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출근 -1- >
월요일 아침.
처음 출근하는 날이 되었다.
수한은 일어나는 대로 레벨 업 도우미의 정보를 확인했다.
[능력]
이름 : 이수한 나이 : 25 성별 : 남
신장 : 185cm 체중 : 88kg 상태 : 정상
종족 : 인간 진영 : 연합 행성 : 지구
레벨 : 27 계열 : 살육 계급 : 없음
근력 18 체력 20 민첩 16 재주 18 감각 18
초능 27 지능 15 직감 18 의지 17 위엄 15
여유 점수 : 0 경험치 : 35%
[기술]
언어 : 한국어 11, 세라프 어 6, 영어 5.
문자 : 한글 10, 세라프 문자 6, 영문 5.
사격 : 소총 사격 14, 권총 사격 11, 산탄 사격 13, 원거리 저격 12.
격투 : 단검 격투 12, 맨손 격투 11, 총검 격투 13.
함정 : 함정 설치 12, 화약 함정 12.
생활 : 삽질 11, 청소 8, 빨래 4.
전술 : 작전 계획 7, 전투 지휘 5.
여유 점수 : 19
다양한 부분에서 성장했다. 가히 괄목상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능과 위엄.
육체적 능력치에 비해 다소 떨어졌었는데, 2주 간의 연수 끝에 좀 보충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작전 계획도 레벨이 좀 오르고, 전투 지휘 기술도 5레벨이 되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동생들이 손을 흔들었다.
“형, 조심해서 가!”
“금요일에 온댔지?”
“응. 그때 밖에서 밥 먹자. 둘 다 시간 비워놔.”
“알았어!”
수한은 새벽 같이 길을 나섰다.
7시 지하철을 타야 9시 전까지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이 워낙 외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꽤 이른 시간이라 역은 한적했다. 수한처럼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 몇 명만 볼 수 있었다.
지하철을 환승해가며 여의도역을 향해 갔다. 거의 8시 반이 다 되어서야 여의도역에 도착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입구의 경비 사무실에 사원증을 내밀었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받은 사원증이었다. 경비가 사원증을 조회하더니 스윽 수한을 살펴보았다.
“처음 출근하시는 겁니까?”
“예. 오늘부터 출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지원부는 8층에 있습니다. 거기 가시면 안내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8층으로 올라가자, 30대 초반 남자 하나가 수한을 손짓해 불렀다.
“신입이시죠?”
“예! 처음 뵙겠습니다.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네네. 저기 대기실에 들어가 계세요. 다른 분들 다 모이면 부장님께 인사드릴 거예요.”
수한은 남자가 가리킨 대기실 안에 들어갔다.
이미 남자 두 명이 와 있었다. 2주의 연수 기간 동안 얼굴과 이름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두 분 다 잘 계셨어요?”
“아, 수한씨! 전 잘 지냈습니다.”
“며칠 안 지났는데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수한은 인사를 하고 적당히 자리에 앉았다.
연수 때 들었던 것에 의하면 지원부 신입사원은 총 열세 명이었다. 일이 험할 때가 많다 보니 남자가 많아서, 이번 기수는 한 명을 빼곤 모두 남자였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도착했다. 그때마다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창희씨. 잘 계셨습니까?”
“아, 뭐. 잘 있었죠.”
개 중에는 창희도 있었다.
연수원에서 가장 먼저 인사를 했던, 여자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하던 남자.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대충 인사를 받더니, 다른 신입사원들을 향해 걸어가 버렸다.
수한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연수원에서 자기 팀이 앞서 나갈 때는 의기양양해서 자랑을 늘어놓더니, 20팀이 기계 괴수를 잡은 뒤는 기가 팍 죽었다. 수한을 경원시하며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마음이 안 맞는 동기다.
뭐, 세상 살며 만나는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법이지 않나. 수한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다들 모이셨나요?”
아까 보았던 30대 남자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다행히 늦은 사람은 없었다.
남자는 신입사원들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모두 정시에 모이셨네요. 다들 일어나세요. 부장님께 인사부터 하겠습니다.”
수한을 비롯한 신입사원들은 남자를 따라갔다.
대기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장실이 있었다. 남자는 문을 정중한 태도로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어, 신입사원들인가?”
부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얼굴에 붉은 기가 돌고, 어깨가 떡 벌어진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머리는 완전히 벗겨져 빛이 번들거리고, 얼굴이 꼭 두꺼비를 연상시켰다.
