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2- >
일단 용산역으로 갔다.
용산역 앞에는 수호자 연맹 지부가 하나 있었다.
대한민국 지부 중 규모로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
이능력자들은 이곳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이능 관련 서비스는 여의도에 있는 지부에서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신 사냥꾼 관련 업무를 이곳에서 처리해서, 변이체 사냥꾼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수한은 허가증 발급 창구로 가 서류를 작성했다.
온갖 종류의 서류가 필요했다.
사냥 허가 신청서, 위험 구역 진입 신청서, 도검 및 총포 소지 허가 신청서, 개인정보 조회 동의서, 공공질서 유지 동의서, 사망 시 책임 서약서, 이력서, 병적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등.
수한은 오전 내내 서류를 썼다. 그나마 국가 행정 서류도 여기서 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직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 됐습니다. 부사관 출신이시니 처리는 금방 될 겁니다. 모레 정도에 찾으러 오세요. 허가가 나지 않으면 입력하신 전화번호를 통해 연락이 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때까진 할 일이 없었다.
수한은 시민 공원으로 갔다. 하루 종일 운동을 한 뒤, 해가 지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틀이 지나 레벨 6이 되었을 때 다시 용산역에 들렀다.
낯이 익은 직원이 수한에게 허가증을 내밀었다.
“사냥꾼 허가증이에요. 예전에는 1급부터 3급까지 나눠서 발급했는데, 요즘엔 그럴 필요가 없어서 단일 등급으로만 발부해요. 참, 이걸로는 대한민국 영토 내만 출입할 수 있는 거 아시죠? 다른 나라 변이체들은 잡으시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수한은 허가증을 지갑 안에 잘 갈무리했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지부와 연결된 총포상이었다.
수호자 연맹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
총포상이라곤 하지만 화약 무기만이 아니라, 다양한 무기와 방어구를 팔았다. 변이체 탐지 장비 등 전자 기기도 마련되어 있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종업원이 발랄하게 수한을 맞이했다.
다소 어색한 발음.
수한은 종업원을 보고 멈칫했다.
고양이 인간이었다. 영락없이 고양이를 닮은 얼굴과, 털이 복슬복슬 난 양손이 수한의 시선을 붙들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세로로 그어진 눈동자가 수한의 움직임을 쫓고, 기다란 황색 꼬리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외계인.
수한은 종업원의 수염이 유난히 짧다는 것과, 눈의 흰자위에 붉은 점이 오돌토돌하게 박혀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신기한 일이다.
한국어를 다 할 줄 알다니……
그러나 곧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종업원이 말을 할 때마다 목에 찬 붉은 목걸이가 빛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뭔가 통역 관련 이능이 걸린 목걸이인가 보다.
내심 신기하게 생각하며, 슬쩍 아는 척을 했다.
“케르베스 태생이시네요? 멀리서 오셨습니다.”
“어머? 알아보시네요. 지구인들은 저희랑 지미안 인, 도도르 인을 잘 구별하지 못하던데요.”
“전 외계 행성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런데 지구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종족 연합에서 지구는 변방 중에 변방인데요.”
“여행 왔어요. 변방이라곤 해도 기계 괴수가 모두 잡혀서 안전한 곳은 얼마 없잖아요? 기왕 온 김에 좀 오래 있다 가려고요.”
지금은 아르바이트 중이라고 했다. 계획보다 체류가 길어져서 돈이 부족해서라고 하던가.
대개 외계인들은 지구에 오래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환경오염이 심하여 건강에도 좋지 않고, 특유의 기계 문명이 다른 행성과 사뭇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온다고 해도 초강대국인 미국이나 중국에 잠깐 있다가 떠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머무르다니, 참 특이한 외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총과 소총을 한 자루씩 사려고 하는데, 추천하실 게 있습니까?”
“저는 총은 잘 몰라요. 권총이랑 소총은 저쪽에 많이 있는데 직접 보시는 게 어때요?”
