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95화 (295/300)

295화

조제프 달통은 파리 크리스티 소속의 금속공예품 전문 감정가다. 젊은 시절의 달통은 뛰어난 실력에 비해 인지도가 터무니없이 낮았다. 그 때문에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늘 경매시장과 화랑 근처를

맴돌아야 했다. 당연히 수입도 변변찮았다.

그랬던 그의 실력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파리 크리스티의 전문 감정사로 채용해 준 사람이 바로 그곳의 현 사장인 알퐁소 부앵이었다. 덕분에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을 받게 된 달통에게 있어서 부앵 사장은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본래 뉴욕이나 런던 크리스티에 비해 규모가 작던 파리 크리스티는 회사 전체가 프랑스 기업가의 개인 소유로 넘어가면서 최근 들어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부앵 사장 역시 전에 비해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의 입김이 훨씬 세졌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그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달통의 위상을 함께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부르셨습니까?”

뉴욕 크리스티의 정기 경매가 열리기 한 달 전, 평소처럼 출근해서 의뢰가 들어온 금속공예품들을 감정하고 있던 달통에게 사장실로 올라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가 사장실로 들어가자 부앵 사장이 그의 앞으로

두툼한 서류철과 함께 USB를 하나 내놓았다. 슬쩍 들춰본 서류에는 여러 가지 금속 공예품들의 사진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컬러로 인쇄되어 있었다.

“자네도 다음 달에 뉴욕에서 정기 경매가 열린다는 걸 알 거야. 근데 그 경매에 재미있는 물건들이 나올 것 같아. 그래서 미안하지만 자네가 그것들을 좀 감정해줘야겠어.”

난데없는 부앵 사장의 말에 달통이 움찔했다.

“출장감정인 겁니까?”

“그래. 뉴욕에도 금속공예품 감정가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번에 경매에 붙일 물건들에 대해서는 그 친구들의 눈을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자네가 수고 좀 해주게.”

“괜찮겠습니까?”

감정은 객관적인 증거 못지않게 감정가의 주관적인 해석과 판단이 결론을 크게 좌우하는 분야다. 처음부터 파리 크리스티로 들어온 물건이라면 모를까, 남들이 이미 일차 감정을 끝낸 물건들에 대해 다른 사람이

또다시 의견을 내놓는다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앵 사장의 뜻은 단호했다.

“이번에 나온 물건들의 제작연대가 18세기 중엽으로 추정되고 있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라는 뜻이지. 문양의 형태라든가 세공의 섬세함 등으로 미루어볼 때 뉴욕에서는 그걸 프랑스 혁명 당시에

왕실과 귀족 가문에서 흘러나온 게 아닐까 짐작하는 모양이야.”

“그럼 진품으로 판명될 경우 상당히 고가에 입찰이 시작되겠군요.”

“바로 그게 문제야.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물건들의 감정가를 조금 내려줘야겠어.”

“네? 감정가를 깎으라고요? 올리는 게 아니라요?”

경매 회사에 위탁된 물건은 되도록 비싼 값에 팔려고 애써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부앵 사장은 그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가격을 깎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달통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부앵 사장이 피식

웃으며 그를 가까이 오게 했다.

“우리 회장님하고 나는 되도록 그 물건들을 프랑스로 다시 가져오고 싶어. 어쨌거나 모두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아니냔 말이야. 그것도 아픈 역사의 흔적이 담긴. 안 그래?”

“아, 네. 그야 물론 그렇죠.”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달통으로서는 속이 찜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부앵 사장이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명색이 경매 회사에 위탁된 물건이니까 일단 입찰에 붙이기는 해야겠지. 하지만 회장님과 나는 그걸 우리가 고용한 사람들이 낙찰을 받을 수 있게 할 생각이야. 그런데 그러자면 감정가가 너무 올라가면

곤란하지 않겠어?”

달통은 부앵이 하는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다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경매 회사가 직접, 혹은 회사의 주요 고객이 어떤 물건을 구입하고 싶을 경우 감정이나 가격

산정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해당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경매 시작가를 일부러 크게 낮추는 것이다.

물론 물건의 진가를 알아본 누군가가 끝도 없이 호가를 높이면서 물고 늘어지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시작가에 비해 호가가 너무 올라가면 응찰자들도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이전의 거래

실적이 전혀 없는 이른바 발굴품들의 경우에는 그런 조작을 하기가 훨씬 쉬웠다.

