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화 (3/254)

< 레벨 업 도우미 -1- >

작전이 끝나자 푹 쉴 수 있었다.

수한의 소대가 찾은 기계 괴수와 외계인 시체는 대한민국 국군 연구소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아예 도로까지 닦고 트럭들이 쉬지 않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거기에 분원을 하나 세울 요량인 듯했다.

하긴 일부만 탐험했는데도 규모가 엄청났다. 마치 SF 영화 속의 우주선을 보는 것 같았다.

덕분에 수한의 소대는 상당한 포상을 받았다.

특별 수당. 특별 휴가.

소대장은 요즘 입이 완전히 벌어졌다. 안 그래도 인사고과가 좋은 편이었는데, 다음 진급 심사에서 진급이 거의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수한은 어쨌냐고?

안타깝게도 휴가를 못 쓸 처지가 되었다.

외계인 시체와 직접 맞닥뜨린 탓에, 각종 검사를 하고 보안 서약을 하는 등 바빴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그걸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난 게 문제.

여러 일을 처리해놓고 보니 벌써 전역 날이 되어 있었다.

‘전역하기 전에 명한이 녀석 등록금은 다 마련해서 다행이다.’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아직 막내 기한의 등록금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거야 어떻게든 될 것이다. 공격대에 지원 요원으로 취직을 하든, 아니면 변이체 사냥꾼으로 나서든 둘 다 벌이가 괜찮은 직업이니까.

“내일 전역이라고?”

“예.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말뚝 박는 게 어때? 내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공격대도 그렇고 사냥꾼도 그렇고 쉽지가 않아. 공격대는 언제 잘릴 줄 모르고, 사냥꾼은 요즘 변이체가 줄어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 무슨 소린지 알아?”

부대 안을 걷다가 우연히 주임원사를 만났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볼 때마다 이 소리를 하곤 했다.

수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하하, 저도 압니다. 그런데 저는 돈이 필요해서요.”

“끄응, 자네가 가장이라고 그랬지?”

“예. 솔직히 여기 온 것도 그냥 일 하는 것보다 더 많이 줘서 그런 겁니다. 전역하고 취직도 쉽고요.”

대전쟁 전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대전쟁 후 바뀐 것 중의 하나였다.

주임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고 했지…… 고생이 많아.”

“고생은요. 전쟁 막 끝났을 때보다는 훨씬 낫죠.”

수한은 대전쟁 때 부모님을 잃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계 괴수가 뿜어낸 파괴 광선은 대피소를 가볍게 부숴버렸고, 수한은 간신히 두 동생만 챙겨서 도망칠 수 있었다.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사방이 다 잿더미였고, 동생들을 건사하려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일한 보람이 있었다.

수한은 중학교 중퇴로 끝났지만, 동생들은 대학교에 보낼 수 있었으니까.

다섯 살 어린 둘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의 법학과에 다녔다. 그보다 한 살 어린 막내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데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했다.

주임원사가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참 대단해. 그래, 어쩔 수 없지. 전역하고 어디 생각하고 있는 곳이라도 있나?”

“일단 SPT(세라프 어 능력 시험)부터 보려고 합니다.”

“햐, 언제 그 공부까지 했어? 대단하다, 대단해.”

주임원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훈련도 힘들뿐더러 작전이라도 나갔다 오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 공부를 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긴 출세하려면 세라프 어를 해야지. 요즘엔 대학 필요 없어. 세라프 어가 최고야. 어려워서 문제지.”

무수히 많은 행성들이 모여 이루어진 종족 연합.

이 연합을 이끄는 것은 단연코 세라프 종족이었다. 이능력자 강제 각성 방법이 그들에 의해 전파되었고, 그들의 강력한 무력에 뭇 행성들이 구원을 받았다. 그 덕에 세라프 어가 종족 연합의 공용어로 쓰이고 있었다.

세라프 어만 잘 해도 먹고 산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했어. 어이쿠, 바쁜 사람 붙잡고 괜히 내가 주책을 떨었네. 가서 일보게.”

주임원사가 손을 흔들었다.

하루쯤은 금방 지나갔다.

수한은 부대 앞에 서서 감회가 서린 눈으로 정문을 바라보았다.

벌써 5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생전 처음 변이체와 대면했던 일, 피 튀기는 전투,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 모든 일을 해낸 다음 느낀 뿌듯한 성취감……

그것들이 이젠 다 과거의 일이라니.

소대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이 중사님! 조심히 가십시오!”

“꼭 연락 하셔야 됩니다!”

“모른 척 하시면 안 됩니다! 다음 휴가에 정말 찾아갑니다!”

“하하, 알았어. 모두 잘 있어!”

수한은 크게 손을 휘저었다.

5년이나 되는 시간을 보냈지만, 짐은 가방 하나가 전부.

거의 항상 옆에 두었던 총이 없으니 조금 허전했다. 습관적으로 허리춤에 손이 갔다.

수한은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부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전역자들을 위한 군용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사병들.

경례를 받으며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이제 더 이상 군인 신분이 아닌데도, 수 년 간 몸에 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자 전역자 몇 명이 더 들어왔다. 그들까지 자리에 앉자 버스가 붕 하고 출발했다.

수한은 창밖의 광경을 마음 편히 구경했다.

이곳은 양강도 백암군.

원래는 북한에 속해 있던 곳이다. 그러다 2004년의 대전쟁 때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서,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에 따라 개마고원에 들끓는 변이체도 대한민국이 감당하게 되었다.

그 주축을 담당한 것이 이능력자들과 군대.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약한 변이체만 출현했다. 따라서 이능력자들은 개마고원을 떠났고, 육군이 주로 개마고원을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개마고원 출신들은 실전 경험이 매우 풍부했다. 각 공격대에서 지원 요원을 뽑을 때 가장 우대하는 게 개마고원 주둔 사단 출신 부사관들이었다.

