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6화 (7/254)

< 지리산 -3- >

“12마리? 김씨가 한 건 했네?”

“자, 다른 패거리한테 뺏기기 전에 어서 출발하지요.”

“신참! 신참은 우리 뒤만 따라와. 참, 이거 챙기고.”

박씨라는 자가 커다란 가방을 수한에게 내밀었다.

뭘로 만들었는지 시꺼멓고 끈적끈적한 가방이었다. 시체 썩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한은 질색하면서도 가방을 받아들었다.

“이게 뭡니까?”

“변이체 가방이야. 잡으면 잡는 대로 여기 다 쑤셔 넣으면 돼. 안에 보면 칸막이 있지? 그걸로 1마리씩 구분해 놓으면 돼. 최대 20마리까지 들어가니까 잘 쑤셔 넣어.”

“알겠습니다.”

이제 보니 신참들은 짐꾼 노릇을 하나 보다.

수한은 대충 가방을 짊어졌다. 얼굴이 구겨지자,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곤 낄낄 웃었다.

변이체들이 있다는 곳까진 세 시간이 걸렸다.

개마고원 작전 당시를 생각한 수한은 잔뜩 긴장했다. 쉬지 않고 탐지기를 살피고, 소총을 앞장 세웠다.

반면 다른 사냥꾼들은 태평했다.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가 하면, 서로에게 농담을 던졌다. 그나마 총이라도 잘 잡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1킬로미터 전방이다.”

“탐지기에도 걸리는데?”

“좋아, 이제 조심하자고.”

사냥꾼들이 몸을 낮췄다.

이제까지의 방만한 모습은 없었다. 눈에서 번갯불 같은 신광이 튀어나오고, 치켜 올린 총구가 예리하게 빛났다.

수한도 소총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조정간을 단발로 조정하고, 총구를 살짝 올린 채 앞쪽을 살폈다.

탐지기에 표시된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조금 더 접근하자, 변이체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 몸통 크기의 송충이들이었다. 몸이 단단한 각질에 싸여 있고, 커다란 입이 머리에 달려 있었다. 눈은 없고, 더듬이로 사방을 더듬었다.

크게 자란 소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몸 색깔이 나무와 비슷했다. 그래서 멀리서 보기에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춘섭이 소리를 죽여 말했다.

“껍질이 단단하겠는데?”

“그래도 송충이니까 속도가 빠르진 않을 거야. 원거리에서 처리하자고.”

“좋아. 준비해. 3백까지 접근한다.”

수한은 눈치를 보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적당히 나무 뒤에 숨은 채, 앉아쏴 자세를 취했다.

저격수로 뽑혀 갈 정도는 아니었어도 만발(모두 명중시키는 것)을 곧잘 하던 수한이었다. 3백 미터면 조금 멀긴 해도 충분히 맞출 자신이 있었다.

다른 사냥꾼들도 소총을 변이체들에게 겨누었다. 아예 저격총을 드는 사냥꾼도 있었다.

춘섭이 짧게 외쳤다.

“쏴!”

탕! 탕탕!

총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변이체들이 꿈틀거리며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몸을 용수철처럼 통통 튕기며 사냥꾼들에게 다가왔다.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꽂아 넣었다. 그때마다 녹색 체액이 픽픽 튀었다. 20발 들이 1개 탄창을 다 비우는 동안, 최소한 10발 가까이 맞춘 것 같았다.

‘별로 못 맞췄네.’

영점을 미리 맞춰 놓았지만, 며칠 만에 쏴서 그런지 평소보다 잘 안 맞은 것 같았다.

그래도 삽질을 한 건 아니었다.

한 번 맞출 때마다 경험치가 쑥쑥 올라갔다. 12마리 모두가 쓰러졌을 때는 레벨이 2가 올라 8레벨이 되었다.

수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늘어난 여유 점수는 일단 보류해 두었다. 6레벨 때도 그러했으니, 능력 점수 3개와 기술 점수 3개가 남아 있었다.

“좋아. 다 죽었어. 생체 파장 0이야.”

“그래? 확인해보자. 혹시 주변에 감지 안 되는 놈 있을지 모르니 모두 조심해.”

