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7화 (8/254)

< 실기 시험 -1- >

먼저 레벨.

정확히 20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올라가는 속도는 느려졌지만, 처음 지리산에 오던 때와 비교하면 괄목상대라고 할 만 했다.

능력치도 상당히 올랐다.

많이 오른 것도 있고 조금씩 오른 것도 있었다. 최종 결과만 보자면 근력 18, 체력 19, 민첩 15, 재주 17, 감각 15, 지능 14, 직감 17, 의지 15, 위엄 13이 되었다.

초능은 어쨌냐고?

정확히 20으로 변했다. 지금까지 얻은 능력 점수는 몽땅 초능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다.

세라프 어와 문자도 6레벨로 올랐다. 덕분에 말도 이젠 곧잘 했다. 조금만 더 공부하고 익히면 원어민 수준까지 올라가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1달 동안 수련도 잘 했고, 돈도 많이 벌었다.

지리산에 온 보람이 있는 것.

터미널에서 내리자 두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가 수한을 맞이했다.

동생들이 수한을 보고 기함을 했다.

“형! 얼굴이 왜 이래?”

“밥 안 먹고 살았어? 몸은 괜찮아?”

하도 몸을 혹사시킨 까닭에 겉으로 보기엔 몸이 말이 아니었다. 동생들이 놀랄 만도 했다.

수한은 짐짓 팔을 구부려 알통을 보여주었다.

“걱정 마. 컨디션 최고니까. 힘도 많이 세졌어.”

“안 되겠다. 고기부터 먹자. 내가 살게.”

“돈이 어디 있어서?”

“과외해서 열심히 벌었거든? 내가 좋은데 알아. 거기 가자.”

명한이 수한을 잡아끌었다.

셋이서 간 곳은 한 소갈비 집.

저렴하고 양이 푸짐한 곳인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수한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비싼 거 아냐? 아니, 내가 사야겠다. 나 지리산에서 돈 많이 벌었어.”

“돈 벌었으면 본인 밥부터 잘 사먹지 그랬어? 산장에 식당도 있다면서. 혹시 그 선임이라는 사람이 막 부려먹은 거 아냐?”

“어휴, 그런 거 아냐. 밤에 잠을 잘 안 자서 그래.”

“잠은 왜 안 자?”

“공부하느라 그랬지. 밤새 세라프 어 공부했어.”

“그래서 늘었어?”

“응, 많이 늘었어. 가끔 할 일 없을 때 지리산이나 마라도에 가는 것도 괜찮겠더라.”

수한은 동생들을 진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썼다.

충격적으로 변해 버린 얼굴 때문에 둘은 잔소리를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집에 돌아가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밤이 되자 좀 조용해졌다.

내일부터 바로 공격대들의 실기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행히 날짜가 조금씩 달라서 모두 응시가 가능했다.

비는 시간에 이능 적성 검사도 봐야 하니, 내일부터는 다시 바빠질 터였다.

6월 22일 월요일.

수한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실기시험이니 정장 대신 전투복을 입었다. 지리산에 갈 때 썼던 가방도 챙겼다. 거기엔 용산에서 구입한 무기와 방어구, 변이체 탐지기가 들어 있었다.

수한이 지원한 것은 각 공격대의 지원 요원.

이능력자들과 함께 외계 행성으로 원정을 나가는 직군이었다. 당연히 전투 능력이 중시되고, 그에 못지않게 각종 실무 능력도 중요했다. 원정 계획도, 원정 보고서도 모두 지원 요원이 작성하니까.

동생들이 주먹을 쥐고 수한을 응원했다.

“형! 파이팅!”

“형, 잘 하고 와야 돼?”

“걱정하지 마.”

수한은 보무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오늘은 해모수 공격대의 실기 시험 날.

수한이 합격한 3개의 공격대 중 가장 이름이 높았다. 연봉도 셌다. 대신 야근에 특근이 기본이고, 복지는 좀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알바트로스가 됐으면 좋겠다.’

3개의 공격대마다 일장일단이 존재했다.

워소드는 업무 강도가 약했다. 하지만 복지가 상당했다. 거의 타이탄이나 백호와 동급이었다. 다만 연봉을 적게 준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수한은 해모수나 워소드가 아닌 알바트로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공격대.

