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92화 (292/300)

292화

최서라 일행은 크리스티 정기 경매가 시작되기 나흘 전에 뉴욕에 도착했다. 다음날은 오전 내내 프리뷰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오후부터는 다시 뉴욕 시내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다. 이

기회가 아니면 쉽게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의 약속이 촘촘하게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매가 열리기 전까지는 널 챙겨줄 여유가 없을 것 같구나. 호영이 엄마도 뉴욕이 처음은 아니지? 당분간은 혼자 알아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프리뷰 전시장을 둘러본 뒤에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최수아 관장이 그렇게 말했다. 거의 통보나 다름없는 그 말에 유세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나야 하실 분들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들인가 봐요?”

“중요하지. 세계 각국의 미술관 책임자하고 미술 평론가 같은 사람들을 만날 거니까. 마침 이번 경매 때문에 일부러 뉴욕까지 온 사람들이 많아.”

“경매에 나올 작품들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시려는 거예요?”

“그것도 있지만 미술 평론가들에게는 청파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해 달라고 부탁하려는 이유가 더 커. 그래야 작품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그런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가치도

커지니까. 미술관의 명성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알 만한 작품들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그럼 미술관 관계자들은 왜 만나시는 건데요?”

“다른 나라 미술관들하고는 서로 가지고 있는 소장품들을 교환해서 교차 전시를 하는 문제를 논의할 생각이다. 우리도 일 년 내내 자체 소장품만 전시할 수는 없잖아? 남의 걸 빌려오려면 우리도 빌려줄 만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지.”

“우리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다른 데 빌려주기도 한단 말씀이세요?”

유세희가 청파 갤러리를 ‘우리’ 갤러리라고 말하자 최수아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도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 아직은 미흡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청파 갤러리도 외국에서 관심을 보일만한 작품들을 여러 점 소장하고 있어. 이미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대여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고. 작품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일들이 꽤 번거롭기는 하지만 미술관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수해야 돼.”

아무리 미워도 일가친척이다. 최수아는 나름대로 유세희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정작 그걸 듣는 유세희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아마도 그녀의 귀에는 작품 비평과 미술품 대여가 중요한

일이라는 말보다는 ‘번거롭다’는 한 단어만 귀에 꽂힌 모양이었다. 그걸 본 최수아는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유세희는 스스로가 미술을 전공했고 또 그것을 잘 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예술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일과 예술 경영은 엄연히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다. 분명히 연관되어 있지만 어설프게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껏 물어놓고 저런 태도를 보여?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청파 갤러리를 넘보는 거야?

최수아가 화를 꾹꾹 누르고 있을 때, 유세희가 또 다시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근데 다른 수집가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한 일인가요? 어찌 보면 그 사람들은 이번 경매에서 우리와 경쟁자잖아요.”

“그것과는 별개로 그 사람들하고 안면을 터놓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아! 혹시 그 사람들하고 만나서 경매 때 너무 과열경쟁하지 말자고 제안하실 생각이세요? 하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 서로 좋기는 하겠네요.”

그녀의 말에 최수아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수집가들끼리 담합하는 건 별 소용이 없어. 눈앞에 꼭 갖고 싶은 물건이 나타나면 다들 본능적으로 응찰 팻말을 들어 올리게 될 테니까. 세상에는 자기 회사나 집까지

팔아치우면서까지 걸작들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아.”

“약속을 해봤자 어차피 잘 안 지켜질 거라는 말씀이시네요? 그럼 그 사람들을 왜 만나시는 건데요?”

“우리가 기획 전시를 할 때 그 사람들로부터 작품을 대여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 일은 이메일이나 팩스 몇 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평소에 미리미리 인간관계를

다져놓는 게 중요해.”

인간관계를 다져놓는다고? 순간 유세희는 경매에 참여하는 것보다 이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무리 첨단 과학이 발달한 세상이라고 해도 탄탄한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모든 일에서 가장

밑바탕이 된다. 그녀가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점심을 먹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유세희의 눈빛이 살아났다.

“고모님. 그럼 고모님이 그 사람들을 만날 때 제가 모시고 다닐게요. 저도 영어는 제법 하니까 제법 도움이 될 거예요.”

최수아는 속으로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유세희가 영어를 제법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녀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이가 제법 든

최수아조차 젊은 시절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지금도 일 년에 몇 달씩 업무 관계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는 했다.

“영어라면 나도 크게 불편하지 않으니까 그럴 필요 없다. 그리고 네가 그림은 좀 알지 몰라도 갤러리 운영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혀 없지 않느냐? 도움이 되기 어려울 거다.”

생각보다 차가운 거절에 유세희는 저도 모르게 발끈했다.

“경험을 따지자면 아가씨도 갤러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아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도 도와드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한테도 기회를 주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두 분만 일하고

저는 그냥 노는 게 너무 죄송해요.”

