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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91화 (291/300)

291화

출장도 일종의 여행이라고 생각할 때, 최병준 미래건설 사장의 며느리인 유세희는 여행의 동반자라서 그다지 좋은 상대라고 보기 어려웠다. 뉴욕에서 열리는 크리스티 정기 경매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 공항으로 간

그녀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고모님도 비즈니스 석을 타신다고요? 왜요?”

최수아 관장에게 묻는 그녀의 태도는 거의 항의에 가까웠다. 실장 직함을 단 최서라야 그렇다 쳐도 명색이 청파 갤러리의 관장인 그녀마저 퍼스트 클래스가 아니라 비즈니스 석 표를 끊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출장은 개인적인 관광이 아니라 회사 일로 가는 공무다. 내 돈이 아니라 회사 돈을 쓰는 건데 쓸 데 없이 낭비하는 건 좋지 않아.”

“낭비라고요? 고모님은 갤러리 관장이시잖아요? 전세기를 빌리는 것도 아니고 고작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걸 가지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눈앞에서 대놓고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출장을 다닌다는 핑계를 내세워 회사 돈을 흥청망청 쓴다고 뒤에서 숙덕일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어. 꼭 필요한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공연히 그런 소리를 듣고

다닐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경매에 참석하시면 한 번에 몇 백 억이나 되는 미술품을 사기도 하시잖아요? 그런 큰 손이 비즈니스 석에 앉아서 가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하면 체면도 깎이고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별 소리를 다하는구나. 비즈니스 석에 앉아 간다고 체면이 깎일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 그리고 말했잖아. 이번 여행은 공식적인 출장이라고. 나중에 회계 감사를 받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이런 여행에서는

공연히 꼬투리를 잡힐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아. 그리고 비즈니스 석만 타도 여행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어.”

유세희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난감하기도 했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퍼스트 클래스 표를 예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비행기를 타야 하는 순간이 되자 본의 아니게 자신보다 어른인 최수아보다 편한

좌석에 앉아서 가게 된 것이다.

‘이제 와서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 석은 또 뭐야? 설사 회사 돈으로 비즈니스 석을 끊었다고 해도 자기 돈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면 되잖아. 돈도 많은 양반이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사람 난처하게.’

이코노미도 아니고 비즈니스 석을 타고 미국에 가는 게 서민 코스프레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유세희에게 있어서 퍼스트 클래스 미만은 모두 서민이었다. 그녀는 고민 끝에 전혀 내키지 않는

권유를 했다.

“그러지 말고 그럼 제 자리에라도 앉으세요. 제가 고모님 자리에 앉아서 갈게요.”

하지만 최수아는 그런 제안마저도 단칼에 거절했다.

“비행기 타고 가면서 서라하고 할 얘기가 많아. 그래서 좌석도 일부러 함께 붙어 있는 걸로 끊었으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신경 쓰지 말고 너라도 편하게 앉아가거라. 우리야 출장이지만 너는

관광이잖아.”

그녀의 말에 유세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공무로 출장 가는 사람들을 네가 공연히 따라붙은 거라는 뜻을 슬쩍 드러낸 말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었다면 공항 현장에서라도 비행기 표를 비즈니스 석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자신의 말마따나 다른 사람도 아닌 집안 어른이 비즈니스 석에 앉아서 가는데 조카며느리인 그녀가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가는 건 누가 봐도 모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세희는 그대로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했다.

‘솔직히 나보다 백배는 부자인 양반이잖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굳이 불편한 자리에 앉아가겠다는데 뭘 어쩌겠어? 내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백배가 아니라 만배는 부자였다. 미래 건설 사장도 아니고 그 아들의 부인인 유세희가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최수아에 비해 가소로울 정도로 적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어느 모로 보나 지금 최수아에게 잘 보여야 할 입장이었다. 유세희는 욕심에 비례하는 현명함을 갖추지 못한 여자였다.