규모는 많이 불렸지만 많은 면에서 주먹구구식이었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면도 많이 있다고 들었다.

대신 뚜렷한 장점이 몇 개 존재했다.

사이가 끈끈한 5명의 AA급 이능력자가 임원진이라는 것도 그렇고, 대한민국 공격대 중 가장 적극적으로 외계 행성에 진출한다는 것도 그랬다.

어쨌든 나중 일.

일단 시험부터 잘 치르고 볼 일이었다.

해모수 공격대의 시험장은 고양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수한의 집은 서울 남쪽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시험장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도착하니 벌써 시험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시험장 입구에 작은 사무실이 보였다. 그곳으로 다가가 서류 전형 합격 증서를 내밀자, 사무실 안에 앉아있던 남자가 수한을 훑어보았다.

“실기 시험 응시하러 온 겁니까?”

“예. 아직 안 늦었죠?”

“시간은 충분합니다. 혹시 무기 가져온 거 있으면 모두 꺼내서 저한테 보여주시고요. 등록 안 된 무기 사용하면 부정행위로 간주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수한은 가방에서 단검과 권총, 소총을 꺼내 보여주었다.

남자는 일일이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에 뭔가를 입력하더니, 명찰이 달린 목걸이를 수한에게 주었다.

“이거 받아가세요. 시험장 안에서는 항상 차고 있어야 합니다. 응시 번호 확인하시고, 호명하면 얼른 시험장으로 가세요.”

“알겠습니다.”

수한은 명찰을 목에 걸었다.

[1번부터 5번 응시자까지 시험장으로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장에 늦게 도착하긴 했나 보다.

벌써 시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던 응시자들이 시험장으로 입장하는 게 보였다.

수한의 응시 번호는 157번.

시작하려면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총도 쏘고 생존과 환경 적응도 보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채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다음 방송이 울렸다.

[6번부터 10번 응시자까지 시험장으로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식으로 거의 5분에 한 번씩 불러대자, 생각보다 수한의 차례가 일찍 왔다.

수한은 안내에 따라 시험장 안으로 입장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권총을 찬 요원들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중 견장을 찬 남자가 응시자들을 보고 턱짓을 했다.

“무기 가져온 거 있으면 꺼내세요. 종목은 사격, 생존, 격투, 이렇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각 종목마다 세부 항목이 또 있고요. 그리고 특별한 기술 있는 분은 시험이 끝나고 가시면서 말씀해 놓으세요. 따로 가산점이 부여될 겁니다.”

“화염방사기 쓸 줄 아는데, 그것도 나중에 말하면 됩니까?”

“화염방사기라고요? 호오, 흔하지 않은 특기네요. 맞습니다. 뭐든 재주가 있는 분은 말씀해보세요. 써먹을 수 있으면 가산점을 드립니다.”

이거 야단났다.

수한은 특기랄 게 없었다.

세라프 어라도 말해볼까? 이젠 6레벨이 되어 곧잘 하는데.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기로 했다. 가방을 열고 총을 꺼냈다. 권총과 단검을 허리춤에 차고, 소총을 양 손으로 들었다.

남자가 다시 말했다.

“세 종목 중 사격부터 시작입니다. 사격은 권총, 소총, 산탄총, 저격총 분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각 시험장마다 총기가 비치되어 있으니까, 총을 가져오지 않은 분은 그걸 쓰시기 바랍니다. 자, 모두 들어가시죠.”

사격 시험은 간단했다.

길쭉한 실내 사격장에서 자신의 사로에 나타나는 과녁들을 쏘면 됐다.

고정 과녁도 있고, 움직이는 과녁도 있었다. 가끔은 몇 개가 동시에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기도 했다.

거리는 10, 15, 20, 30, 50, 75, 100까지.

수한은 양손으로 권총을 붙잡고 신중하게 사격을 했다. 쏜다고 쐈는데, 권총 특성 상 거리가 멀어질수록 급격히 명중률이 떨어졌다. 20까지는 대부분을 맞췄지만 100은 5발을 쏴서 1발을 겨우 맞춘 것 같았다.

군대에서 근접전을 대비하여 많이 쏴봤는데도 이랬다. 역시 권총의 명중률은 굉장히 낮았다.