이번에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최서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이가 없었다. 정말로 나하고 자신하고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최수아가 먼저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감히 너하고 서라를 비교하자는 거냐? 도대체 서라가 지난 몇 년 동안 영국에서 뭘 하며 지냈다고 생각하니? 미술사와 예술경영학을 공부해서 학위를 땄어. 그 기간 내내 너는 집안에서 가끔씩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며 산 게 전부였고.”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그래도 갤러리를 운영하려면 그림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적어도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일가 전체에서 제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그거야 말로 그냥 네 생각이지. 너는 서라가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얼마나 뛰어난지 전혀 모르잖아? 서라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네가 더 나을 거라고 함부로 단정 짓는지 모르겠다.

자화자찬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냐?”

“설마 여기저기 오가면서 남이 그린 걸 감상만 하는 사람의 안목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사람보다 뛰어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거야 말로 자화자찬 아닌가요?”

유세희의 말이 선을 넘었다. 최서라가 아니라 현재 갤러리 관장을 맡고 있는 최수아 역시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으니까.

그녀의 얼굴이 서리가 내려앉은 듯 차갑게 얼어붙는 것을 보고 나서야 유세희는 비로소 아차 싶었다. 뒤늦게 지나쳤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이고,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계속 당당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을 본 최수아가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한 마디씩 또박또박 끊어 뱉듯이 말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난 뛰어난 감정가들은 대부분 화가나 조각가 출신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트루쓰 앤 밸류에서 우승했던 이도윤이라는 젊은 친구도 전공은 복원학과 미술사라고 하더구나. 네가 정말로

스스로를 화가라고 생각한다면 계속 그림이나 열심히 그려라. 어쭙잖게 자기 세계에 갇힌 눈으로 함부로 남의 세계를 재단하려 들지 말고.”

말을 마친 최수아는 웨이터에게 계산서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하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계산을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을 나가자 공연히 중간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 최서라가 서둘러

가방을 들고 최수아를 따라 나갔다.

최서라는 식당을 나가기 전에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유세희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자기는 됐으니 그냥 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최서라는 한숨을 푹 쉬고는 그대로 식당을 나갔다. 다시 한 번

느끼는 일이지만 현명하지 못한 욕심은 결코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없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세희는 정말로 현명하지 못했다.

* * *

식당에서의 차가운 설전이 오간 뒤로, 최수아는 유세희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매가 열리는 날이 될 때까지 식사 한 번 같이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모. 그래도 같은 식구인데 화를 좀 푸세요. 제가 자리를 마련할 테니까 식사라도 함께 하시는 게 어때요? 가족끼리 너무 냉랭하기 지내는 건 보기가 너무 안 좋아요.”

그녀는 진심으로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최수아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오히려 차가운 질책이었다.

“이 순해 빠진 녀석 같으니. 너도 정신 차려. 호영이 엄마는 지금 네 턱 밑에 칼을 들이대고 있어.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웃는 얼굴로 그 아이를 상대할 거야? 호영이 엄마가 원하면 청파 갤러리를 내

주기라도 할 거냐? 그렇게 생각하는 거니?”

최서라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언젠가 청파 갤러리를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운영하고 싶었다. 정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남에게 양보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유세희가 관장 자리에

앉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다. 고모의 말마따나 그녀는 갤러리를 운영할 만한 깜냥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지키자 최수아가 혀를 차며 못을 박았다.

“흔히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고 떠들어대지만 재벌가에서 태어난다는 게 그 자체로 행운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다.”

“무작정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이런 말을 하는 게 나도 편치는 않지만 그게 현실이다. 너도 재벌가의 일원으로 태어난 이상 결국은 경영권 다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손에 걸린 이익이 커지면 가족끼리 원수가 되는 게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싸우지 말고요.”

최수아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서라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어릴 때부터 가족 간에 재산을 놓고 눈치를 볼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같은 재벌가의 일원이라고는 해도 형제가 셋이나 되는 큰

오빠네 자식들과는 성장 과정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너더러 호영 엄마나 진석이의 것을 빼앗으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밥그릇마저 챙기지 못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어.”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최수아가 다시 한 번 다짐을 하듯 강조했다.

“뺏기지 마라. 청파 갤러리뿐만이 아니야. 넌 앞으로 미래 전자도 물려받아야 하잖아? 네가 청파 갤러리를 순순히 내놓으면 저 사람들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 결국은 미래전자까지 노리게 될 거다.”

그녀의 목소리가 엄해졌다. 순간 최서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래 전자까지 뺏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건 원래 고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청파 갤러리의 승계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파 갤러리를 잘 지키려고 노력할게요. 적어도 언니에게 넘어가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아요. 누가 관장을 맡든 중요한 건 갤러리가 잘 운영되는 것이니까요.”