달통이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않자 부앵 사장의 목소리가 더욱 은근해졌다.

“자네도 알다시피 프랑스 혁명 당시에 시중에 유포되었던 각종 미술품들은 우리 크리스티의 출발점이기도 해. 그 물건들에 대한 경매를 주관하면서 조그맣던 크리스티가 유럽에서 가장 큰 경매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지. 그래서 우리 회장님은 이번에 나올 금속공예품들을 꼭 프랑스로 가져오고 싶어하셔. 나 역시 그렇고.”

달통은 자신을 노려보는 부앵 사장의 눈빛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경매를 직접 진행시키는 경매사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잘 아시겠지만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그 사람과도 미리 입을 맞춰둬야 합니다.”

달통의 말에 부앵 사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담당 경매사도 우리가 지정해서 파견할 거야. 당연히 내 사람이지. 물품의 성격이 프랑스 근대 금속공예품이니까 우리 쪽에서도 전문성을 주장하기가 편하거든. 자네만 잘 해주면 시끄러운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진품이 분명한데도 무작정 감정가를 내리면 저쪽에서도 반발이 심할 겁니다. 제가 가서 물건의 진위 여부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하면서 감정가를 낮추자고 하면 돼. 나도 그쪽 감정가들에게 되도록 자네 의견을 따르라고 압력을 가해놓을 테니까 함부로 불만을 제기하지는 못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며칠 뒤, 달통은 파리를 떠나 뉴욕 크리스티로 출장감정을 나갔다. 거기서 그는 이번에 경매에 오를 모든 금속공예품들에 대해 위작이나 모작이 의심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문양을 처리한 솜씨가 과거

장인들의 그것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뉴욕 크리스티 소속의 감정가들은 그의 주장에 반대했지만 곧바로 회사 윗선에서 달통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참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결국 그들은 속으로 불만을 삼키면서도 모든 공예품의 경매 시작가를 크게

낮추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 *

유럽 디자인의 역사에 있어서 앙리 4세부터 루이 15세까지 이어지는 17~18세기는 이른바 프렌치 클래식의 전성기였다. 화려한 가구를 중심으로 하여 보석과 금속 공예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들을 위한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가 바로 이 시기였던 것이다.

당시 활동했던 앙드레 샤를 불르와 장 프랑수아 외벤 등은 모두 왕실에 소속된 천재적인 디자이너이자 가구 제작자들이었다. 그들이 만든 가구와 여러 가지 놀라운 공예품들은 프랑스 혁명 때 베르사유 궁전이

습격을 받으면서 통째로 도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행히 그 가운데 일부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베르사유 궁전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 사라졌던 물건들이 요즘도 가끔씩 벼룩시장 같은 곳에 나오기도 한다는 건 서라 씨도 아실 거예요. 이번에 나온 것들도 그런 물건인 것 같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보니까 이번에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건 모두 한 사람이 내놓았다더라고요.”

둘째 날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도윤은 최서라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하루 동안 알아낸 것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은 최서라는 적지 않게 놀랐다.

“그게 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요? 수가 상당히 많았는데요?”

“네. 하지만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게 맞아요. 토마스 카얄이라고 할아버지 때 프랑스에서 이민 온 유대계 미국인인데, 이사를 가기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공예품들이 모두

여러 개의 상자 속에 담겨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럼 모두 진짜라는 뜻이에요?”

“그거야 얘기만 듣고 장담할 수는 없지요. 도록에 나와 있는 사진을 봐도 마찬가지고요. 아무튼 그게 모두 진짜라면 제가 보기에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나온 게 분명해요. 공예품들의 문양을 디자인 한 솜씨가

앙드레 샤를 불르하고 장 프랑수아 외벤의 작품과 아주 흡사하거든요. 물건을 직접 본 사람은 서라 씨니까 진품이라는 확신이 들면 꼭 낙찰 받으세요.”

“고마워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럼 서울에서 봬요.”

최서라가 막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도윤이 다급하게 그녀를 다시 불렀다.

“아참.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도록에 보니까 자물쇠가 몇 개 있더라고요. 그것도 사실 생각이세요?”