“아하, 그러는 게 낫겠습니다.”
“그리고 룬 문자 단검 사시는 건 어때요? 좋은 게 하나 들어왔는데. 할인도 하고 있어요.”
룬 문자 단검?
귀가 솔깃했다.
C급 이상의 변이체는 특수한 방어막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무기로는 공격이 불가능한데, 룬 문자 단검은 그렇지가 않았다.
세라프 종족의 문자를 새기고, 거기에 힘을 불어넣어 만든 단검.
일반인이 C급 이상의 변이체를 공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의 하나였다.
하긴 일반인이 단검 하나 들고 그 정도 상급 변이체와 대치할 정도면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 예산이 허락하면 구매해놓는 게 좋았다.
수한은 종업원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비싸지 않습니까?”
“얼마 안 해요. 5백만 원 정도?”
“그렇게 싸요? 어디서 만들었는데요?”
“어디…… [Made in USA]라고 적혀 있네요.”
“그래요? 어째 싸다 했더니.”
수한은 혀를 찼다.
지구의 이능력 물품은 그 질이 외계 행성에 비해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능력 물품 생산 역사가 무척 짧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미국이나 중국 모두 마찬가지.
종업원이 수한의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드워프 제랑 엘프 제도 있는데 그걸로 드릴까요? 수명도 영구적이고, 위력도 세 배 정도는 더 강한데요.”
“아뇨. 됐습니다. 미국제로 구입하죠.”
외계 행성과 지구는 차원문으로 연결된다. 차원문은 통과시키는 물건의 무게에 따라 막대한 자원을 소모해야 열 수 있었다. 종업원이 권하는 외계 행성 제품을 사려면 지구 제품의 수십 배를 줘야 할 것이다.
수한은 소총에 착검이 가능한 형태로 하나 골랐다.
종업원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지구인들은 이상하네요. 좋은 장비는 목숨과도 같은데 왜 그걸 아끼죠?”
종업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수한은 웃고 말았다.
모험을 즐기는 케르베스 인들은 어쩔지 모르나, 수한에게는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단검을 쓸 정도로 접근을 허용하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효율을 따지자면 총이나 방어구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총은 이쪽에 있어요.”
종업원은 수한을 안내해 준 뒤 계산대로 돌아갔다.
수한은 진열된 총을 살폈다.
권총, 소총, 기관단총, 기관총, 산탄총, 저격총, 심지어 유탄 발사기까지 진열이 되어 있었다.
오직 사냥꾼에게만 판매하는 화기들.
수한은 군대에서 쓰던 것과 똑같은 것을 골랐다.
미국제 45구경 권총. 대한민국 제식 소총.
각각 탄창 세 개와 총알을 박스 단위로 구입했다. 이 정도면 한 동안 넉넉히 쓸 수 있을 것이다.
조끼 형태의 강화 섬유 보호복과 휴대용 변이체 탐지기도 샀다. 그 밖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좀 골라서 한꺼번에 계산대에 가져갔다.
“1015만원입니다. 신분증과 사냥꾼 허가증을 제시해주세요.”
역시 비쌌다.
수한은 두 말 하지 않고 값을 치렀다.
수한은 미리 가져온 가방에 무기들을 쑤셔 넣었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짊어진 후, 상점 밖으로 나왔다.
[안녕히 가세요!]
고양이 아가씨가 수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능숙한 세라프 어.
수한도 씩 웃으며 세라프 어로 답례했다.
[네, 아가씨도 즐거운 여행 되세요.]
동생들에겐 오늘 출발할 거라고 얘기해놓은 뒤였다.
수한은 동서울 터미널에서 지리산 백무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약 4시간이 조금 못 걸렸다.
백무동 터미널에서 산장까지 가는 셔틀 버스가 있었다. 수한은 사냥꾼 허가증을 제시하고 버스에 탔다.
버스는 한가했다.
늙으수레한 사내들이 곳곳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가 하면, 각자 소지한 총기를 손질했다.
