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4화 (5/254)

< 지리산 -1- >

SPT는 5월 17일 일요일에 치러진다.

난이도가 총 9개로 나뉘는데, 수한이 응시한 난이도는 7급이었다.

기초적인 독해와 간단한 회화가 가능한지 보는 시험.

이것도 굉장히 어려웠다. 수한도 자신이 합격할 거라고 자신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레벨 업 도우미를 얻은 것은 정말이지 천운이었다.

수한은 정신없이 공부에 골몰했다. 그 결과, 본인의 레벨을 5까지 올리고 세라프 어와 세라프 문자 기술 레벨을 각각 5까지 찍을 수 있었다.

덕분에 무난히 SPT 7급 시험을 치렀다.

“형! 시험은 잘 봤어?”

“응. 합격할 것 같다.”

“우와! 진짜? 그럼 축하합니다가 세라프 어로 뭐야?”

[쟈∽자→졔↗]

“쟈자제? 어휴, 너무 어렵다.”

“시험 결과는 언제 나온대?”

“2주 후에 나온대. 전부 객관식이라 그래도 좀 빨리 나오는 것 같아.”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수한은 동생들과 함께 시험장 근처 중식당에 들어갔다.

자장면 세 그릇에 탕수육 작은 걸 시켜 같이 먹었다. 맛은 평범했지만, 동생들과 같이 먹으니 무척 각별하게 느껴졌다.

기한이 자장 소스를 입에 묻히곤 씩 웃었다.

“옛날 생각난다, 그지?”

“얌마, 입에 묻은 거나 닦고 말해.”

명한이 화장지를 기한에게 건넸다. 기한은 그걸 받아 입을 닦더니,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헤헤 웃었다.

수한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자장면을 먹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어딜 가나 폐허뿐이었다. 그 전에 심심하면 먹던 삼겹살, 치킨, 피자, 탕수육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정부에서 배급한 묽은 죽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전쟁이 끝나고 거의 1년 만에 자장면 한 그릇을 셋이서 나눠먹었다.

그때 그 자장면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명한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빠졌다. 아무래도 여자 친구과 데이트 약속이 있는 것 같았다.

기한이 입을 삐죽였다.

“쳇, 이런 날에는 같이 좀 있지.”

“명한이도 자기 인생이 있는 거니까. 너는 공부 안 해도 돼?”

“고3이라고 매일 공부만 해선 안 돼. 조금씩 쉬어줘야지.”

“하긴 그것도 그렇다.”

집으로 돌아온 뒤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 웃었다. 명한이 돌아온 다음 불을 끄고 셋 다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수한은 레벨 업 도우미를 호출했다.

레벨 5.

처음과 비교하여 크게 변화가 없는 4개의 창.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레벨 업 도우미 덕분에 SPT 7급은 땄다. 수한이 느끼기에는 일반인의 한계라는 4급까지는 무난하게 딸 것 같았다. 계속 공부를 한다면 원어민 수준인 1급과 2급까지도 가능하겠고.

기왕이면 1급이 좋겠다.

지구에선 아예 치러지지도 않는 시험이니, 세라프 종족의 고향 행성까지 가서 봐야 되겠지만……

어쨌든 세라프 어 마스터가 수한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세라프 어는 어디까지나 수단.

수한의 목표는 간단했다.

동생들을 잘 건사하는 것.

부모님이 기계 괴수에게 살해당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한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까진 잘 했어.’

극도로 암울하고 힘들었던 청소년기.

그래도 군대를 가고 나선 형편이 폈다. 부사관 가족들을 위한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하다 돈을 모아 이곳으로 이사 왔고,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도 월급과 수당을 악착 같이 모아 해결했으니까.

덕분에 둘 다 번듯하게 컸다. 이제 조만간 수한의 품을 떠나려고 할 것이다.

명한은 벌써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나.

“후아……”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동안 목표로 했던 게 거의 해결되어서일까. 복잡 미묘한 감정이 수한의 가슴으로 기어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뭘 해 볼까?

수한은 레벨 업 도우미의 네 개 창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사실 수한의 꿈은 따로 있었다.

이능력자.

무수히 많은 외계 행성을 누비면서, 잔존한 기계 괴수들을 쓰러뜨리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자들.

기계 괴수들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이능력자들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그들에 대한 동경심이 자리 잡은 것이다.

사실 굳이 공격대 취직에 가닥을 잡은 것도, 그 영향이 아예 없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이능 적성 평가 후 접을 수밖에 없던 꿈.

레벨 업 도우미를 이용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수한은 능력창만 따로 떼어냈다.

두 가지 항목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초능 1, 여유 점수 4.

능력창의 10가지 항목 중 초능이 유독 낮다. 다른 것은 모두 10 이상인데도, 초능 항목은 겨우 1에 불과하지 않나.

어쩌면 초능이 곧 이능을 뜻하는 게 아닐까?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수한의 이능 적성, 그리고 레벨 업 도우미가 보여주는 항목 중 홀로 낮은 초능……

이걸 10, 20으로 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좋아, 해보자.”

어차피 잃을 건 없었다.

당장 생각하기엔 지능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이능력자에 대한 동경심이 수한의 마음을 움직였다.

10년 전이나 5년 전이었으면 선택이 달랐겠지만, 최근 얻은 여유 때문에 한 번 모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4개의 여유 점수를 모두 초능에 때려 박았다.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수한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세라프 어, 세라프 문자 때도 그랬다. 본인이 자각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관련 행동을 했을 때 알게 됐다.