* * *

유세희의 난감함은 뉴욕에 도착해서도 계속되었다. 그녀는 사전에 청파 갤러리 측에 물어 두 사람이 묵기로 예약한 호텔을 확인했다. 그런 뒤 자신도 그곳의 스위트룸을 잡았는데 막상 체크인을 할 때가 되자 또

다시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최수아도 스위트룸을 예약하기는 했는데, 최서라가 그 방에서 함께 묵는 걸로 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정말 아가씨하고 같은 방을 쓰시게요? 왜요? 호텔 측에서 방이 없다고 하던가요? 그럼 고모님이 제 방을 쓰세요. 제가 아가씨하고 같은 방에 있을게요.”

그녀의 입장에서는 최수아가 일부러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수작을 부린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나 최수아는 그녀의 기특한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서라하고는 이번 경매에 관해서 계속 상의를 해야 돼. 그러니까 할 얘기가 있을 때마다 계속 내 방으로 부르는 것보다는 그냥 같은 방에 묵는 게 여러모로 편리해. 어차피 방이 커서 둘이 묵는데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기도 하고.”

유세희가 욕심이 많기는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최수아 관장은 그런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의사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비록 오빠인 최병준 미래 건설 사장의 은근한 강요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의 며느리인 유세희의 철없는 동행을 허락하기는 했다. 그러나 최수아가 물러선 자리는 딱 거기까지였다. 어쩔 수 없이 유세희의 동행은

받아들이기는 하겠지만 갤러리의 공식적인 업무에 관해서는 그녀를 껴 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을 명백하게 밝힌 것이다.

‘정말 너무 하시네. 그런다고 내가 호락호락 물러설 것 같아?’

집안이 넉넉한 덕에 어렵지 않게 자란 그녀는 중매를 통해 남편인 최진석과 결혼했다. 그녀가 선뜻 최진석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은 그가 재벌가의 장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 그룹이 오성 그룹과 마찬가지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컸다.

‘상황을 보니까 그룹 회장 자리는 아무래도 시아버지가 아니라 작은 아버님에게 돌아갈 것 같아. 하지만 작은 아버님의 자식이라고는 서라 아가씨밖에 없잖아. 내가 청파 갤러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나중에라도 미래 그룹 전체를 우리가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 어떻게 해서든지 서라 아가씨가 갤러리 관장이 되는 건 막아야 해.’

더구나 유세희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일가 가운데 갤러리를 맡을 사람으로 자신이 가장 어울린다고 주장하기에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최수아 관장에게

호감을 먼저 얻어야 했다. 문제는 그녀 자신이 욕심에 어울리는 현명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이번 경매의 핵심은 데이빗 호크니 작품이라면서요? 난 그 사람 그림 별로던데.”

프리뷰 전시를 보기 위해 호텔을 나와 뉴욕 크리스티로 가던 차 안에서 유세희가 문득 그런 말을 내뱉었다. 최서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호크니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고요? 왜요?”

“그 사람 게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그 사람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왠지 기분이 나빠요.”

최수아의 표정을 흘낏 살핀 최서라는 기가 막혔다. 그게 지금 고집을 부려가면서까지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이 할 소리야?

최수아 관장이 이번 경매에 참석하는 주된 이유가 바로 호크니의 그림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굳이 서울에서 뉴욕까지 날아왔는데, 설사 생각이 그렇더라도 그냥 가만있을 것이지 그걸 굳이 본인의

면전에서 그런 식으로 얘기해야 돼? 아니나 다를까, 최수아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화가 개인의 인간성까지 따지면 좋아할 만한 그림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거다. 예술성은 그 사람의 인간성과 비례하는 게 아니야. 그림 값도 마찬가지고.”

바보라고 해도 최수아 관장의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유세희는 마땅히 거기서 사과하고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자기 입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인간적으로도 흠이 없는 사람의 그림을 사는 게 더 낫지 않나요? 창작은 아름다운 일이에요. 저는 아름다운 사람의 손에서 태어난 작품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것보다 더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따지면 티치아노는 살인을 저질렀고, 바그너는 나치를 찬양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티치아노의 그림이 불결하다거나 바그너의 음악이 시끄러운 소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이, 고모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너한테 뉴욕까지 따라오라고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경매의 핵심이 호크니의 그림이라는 사실 역시 비밀이 아니고. 그 사람 그림이 싫다면 그냥 서울에 있으면 될 것이지 뭐 하러 여기까지 온 거냐?

