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5. 그림 보는 남자>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하고 아이들은 잘 계시죠?”
도윤이 석훈과 함께 뉴욕 J. K. 케네디 공항의 입국장을 나서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장찬수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찬수와 그의 딸 장은서가 미국에 온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장찬수는 도윤이 뉴욕에 온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늘 공항으로 그를 마중 나오고는 했다.
“또 나오셨네요. 이번에도 그러실 것 같아서 아예 연락도 드리지 않고 왔는데.”
거의 빼앗듯이 자신의 캐리어를 낚아채는 장찬수를 보며 도윤이 허탈하게 웃었다.
장찬수는 한때 딸의 재능을 이용해서 각국의 아트 페어를 돌아다니며 위작과 모작을 팔던 남자였다. 그림을 업을 삼는 사람으로서는 최악의 짓을 저질렀던 셈인데, 그랬던 그가 미국으로 와서는 완전히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루 이틀 그러면 의구심을 갖고 쳐다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재단에 전화해서 오시는 날짜하고 비행 편을 확인했습니다. 이번이 오 화백의 미국 데뷔 10주년 기념 전시회인데 이사장님이 오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쪽에서 미리 연락을 하기도 전에 먼저 일정을 확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긴 오윤수는 도윤이 처음으로 직접 발굴해서 후원한 화가다. 그런 그의 전시회가 있으니 어찌 보면 도윤이 미국으로 올
거라 예상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장 화백은 어때요? 요즘도 초상화를 즐겨 그리나요?”
장찬수가 몰고 온 차에 올라타면서 슬쩍 물었다. 그가 말한 장 화백이란 장찬수의 딸인 장은서를 가리킨다. 그녀는 여전히 실제 풍경이나 인물을 주로 그리는 화풍을 고수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림 가운데
초상화의 비중이 제법 높았다.
도윤의 물음에 운전대를 잡은 장찬수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제가 좀 민망합니다. 고민스럽기도 하고요. 딸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유명한 화가가 됐는데 정작 그 아비는 주말마다 공원에 나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은서나 저나 각자
좋아서 하는 일이기는 한데, 그래도 가끔씩 누가 저를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이른바 거리의 화가로서 관광객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은 장찬수의 소일거리 같은 것이었다. 사실 딸이 유명화가가 된 이후로 그는 경제적인 문제를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까지 주말이면 이젤을 들고 공원으로 나가고는 했다. 그는 서울에서도 초상화가로서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에이, 아저씨.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아저씨 말마따나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되지요. 하긴 우리 형님, 아니 이사장님은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기는 하더라고요.”
석훈이 갑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꺼내자 도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다니? 내가 뭘 모른다는 거냐?”
“이번에도 굳이 다른 사람을 데리고 미국에 오려고 했잖아요. 내가 수행한다고 하는데도.”
“너도 이제 비서실장이야. 네가 하도 싫다고 해서 이사로 등재시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서열로 따지면 재단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위치잖아? 그런 녀석이 허구한 날 내가 출장 갈 때마다 따라다닌다는
게 말이 돼? 이런 일은 이제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맡겨도 되는 위치라고.”
“나는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세요?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또 누가 칼을 들고 덤벼들거나 총을 쏘면 어쩌려고요? 형 다치는 거야 자기 팔자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옆에서 수행하다가 덤터기 뒤집어쓰는
직원들은 또 무슨 죄예요?”
“여기 미국이야. 무슨 중동이나 아프리카인 줄 알아?”
“멀쩡하던 건물에 비행기가 날아와서 처박히기도 하는 나라가 미국이에요. 그것도 뉴욕 한복판에서. 차라리 한국이 치안은 훨씬 안전하다는 거 몰라요? 그래서 저도 요즘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형을 따라다니지
않잖아요.”
운전을 하던 장찬수가 쿡쿡 대고 웃는 바람에 도윤은 하려던 말을 애써 집어삼키고 혀를 차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석훈의 심정이 이해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핑계를 대서 일을 만들지 않으면 재단
내에서의 그의 위치가 조금 애매해지기는 했다.
도윤은 처음에 그를 서윤 재단의 지원실에 배정했다. 장학생으로 선정된 사람들을 후원하는 일을 맡게 한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그 일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듯하던 석훈이 어느 날 그를 찾아와서
부서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전 아무래도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 서류나 만지작거리는 일은 체질에 안 맞는가 봐요. 그냥 예전처럼 형을 따라다니면 안 될까요?”
“날 따라다닌다고? 경호원을 하겠다는 거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요즘은 굳이 날 경호해야 할 일이 없잖아? 너도 결혼을 했으니까 이왕이면 안정적인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아?”
“안정적인 일은 무슨…. 형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는 게 날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모르죠? 경호원이 어려우면 그냥 비서 같은 거로 써주면 안 될까요?”