그나마 수한은 아주 잘 쏜 편이었다. 거리 10을 넘어가자 1번도 못 맞힌 응시자들이 속출했다.

다음은 소총 사격.

수한의 전문 분야였다.

탕탕탕!

“100점이야!”

누군가 수한의 점수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소총 사격에서, 수한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거리가 50, 100, 150, 200, 250, 400이었는데 깨알보다 작게 보이는 400까지 맞춰버린 것이다.

수한도 사실 좀 얼떨떨했다.

‘내가 이 정도였나?’

군대에 있을 때도 사격을 잘 하긴 했지만, 250 이상부터는 한두 발씩 놓치곤 했다. 그래서 저격수로 뽑혀 가진 않았는데, 오늘은 총이 두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산탄 사격과 원거리 저격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군대에서의 보직은 소총수였지만, 산탄총과 저격총도 조금씩은 다룰 줄 알았다.

산탄 사격은 과녁이 아니라, 야구공을 쉬지 않고 날려 그걸 맞추는 식이었다. 하긴 산탄총은 정확도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얼마나 빠르게 방향을 설정하고 쏘느냐가 중요하니 그럴 법도 했다.

원거리 저격은 사람 모양의 과녁 중 붉은 점이 칠해진 과녁만 맞춰야 했다. 푸른 점 과녁을 맞히면 감점을 받았다. 그리고 붉은 점에 정확히 맞추면 가산점을 주었다.

둘 다 85% 이상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눈치를 보니, 이 정도면 거의 최상위권이었다.

다음은 생존 시험.

야산 하나가 통째로 개조되어 있었다. 마치 논산 훈련소의 모의 각개 전투장을 보는 것 같았다. 곳곳에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고, 사람 모양 과녁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시험장 입구에 서 있던 남자가 수한에게 단검 하나를 건넸다. 날이 세워지지 않은 뭉툭한 단검으로, 상당히 묵직했다.

“생존 시험은 사막, 정글, 빙하 지대에서의 활동 능력을 보는 겁니다. 저기 장애물들 보이시죠? 저걸 죽 돌면 됩니다. 중간에 과녁들이 나타날 텐데, 그걸 공격할 때마다 가산점이 부여되니까 잘 공격해보세요.”

“사막, 정글, 빙하라고요?”

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겉으로 봐서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장애물만 잔뜩 늘어서 있었다.

남자가 씨익 웃었다.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수한은 단검을 움켜쥐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애물을 넘는 것은 쉬웠다. 군대에 있을 때 훈련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해본 거였다. 날렵하게 낮은 담을 뛰어넘고, 포복으로 철조망을 통과했다.

빠르게 속도를 올리고 있는데, 어째 기온이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다.

칼날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수한은 손끝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어어?”

어느새 5월의 싱그러운 풀들이 다 죽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흰 눈이 가득했다. 발을 내딛으면 쌓인 눈 안으로 발이 푹푹 들어갔다. 눈이 펑펑 내려서 머리와 어깨에 눈이 뭉텅이로 쌓였다.

입구에서 봤을 때는 이런 걸 볼 수가 없었는데?

수한은 곧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환상이구나.’

이능 중에는 오감 전부에 작용하는 환상을 발휘하는 것도 있었다. 그걸 시험장 전체에 설치한 모양이었다.

비용이 장난 아니게 들었을 텐데, 해모수 공격대가 이번 일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만 했다.

환상이란 것을 알아챈 이상 거칠 것 없었다. 수한은 굳어오는 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애물을 넘었다. 가끔 과녁이 나타나면 몸을 날려 단검을 박고, 좀 멀다 싶으면 던지기도 했다.

빙하 다음은 사막.

뜨거운 열기가 수한의 몸을 태웠다. 목이 미칠 듯이 마르고,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이것도 환상.

수한은 그것을 유념하며 차분히 앞으로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정글이 펼쳐졌다. 온갖 벌레들이 수한에게 달려들었다. 워낙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몇 걸음 앞으로 가기도 어려웠다.

‘이건 장애물일까? 아니면 그냥 환상일까?’

그게 궁금했지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단검을 휘둘러 수풀을 헤치며 시험장을 돌파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