경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뉴욕 시내나 구경하다가 돌아가. 굳이 우리를 따라다닐 필요 없으니까.”

그제야 유세희는 자신이 호랑이 콧수염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얼굴 가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입방정을 떨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최수아 역시 더 이상 싫은 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하지만 일행이 크리스티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의 분위기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 * *

데이빗 호크니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LA를 너무나 사랑했던 화가다. 그는 화가로 데뷔한 이후에 우연히 방문했던 LA에 매료되어 그곳에서 수영장이 딸린 커다란 집을 구매해서 오랫동안 살았다. 친구가 죽는

불행한 사고로 인해 지금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지만 80이 넘은 현재까지도 살아 있는 거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호크니는 잭슨 폴록을 중심으로 한 추상 표현주의적 회화가 판을 치던 시기에 주로 활동했으면서도 끝까지 인물과 사물의 형태가 명확한 구상주의 작품을 추구했던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는 유난히 수영장이

자주 등장해서 ‘물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호크니는 그림 외에도 사진과 판화, 디자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두루 활동 영역을 넓혔다.

“도록을 통해서도 확인했지만, 확실히 예상보다 호크니의 그림이 많이 나왔네요. 화가가 너무 연로해서 당분간은 소장자들이 작품을 꽉 쥐고 있을 줄 알았는데.”

프리뷰 전시장을 쭉 둘러본 최서라의 말에 최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크니도 이미 80을 훨씬 넘겼으니 아무래도 십 년 이상 살기는 힘들다고 봐야겠지. 조만간 그가 죽고 나면 그림 값이 크게 뛸 게 분명한데도 이렇게 많은 그림이 나왔다는 건 역시 크리스티의 능력으로

봐야 할 거야. 이번 경매는 호크니가 죽고 난 뒤에 그의 그림 값이 어디까지 뛸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될 수도 있겠구나.”

프리뷰 전시장에는 그의 대표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한다고 볼 수 있는 그림들이 여럿 보였다. 호크니를 유명하게 만든 수영장 그림은 물론이고 두 명의 인물을 함께 그린 이른바 ‘이중 초상’, 그리고

날씨 시리즈에 해당하는 그림들이 모두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이 전시장을 둘러보는 사이, 유세희는 입을 꼭 다문 채로 묵묵히 그들을 따랐다.

경매의 중심은 호크니의 그림이었지만, 이번 경매에서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금속 공예품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대개 특별 경매에서는 한두 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들을 모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처럼 며칠에 걸쳐 많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입찰에 붙여지는 정기 경매에서는 작품의 분야가 다양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 이것 좀 보세요. 솔직히 저는 이번 경매에서 우리 청파 갤러리가 이 장신구들을 매입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보기에는 분명히 소장 가치가 있어요.”

최서라의 말에 최수아는 물론이고 유세희까지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최서라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테이블 위로 유리 상자들이 죽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금은 장신구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반짝였다. 그것들을 슬쩍 살펴본 유세희가 이번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디자인은 제법 화려한데 보석이 하나도 박혀 있지 않네요? 제작 연대가 18세기라면 귀족들이 아니라 당시의 부르주아들이 쓰던 건가요?”

최서라는 그녀의 저렴한 평가에 하마터면 실소를 터트릴 뻔했다.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프랑스 혁명이 끝난 이후의 18세기 말이다. 반면에 눈앞에 놓인 장신구들의 추정 연대는 18세기 중엽이었다. 당시에도 신흥 부르주아들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화려한 디자인의 금은 장신구들을 몸에 달고 다닐 정도로 부유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보석들이 박혀 있지 않기는 해도 이 세공들은 모두 뛰어난 장인들의 솜씨에요. 왕실이나 굉장히 부유한 귀족들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주문할 수 없었던 것들이라고 봐야 해요.”