‘최소한 이능 적성이 올라가긴 했을 거야.’

일단 10이나 20을 찍고 적성 검사를 받아보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고 수한은 인근 공원으로 나왔다.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으로는 경험치가 슬슬 늦게 오르던 참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해보기로 했다.

“훅! 훅!”

레벨 업 도우미를 아예 실행시켜 놓았다.

능력창만 남기고 3개는 접어놓은 후, 능력창에서도 경험치 칸만 따로 떼어 시야 한쪽에 걸었다.

계속 운동을 하면서 실시간으로 경험치 상승을 확인했다.

달리기, 걷기, 스쿼트, 윗몸 일으키기, 턱걸이, 팔굽혀 펴기, 줄넘기 등등.

어려운 운동일수록, 더 집중할수록 경험치 상승이 높았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것보다 경험치 상승이 더 높은 것은 아니었다. 둘 다 비슷했다.

‘이대로는 레벨 올리는 게 한 세월이겠는데?’

며칠 지나면 6레벨이 되겠지만, 그 위로 올라가려면 공부나 운동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었다.

수한이 계산해보니, 한두 달 마음먹고 공부하거나 운동을 하면 10레벨까지는 올라가겠다. 그런데 10레벨이 되면 도저히 답이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때쯤 되면 SPT 결과도 나올 테고, 각 공격대들이 3분기 채용 공고를 낼 터였다. 마음 편히 운동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세라프 어 공부를 더 해볼까?

아냐, 뭔가 레벨을 올리기 쉬운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후!”

수한은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푸른 하늘이 환하게 펼쳐져 있었다.

레벨 업 도우미 생각을 자꾸 해서일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보다 경험치가 느리게 올라갔다.

급할 건 없지만, 허송세월 하는 것도 지양해야 하는데……

수한은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공원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 있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가볍게 뛰는 사람, 공원의 운동 기구를 이용해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는 사람……

잠깐만, 게임?

한 가지 영감이 번개 치듯 수한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예전에 했던 RPG에서, 레벨을 어떻게 올렸더라?

간단하다.

몬스터를 잡고 경험치를 얻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경험치로 레벨을 올렸다.

일상생활을 해도 경험치를 얻는 게임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몬스터 사냥이 가장 중요했다. 장비 제작이나 공부, 수련으로 얻는 경험치는 사냥으로 얻는 것과 비교를 할 수가 없었다.

몬스터 사냥!

그걸 지금 수한의 상황에 대입하면 뭐가 될까?

변이체 사냥이 해당한다. 비록 전역은 했어도, 꼭 군대에 들어가야만 변이체를 사냥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당장 지리산이나 마라도 같은 곳에선 변이체 사냥꾼들이 자리를 잡고 변이체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비록 E급이나 F급의 하급 변이체에 불과하지만, 그 시체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변이체 사냥이라……”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군대에 있을 때처럼 믿을 만한 전우들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 했다.

다음날 아침, 수한은 두 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 이번 주말부터 지리산 다녀올 거야. 한 달 정도 있다가 올 거니까, 나 없어도 밥 잘 챙겨 먹어.”

“지리산? 위험하게 거긴 왜?”

“설마 천왕봉 가는 건 아니지?”

“천왕봉 가는 거 맞아. 3분기 채용 공고 나기 전에 사냥이나 좀 해보려고.”

“사냥꾼? 위험하잖아. 저축 벌써 떨어졌어?”

“그런 거 아냐.”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레벨 업 도우미에 대해 설명할까 했지만 그건 시기상조였다. 말로 설명해봐야 믿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능 하나는 각성해서 보여줘야 믿겠지.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얘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지리산 사냥꾼 중에 군대 선임 한 분이 계셔. 오랜만에 한 번 뵙고 노하우도 배우려고 그래. 어차피 1달 정도는 시간이 있잖아?”

“그렇게 하면 수습 기간이라고 돈도 잘 안 준다던데.”

“돈 보고 하는 거 아니니까. 어차피 사냥꾼은 사양 산업이라서 지금 시작하면 안 좋아.”

“형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래도 전화는 꼭 매일 해야 돼?”

“바쁜 수험생한테 무슨 전화냐? 문자 남길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명한이 너도 너무 걱정하진 말고.”

“걱정 안 하게 생겼어?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군대 갈 때도 그렇고, 형은 너무 혼자 다 결정하려고 해.”

명한이가 툴툴거렸다.

수한은 겨우 명한이를 달랬다. 항상 조심하고, 선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겠다는 약속을 한 다음에야 허락 아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 지리산으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아무 무기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오랜 군 생활로 단련되었어도, 맨몸으로 변이체와 싸우는 건 바보짓이다.

수한은 준비할 것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사냥꾼 허가증, 무기와 방어구 일체, 선임과 연락.

이 정도.

대한민국은 총포 규제 국가지만 변이체 사냥꾼은 예외였다.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가방에 넣거나 상자에 넣으면 충분히 소지할 수 있었다.

전부 다 처리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 수한은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집을 나섰다.

집 앞의 은행에 들렀다.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약 3천만 원 정도.

“적네……”

수한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년에는 기한이도 대학교에 가야 한다.

요즘 학비가 장난이 아니어서, 동생 둘을 합치면 1년에 거의 2천만 원이 넘어갔다.

생활비 어쩌고 하면 내년에는 저축이 다 동이 나는 상황.

지리산에 가서 경험치만 벌 게 아니라, 돈도 어느 정도는 벌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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