그 말에 비로소 최수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아직은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영리한 아이니까 계속 배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착한 것이 그 자체로 미덕이 되는 것은 어릴 때뿐이다. 어른이 되면

자신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힘을 갖추어야 한다. 그녀는 청파 갤러리를 위해서라도 최서라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 * *

청파 갤러리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하필이면 프리뷰 전시장을 둘러보고 난 그날 저녁, 영국의 호크니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가 뜬 것이다. 그 기사를 확인한 두 사람의 얼굴은

전에 없이 어두워졌다. 여든이 넘은 고령이니 언젠가는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다.

크리스티 정기 경매가 시작되는 날, 유세희는 굳이 최수아와 최서라를 따라나섰다. 최수아는 못내 못마땅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래도 따라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30분 전에 경매장소에 도착한 일행은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경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최수아를 중심에 두고 최서라와 유세희가 각각 그녀의 양 옆자리에 앉은 형태였다.

“아무래도 호크니 그림의 낙찰가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올라갈 것 같아요. 잘못하면 저희가 원했던 가운데 한두 점은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최서라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최수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경매의 중심이 호크니의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뜬 기사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훨씬 높아졌어. 우리가 동원 가능한 자금으로는 애초에 점찍었던 그림들을 다 사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속상하네.”

두 사람은 지난 며칠 동안 유명한 수집가나 미술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고 다녔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들 호크니의 그림에 전에 없이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들

그의 입원 기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유명한 화가가 죽으면 보통 작품의 가격이 크게 뛴다.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그림을 사려는 청파 갤러리의 자금 사정은 누군가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지 않는 한 갑자기

좋아지는 게 불가능하다. 최수아가 내심 한숨을 내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유세희가 입을 열었다.

“혹시 돈이 부족해서 그러시는 거라면 제가 저희 친정에 부탁을 좀 해 볼까요?”

뜻밖의 얘기에 최수아는 물론이고 최서라마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만약 그녀가 남편인 최진석으로부터 돈을 융통한다는 등의 속편한 얘기를 했다면 당장 싫은 소리를 내뱉었을 것이다. 최진석도 자기 명의로 된 재산이 많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이 그룹 내 회사들의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처분할 수 없는 재산이라는 뜻이다.

반면에 이번 경매에 나온 호크니의 그림들 가운데는 시작가가 천만 달러 이상인 것들이 여러 점 존재했다. 간단한 스케치 정도는 십만 달러를 조금 넘는 선에서 경매가 시작되겠지만, 주요 작품들은 최소한

한화로 최소한 백 억 이상을 부를 각오를 해야지 비로소 선뜻 응찰 팻말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유세희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최수아가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됐다. 말은 고맙지만 그래봤자 조만간 다 갚아야 하는 돈이 아니냐? 올해 경매 참여를 이번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아니라면 아쉽더라도 지금 참는 게 나아. 아쉽더라도 다음 기회를 기대하는

수밖에.”

미래 그룹 정도는 아니지만 유세희의 아버지 역시 한국에서 100대 기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큰 회사의 소유주였다. 그래서 자신 있게 자금 지원을 제안했던 것인데,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최수아가 단번에

거절하자 속으로 이빨을 꼭 깨물었다.

잠시 후, 그녀가 최서라의 눈치를 흘깃 보면서 다른 애기를 꺼냈다.

“아가씨가 전에 얘기했던 그 금속 장신구들 말이에요. 오늘 보니까 시작가가 확 낮아졌더라고요. 어떤 것은 십분의 일 이하로 떨어진 물건들도 많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경매 회사 측에서 어떤 물건의 경매 시작가를 갑자기 크게 낮추거나 아예 해당 물품의 경매 자체를 철회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작품이 처음 감정했던 것과는 달리 위작이거나 큰

흠이 있는 걸로 밝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유세희가 은근히 그 점을 꼬집은 것이다. 프랑스 혁명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애초에 물건을 잘못 본 게 아니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최서라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리가 봤던 물건들은 모두 진짜예요. 18세기 왕실이나 귀족들에게 주문을 받아 납품하던 장인들의 솜씨가 그대로 묻어 있는 귀한 작품들 틀림없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작가가 크게 낮아졌다면 우리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지요.”

오늘 아침, 달라진 경매 시작가를 확인하고 최서라 역시 깜짝 놀랐었다. 아직까지 그 이유를 정확히 짐작할 수는 없지만 최서라는 고민 끝에 물건을 직접 봤던 자신의 눈을 믿기로 했다.

‘이럴 때 도윤 씨가 옆에 있었으면 크게 도움이 됐을 텐데.’

그러나 아쉽게도 도윤은 이 자리에 없었고, 지금은 자신의 힘으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될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