수한이 들어오자 몇 명이 눈길을 주었다.
그것도 잠시. 금방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알 것 없다는 태도.
무관심이 절절이 묻어나왔다. 수한도 그들을 무시하고 적당히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버스는 산 속의 도로를 열심히 달렸다. 변이체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을 피해 가느라 빙빙 돌아가긴 했지만, 도로 자체는 잘 닦여 있었다.
점심 때 쯤 천왕봉 인근의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이라고 해서 건물 하나 덩그러니 있을 줄 알았는데 규모가 상당했다. 콘크리트 담이 빙 둘러 쳐져 있고, 5층 높이의 건물들이 10채 가까이 들어서 있었다. 소총과 산탄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산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여! 수한아!”
버스에서 내리자, 누군가 수한을 불렀다.
덩치가 산처럼 크고 얼굴이 네모난 남자. 얼굴에 털이 많이 나 꼭 곰을 보는 듯 했다. 가죽 재킷을 입은 채 자동 산탄총을 오른쪽 어깨에 턱 하니 걸쳐 놓아, 언뜻 보기에도 강인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한춘섭.
수한이 막 개마고원에 배치되었을 때, 이미 부사관 말년으로 전역 준비를 하던 사람이었다.
미리 전화를 한 까닭에 마중 나왔나 보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 한 중사님!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잘 있었지. 그리고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중사님이냐? 그냥 형이라고 불러.”
“하하, 알겠습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밥이나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둘은 산장 식당으로 들어갔다.
앉기가 무섭게, 춘섭이 입을 열었다.
“한 달 정도 있을 거라고?”
“예. 7월에는 채용 공고가 나올 테니 서울에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아직 사냥꾼 허가증을 딴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렇게 짧게 같이 하는 거면 배당을 많이 줄 수는 없어. 이해하지?”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아예 안 줄 수도 없으니까, 반 몫으로 쳐주도록 하지. 우리 사냥패가 지금 네 명인데, 대장인 나는 두 몫, 정보 물어오는 김씨가 한 몫 반을 받으니까 넌 우리 패 수익의 1/12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돼. 수익은 매일 투명하게 공개하고, 1달에 1번 정산하는 게 원칙이지만 원하면 아무 때나 정산해 줄 거
야.”
“생각보다 상당하네요.”
“당연하지! 원래 너 같은 조건이면 반의 반 몫만 쳐주는 게 관행이야. 반 몫이면 정말 많이 쳐주는 거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래도 막상 정산해 놓고 보면 큰 돈은 아니야. 워낙 떼가는 곳이 많아서……”
대충 들어보니 부산물 처리 명목으로 산장에서 20%를 가져간다고 했다. 세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와 장비 수리비용, 총알 값을 대기도 버겁다던가.
춘섭이 푸념을 했다.
“어떨 때는 그냥 공격대 취직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니까? 어휴, 그래도 사냥 시작할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계속 변이체가 줄어드니 원……”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수한이 서울에서 산장까지 오는 동안 하루가 다 간 것이다.
산장에서 잔 뒤, 새벽 일찍 밖으로 나갔다.
5월 20일, 봄이었지만 지리산 위의 새벽은 상당히 싸늘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허연 입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알선소 앞에는 세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남자 중 하나가 수한을 보고 툴툴거렸다.
“뭐야, 새파란 애송이잖아?”
“개마고원에서 부사관으로 전역했대. 총은 그럭저럭 쏠 거야.”
“호, 그래? 그럼 도망치진 않겠네.”
통성명을 나누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 좋겠지만, 지형이 험하고 변이체가 자주 출현하니 그러기도 힘들었다. 그냥 걸어가는 게 상수였다.
춘섭이 홀로그램 지도를 띄워놓고 설명했다.
“오늘 목표 12마리입니다. 모두 E급 송충이 종류이고 한꺼번에 뭉쳐 있긴 한데, 거리는 좀 떨어져 있으니까 부지런히 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