순간 최서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다른 금속 공예품들과 함께 구리나 청동으로 만든 자물쇠가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특별히 솜씨가 뛰어난 것 같지 않고 문양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무심코 지나쳤던

물건들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별 관심이 없어요. 왜요? 그 자물쇠들이 특별한 거예요?”

“루이 16세가 시계나 자물쇠를 만드는 게 취미였다는 얘기는 들으셨죠? 제가 보기에는 아마 이번에 나온 자물쇠들이 그의 작품이 아닐까 싶어서요.”

“정말이이에요? 그게 루이 16세가 직접 만든 거라고요?”

루이 16세는 마리 앙트와네트의 남편으로서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 의해 목이 잘린 비운의 왕이었다. 그는 왕위에 오른 뒤에도 개인적으로 공예품을 만들면서 소일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자물쇠와 시계를 만드는데 많은 정성을 쏟았다.

“짐작이기는 하지만 물건이 진짜라면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볼 수 있는 게 사진 뿐이라서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이번에 나온 물건들이 기존에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다른 물건들하고 비슷해요. 여유가 있다면 그

자물쇠들도 구입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알았어요. 그 자물쇠들이 경매에 나오면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볼게요.”

전화를 끊은 최서라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오늘 전투의 주역은 고모인 최수아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어제 호크니의 그림을 사느라 천팔백만 달러를 쓰기는 했지만 갤러리의 자금에는 아직 칠백만 달러의

여유가 있었다. 금속공예품들의 경매 시작가가 상당히 낮은 것을 감안할 때 그 정도면 적지 않은 작품을 사들일 수 있을 것이다.

* * *

둘째 날 오후의 크리스티 경매장은 어딘지 모르게 맥이 빠져 있었다. 전날 오후의 뜨거웠던 열기에 비하면 사람들의 표정부터가 한가하게 장터에 구경나온 듯한 분위기였다.

“오늘 나올 금속공예품들 가운데는 유찰될 것들도 있을 것 같네요. 분위기가 너무 처져 있어요. 사람들이 어제 모두 진을 뺀 모양이에요. 아니면 돈을 다 썼거나.”

둘째 날까지 기어코 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낸 유세희조차도 주변을 둘러보며 그런 말을 내뱉을 정도였다. 그러자 최수아가 최서라를 힐끗 보며 말했다.

“오늘은 서라가 꼭 사고 싶은 물건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으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분위기도 나쁠 게 없지. 덕분에 낙찰가가 낮아지면 그만큼 이익이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 불안한 측면도 있어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오늘 나올 물건들의 진위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면서요? 크리스티쯤 되는 곳에서 왜 의구심이 가시지 않은 물건들을

굳이 경매에 올리려는지 모르겠어요.”

“여기 감정가들은 이번에 내놓을 물건들이 확실히 진품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경매장 자리에 앉던 최서라가 툭하고 내뱉은 말에 유세희의 입 꼬리가 살짝 비틀어졌다.

“하지만 시작가를 크게 낮춘 곳이 바로 그 크리스티 감정가들 아닌가요? 자기들 손으로 감정가를 낮춰놓고서는 도리어 물건은 진품이라고 확신한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럴 사정이 있었던 같아요. 원래 여기 감정가들은 공지된 것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책정했었나 봐요. 그런데 갑자기 파리 크리스티에서 파견나온 감정가가 물건의 진위 여부가 의심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감정가를 낮췄다고 들었어요.”

말문이 막힌 유세희가 눈을 치켜 올리며 따지듯이 물었다.

“어머,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황당한 일이네요. 그런데 아가씨는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 나름대로 회사 내부의 비밀일 텐데?”

“아이작 듀란이라고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공방의 사장님이 계세요. 뉴욕 크리스티에서 일하는 금속 공예품 감정가들 가운데 한 분이 바로 그 분 제자거든요. 런던에 있을 때 듀란 사장님하고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오늘 오전에 전화를 드렸더니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으시더라고요. 그 때문에 지금 여기 감정가들 사이에 불만이 많이 쌓였나 봐요.”