수한이 조사한 바로는 10년 전 대전쟁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었다. 지금도 몸을 단련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은 듯했다.
신입사원들이 분분히 인사를 하자, 부장이 손을 내저으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 거기 의자에 좀 앉지. 김 과장, 가서 일 보도록 하세요.”
“예, 부장님.”
수한은 부장이 권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부장은 신입사원들을 한번 스윽 둘러보았다. 먼저 얼굴을 보고 가슴의 사원증을 보는 게, 얼굴을 익히려는 듯했다.
“어디, 한 명씩 자기소개 해 볼까? 그래. 자네부터 하지.”
부장은 수한을 지목했다.
수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맑고 또렷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1991년 생 이수한입니다. 20세에 군대에 지원하여 5년 간 부사관으로 복무 후 올해 5월에 전역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아하, 누군지 알겠네. 이번에 면접에서 수석을 한 친구로군. 자네가 제출한 계획은 아주 잘 봤네. 군데군데 엉성한 곳이 보이긴 하지만 맥은 제대로 짚었더라고. 연수원에서도 자네 팀이 1위를 했다면서? 자네한테 기대가 커. 그래, 자네도 한 번 해볼까?”
13명이 모두 자기소개를 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부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모두 반갑네. 나는 강준배라고 하네. 올해 마흔둘이고, 부족하게나마 지원부장을 맡고 있지. 우리 부서가 뭘 하는 줄은 다 알고 있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목소리 우렁차서 좋군. 자네들이 아는 대로 우리 지원부는 전투부의 이능력자들이 변이체를 사냥하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서라네. 사냥 계획을 짜고, 부족한 화력을 보충하지.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네.”
부장은 잠시 말을 끊고 신입사원들을 둘러보았다.
“자네들이 이전 직장에서 어떤 직위에 있었든,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든 이곳 알바트로스에서는 신입사원에 불과하다는 것일세. 모든 공격대가 그렇지만, 우리 공격대도 신입사원에게 중책을 맡기지는 않아. 외계 행성에 아무나 데려갈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처음에는 다른 거 생각하지 않고 우리 공격대에 적
응하는 것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수한은 이게 뭔 소리인가 했다.
그것도 잠깐, 금세 부장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TV 드라마나 각종 소설, 만화에서도 자주 나오지 않나.
신입 길들이기, 혹은 잡일.
아무리 좋은 능력을 가진 신입이라도 처음부터 제대로 된 일을 주지는 않는다. 서류 복사, 커피 타오기 같은 잡일만 시켰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적응을 하면 일 같은 일을 주곤 했다.
군대에서도 흔히 보이는 광경이었다. 수한 자신도 이등병에게 뭘 시키는 건 극도로 꺼렸으니까.
입맛이 썼다.
‘지금 난 이등병이구나.’
군대에 있을 때는 부소대장으로 잘 나가던 몸.
더구나 레벨 업 도우미를 활용하면서 능력에 자신이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졸병 신세라는 소리다.
부장이 박수를 짝 쳤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정장 차림의 여성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 대리. 신입들 각 과에 데려다주고 오세요. 배치 목록은 뽑아 왔죠?”
“예, 가져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일 봐요.”
“네, 부장님.”
수한은 한 가지 사실을 눈치 챘다.
벌써 말투부터 달랐다.
신입사원들에게는 ‘하게’하는데 앞서 봤던 김 과장이나 지금 이 박 대리에게는 ‘해요’하고 있으니까.
수한을 비롯한 신입사원들은 박 대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박 대리는 들고 온 타블릿 PC를 들여다보며 신입사원들에게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하죠. 제가 호명한 순서대로 서세요. 제준모씨, 채동하씨, 장기문씨……”
일단 하라는 대로 줄을 섰다.
몇 명이 미적거리자 박 대리가 짜증을 냈다.
“뭐 해요? 시간 없다는 말 안 들려요?”
수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벌써부터 시작한 모양이다.
신입사원들이 줄을 다 서자 박 대리는 그들을 이끌고 복도를 걸어갔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지원 1과.
