 어쩔 수 없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될 수밖에 없어. 너도 학부 때 경영학을 배웠으니까 잘 알 거 아냐? 로스코의 그림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거래 가격도 내려가겠지.”

최서라가 기가 막혀 실소를 터트리는 사이, 유세희가 눈을 흘기면서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최진석이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자신의 아내를 쳐다볼 때,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최서라가

입을 열었다.

“미술품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게 맞기는 한데, 대가들의 작품은 정말 큰 일이 있기 전에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요. 갑자기 급등하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떤 물건이든 경기가 나쁘면 가격이 떨어지는 거 아니야?”

“미술품은 안 그래요. 경기가 나쁘면 오히려 가격이 올라가죠. 그건 어떤 면에서 석유나 금보다 더 안전적인 투자 상품이에요. 그래서 큰 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미술품을 사들이는 거예요. 단순히

회사 로비나 사무실을 장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진석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옆에 앉은 유세희를 돌아봤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말이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그러자 유세희가 인상을 살짝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눈빛으로 항의와 핀잔이

오가는 것을 지켜보던 최서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미술품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래도 그건 일반적인 상품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요. 모든 미술품들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어요. 피카소의 그림이 수천 점이 있다고 해도

각각의 그림 가격은 저마다 독립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이에요. 모든 미술품들은 예외 없이 세상에서 유일하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제멋대로 가격이 정해지지는 않을 거 아니냐?”

“미술품에는 애초에 정해진 가격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요. 오늘 100만원 하던 작품이 내일은 갑자기 1억 이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그럼 오늘 1억하던 게 내일은 백만 원이 될 수도 있을 거 아냐?”

“그건 진작인 줄 알았던 작품이 위작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해요. 대부분의 미술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가격이 올라가요. 특히 화가가 죽었을 경우에는 더 그렇죠. 더 이상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미술품은 전쟁이나 큰 재앙이 생기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아요.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면 거의 반드시 다시 올라가고요.”

“그럼 미술품을 오래 가지고만 있으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냐?”

“대가들의 작품일 경우에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요. 물론 물가를 고려해서 실질적인 이익을 계산해야 되겠지만 최소한 주식이나 금보다는 안정적인 투자 상품이에요. 물론 고모나 청파 갤러리가 오로지 투자

목적으로만 미술품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요.”

말을 하면서도 최서라는 저 사람들에게 청파 갤러리를 맡기면 절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청파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할아버지가 큰돈을 세워 만든 곳이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그룹 차원에서 적지 않은 투자가 이루어졌고, 덕분에 이제는 오성의 아리움 미술관을 거의 따라잡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소장품이 늘어났다.

‘그렇더라도 할아버지나 고모가 청파 갤러리를 세운 건 단순히 투자를 위해서가 아니야. 좋은 미술관을 세워달라는 할머니의 유지를 받은 결과니까. 정말로 그룹이 부도 위기에 몰리지 않는 한 그분들은 청파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절대로 팔지 않을 거야’

그런데 지금 그녀의 오빠인 최진석이나 유세희가 청파를 탐내는 이유는 아무래도 미술품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갤러리를 맡는다면 경우에 따라서 회사 운영 자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소장 미술품들을 함부로 팔아치울 소지가 충분했다. 그건 최서라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 * *

최인탁 회장의 생일이 지난 지 몇 주가 지나자 뉴욕 크리스티 경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경매는 매년 봄가을로 실시되는 뉴욕 크리스티의 정기 경매 가운데 하나였다. 그만큼 그동안 크리스티가 애써

섭외하거나 발굴한 좋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온다는 뜻이었다.

경매를 한 주 앞두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최서라는 자기 책상에 앉아 경매에 나올 미술품들의 도록을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때 최수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잠깐 내 방으로 좀 올래?”

최서라가 도록을 챙겨들고 관장실로 가자 뜻밖에도 유세희가 최수와와 함께 소파에 마주앉은 채로 차를 마시고 있는 게 보였다. 최수아의 얼굴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떨떠름했다.