아침에 도윤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최서라는 고민 끝에 런던에 있는 아이작 듀란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그가 뉴욕 크리스티에 있는 제자의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최서라는 그로부터 이번에 나올 공예품의

감정가 책정에 고충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최서라의 얘기를 들은 최수아가 웃으면서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경매에서는 끝까지 가격을 올려도 되겠구나. 모든 걸 너한테 맡길 테니까 잘 해 봐. 이번에 준비한 한도 금액 내에서는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까.”

“고마워요. 고모. 열심히 해 볼게요.”

최수아가 대놓고 최서라를 밀어주는 모습을 본 유세희가 고개를 돌린 채 들리지 않게 코웃음을 쳤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경매에 참여해서 훼방을 놓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마 최수아가 옆에서 눈을 똑바로 뜬

채 앉아 있지 않았다면 진짜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잠시 후 경매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적극적으로 팻말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에 반해 최서라는 미리 점찍어두었던 물건들이 나올 때마다 끝까지 경쟁해서 기어코 물건을 낙찰 받는 행보를

계속했다. 몇 번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그녀가 낙찰 받는 물건들마다 다른 것들에 비해 자연스럽게 낙찰가가 높아졌다.

상황을 지켜보던 최수아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몇몇 사람을 지목했다.

“저기 저 사람 말이다. 회색 양복을 입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자 말이야. 그리고 우리 오른쪽 앞에 앉은 저 여자도 마찬가지야. 저 두 사람이 유난히 서라 너하고 끝까지 경쟁하는 것 같은데? 저

사람들도 이번에 나온 공예품들이 진품이라고 확신하는 걸까?”

어제와는 달리 한 발 물러선 채 지켜보아서 그런지, 최수아는 이 경매장에서 유독 두 사람이 최서라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는 것을 금세 눈치 챘다. 그들은 대체로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유독 독한 자세로 경매에 임하고 있었다. 심지어 최서라가 패스한 물건들은 거의 다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에게 돌아갔다.

“금속 공예품들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나온 사람들일까요? 저 사람들 때문에 낙찰가가 자꾸 올라가서 생각보다 싸게 사기가 힘들어졌어요.”

최서라가 나직하게 투덜대자 유세희가 또 다시 슬쩍 말을 붙였다.

“그럼 우리도 저 사람들을 좀 괴롭혀 보는 건 어때요? 꼭 사지 않을 물건이라도 적당히 팻말을 들어 올리면서 낙찰가를 높이자고요.”

“그러다 덜컥 낙찰을 받으면 어떡하려고요? 저 사람들 때문에 자꾸 낙찰가가 올라가는 건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규칙을 어기는 아니잖아요. 그냥 참아요. 저 사람들도 저 때문에 원하는 물건을 낙찰

받기 힘들어졌다고 투덜대고 있을지도 몰라요.”

최서라의 짐작은 사실이었다. 사실 속이 답답하고 입에 침에 마르기로는 최수아가 지목한 두 사람이 더 심했다. 그들은 오늘 의뢰인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이 자리에 나왔다. 그들이 낙찰 받은 물건들은 미리

정한 가격을 받고 다시 의뢰인에게 넘기기로 약속했는데, 당연히 낙찰가가 낮을수록 그들의 손에 떨어지는 액수가 커질 수박에 없었다.

그런데 최서라 때문에 자꾸 호가가 예상보다 높게 올라가는데다가 몇몇 물건은 아예 응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의뢰인이 사주기로 한 액수보다 높은 가격에 물건을 낙찰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최서라를 힐끔거리면서 이를 갈 무렵 드디어 도윤이 얘기했던 자물쇠가 경매장에 등장했다. 모든 사람들이 별 관심 없다는 태도로 단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최서라의 눈에는 아연 생기가

돌았다.

“다음은 18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자물쇠입니다. 이 자물쇠들은 하나하나의 값이 낮기 때문에 일곱 개를 한 세트로 한 번에 입찰하겠습니다. 시작가는 만 달러입니다.”

도윤이 혹시 루이 16세의 물건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던 물건었다. 크리스티의 감정가들도 그 자물쇠들에 대해서는 제작 연대만 밝혔을 뿐 누가 디자인하고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짐작을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늘 낮은 물건들의 시작가가 대체로 낮은 편이었지만 자물쇠의 경우에는 그 가격이 터무니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까지 계속 그녀와 입찰 경쟁을 벌였던 남녀 두 사람조차 이번에 나온 자물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최서라에게는 기회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