그만큼 위험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경쟁률이 엄청나서 뽑히기도 어려웠다.

“집에 도착하면 거의 저녁 되겠네.”

수한이 전역한 부대는 개마고원 깊숙한 곳에 위치했다. 집으로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것만도 1시간은 훌쩍 걸렸다.

백암군의 영하역에 도착해서도 서울까지는 한 세월. 일단 평양까지 간 다음 환승해야 했다. 그나마 평양에서 서울까지는 고속철도가 다니니 다행이라고 할까.

도로 사정이 열악해서 버스는 덜컹거리며 달렸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아 손목시계를 봤는데 이상한 게 보였다.

“응? 뭐지?”

시계 아래쪽 피부에 검은색 글자 같은 게 써져 있었다.

아예 손목시계를 빼고 자세히 살폈다. 깨알처럼 작은 글씨이긴 했지만 알아보는 데 문제는 없었다.

[레벨 업 도우미 가동 준비 완료.]

“어? 이건 뭐야?”

수한은 깜짝 놀랐다.

아침에 샤워할 때만 해도 이런 건 안 보였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문질렀다. 그런데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글자 크기도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친 걸까?

이것도 전역 축하 장난인가 보다. 하긴 휴가를 받아 외박하고 들어왔으니 뭔가 장난을 걸 시간도 없었지.

수한은 픽 웃어 버렸다.

“하여간 재주도 좋아.”

그 잠깐 사이 자기 눈을 피해 손목에다 이런 장난을 쳐놓다니……

역에 도착하면 비누칠을 박박 해서 지워야겠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라?”

막상 역에 도착한 뒤, 수한은 당혹함을 금치 못했다.

비치된 물비누로 벅벅 닦았는데 더 뚜렷해졌다. 거기다 크기도 3배로 커져서 아래팔 전체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 문득, 수한은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수한 앞에 달린 거울에, 그 큰 글자들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직 보기 좋게 근육이 붙은 손목만 보였다.

어리벙벙해서 눈만 끔뻑거렸다.

수한은 심각한 얼굴로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기차에 타면서 다른 거울에도 실험을 했다. 슬쩍 손목을 비춰봤는데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비춰 봐도, 사진을 찍어도 마찬가지였다.

글자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수한의 육안 뿐.

“뭐가 뭔지 원.”

몸이 허해서 헛것이 보이는 걸까?

문득, 개마고원에서 들이마신 X-0 때문에 변이가 시작됐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어 버렸다.

저번 작전이 끝나자마자 전신 검사를 받았었다. 기계 괴수 안에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더 정밀한 검사였다.

결과는 완전히 정상.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만 나왔다.

“레벨 업 도우미라……”

수한은 자기도 모르게 손목의 글자를 따라 읽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글자가 하얗게 달아올랐다.

팟!

은빛 글자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별처럼 쏟아지며 수한의 눈앞에 정렬했다.

수한이 눈동자가 도르륵 글자들을 훑었다.

[능력]

이름 : 이수한 나이 : 25 성별 : 남

신장 : 185cm 체중 : 92kg 상태 : 정상

종족 : 인간 진영 : 연합 행성 : 지구

레벨 : 1 계열 : 살육 계급 : 없음

근력 13 체력 15 민첩 14 재주 16 감각 13

초능 1 지능 11 직감 14 의지 15 위엄 12

여유 점수 : 0 경험치 : 0%

[기술]

언어 : 한국어 11, 세라프 어 3, 영어 5.

문자 : 한글 10, 세라프 문자 3, 영문 4.

사격 : 소총 사격 14, 권총 사격 11 산탄 사격 13, 원거리 저격 12.

격투 : 단검 격투 12, 맨손 격투 11, 총검 격투 13.

함정 : 함정 설치 12, 화약 함정 12.

생활 : 삽질 11, 청소 8, 빨래 4.

여유 점수 : 0

[초능]

[40] [80] [120] [160] [200] [300] [400] [500]

여유 점수 : 0

[장비]

머리 : 국군 베레모(일반)

상체 : 전투복 상의(일반)

다리 : 전투복 하의(일반)

손목 : 다기능 손목시계(일반)

허리 : 전투복 허리띠(일반)

신발 : 전투화(일반)

뭐냐 이거?

수한은 눈을 비비려고 했다.

눈으로 가져가던 두 손이 정지했다.

분명 눈을 감았는데도 은빛 글자들이 검은 시야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떴다. 글자가 보인다.

다시 눈을 감았다. 여전히 글자가 보였다.

“이런 미친.”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이것들은 뭐냐?

자세히 살펴보니, 대전쟁 전 유행했던 RPG의 정보창을 닮았다. 레벨이니 경험치니 하는 게 그렇고, 장비창과 기술창 같은 것도 그러했다.

시야 전체를 글자들이 채우고 있으니 영 신경에 거슬렸다. 수한은 무심코 손으로 미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글자들이 한쪽으로 밀려났다.

수한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종이 접듯 접자, 글자들이 그대로 겹쳐졌다. 다시 펴는 것도, 축소시키는 것도, 확대시키는 것도, 창별로 분할하는 것도 손짓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짓을 해도 없어지지는 않는다. 몇 번 접자 거의 안 보일 정도가 되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수한은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레벨 업 도우미?”

눈앞에 떠 있던 글자들이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레벨 업 도우미를 외칠 때마다 글자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능을 각성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어 버렸다.

이능 적성 검사에서 각성 확률 1억 분의 1 이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 낮은 가능성을 뚫고 각성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