사냥꾼들은 변이체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아직 살아 있는 놈이 몇 있었다. 수한이 자청해서 권총으로 머리를 날렸다. 그때마다 경험치가 쭉쭉 상승했다.

“가방에 담아. 돌아가자.”

“오늘은 쏠쏠 하겠는데?”

“12마리나 되고, 산탄총이나 폭탄도 안 썼으니까. 오늘은 기대해 볼 만 하겠어.”

사냥꾼들이 떠드는 사이, 수한은 변이체 시체를 가방에 차례차례 담았다.

가방에 다 들어갈까 싶었는데, 힘껏 눌러 담자 12개 전부가 들어갔다. 대신 가방이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 수한보다 거의 2배 이상 커졌다.

이걸 혼자 들고 가라고?

사냥꾼들을 보았지만 자기들끼리 낄낄 대고만 있었다. 별 수 없이 수한 혼자 산장까지 가방을 들고 가야 했다.

산장에 도착하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팔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게 내일 근육통이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가방을 넘겨줬던 박씨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산장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라도 받아라. 아가씨는 없지만 그대로 자면 내일 죽어나갈 거다.”

“하하, 걱정 마세요. 저 이래 봬도 강골입니다.”

“쯧, 난 말 해줬다. 내일 죽는 소리 해도 안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박씨는 혀를 차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수한은 남은 시간 동안 계속 스트레칭을 했다. 국군 도수 체조를 반복하고, 산장 한쪽에 있는 운동 기구를 이용했다. 남는 시간 동안 소총의 영점도 맞췄다.

그렇게 하고 잤는데도, 다음날이 되자 온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아으으으, 죽겠다.”

끙끙 앓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오늘 사냥 목표는 E급 변이체 8마리였다.

어제보단 확실히 나았다. 덩치가 조금 더 크긴 했지만, 수가 겨우 절반 남짓이었으니까. 덕분에 조금 더 수월하게 산장까지 가방을 가져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방을 산장 직원들에게 내밀었다. 막 땀을 닦는데, 수한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항상 활성화시켜놓고 다니는 레벨 업 도우미.

9 레벨이 된 것은 진작 확인했었는데, 그 아래 보이는 항목들에 조금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근력이 13에서 14로, 체력이 15에서 16으로 올랐다.

본인의 노력에 의해서도 능력치가 올라가는 모양.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짐을 더 적게 들어서였을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뿐했다. 옅은 피로감만 좀 남아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수한은 큰 소리로 인사하며 합류했다.

사냥꾼들이 팔팔한 수한을 보고 한 마디씩 했다.

“허, 완전히 적응 했나 본데?”

“겨우 이틀 만에?”

“대장이 괜히 반 몫 챙겨준다고 한 게 아니네. 솔직히 어제 도망갈 줄 알았는데.”

“거 봐! 내 눈을 믿으라고 했잖아!”

춘섭이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그 후 사냥꾼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변이체를 좀 많이 잡았다 싶으면 자기들도 한두 마리씩은 담아갔다. 말도 더 부드럽게 하고, 심심할 때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아직 완전히 마음을 연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자기들 동료로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들고 가지요.”

“무거울 텐데……”

“저 힘 좋습니다. 아시잖아요?”

수한은 그들이 베푸는 호의 중 받을 건 받고, 필요 없는 것은 몽땅 물리쳤다.

특히 짐은 수한이 다 들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걸을수록 근력과 체력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밤에는 공부를 했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순수한 의미에서의 공부였다.

처음 내려올 때는 책을 안 가져왔지만, 택배와 인터넷 구매라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중급과 상급에 해당하는 책과 듣기 파일을 산장으로 배달시켰다.

공부를 계속하자 가뭄에 콩 나듯 지능과 직감이 올랐다. 그런데 예전 도서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밥 먹을 것 먹고, 잠 잘 것 자면서 해서는 능력치가 잘 오르지 않았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 공부를 해야 효과가 좋았다. 오늘 이거 공부하고 죽어버려야겠다는 각오로 달려들어야 했다.

낮에는 육체를, 밤에는 정신을 혹사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 때문인지 수한의 얼굴에서 살이 조금씩 빠졌다. 2주 정도 지난 시점에서는 피골이 상접하게 변했다. 해골처럼 비쩍 마른 가운데, 두 눈만 호랑이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춘섭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괜찮냐? 어디 아픈 거 아냐?”