“내가 커피까지 직접 내려서 먹는 거 몰라? 무슨 비서가 필요하다는 거야?”
“에이, 비서가 무슨 커피 타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 커피는 앞으로도 형이 알아서 내려드시고요, 명색이 수천억이 넘는 기금을 운영하는 큰 재단의 이사장이잖아요. 우리나라에 그만한 돈을
움직이는 재단이 흔한 줄 알아요? 형 정도면 예의상으로라도 비서 한두 명 정도는 거느려야 하는 법이라고요. 그러지 말고 그냥 비서로 써주시면 안 돼요?”
결국 도윤은 누가 직원이고 누가 이사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황당한 녀석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정 싫으면 회사를 나가라고 하면 그만이었지만 석훈은 그런 식으로 내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젠 큰 걱정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녀석이 곁에 있으면 적어도 물리적인 위험에 대한 대비책은 확실해진다는 점도 있었다.
사실 비서를 두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도윤은 현소 화랑의 팀장이자 서윤 재단의 이사장이었고, 결혼 이후로는 청파 갤러리의 일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장학생들을 둘러보거나 가끔씩 외부 강연을 나가는 경우도 빈번하다 보니 최소한 일정을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덕분에 석훈은 도윤의 개인 비서에서 출발해 현재는 부하 직원을 둘이나 둔 비서실장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일을 하다 보니 지근거리에서 도와줄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재단 내부에서 석훈의 영향력도 상당히 세졌다. 재단 설립 이전부터 이사장인 도윤의 오른팔 노릇을 하던 사람이라는 점을 다른 직원들이 의식한 탓이다.
차는 뉴욕 시내를 가로질러 근교에 있는 저택에 도착했다. 오윤수의 집이었다. 그는 몇 년 전 제법 넓은 정원이 딸린 이층집을 구입해서 그 안에 작업실을 만들었는데, 도윤은 이번 여행에서 호텔을 잡지 않고
그의 집에 묵기로 했다.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된 집 주인이 굳이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도윤 일행이 저택에 도착했을 때, 오윤수는 정원에 이젤을 세워놓은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오윤수는 주로 광목천에 먹물을 들였다 빼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러나 미국에 온 이후로는 가끔씩 캔버스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수집가들 중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윤수의 옆으로 어린 아이 하나가 키가 작은 이젤을 놓고 연필을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누구지? 옆집 아이인가? 도윤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차가 집 밖에 만들어진 주차장에
섰다.
“형! 어서 오세요. 비행기 타느라 피곤하시죠? 시원한 거라도 드릴까요?”
그가 차에서 내리는 걸 본 오윤수가 붓을 내려놓고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그런 그의 옆으로 아까 봤던 어린 아이가 종종 거리며 따라왔다.
“비행기 안에서도 편하게 누워왔는데 피곤하기는 무슨? 그런데 얘는 누구니?”
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는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지 오윤수의 옆에 선 채 도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물음에 흘낏 아이를 내려다 본 오윤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제 제자예요. 재능만 보면 저보다 훨씬 나은 아이예요.”
제자라고? 네가 무슨 제자를 벌써 둬? 도윤을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 녀석, 재능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눈빛만큼은 참 당돌한 녀석일세.
* * *
도윤을 오윤수의 집에 내려준 장찬수는 곧바로 돌아갔다. 대신 그날 저녁, 장은서가 오윤수의 집으로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석훈을 포함한 네 사람은 식사가 끝난 뒤 정원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이렇게 이 박사님하고 윤수 오빠와 함께 식사를 한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아요.”
장은서의 말에 도윤이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에 뉴욕을 몇 번씩이나 오갔으면서도 함께 모여서 밥을 먹지는 않았던 것 같네. 따로따로 만난 적은 있으면서도 말이야. 은서하고 윤수 모두 뉴욕에 사는데도 같이 보기가 은근히 쉽지
않은 것 같아.”
그러자 오윤수가 씁쓸하게 웃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상하게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많이 알아보게 될수록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뉴욕에 처음 왔을 때 같은 건물에 작업실을 두고 있었던 친구들도 그래요.
그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함께 술을 마시거나 예술에 대해 토론했었는데 벌써 몇 년씩 얼굴도 못 본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그거야 오 화백이 너무 유명해져서 그런 거 아니에요? 사실 자기는 아직도 무명 화가인데 상대가 너무 유명해지면 서로 얼굴 보고 친한 척 하기가 좀 겸연쩍어지잖아요.”
석훈의 말에 도윤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너도 그런 생각을 해? 넌 그런 거 상관 않고 그냥 뻔뻔스럽게 계속 만나자고 할 것 같은데. 어이, 형씨 오늘 시간 있어?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하지? 이러면서 말이야.”
“에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나도 가릴 건 가리면서 산다고요. 자격지심도 있고.”