“언니가 오셨는지 몰랐네요. 어쩐 일이세요?”

최서라가 최수아의 손짓에 따라 자리에 앉으며 묻자 유세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쩐 일이긴요? 저도 미술이 전공이잖아요. 그래서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도 볼 겸 고모님에게 부탁드릴 것도 있어서 겸사겸사 왔어요.”

부탁? 최서라가 의아한 눈빛으로 최수아를 보자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에 뉴욕 크리스티 경매 때문에 우리가 미국으로 가기로 했잖아? 그런데 진석이 처가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하는구나.”

“언니가 경매에 참석한다고요? 이번 경매에서 특별히 사고 싶은 작품이라도 있으세요?”

유세희가 입에 댔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생긋 웃었다.

“마음 같아서야 거기 나온 작품들 가운데 절반은 사고 싶죠. 하지만 그건 미래 건설을 다 팔아도 될까 말까 하잖아요. 꼭 경매에 참가한다기보다는 그냥 오랜만에 뉴욕 구경도 할 겸 갤러리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배우고 싶어서 고모를 따라가기로 했어요.”

갤러리 일을 배워? 당신이 왜? 최서라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살짝 굳어졌다. 그녀의 반응을 살피던 최수아가 입맛을 다시며 말을 꺼냈다.

“큰오빠, 그러니까 네 큰아버지가 전화를 했다. 진석이 처를 함께 데려가줬으면 좋겠다고.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니까 세계적인 경매를 구경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구나.”

최서라가 구겨지려는 얼굴을 억지로 펴며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호영이는 어쩌고요?”

최호영은 최진석과 유세희의 아들이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때였다. 하지만 유세희는 그런 말 말라면서 손을 내저었다.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둘이나 되는데 호영이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겠어요? 일주일 정도는 제가 없어도 별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거야 그렇지만 애초에 이번 출장에 그녀가 아이까지 내버려두면서까지 따라갈 이유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더구나 그녀가 굳이 경매를 구경하는 게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두 사람이

반응을 통해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을 텐데도 유세희의 표정은 태연자약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럼 저는 말씀하신 대로 호영이 때문에라도 일어서야 하겠네요. 그래도 일주일씩이나 자리를 비워야 하니까 그 전에라도 열심히 엄마 노릇을 해야지요, 호호. 그럼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뵐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고개를 까닥 숙여 인사하더니 휑하니 사라졌다. 그녀가 문을 닫고 사무실을 나가자 최수아가 못마땅한지 노골적으로 혀를 찼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웬 김칫국을 저리도 마셔대는지, 쯧쯧. 아버지도 그렇고 내가 저희들에게 갤러리를 넘길 가능성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최서라도 유세희의 태도가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수아처럼 대놓고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최서러가 들고 왔던 도록을 펼쳐서 최수아 앞에 내밀었다.

“거기 좀 보세요.”

그녀의 말에 최수아가 펼쳐진 도록을 들여다보았다. 반지와 팔찌, 목걸이와 귀걸이 등을 포함한 몇 개의 금은 세공품 사진들. 하나같이 여러 개의 보석이 장식된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공품들이었다.

“이건 제작 시기만 대충 18세기로 짐작될 뿐 정확한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물건들이잖아? 여기에 관심 있어?”

최수의 말에 최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격만 적당하면 갤러리에서 구입하는 게 어떨까 해서요. 제가 보기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에 왕궁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인 거 같아요.”

“왕궁이라고? 설마 베르사유에서 나왔다는 말이야?”

“세공 방식이나 문양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라서 확신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프리뷰 전시장에 가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거예요.”

“사실이라면 낙찰가가 굉장히 높게 올라가겠구나?”

“그거야 물건이 정말 베르사유에서 흘러나온 것들일 경우의 얘기죠. 그리고 설사 그렇더라도 그걸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일단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는 있을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시작가가 그렇게 높게 매겨져 있지 않았다. 최수아가 최서라의 눈을 쳐다봤다.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이번 경매에 작심을 하고 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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