나란히 늘어선 지원 1, 2, 3과는 뒤쪽의 과들에 비해 확연히 컸다. 창문으로 언뜻 보이는 설비도 최신식이었다. 근무할 때 하더라도 저런 곳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대리가 지원 1과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지원 1, 2, 3과는 우리 공격대의 핵심이에요. 다른 과는 부서원이 8명으로 이뤄지는데, 이 세 곳은 부서원이 20명이나 돼요. 게다가 과장님들 모두 B급 이능력자시기도 하죠. 우리 공격대가 AA급 변이체를 잡을 때는 거의 대부분 이 3개 과에서 주도해요. 여러분이 1년 계약이죠? 그 동안 열심히 하면 여기 배
속될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하도록 하세요.”
이능력자가 지원 1, 2, 3과의 과장이라고?
대부분의 이능력자는 지원부를 기피한다. 전투부에 비해서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외계 행성 원정도 전투부에 비해 적게 나가므로, 수익도 훨씬 적었다.
그렇지만 지원부를 희망하는 이능력자가 가끔 있었다.
실전 지휘와 서류 업무를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능력자는 후에 능력을 인정받으면 상위 공격대로 옮겨가거나, 해당 공격대의 이사 직위를 얻곤 했다.
더구나 각 공격대에서도 이런 부서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했다. 하위 부서가 하나부터 열까지 오만 잡일을 다할 때, 이런 부서는 정보부와 분석부가 붙어 업무를 돕는 식이었다.
박 대리가 3개 과를 지나쳐 지원 4과 앞에 섰다.
“준모씨, 저 따라 들어오세요. 준모씨는 앞으로 지원 4과에서 근무할 거예요.”
“아, 예.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여기 잠깐 계세요.”
박 대리는 준모만 데리고 지원 4과로 들어갔다.
기세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신입사원들이 숨죽여 불평을 털어놓았다.
“후아!”
“첫날부터 장난 아니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다니던데 다닐 걸 그랬어.”
“남자한테 차였나? 뭔 놈의 히스테리를 부리고 난리야.”
박 대리는 금방 밖으로 나왔다.
다음은 6과, 8과, 11과……
창희는 11과로 들어갔다. 온통 남자밖에 없는 과라서 몇 마디 불평을 했는데, 박 대리가 째려보자 찍 소리도 못 하고 숨을 죽였다.
수한은 지원 17과.
박 대리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이 과장님! 신입 왔어요!”
지원 17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개중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수한은 빠르게 사원증을 살폈다.
이지혁 과장.
앞으로 수한의 직속 상사가 될 사람이었다.
“아, 박 대리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그럼 다른 신입들도 데려다줘야 되니까 가볼게요.”
“네, 수고하세요.”
박 대리가 나가자, 수한은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올해 스물다섯이고, 개마고원에서 부사관으로 5년 간 복무 후 5월에 전역했습니다. 공격대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 서류에서 봤어요. 개마고원에 있었으면 별로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저도 개마고원 출신입니다. 자, 다들 모여 보세요.”
지혁은 온화한 태도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짓을 하자, 여섯 명의 남자가 어기적어기적 모여들었다.
수한처럼 정장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청바지에 티셔츠 등 가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도 말끔하게 세탁을 해서, 지리산에서 만났던 사냥꾼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간단히 인사부터 하지요. 저는 이지혁 과장입니다. 지원 17과를 공식적으로 책임지고 있지요.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혁을 필두로 한 명씩 자기 이름을 밝혔다.
이지혁 과장, 조운재 대리, 정희윤 계장, 한신일 계장, 김강성 주임, 송일식 주임, 황준표와 이수한.
총 8명.
지원 17과는 과장 1명, 대리 1명, 계장 2명, 주임 2명, 사원 2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사원증을 패용하고 있어 이름을 헷갈릴 염려는 없었다. 그래도 수한은 요즘 들어 왕성해진 기억력으로 그들의 이름과 얼굴, 직책을 기억해 두었다.
지혁이 수한을 제외한 여섯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렇지, 김 주임님이 수한씨 데리고 다니면서 좀 가르쳐주세요. 성적은 좋은데 공격대 입사는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을 겁니다.”
“끄응, 알겠습니다.”
강성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이 그걸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과 회식이 있습니다. 모두 알고 있지요? 필히 참석하길 바라고, 수한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때 봅시다. 자, 모두 일 보세요.”
그 말을 끝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한은 뭘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강성이 얼굴을 찡그린 채 수한을 손짓해 불렀다.
“어휴, 내 일도 바빠 죽겠는데…… 수한씨, 이리 와보세요.”