그녀의 말에 유세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왕실에서 쓰던 장신구라면 이렇게 밖으로 돌아다니기 어렵지 않나요? 우리나라에서도 왕실에서 쓰던 물건들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잖아요. 아무리 프랑스가 지금은 공화국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18세기만 해도 왕이 다스리던 시절 아니었어요? 왕궁에 있던 물건들이 경매에 나온 걸로 봐서는 혹시 그럴 듯하게 만든 가짜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에 최수아 관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는 크리스티야. 이곳의 감정사들이 모두 눈 뜬 장님이 아니고서야 가짜를 경매에 내놓을 리가 있겠니? 그랬다면 크리스티가 지금처럼 유명해질 수 없었겠지.”

유세희는 순간적으로 이를 꼭 깨물기는 했지만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입을 닫았다. 최서라는 그런 그녀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것으로 유세희가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는 게

분명해졌다.

‘화가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갤러리를 운영하려면 역사와 경제를 모르면 곤란한데….’

1789년 10월 5일, 주로 어시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민중들이 파리 근교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을 향해 행진을 시작한다. 나중에 ‘시월 행진’이라고도 이름 붙여진 이 행진으로 인해

루이 16세와 그의 아내 마리 앙트와네트는 파리로 강제 연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베르사유 궁전은 폭도로 변한 민중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말았다.

“지금도 베르사유 궁전에 가면 벽화나 높은 곳에 매달린 샹들리에 같은 것을 빼고는 생각보다 제대로 남아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요. 당시 궁전에 쳐들어간 사람들이 안에 있던 것들을 닥치는 대로 훔치거나

들어냈거든요. 그때 사라진 물건들 가운데는 지금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요.”

심지어 현재 베르사유 궁전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옛날 가구들 중에는 혁명이 끝난 이후에 시장으로 흘러나온 것을 프랑스 정부가 다시 매입해서 가져다 놓은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성난 시민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압수된 수많은 미술품들은 나중에 한꺼번에 경매에 붙여졌는데, 그 경매를 주관함으로써 큰 회사로 성공한 회사가 바로 지금의 크리스티였다.

“그래서 이 장신구들이 당시 베르사유 궁전에 있던 것들이라는 말이에요?”

설명에 고마워하기는커녕 유세희는 오히려 입술을 삐죽이며 그렇게 물었다. 최서라는 고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알 수 없죠. 하지만 적어도 당시의 귀족이나 왕가가 소유하고 있던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제작 연대도 그렇고 문양의 양식들이 모두 당시 유행하던 것들이거든요. 솜씨도 무척

뛰어나고요. 제 생각에는 낙찰가가 너무 올라가지만 않는다면 저희 갤러리에서도 몇 점 구입해서 소장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청파 갤러리는 회화가 중심이잖아요?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금속 장신구들을 사들이는 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때 또 다시 최수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건 아니다. 네가 갤러리 전시품들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은 모양이구나? 청파의 전시품들 중에는 우리나라 금동 불상이나 장신구는 물론이고 고가구들도 많이 있어. 서라가 마침 영국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돌아왔으니 앞으로 유럽 장신구들의 목록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녀의 말은 앞으로 갤러리를 최서라에게 물려주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말귀를 알아들은 유세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지만 말없이 등을 홱

돌리더니 다른 그림들이 걸려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최서라가 뒤에서 혀를 찼다.

“회화를 공부했다니까 그래도 그림은 조금 알겠지. 하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을 보는 안목이 너무 없고 지식도 부족해. 게다가 진짜 한심한 것은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가장 부족하다는

거야. 도대체 저런 주제에 어떻게 청파 갤러리를 넘볼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조카며느리의 등을 쳐다보는 최수아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유세희의 언행은 평생을 청파 갤러리를 지키며 살아온 그녀를 모욕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정작 유세희 자신은 자신이 뭘 잘못하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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