도윤이 일부러 눈을 크게 뜨면서 실소를 터트렸다.
“네가 자격지심이 있다고? 널 안 지 오래 되지만 오늘 처음 듣는 얘기네?”
“요즘에야 당연히 자격지심 같은 걸 가질 필요가 없죠. 형 덕분에 돈을 엄청나게 벌은데다 결혼해서 처자식까지 두고 있잖아요. 게다가 안정적인 직장까지. 지금 같아서는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고 해도 기가
죽지 않을 것 같아요.”
미국 대통령은 몰라도 대통령 경호원들이라면 오히려 너를 보고 기가 죽겠지.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네가 거의 아이언맨처럼 보일 테니까.
생각해 보니 군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도윤과 석훈 모두 참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윤은 원래 부유한 부모를 가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오히려 이세준이나
서연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부자가 되었다. 석훈의 경우에는 완전히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처지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었다.
“저 한국으로 돌아갈까 봐요.”
오윤수가 뜻밖의 얘기를 꺼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를 제외한 세 사람의 눈이 한꺼번에 동그래졌다.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요? 왜요?”
장은서가 제일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도윤과 석훈 역시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뉴욕은 현대 미술의 중심지다. 화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점은 둘째치고라도 현재 뉴욕보다 더 큰
미술 시장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크게 성공한 세계적인 화가가 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가끔씩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미국에 온 지 십 년이 넘었지만 너무 늦게 영어를 배워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발음이나 표현력 같은 게 완벽하지 않아요.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여전히
외국어로 들리거든요.”
“그거야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나도 도윤이 형, 아니 이사장님 때문에 강제로 영어를 공부했지만 그래도 외국인 앞에 서면 아직도 말이 술술 나오지 않는데.”
석훈의 말이었다. 도윤과 함께 일을 한 이후로 그 역시 필요에 따라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 왔다. 지금은 외국인과 무리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십 년 넘게
뉴욕에서 생활한 오윤수와 견줄 수준은 아니었다.
“외롭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뜻이냐?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렇지만 넌 한국에도 가족이 없잖아? 내가 알기로는 가까운 친구들도 그리 많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외로움이 덜해질 것 같지는
않은데….”
도윤의 말에 오윤수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피식 웃었다.
“형 말대로 친한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뉴욕에 더 많이 있죠. 그동안 이곳에 살면서 가깝게 지내온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까요. 아까 보셨죠? 지미, 아니 그 어린아이 말이에요. 이웃에 사는 아이인데
저한테 그림을 배우겠다면서 자주 놀러 와요. 한국에는 형이나 석훈 씨 빼고는 걔만큼 친한 사람도 거의 없어요.”
“그럼 더 이상하잖아? 도대체 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거냐?”
“익숙한 낯선 사람들이 그리워서요.”
익숙한 낯선 사람. 얼핏 모순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그 말이 오윤수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도윤은 더 이상 그를 말리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가 입을 닫고 침묵을 지키자 이번에는
장은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외롭다는 게 화가에게는 오히려 더 자극이 될 수 있지 않나요? 그리고 윤수 오빠는 한국에 있을 때도 몹시 외로웠다고 했잖아요.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은서 너는 그럼 계속 미국에 살 거니?”
“나중에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래요. 저나 아빠나 한국보다는 미국 생활이 더 편하거든요. 거기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 있어서.…”
장찬수는 한국에 있을 때 장은서가 그린 위작과 모작을 팔아서 큰돈을 벌었다. 나중에 도윤 덕분에 그것들을 모두 회수해서 없애버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 남은 부담이 완전히 가셨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들로서는 언제 사기꾼이라고 질책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뉴욕 생활이 더 속편했다.“저도 저지만 아빠는 여기서 주말마다 공원에 나가 사람들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사는 생활이 무척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가면 아마 그렇게 살지 못할 거예요.”
오윤수는 장은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는 건 분명해 보였다.
“각자 자신만의 이유나 목적을 가지고 사는 거다. 어디서 살면 어떠냐?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자기 뜻대로 살 수 있으면 되는 거지. 모레부터 윤수 전시회가 시작되니까 아직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할 기회는
많을 거야. 모처럼 만났으니 우울한 얘기는 그만 하고 좋았던 일만 생각하자. 아까 그 아이는 누구냐? 정말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도윤이 애써 화제를 돌리자 오윤수도 얼굴을 펴며 웃었다.
“당연히 정식 제자라고 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그림을 가르쳐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인 건 분명해요?”
“그림을 잘 그려? 어린 아이답지 않게?”
“아뇨. 그림 솜씨만 따지면 그렇게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생각이 아주 독특하고 참신해요. 어린아이답게.”
이 녀석 그 아이가 정말 마음에 드는 모양이네? 지미라는 아이를 언급하는 오윤수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도윤은 문득 그 아이가 그린 그림이 보고 싶어졌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