“전 괜찮습니다.”

“아프면 며칠 쉬어도 돼. 공격대 지원 요원이든 사냥꾼이든 몸이 재산이야. 몸 망쳐서는 안 된다고.”

“걱정 마세요. 제 몸은 제가 압니다. 제가 목표한 게 있어서 밤새 공부하느라 겉으로는 이렇게 보이지만, 속은 아주 쌩쌩합니다. 안 좋아지면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끄응. 그렇게까지 말하니 넘어가지만, 본인 몸 관리에 신경 좀 더 써. 얼굴이 더 안 좋아지면 사냥에서 제외하는 수밖에 없어.”

“알겠습니다.”

요즘엔 능력치 올리는 재미에 잠도 거의 안 자고 있었는데, 이젠 조금씩이라도 자야할 성 싶었다.

6월이 되었다.

각 공격대들이 일제히 채용 공고를 냈다. 수한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병적증명서, 사냥꾼 허가증을 몇 개의 공격대에 등기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사냥.

짐 나르기, 밤을 새다시피 하는 공부……

수한은 총 3개의 공격대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다.

해모수, 워소드, 알바트로스.

모두 국내에서 10위 안에 들어가는 유명 공격대들이다.

대한민국 1위를 다투는 타이탄이나 백호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긴 그 둘은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 중의 인재나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전화를 받고, 수한은 춘섭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형, 저 서류 전형 통과했어요. 이번 주까지만 하고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축하한다. 서류는 어디까지나 기본이고, 실기랑 면접이 진짜란 거는 알지? 서울 올라가면 무료 사격장이라도 다녀서 감 잃지 않게 노력하는 게 좋을 거다.”

“네, 그렇게 할게요.”

“우리 막내가 서류 전형 통과했다고? 아, 그럼 한 잔 해야지!”

“고럼, 고럼! 오늘 먹고 죽자고!”

수한의 송별회가 벌어졌다.

모두 주거니 받거니, 얼큰하게 취했다.

춘섭은 그 동안 수한이 모은 돈을 그 자리에서 정산해 주었다. 산장에 부산물을 넘기고 돈을 받을 때마다 문자로 알려주었지만, 계좌에 직접 입금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약 600만원.

그 동안 쓴 게 있지만 상당한 액수였다.

춘섭이 수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좀 고생한 것 같아서 차비를 더 넣었다. 서울 가서도 우리들 잊지 말고, 가끔 소주나 한 잔 하자.”

“감사합니다.”

“취업 성공하면 연락해라! 꼭 한 번 놀러가마!”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잠도 자면서 해라. 젊은 사람 얼굴이 그게 뭐냐?”

“그래! 여기 형님들처럼 살이 좀 붙어야 여자도 붙지! 이제 예쁜 아가씨 만나서 장가도 가야 할 거 아니냐?”

“하하하, 알겠습니다.”

"공격대 소속이면 자유롭진 못해도 돈은 더 벌지. 일반 지원 요원으로 들어가도 우리보다 2~3배는 벌 걸?"

"외계 행성 원정 나가는 재미도 쏠쏠해. 하긴 당시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맞아, 맞아."

"나중에 마라도도 한 번 가 봐. 지리산은 이제 변이체 찾아 보기가 힘든데, 거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나 봐. 배 타고 유인해서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던데?"

"그렇습니까?"

"하긴 경험 삼아 며칠 갔다 오는 건 좋지."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자기들 방으로 기어들어갔다.

수한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사냥꾼들에게 올라가보겠다고 아침 인사를 한 후, 가방을 들고 산장을 나섰다.

세라프 어 책 같은 무거운 짐은 이미 서울로 보낸 뒤.

수한은 산장을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볍게 손짓을 하여, 접어두었던 4개의 창을 모두 펼쳤다.

지리산에서의 한 달 동안 얻은 성과가 수한의 눈앞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싱긋.

수한의 입가에 밝은 웃음이 떠올랐다.

레벨과 능력치.

예전에는 무척 빈약했었는데, 1달 사이 제법 풍성하게 자라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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